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금북정맥 12차(수량재~장재)
산 행 일 : 2015. 02. 14.(토)
산행코스 : 수량재~물래산~붉은재~오석산~백화산~모래기재~퇴비산~유득재~장재
(산행거리 22km)
산행참가 : 20명.
<산행코스>
함께하지 못한 지난번 산행에서 선두그룹과 후미그룹이 나눠지면서 후미 그룹들이 필요치 않은 알바도 하며 추운 날씨에 꽤나 힘든 산행을 한 모양이다. 더구나 이번 산행에서도 산도 아닌 산을 넘고 너른 들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노정이라, 은근히 걱정스러운 산행이었다. 보통 야간산행은 뚜렷한 능선길을 따르더라도 현 위치 파악이 쉽지 않아서 산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특이한 지형지물이 없는 너른 들판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기는 사막에서 길 찾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번 구간에도 팔봉중학교 이후부터 한참 동안은 들판을 헤매야하는데, 여러 산행기에서 공통점을 찾아 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방법은 하나, 논이나 밭으로 들어가지 말고, 농로를 따라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잠깐씩 금북능선을 비껴가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깜깜한 한밤중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은 발생치 않을 것으로 믿으며 대충의 노정을 그리고는 산행에 나선다.
양재를 출발한 버스는 무탈하게 수량재 조금 못 미쳐 있는 주유소에 도착하여, 잠시 동안 새우잠을 더 청한 뒤 산행 준비를 하고는, 산행 들머리인 32번 국도 수량재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04:22 수량재 '예비군훈련장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04:26 지하차도를 통과하여 수량재 들머리가 있는 우측 방향 차리 1리로 간다. 04:28 송림싱크 공장을 지나자, 비닐하우스를 끼고 좌측 콘크리트 도로 옆에 표지기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잠시 후에 가정집이 나오고, 밭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숲으로 접어드니 넝쿨들이 뒤엉켜 등로 찾기에 애를 먹는다. 조심스레 능선을 더듬어 찾아 가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배수장까지 편하게 올라선다. 04:40 차리를 비롯한 이 지역 상수도를 공급하는 배수장 울타리를 따라 진행하면, 04:43 간벌지대가 나타나고 희미한 오름길을 따라 오르다가 돌아본 차리 방향 야경. 04:48 간벌지역 능선을 따라 올라서니 물래산이 나타난다. <물래산(145m)> 충남 서산시 인지면과 팔봉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이라기보다는 조그만 봉우리에 불과하다. 그저 밋밋하고 아무 특색도 없어 ‘준.희’ 님이 붙여 놓은 표지판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딱 좋은 곳이다. 직진의 오름길은 역마산으로 가는 알바 길이고, 금북길은 물래산에서 우틀하여 급한 내림길로 이어진다. 04:58 자그마한 암봉쯤을 스쳐 지나고, 05:11 또다시 봉우리에 올라서니, 어둠 속에서 표지기들이 아직 길을 잃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3천 산 오르기 하는 분이 이곳을 '진산'이라 표시해 놓았다. 05:25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하나 더 지나 내려서니, 자갈이 깔린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이곳부터 태안군 태안읍 북창마을에 있는 붉은재까지 1시간 반쯤을 학교, 공동묘지, 농장, 민가, 교회, 목장, 마늘밭 등을 둘레길 걷듯이 지루하게 걸어가야 한다. 05:28 ㅜ자 농로에서 우틀하여 진행하고, 05:31 32번 국도를 아래로 통과하는 지하차도를 지나 우틀하면, 05:32 잠시 후 팔봉중학교 앞에 서게 된다. 밤이라 닫혀있는 팔봉중학교 정문 옆 쪽문으로 들어서고, 팔봉중학교 운동장을 지나, 본관 건물 우측 편을 지나 학교 뒷마당을 거처 다시 농로로 나간다. 팔봉 중학교 뒤편으로 나오면 우측 능선이 금북능선이지만, 농로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 그냥 농로를 따라 우회하기로 한다. 05:39 농로를 따라 통신탑이 있는 언덕을 지나고, 조경수가 식재된 삼원농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틀하여 계속 농로를 따라 진행한다. 05:53 팔봉면 진장리 큰성골 농로에서 앞서간 분들을 기다리는 백두들. 앞서 간 분들을 기다린다는 게 좀 이상한가..