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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나의 모험
그 후에도 우리들은 선기 형님을 계속 찾았다.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 눈에 띌만한 진전 없이 지쳐서 집에 돌아오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온 나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집안에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한 가족이 피로에 지친 얼굴로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손님일까 생각했는데, 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피난민이었다. 부부와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그때 안방에 있던 할매가 나왔다.
“다녀왔냐, 해수야. 선기형에 대한 무슨 소식이라도 들었냐?”
“으으응, …그보다 할매, 저 사람들은 누구에요?”
“아아, 한동안 우리 집에 머물라고 했다.”
“친척이에요? 아니면 아는 사람?”
“어느 쪽도 아니다. 하도 사정이 딱해 보여서 여기서 며칠 지내라고 한 거다.”
“그래도 괜찮겠어요?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는게…”
“해수야,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부산에 갔을 때를 생각해 봐라. 그때 우릴 재워주는 집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됐겠냐.”
“그치만, 그건 하룻밤이었잖아요…”
“사정이 딱한 건 마찬가지야. 우리랑 다를 게 없어, 이런 상황에서는.”
할매의 친절은 이런 식으로도 발휘되었다.
이런 할매에 대한 일화도 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는데, 평양에서 도망쳐 온 두 형제가 있었다. 형은 젊은 청년이고, 동생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공산주의 아이들이라며 두 사람을 꺼렸다. 그런데 할매는 그런 그들에게 언제나 다정하셨다.
형제 가운데 형이 바닷가에서 구해 온 해산물을 팔러 다녔는데, 그걸 사주기도 했고, 어린 동생이 쓸쓸하게 혼자 놀고 있으면,
“해수야, 이 아이도 데리고 다니며 같이 놀아 주어라.”
하시며 그 아이를 나한테 데려 오기도 했다.
다정한 할매에 관한 일화는 많지만 지금은 이 피난민 가족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자.
이 가족은 원래 대구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대구 전선 총격전으로 마을이 불타 조부모가 돌아가시고 부부와 아이 4명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난리를 피해 도망쳐 온 것 같았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그 먼 길을 떠나오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내가 할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네 식구는 잠에 푹 빠져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누더기처럼 시커멓게 때에 절어있었다.
차림새와 깊은 잠에 빠져있는 모습만 보아도 이 가족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생스러운 피난길을 빠져 나와 울산에 도착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생스러운 여정이라 하면 내게도 잊기 어려운 힘든 여행 이야기가 있다.
전쟁 때문에 일본에서 보내오던 돈은 완전히 끊겼고, 집안의 큰 기둥이던 만수삼촌도 없이 우리 생활은 상당히 핍박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할매가 삯바느질과 과일 행상으로 버는 돈이 고작이었다.
‘돈이라도 있으면…’
할매는 매일같이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매한테서 아버지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경주에 사는 친구에게 큰돈을 빌려준 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할매는 조그만 금고에서 차용증 같은 것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굉장히 큰 금액이 적혀 있었다.
‘큰돈이다, 이 돈을 돌려받으면 생활도 편해지고 할매 눈도 고쳐줄 수 있는데….’
나는 그날부터 매일 그 돈만 생각했다. 하지만 경주 부근은 격심한 전투가 계속 돼 그곳으로 가는 교통수단도 끊어진 상황이라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있은 후 연합군의 반격으로 전황은 한국군이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고 9월 말 쯤 되자 경주로 가는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할매 눈은 점점 더 나빠졌고, 만수 삼촌은 여전히 병원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다면 경주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는 할매 몰래 차용증을 조심스럽게 가방 깊이 챙겨 넣고 주소가 적힌 쪽지를 한 손에 들고 오로지 혼자서 경주까지 찾아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용대 집으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용대는 ‘경주까지 간다고?’ 하며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응, 아버지가 빌려준 돈을 받으러 가는 거야.”
“그렇지만 경주로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하냐? 그쪽은 아직 싸움이 한창이라고 들었는데.”
“그건 걱정 마. 한국군하고 미군이 적군을 물리쳤다고, 어제도 라디오에 나왔고, 며칠 전부터 경주로 가는 버스도 다니기 시작했다고 들었으니까.”
