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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공동체 푸른마을 <실버강좌> 실무팀 회의록
11월 14일 오후7시30분
참석자 ; 이용식 권병기 양경모 권병일 원종석 홍상의 김미옥 김은실
발제 : 이용식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크게 두 가지다. 고령화 사회와 늙은이에 대한 이해. 이런 사회에서 노인으로 살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 나이 듦에 대한 이해
고령화사회, 고령사회, 초고령사회.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 머잖아 초고령사회로 들어선다고 한다. 아이는 덜 낳고 인구는 감소하고. 이런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시각. 이에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 부각되고 있다. 이를 병리적 현상, 치료, 개선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늙음 자체를 문제로, 노화를 질환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도. 경제적 효율성 저하, 변화에 대한 대응력 저하, 복지비 지출 증가.
의료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죽기 직전 5년 동안,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80%를 쓴다는 통계가 있다.
....................... 그렇다면 이 모든 현상을 ‘문제’로 바라볼 것인가? 문제로 인식할 대상이 아니라면, 즉 기존의 일반적 시각이 잘못된 것이라면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 또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개인이나 사회적 측변에서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그러자면 노년기가 길어진 삶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것. 생로병사에 대한 인식. 이를테면 노, 병, 사... ‘나이듦’ ‘늙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의한다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중반 이후는 의미 없는 삶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 삶의 자세, 철학을 다시 세워야. 스스로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노인의 삶에 스스로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늙음, 병, 죽음에 대한 두려움. 노인으로 살아가는 생각이나 과제.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치명적인 두려움이 있지 않나. 죽을 때 겪는 고통도 물론 있겠지만. 태어나서 결국 죽는 삶 전체의 과정에 대해 자연스럽고, 일관되게 의미를 부여하는 자세가 갖춰져야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 또한 자신의 삶에 긍정적 의미 부여 가능. 그것을 채우기 위한 집단적 노력.
늙고 병들고 죽고 .. 사람들의 이런 삶의 전체 과정을 일상적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체계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해야. 그래서 죽음에 대한 강의 이런 것도 있다고 들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공감대, 이해가 어려운 듯.
늙은이로서 잘 살아내려면, 그런 것들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 그것을 같이 공부해야.
늙은 삶, 늙은 사회.... 우리 스스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려면 혼자 자기 삶만 돌아보며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노인으로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하고, 교육도 받고.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나이 들어서는 생산보다 ‘소비’가 생활의 주축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일본은 소비를 잘 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많다. 가족 간의 유대가 흐리고, 상속의 필요성도 강하지 않고. 늙어서도 쥐고 있고. 경제 전체적으로 탄력 저하, 규모 축소.
늙어서는 주로 쓰는 생활. 가능하면 문화적으로 소비해야. 그것이 늙은이로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동기이자,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 음악도 하고 춤도 추고 목공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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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 노인이 돼서 잘 살다 죽는다는 것은, 일단 건강해야 하고. 최소한의 가족공동체한테 폐가 되면 안 되고. 너무 심심해도 안 되고. 그렇게 따지면 사실은 잘 늙어간다는 게 내가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걸 견제할 수 있는 조건의 문제가 더 중요.
나 혼자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봄. 나는 가깝게는 가족공동체, 최소한은 다른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훨씬 더 와 닿는다.
우리 나이는 아직 노인으로서 살고 있는 건 아니다. 노인으로 살고 죽어가는 분을 케어하는 입장. 거꾸로 그 분들 봤을 때, 잘 살고 싶은 자세가 생각이 없는가? 그래서 자식 세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그들 역시 잘 늙어가고 싶고 죽어가고 싶을 것. 그럼 우리가 그 모습이 됐을 때 우리 다음 세대와의 관계는 어떠할까. 저는 또 반복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 문제는 개인이 혼자 뭔가 해결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필요. 늙어가면서 가족 공동체와 이 부분에 관한 논의와 공유와 결정이 있지 않는 한 이행되지 않을 것.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그 공부가 필요. 나이 들어 어떻게 살 것인가, 죽어가는 모습까지도 ‘같이’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 : 어찌 보면 고민의 지점이 다른 것. 노인의 비중이 커지면서 사회의 부정적 측면이 강화된다는 게 기존의 시각인데, 그렇게만 보면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
양 : 고령사회가 된다는 건 사회적인 큰 변화다. 그러나 개인의 사고는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진 못한다. 때문에 고령사회의 문제는, 그에 해당하는 사람 개인의 문제로 전가되기 쉽다. 그럼 과연 이걸 담당해야 할 전 세대가, 지금 우리가 원하는 대로 나이 들고 죽어가는 과정이 비생산적인 게 아니라고 인식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을 것. 부모 모시는 사람에게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는 등 구조화되지 않으면 개인의 생각도 변하지 않는다.
원 : 부모 모시는 자식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보다 노인들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이 낫지 않나.
양 : 그건 방법상의 문제일 뿐, 본질적으론 같다고 본다.
우리 사회의 구조가 노인의 문제를, 사회나 국가가 시스템상으로 해결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가족 중심 시스템이 변하긴 할 테지만 갑작스런 사회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원 : 전 오히려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빠를 거 같다는 생각.