ㅋㅋ 앞서 갔던 백두들이 논을 가로질러 합류하고, 06:02 ㅜ자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굴포운하지 안내판이 나타난다. <굴포운하지(堀捕運河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로 알려진 굴포운하는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흥인천과 가로림만과의 약 3km에 달하는 지역을 연결하는 운하로,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서울로 운송할 때 배가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는데, 안흥량은 해중에 암초가 있고 급격한 조류로 인해 빈번히 배가 전복되거나 파손되어 국가적인 손실이 컸다. 이에 세곡미의 안전수송과 운송기간 단축을 위해 이곳 굴포에 운하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고려 인종 때(1123~46)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임진왜란 직전까지 비록 단속적이기는 하였지만 400여 년간 수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운하 건설지의 지질이 화강암층이라 당시의 기술로는 암석을 뚫는데 어려움을 겪은데다, 높은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국가의 재원이 되는 세곡미 안전한 운송을 위해 조선 현종 때에는 운하 건설지 주변에 많은 조창(漕倉)들을 설치하였으나, 그 마저도 행정상의 문제들로 인해 결국 폐창되고 운하 건설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조창과 관련하여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해로를 따라 많은 촌락이 형성되고 발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굴포마을안내도. 금북능선은 이곳 우측 북동쪽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능선으로 이어진다. 06:09 앞에 보이는 도내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ㅜ자 삼거리에서 좌틀하여, 농로를 따라 계속 진행한다. 06:31 붉은재에 도착하여 좌측 들머리로 들어서며 다시 산으로 접어든다. <붉은재> 나무는 없고 붉은 흙만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임도 옆에는 옛 채석장인 듯한 공터가 있고, 그 공터에는 원상복구를 위해 어린 소나무들을 많이 심어 놓았는데, 마사토 지형이라 장마에 흙이 많이 유실되어 있는 상태다. 06:41 채석장이었던 곳에 원상복구를 한답시고 어린 소나무를 너무 촘촘히 심어 놓아 지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고, 마사토 지역이라 장마로 인한 토사유출이 심해 이리저리 골이 파져 있어서 등로의 흔적조차 발견키 어렵다. 06:58 천신만고 끝에 소나무를 식재한 곳을 지나니, 또다시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과 씨름을 해 가며 겨우겨우 오석산으로 향한다. 07:08 조그마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반가운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 있고, 이제는 뚜렷한 능선길이 가늠된다. 07:09 묘지를 지나 오름길을 조금 오르면, 07:13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오석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잡목들이 우거진 오석산 정상. <오석산(烏石山, 169m)>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 위치한 산으로, 정상에는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과 최근에 국립지리원에서 설치한 삼각점 안내판이 있고, 사방에 나무가 꽉 들어차서 주위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에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서 있다. 오석산 인증. 07:24 오석산을 뒤로하자 약간 급한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옥녀봉 직전 안부쯤에 묘지가 나오니, 07:32 그동안 험한 금북길에서 고생을 했는데, 이리도 널찍한 식당을 마련했으니.., 아침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옥녀봉 직전 안부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백두들. 07:48 어둠 속에서 논.