“그랬구나, 그럼 조심히 갔다 와라.”
“알았어, 올 때쯤이면 아마도 밤이 될 테니까 도착하면 보러 올게. 그리고…”
“말 안 해도 알아, 선기 형님을 찾는 일은 우리한테 맡겨.”
“고맙다, 용대야.”
나는 차용증이 들어있는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고 의기양양하게 역 쪽으로 가서 전날 미리 알아두었던 버스를 타고 혼자서 경주로 향했다.
어찌어찌 경주 시내에 도착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서 돈을 빌려간 사람의 집을 찾기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나는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종종걸음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시가지에서는 극심한 전투가 있었는지 무너진 건물과 갈 곳을 잃은 피난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울산 이상으로 비참한 마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의기양양하게 찾아 온 것 까지는 좋았지만, 돈을 빌려 간 사람의 집도 난리통에 없어져 헛걸음을 하는 게 아닌지 불안해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목적지 마을에 도착해 보니 그곳은 전쟁의 불길을 피했는지 사람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나는 여러 집을 물어물어 간신히 찾고 있던 집에 도착해 빌려간 돈을 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가 빌려준 돈이 있다는 걸 틀림없이 알고 계시죠? 금액은 여기 적혀 있어요. 부디 돌려주세요. 아버지가 일본으로 돌아간 후 전쟁 때문에 연락도 끊어져서 생활비를 받을 수 없게 됐어요. 삼촌도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해 할매와 저 둘이서 살기가 몹시 힘들어요.”
버스 안에서 연습한 대사를 그대로 말하며 손발이 닳도록 사정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꼬마야, 너희 집도 분명 사정이 딱하겠지만, 보다시피 여기도 전쟁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다. 게다가 원래 가난한 집이라 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렸던 거다. 우리도 힘들어서… 당장 내일 먹을 식량을 어찌 구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야. 너희에게 갚을 돈 같은 게 있을 리가 있겠냐. 미안하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할 수밖에 없구나.”
상대는 어린애가 심부름을 온 것이라 생각했는지 매정하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저희도 곤란해요. 할매 눈을 치료받을 돈도 없고, 전부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일부라도 돌려주세요.”
버스 안에서 생각해 두었던 다른 말로 대응하며 사정했다.
“아, 글쎄, 돌려주고 싶어도 줄 돈이 없다니까.”
그 사람은 이 말을 남기고 나를 무시한 채 집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간신히 여기까지 왔는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도저히 그대로는 포기하고 돌아갈 수 없어서,
“제발 돌려주세요….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돌려주세요…”
여러 차례 소리치며 부탁 했다. 하지만 그 집 사람들은 어린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았고 도무지 밖으로 나와 볼 기미 따위도 없었다.
억울한 마음에 나는 근처에 있던 큼지막한 돌을 집어 그 집 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빠직!
“돌려 줘―! 돈을 돌려 달라고―!”
다시 돌을 주워들었을 때 대문이 열렸고 안에서 아저씨가 얼굴을 내밀더니, “이 녀석이, 무슨 짓거리를 하는 거냐!”하고 소리치며 막대기자루를 휘두르며 쫒아왔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나는 그곳에서 도망쳤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한 마음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그곳까지 찾아간 내 발걸음은 헛걸음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어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거의 울상이 된 채 경주역까지 걸어갔다. 겨우 읍내에 도착한 나는 역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은 오후 3시, 시계를 보니 2시 30분,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마지막 버스 요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혼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갈 버스가 오지 않았다. 역 시계를 보니 이미 4시가 가까웠다.
“어? 왜 버스가 안 오는 거지…”
불안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앉아있던 구두닦이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저어, 아저씨, 버스가 왜 안 오는 거죠?”
구두닦이 아저씨는 구두약이 묻어 새카만 얼굴에 하얀 이를 보이며,
“버스는 아까 두시에 벌써 떠났는데…허허허” 하고 웃는 것이다.
“뭐라구요!? 어째서요? 버스가 오는 시간이 3시잖아요?”