이 : 우리 사회는 정년을 늦춰달라고 데모하고, 유럽은 정년퇴직 시점을 당겨달라고 데모한다. 그들은 은퇴 이후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회가 안정화된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은퇴 이후 놀 상대도 배우자뿐.
원 : 유럽엔 노인 공동체가 없는지.
이 : 그런 건 있는데, 우리처럼 친구.. 동창.. 고향 선후배와의 관계가 우리처럼 끈끈하진 않으니까. 그러니 부부가 친구이자 동지. 그래서 안 맞으면 이혼.
양 : 서양은 자식과의 관계는 없다. 부부만이 존재. 그게 꼭 좋은 시스템인가 하는 의문도. 그렇다고 노인을 가족공동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뿐.
이 :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의 문제이다. 늙은이로서의 삶이 오래 지속될 텐데. 나는 아마 85세까지는 멀쩡하게 살 것 같다. 그러면 3분의 1이 남은 건데...
권2 : 요즘 병기 형님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또 보내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많다. 나도 아마 10년 후쯤 그런 시기를 맞게 될 것. 그때 내 나이가 일흔인데,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다.
양 : 그렇죠. 노인이 죽어가는 노인을 봉양해야 하니...
권1: 지금 내가 바로 그런 격이다. 나는 그나마 막내라서 버티는 것. 우리 어머니는 나를 안 낳으셨으면 지금 고생 좀 하실 듯.
양 : 아들이 그나마 젊고 능력 있을 때 노인이 죽으면 다행인 상황.
옥 : 제 또래 주변 사람들은 나중에 나이 들면 당연히 요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60대들은 중간에 낀 세대인 것 같다. 부모는 봉양하고, 자신은 봉양 받지 못하는.
양 : 사례별로 다르다. 저는 마흔다섯에 고아가 됐다. 그래서 일반화하기가 쉽지 않다.
권1: 노인 문제가 힘든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사례별로 문제점이 다르다. 유치원, 초등학생, 중고생 등은 문제점이 한두 가지로 집중돼 있는데, 노인들은 서로 간에 나이 차이도 있지만, 가장 큰 건 경제력 차이, 건강의 차이, 가족관계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노인’이라는 이름으로 집단화하기가 어렵다. 뭐가 딱 옳다,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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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 얼마 전 제 환자 중에 이런 분이 있었다. 혼자 사시는 분인데 시력 장애가 생겼다. 여태 수급비를 받아 생활해왔는데, 시력 장애가 생겨 시설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는 결정을 하고 구청 등을 통해 알아보던 중. 시설에 들어가면 수급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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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당장 우리부터 각자 처한 환경과 조건이 다르지 않나. 생각이 다른 것도 있고. 물리적인 나이, 건강상태도 다른데.... 스스로 늙었다는 생각을 하며 ‘생산’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여긴다면 노년의 삶이 불행할 것이다. 주변에 보면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췄으면서 은퇴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위축돼 있는 사람도 있다. 연금을 410만 원이나 받으면서 은퇴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권1 : (우리가 기울여야 할 관심의 방향을) 둘로 나눠야 할 것 같다. 물리적 노인의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대한 관심. 또 한 가지는 정서적 안정. 가령 똑같은 조건에서 같은 시기에 은퇴했는데, 한 사람은 오피스텔을 얻어 또 다른 경제활동에 치중하느라 아등바등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이제 경제활동은 끝이라며, 독서 모임에도 나가고 룰루랄라 악기도 배우러 다닌다. 둘 중 어느 쪽이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이는 선택의 문제. 이러한 점 역시 준비해야 할 점일 것이다.
양 : 우리가 이야기하는 ‘노인’은 사회생활을 마친 이후 연령일 터. 은퇴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은퇴를 잘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은퇴 시기를 언제로 잡을 것이며, 은퇴까지 가는 과정을 어떻게 겪을 것인지, 은퇴 이후로의 연결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일 것이다.
권1 : 똑같이 부잔데, 한 사람은 자신은 잘 안 쓰고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아들은 자기 아들에게 또 물려준다. 이런 식의 삶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부자는 적당히 쓰고, 적당히 물려준다. 그리고 또 다른 부자는 자기 혼자 다 쓰고 개판 쳐서, 선대로부터도 욕먹고 후대로부터도 욕먹는 수도 있다. 그러니 경제적 측면에서 부자다, 가난하다는 개념이 아니라, 같은 재산을 보유해도 공동체 안에서 삶을 구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나라면 어떻게 할지, 나의 조건에 따라 은퇴 이후의 삶을 구상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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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 얼마 전에 경향신문에서 어떤 연구 결과를 봤는데, 통상적으로 미혼 자녀, 그 중에서도 딸이 부모 봉양을 책임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미혼 자녀도 자기 삶이 있기에 거기서 오는 갈등과 스트레스가 큰데, 그것이 사회 문제라는 것이 논문의 주된 요지였다. 이는 저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형제들은 다 서울에 살고. 내가 어머니 곁에 사니까. 가족이라는 끈끈함이 어느 정도 선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수 있으면 하고 싶다. 자식은 없지만, 조카에게 기댈 수 있는 정서적, 그리고 도의적 연대감이 생기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자기 삶이 바뀔 정도의 영향이 미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는 쪽이다. 이번에 어머니께서 입원하셨을 때도 평일엔 내가 병상을 지키지만, 주말엔 형제들이 지키게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을 주도했다.
