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8번 노래들
나는 노래 부르기를 참 좋아했다.
아마 어려서부터 다녔던 오산교회 주일학교의 영향이 컸고
초등학교 시절의 밴드부활동과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던 조기일 선생님의 영향도 컸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시절에 교내 음악경연대회를 하면 입상자의 대부분이 교회 주일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이었다. 당시는 시골에서는 마땅히 음악이나 노래 등을 가르치는 곳으로는 교회 주일학교가 유일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주일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배우니 목소리도 남들보다 트여서 좋아지고 음정이나 박자에 대한 감각도 발달했던 결과가 그렇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1년에 한번 정도씩 학생 예능경연대회가 있는데 내가 고창북중을 다닐때에도 고창군 교육청 주관으로 학생예능 경연대회가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었다. 당시 음악담당 선생님이셨던 조기일 선생님의 인솔로 우리 학년에서는 나와 고옥례가 선배중에는 장터에 살았던 한민자누나와 검산인가 살던 누나 한명해서 4명이 고창으로 출전을 했다. 남학생은 나한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학생이었다.
당시는 고창읍만 해도 커보였다. 촌놈 주눅들기에 알맞을 정도였고 학생들도 훨씬 세련되어 보이고 대회 출전하기도 전에 기가 죽었다.대회는 보통 지정곡 한곡에 자유곡을 한곡 정도 부르는 방식이다.
당시 지정곡은 동무생각(사우)이였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로 시작되는 서정적인 노래였다.자유곡으로는 고향생각을 불렀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없네.”하는 노래이다.지정곡과 자유곡 두곡읗 떨리는 가운데 부름으로 내 순서를 마치고 다른 출전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역시 “맞을 매는 일찍 맞는게 났다.”는 말쳐럼 내 차례가 끝나고 나니 남은 시간은 그래도 부담이 없었다.
심사결과는 나는 은상에 해당하는 우수상이고 나를 제외한 사람은 전부 입선이었다. 다행히 입상하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 e대중가요n로는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대결이 한참이었다.
특히 남진의 ‘님과 함께’와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는 공전의 히트곡으로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들도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여자가수의 노래로는 패티김의 노래 가운데 하나를 참 많이 불렀다. 우리 반 여학생중 한명이 이 노래의 가사와 같은 별명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를 부르듯 이 노래를 불렀다. 특히 2학년 가을 소풍을 선운사로 1박2일로 갔을 때 제일 많이 불렀던 것 같다.
3학년 때에는 조금 센티멘탈리즘에 빠졌던 것 같다. 박인환씨의 시를 노랫말로 만든“세월이 가면”을 온갖 인상을 써 가며 불렀었다. t[월이 가도 바뀌는 것도 별로 없더구만.
3학년 말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또 유행처럼 퍼진 것이 메모리작성이었다. 그런데 작성하기가 보통일이 아니었다. 특히 악필계에 있어서 수위를 다투는 글씨체인 나로서는 추억록 작성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구석에 밖혀 있는지 언제 잃어 버렸는지도 또 어떤 질문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까맣게 잊었다는 점도 웃기는 일이다.
팝송을 중얼거리기 시작하면서 자주 부르던 노래는 쟈니 허튼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과 싸이먼과 가펑클의bridge over troubledwater“을 18번으로 자주 불렀다. 그런데 이 두 노래는 분위기를 업시키는 신나는 노래가 아니라 한마디로 ”분위기 조지는 노래“라는게 문제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거나 즐겨 부르던 노래는 전부 분위기 망치는 노래다. 얼마 전까지 자주 부르던 노래는 최성수의“해후”였다. 이 노래도 아주 분위기 망치는 노래다. 요즘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이다
특히“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하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앞으로는 신나는 노래를 하나 배워 불러야 겠다.
첫댓글 무열친구야! 조기일(장로)선생님 건강이 몹시 좋지않아서 그 사모님도 병석에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번에 고향길에 한번 찾아뵈었는지 안타까운 소식을 이번 고향방문때 듣고 왔네, 아들이 몇년전에 목사안수받고 목회중......
나도 이번 귀향길에는 성묘만 하고 올라와서 못찾아 뵈었는데, 정말 무심한 놈이지 나라는 놈은 지금 이야기하는 아들은 둘째인 운이 일 텐데, 큰아들 건이는 우리보다 1년 후배였는데,우리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에 뇌염으로 일찍 떠났는데, 부모는 돌아가시면 산에 묻지만 자녀는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래서 한동안 선생님 댁에 못갔지 가급적이면 오지 말라는 사모님 말씀에 나를 보면 자꾸 건이 생각이 난다고 하셔서 그래서 도시락 당번이 면제 되었지...
조기일 선생님은 은사님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아버지 친구겸 후배가 되기도 하셨는데, 하도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제자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뵐 면목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