션윈(神韻) 음악을 들은 감수
작자:팡얜(方言)
【대기원】
좀 부끄러운 말이지만 필자는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애호해왔는데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중국의 전통음악에도 훌륭한 작품들이 있고 나름대로 꽤 좋아하긴 했지만 서양음악처럼 그렇게 즐기진 않았다. 심지어 대개의 경우 국악(國樂)을 존중하되 오히려 멀리해왔다. 이는 장기간에 걸친 중공의 우민 통치 하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션윈예술단의 음악은 뚜렷한 예외가 되었다. 좀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 알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션윈이 펼쳐내는 내포는 단순히 고아(高雅)하고 순정할 뿐만 아니라 또 현묘하기 그지없다.
1. 중서합벽(中西合璧)의 교향악단
션윈 악단은 그 구성에서 다른 악단과 차이가 있다. 션윈은 서양의 교향악단 편제를 기본으로 하지만 또 얼후(二胡), 수르나이(?? 중국 전통의 관악기) 등 민족 악기가 적당히 융합되어 있다. 동시에 음악을 처음 창작할 때부터 편곡에 신경을 써서 화성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때문에 션윈 악단의 연주를 들어보면 중국 전통의 운치를 잘 보존하면서도 음향효과와 표현력의 방면에서 교향악단의 장점을 잘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션윈의 음악을 들어보면 음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일부 세부적인 부분의 처리에 있어 아주 독특하면서도 참신하다. 그야말로 중국과 서양의 악기를 결합한 ‘중서합벽’(中西合璧 중국과 서양의 결합)이라 부를 수 있으며 양자의 차이를 통해 서로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2. 불(佛)과 도(道)를 구비한 음악내포
중국 음악과 서양 음악의 정화를 동시에 보존하기란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은 아주 어렵다! 왜냐하면 문화전승의 각도에서 볼 때 양자는 서로 전혀 다른 역사적 연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전통음악에 대한 도가사상의 영향
중국전통음악에 대한 도가사상의 영향은 아주 깊으며 일상생활의 다양한 방면을 포함한다. 전통음악에 대한 도가사상의 영향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뚜렷하다.
가령 과거에 중시하던 궁, 상, 각, 치, 우 오음(五音)에는 인체 오장(간, 심, 비, 폐, 신)을 포함하는데 이는 도가에서 말하는 오행(금, 목, 수, 화, 토)와 상응한다. 또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악기인 피리나 얼후 등을 예로 들자면 단순하고 질박한 모습을 지녀 천연의 음색에 가깝다. 연주 과정에서도 음악의 표면적인 운율뿐만 아니라 음악 배후의 내포, 소위 말하는 ‘현 밖의 음’(弦外之音)를 표현하는데 이는 반본귀진(返本歸眞)을 숭상하고 내포를 중시하는 도가문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또 전통음악에는 독주가 많고 설사 합주를 한다 해도 서양의 교향악단처럼 복잡하고 내용이 풍부하진 않다. 대신 악기를 합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암묵적인 조화를 요구한다. 이는 혼자 수련하는 것(獨修)을 좋아하고, 단순하고 청정한 것을 좋아하는 도가사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널리 전해진 음악이야기로는 아직까지 ‘고산유수(高山流水)’를 능가할 만한 것이 없다. 《열자(列子)·탕문(湯問)》의 기록에 따르면 전국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유백아(?伯牙)는 고금(古琴)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반면 나무꾼 종자기(鍾子期)는 음악을 듣는 능력이 뛰어났다. 백아는 종자기가 자신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움과 기쁨을 느꼈다. 두 사람은 이에 금란지교(金蘭之交)를 맺었다.
하지만 1년 후 종자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지음(知音)을 잃은 슬픔에 고금의 줄을 끊어 버리고 더는 연주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천고의 지음(千古知音)’이란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지는 동시에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드러냈다. 즉, 중국의 전통음악은 기예(技藝)방면을 포함해 연주자의 수양에 대해 종종 아주 높은 요구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런 음악을 완전히 듣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음악을 듣는 사람의 감상능력이 아주 높아야 하고 깨달음도 좋아야 한다.
이 문제는 사실 일찍이 전국시대 때 초(楚)나라 사람이 ‘양춘(陽春)’, ‘백설(白雪)’과 같은 고상한 노래를 들었을 때의 반응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소위 곡조가 고상하고 심오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를 지닌 ‘곡고화과’(曲高和寡)란 말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이는 ‘도화현량(道化賢良 도가는 어질고 현명해 근기가 좋은 사람만 제도한다는 의미)’의 문화적인 영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왜 자고로 ‘지음’을 찾기가 어려운가 하는 원인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클래식에 대한 기독교의 영향
서양 사람들은 7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서양 달력에서는 7일을 1주로 삼는데 이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때문에 서양에서 기본적인 음부로 사용하는 것도 7개이다. 이를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볼 수는 없다.
전통 중국문화와 비교해보자면 서양은 기독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고 여기에는 물론 기독교 음악도 포함한다. 주지하다시피 서양 음악은 종교(기독교)에서 내원했으며 신에 대한 경앙과 찬송 외에 세인들에 대한 교화와 권고를 담고 있다. 사실 이는 서양의 음악문화 중에서도 가장 정화적인 부분에 해당한다.