양 : 그렇게 분담이 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너는 시집을 안 갔으니까 부모를 돌봐라” 이런 경우가 문제. 이 경우 부모 봉양을 책임진 미혼 자녀는 결혼이나 독립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
권1 : 살다 보면, 형제끼리 부모 봉양을 분담한다는 게 쉽지 않다. 어느 한 자식이 독박 봉양하게 되는 게 대부분. 그리고 그 ‘독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고, 분담은 멀어진다.
양 : 사람도 동물의 범주에 놓고 본다면... 나를 만들어준 늙어가는 부모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인간이니까 그래야 한다? 나는 여기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앞으로 인구 구조는 이런 책임감을 수행하기에 더 어려워진다. 감당해야 할 노인은 늘고, 감당할 수 있는 젊은이는 줄고.
홍 : 제가 4월에 네팔 트래킹 갔을 때, 가이드가 5형제 중 막내였는데, 네팔은 전통적으로 막내가 부모 봉양을 책임진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짧아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인데, 형들은 오래전 결혼을 했는데, 이 가이드는 결혼이 늦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유교 문화의 영향을 장자가 부모 봉양 책임지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겨왔는데,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알아보는 것도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이 : 도시 기반시설이 바뀌어야 한다. 노인들만 따로 고립되지 않고 어울려 살 수 있는 쪽으로. 언젠가 TV에서 본 적 있다. 치매 노인들이 여느 사람들과 함께 사는, 치매 안심 마을. 치매 노인이 일반 가정에서는 가족이 감당해내기 어렵지만, 그에 맞는 기반시설이 갖춰져 있다면 마을 단위로는 치매 노인들을 감당할 수 있다.
권1 : 일본의 사례지만, 노인 집단 거주 시설은 비용이 고가일수록, 또 남녀가 함께하는 곳일수록 냄새가 적다는 실험 결과가 있었다. 그러다가 한 생협이 흥미로운 시도를 했다. 유치원과 양로원을 가까이 짓고 서로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늘린 것. 그랬더니 양로원의 경우 냄새도 훨씬 줄고, 노인들은 부쩍 생기 있었다. 아이들에겐 어릴 때부터 공동체 의식을 심어줄 수 있게 된 것.
양 : 그러다 보면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수도. 외국에 이런 직업도 있다고 들었다. 치매 노인들은 항상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 집을 나선다고 한다. 그렇게 집 밖을 나선 치매 노인들을 버스에 태우고 한 바퀴 도는 버스 기사도 있다고 한다.
홍 : 우리나라 노인 시설에서 제일 싫어하는 치매 환자가 ‘잘 걷는’ 환자이다. 이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치매 안심 마을도 웬만한 마을 단위로 시스템이 돌아가야 의미가 있는 것. 치매 환자분들이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건물 하나이다. 네덜란드는 몇만 평 정도의 규모이고, 환자가 그곳으로 이사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유형의 집을 선택해서.
양 :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라와 우리의 현재 상황을 비교할 수는 없을 거 같고. 우리는 우리의 특성과 조건에 맞는 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 그래도 우리는 비교적 좋은 나이에 고민을 시작한 것. 서로 늙어서 살 수 있는 방법, 구조 이런 것들을 실험적으로 같이 할 수 있다. 긴 시간을 같이 겪어 왔고, 여러 고민과 활동을 같이 해왔기 때문에 가치관의 평균치도 공유하고 있고. 이런 점을 활용하여, 재미있고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권 1 : 노후 문제는 결국 공동체적 결합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의 문제라고 본다. 혈연공동체를 대체할 만한 주거 공동체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곳에 와서 함께 공부하고 의견 교류를 하면서, 내 아버지 어머니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짐을 느낀다.
양 : 사실 우리는 누구나 처음 겪는 초보자다. 부모를 보내는 것도. 나 자신이 노인이 되어가는 것도. 그래서 '나의 생각'이 중요한데 그것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얻기 마련.
옥 : 저도 요양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이게 우리 엄마의 문제이고, 나는 나중에 절대 이렇게 죽지는 않을 거야, 라는 다짐을 하게 된고... 그렇다면 어떻게 죽어야 요양병원에서 노후를 맞이하지 않고, 즐겁게 살다 죽을 수 있을까, 라는 고민도. 하게 되는 것.
권 1 : 유럽과 일본은 기존의 노인 시설을 해체하고 다시 '집'에서 케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노인을 시설에서 케어하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의사인 나도, 집에서 부모를 끝까지 케어해 보려 하지만, 그게 안 되는 시점이 오더라.
양 : 함께 모여 계속해서 고민하고 공부하다 보면, 우리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나갈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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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헉!!!!
이게......
정신이 번쩍 드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