“그거야 난 모르지. 두시에 떠난 건 확실하니까. 억울하면 버스 운전수한테 물어보든지…”
아저씨는 뭐가 즐거운지 계속 웃었다.
빌려준 돈도 못 받고 울산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어진 나는 그제서야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구두닦이 아저씨를 원망스레 쳐다보기만 했다.
“어이 꼬마야, 날 그렇게 쳐다본들 아무 소용없다, 버스는 내일까지 오지 않는다니까.”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차피 넌 잘 곳을 구할 돈도 없을 테니 이쪽으로 오너라…”
하며 총총히 경주역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역 입구에는 어깨에 총을 맨 군인이 서 있었다. 아저씨는 그 군인에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마치 자기 집처럼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 구내 한 구석을 가리키며,
“밤이 되면 위험하거든, 여기라면 군인도 지키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잘 수 있을게다. 저쪽에서 자거라, 고단할 거 아니냐.”
그 말을 남기고 또다시 군인에게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그 아저씨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나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결국 아저씨가 말한 곳으로 가 오도카니 앉은 후 흠칫흠칫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누더기 옷을 걸친 피난민들이 시커멓게 때가 묻는 얼굴로 눈만 번득이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기둥 뒤로 슬그머니 숨어 두려움에 떨면서 꼼짝 않고 몸을 움츠리고 있었는데, 기나긴 하루의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무슨 소리지…?”
잠에서 깨보니 주위가 완전히 캄캄해져 있었다.
“어지간히 지쳤었나보네, 그 녀석.”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는 낮에 그 구두닦이 아저씨가 시커먼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우적우적 삶은 족발을 먹고 있었다. 그걸 보니 내 뱃속에서 ‘꾸르륵’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맞아, 정신없이 나오느라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었지…’
그 생각이 든 순간 배에서 개구리 합창 같은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계속 울렸다.
구두닦이 아저씨는 흰자위를 보이며 힐끔 나를 보더니,
“너한테 줄 건 없어. 잘 곳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하고는 다시 우걱우걱 족발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아저씨가 원망스러워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안되겠다, 저걸 보고 있으면 점점 더 배가 고파 질 거야’ 하는 생각이 들어 할 수없이 다른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찬찬히 살펴보니 역 구내는 낮보다 사람이 더 늘어 있었다. 지쳐 잠든 사람, 고함을 지르며 우렁이 껍데기를 가지고 노름을 하는 사람, 삐쩍 마른 몸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사람 등 경주가 전장에서 더 가까운 탓인지 울산 이상으로 전쟁이 한창인 현실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이윽고 밤이 깊어져 그때까지 노름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옆에 있던 구두닦이 아저씨도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나도 기둥 아래서 가만히 잠이 들었는데, 별안간 쿵쿵, 타다다다…하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역 구내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폭발음을 들은 것 같았다. 그때 또다시 포성이 울려왔다.
“걱정마라, 소리를 들어보니 아직 먼 시가지에서 전투중인 것 같으니.”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지만 불안했던 나는 역사 창문으로 조심조심 밖을 보았다. 캄캄해진 바깥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산등성이에서 이따금씩 선명하고 파르께한 빛이 크게 퍼졌다. 그리고는 잠시 후 쿵-하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어릴 때 일본에서 겪은 공습이 떠올랐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방공호로 달렸다. 여러 번 그것을 반복했는데, 그 때는 옆에 다정한 어머니가 있어서 내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어머니는 지금쯤 무얼 하고 계실까…. 언제쯤이면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오롯이 혼자 폭격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문득 서글퍼진 나는 ‘오까상(어머니)…’ 하고 나도 모르게 일본말로 어머니를 부르며 애써 소리 나지 앉게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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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화는 내용이 길고 알차군요.
늘상 절단신공이 아쉬웠는데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어린 아이가 체험한 리얼한 전쟁 상황의 모습이 잘 보입니다...
평소의 두배 ~~~ ㅎ 우린 좋은데 ㅋ 수고 많았어요... 미영씨
감솨요~
전쟁의 참상이 느껴집니다. 전쟁은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