르네상스 이후 특히 최근 200년에 걸쳐 서양의 클래식음악은 각 방면에서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음악의 형식면에서 보자면,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교회의 찬송가가 나타났고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시대에는 오페라, 협주곡, 소나타가 탄생했다. 이후 지금의 교향곡 등이 차례로 나타나 서양 음악의 형식은 갈수록 풍부해졌다. 또 동일한 형식의 음악 속에서도 표현형식이 갈수록 복잡하고 변화가 심해졌다. 예를 들어 동일한 교향곡이라도 작품의 구조와 편곡에 따라 다양한 작품이 존재한다.
이와 동시에 악기의 개량 및 연주기법에도 꾸준한 제고가 있어 클래식의 표현력(음악언어)은 마치 서양회화와 마찬가지로 갈수록 풍부하고 섬세하며 생동감 있게 변했다.
클래식 음악은 단지 다양한 지역과 민족의 음악에서 충분한 양분을 섭취했을 뿐만 아니라 표현 내용에서도 사람의 물질생활(의식주), 정신생활(지식과 정서)은 물론 영혼생활(종교, 신앙)의 각 방면을 거의 다 포함할 정도로 풍부해졌다.
사람의 물질생활을 묘사한 음악을 예로 들자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을 들 수 있다. 당시 1년에 한 번씩 개최된 비엔나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된 작품들 중 대부분은 당시 비엔나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어떤 작품들은 진짜와 흡사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머와 해학도 곁들이고 있다.
반면, 주로 정신 및 영혼 방면의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바로크 시대의 바하, 헨델 및 후기 낭만주의의 말러, 라흐마니노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은 인류에게 풍부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다.
‘도화현량(道化賢良)’을 주장하는 도가와는 달리 불가(佛家 널리 중생을 구도하는데 관심을 갖는 종교와 신앙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불교나 기독교를 포함한다)는 보편적인 인류에게 관심을 갖는다. 불가에서는 ‘불광이 널리 비침(佛光普照)’을 주장하기 때문에 설사 어리석거나 근기가 좀 떨어지는 사람일지라도 교화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상대하는 청중은 거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위로는 왕, 귀족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지역을 초월하며 세대의 차이를 뛰어넘는다. 뚱뚱하든 날씬하든 아름답든 추하든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의 이런 특징 때문에 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즐길 수 있고 클래식에서 마음의 위로와 영혼의 계발을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선인들이 말하던 조물주의 관용과 자비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각기 오성이 다르기 때문에 신은 이들을 인도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여기에는 물론 음악을 포함한다.
션윈의 자비와 구원
19세기말 이래 서양 학문이 성행한 이후, 특히 1919년 5.4 운동이 발생한 이후 서양음악이 점차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 방면에서 중국음악과 서양음악을 융합하고자 시도했지만 여러 가지 조건의 제한으로 인해 성공한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 중공이 정권을 장악한 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공산당은 중국인들을 선동하고 세뇌하기 위해 소위 ‘모범극’을 만들었다. 이것은 중국 전통극인 희곡(戱曲)에 서양악기를 끌어들인 것이다. 조악한
수준이라 들어보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었지만 암담했던 당시 환경에서 수많은 중국인들을 독해(毒害)시켰고 지금까지도 피해가 남아 있다. 이는 정말로 죄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인들은 “문장은 그 사람과 같고 글자가 그 사람과 같으며 그림이 그 사람과 같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사실 음악 역시 그 음악을 창작한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션윈 음악이 감동적인 이유는 단원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수양을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예술수양은 특히 도덕의 함양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오직 지극히 진실하고 선량한 사람이, 지극히 성실하고 선량을 마음을 지녀야만 비로소 진정 순선(純善) 순미(純美)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문제의 핵심일지 모르는데 이는 불가와 도가의 궁극적인 이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를 통해 중공이 저지른 짓을 다시 돌아본다면 왜 “개 입에서는 상아를 뱉어낼 수 없다”는 말이 나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션윈 악단은 표면적으로 중서합벽(中西合璧)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내포에 있어서도 불가와 도가의 이념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때문에 션윈 음악은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남녀노소, 고상하고 저속한 사람을 막론하고 진정으로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사람이라면 션윈 음악이 새로운 장을 개척했음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이제 막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말이다.
션윈의 출현은 인류에게 생명의 내원과 궁극적인 귀결을 드러내주었고, 인류에게 신불(神佛)의 자비와 생명의 아름다움을 선사했으며, 인류를 위해 완전히 새로운 순선순미한 예술의 모범을 확립했다. 션윈의 출현은 또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이미 오래 전에 미끄러져 내려간 사람의 도덕수준을 끊임없이 승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세상 사람들, 특히 장기간 공산당의 세뇌를 받아온 중국인들에 대해 말하자면, 션윈은 단순히 중국의 전통문화를 회복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먼지에 쌓여있던 생명의 선량한 본성에 대한 간절한 호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션윈 공연을 관람하는 과정 중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바로 그들 생명의 본성의 일면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션윈은 무량한 자비와 구원을 포함하고 있다.
──《정견망》에서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