밭을 가로지르고 빼곡한 잡목 숲을 지나오며 긴장한 몸과 마음을 따뜻한 차 한잔으로 씻어 내고는.. 07:51 옥녀봉을 향한 오름길로 들어서며 다시금 금북정맥 잇기에 나선다. 07:57 옥녀봉(130m)에 도착하는데, 주위 어디에도 옥녀가 거처할 만한 곳은 찾을 수가 없다. 08:08 시멘트 임도가 지나는 강실고개를 지난다. <강실고개> 충남 태안읍 산후리 원산후 부락과 상옥리 고일 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08:13 너른 밭 가장자리를 따라 오르다가, 돌아본 옥녀봉 방향. 08:27 우측으로 가로림만이 보이는데, 카메라에는 영~ 꽝이다. 08:33 커다란 바위가 군데군데 널려있는 봉우리를 지나고, 08:42 희미한 수레길 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면, 08:46 산불이 난 241.7봉 아래에는 어린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좌측 태안읍 방향. 08:50 돌아본 나지막한 금북능선 우측 멀리로 팔봉산이 보인다. 08:51 밴치가 있는 능선길을 따라 241.7봉을 향하는데, 08:51 능선길 옆 나뭇가지에 '흥주산'이라 적힌 표지기가 걸려 있다. 08:52 금북길에서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전망대(241.7봉)를 향한다. 전망대 봉우리 이정표. 241.7봉 삼각점이 있는 전망대에서 가야 할 백화산 방향 금북길을 가늠하는 백두들. 전망대에 설치된 '솔바람길 백화산 구간 안내도' 08:54 전망대에서 백화산 정상을 배경으로. 가야할 백화산 정상. 백화산 좌측으로 태안읍이 희미하다. 08:58 다시 갈림길 봉우리로 돌아 나와 백화산을 향한다. 09:05 조금 전에는 솔바람길 안내도가 있었는데, 이곳은 솔향기길 갈림길 이정표가 있다. 태안읍 오룡동과 냉정골을 잇는 고개에 내려서서, 직진을 하여 백화산으로 올라간다. 09:10 백화산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고, 그리 어렵지 않은 암릉길도 지나게 된다. 돌아본 241.7봉 방향. 09:14 급경사의 계단길도 나오고, 09:17 급경사의 오름길을 잠시 오르면, 백화산 주능선 위로 올라서게 된다. 09:18 군부대가 백화산 우측을 차지하고 있어서 좌측 태을암 방향으로 백화산 정상을 향한다. 09:21 물개 모양 바위가 지키고 있는 정상 직전 소나무 숲을 지나면, 09:22 백화산 정상에 서게 된다. 백화산 정상의 백두들. 백화산 정상 전경. 백화산 정상석. <백화산(白華山 284m)>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위치한 태안 8경 중 제1경에 속하는 태안의 진산이다. 산 전체가 흰 돌로 덮여있어 그 모양이 괴이하여 봄이면 마치 부용화(芙蓉花) 같기도 하고, 또 가을이면 돌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즉 백화(白花)가 만발한 느낌을 주는데, 이 백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기에 조선조 500년 동안 태안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백화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고, 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많으며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최고의 장관이라 한다. 백화산 정상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백화산 등산안내도. 백화산 정상에 있는 봉화대지. <백화산 정상의 봉화대지> 백화산은 서산시 팔봉면의 금광산(金光山)의 줄기가 도내리와 어은리로 뻗어 내려 오석산을 이루고,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한 갈래는 서우산, 또 한갈래는 옥녀봉을 이루는데, 옥녀봉에서 갈라져 나온 산이 백화산이다. 백화산은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는데, 한때는 산림이 우거져 거목이 많았다고 하지만, 남벌로 암석만 남아 백화산(白華山)이 되었다 한다. 백화산 정상의 백화산성은 고려 충열왕 때 축조되었으며, 두 개의 우물과 봉화대가 설치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정상에 봉수대 터와 700m의 성곽만 남아있다.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태안읍(太安邑) 조망. <태안읍(太安邑)> 태안의 명칭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태평하고 안락하다」는 의미인 태안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이기도 하다. 백제가 기원전 18년 한강유역인 위례성에서 온조왕에 의해 건국되어, 근초고왕이 마한의 전 지역과 대방군 등을 병합하여 고대정복국가(古代正服國家)로 등장하면서 발전해 갔다. 369년에 근초고왕이 마한 54개국을 완전 정복하여 백제국에 병합할 때, 이곳 태안에 위치했던 「신소도국」과「고랍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백제의 판도에 편입되는데, 이때 태안은 성대혜현(省大兮懸)으로 개편된다. 태안군은 일제시대 때 타의에 의해 서산군에 병합되어 75년간 내려오다가,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4050호에 따라 태안군에 복군됨으로서, 군민이 모두 군세 발전에 활기찬 전진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태안군은 현재 행정구역상 8개 읍면에 65개 법정 리, 186개 행정 리에 822개의 반, 그리고 493개의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동으로는 서산, 서쪽으로는 서해 바다, 남으로는 보령군의 원산도를 마주 보고, 북쪽으로는 경기도의 덕적군도를 접하고 있다. 결국 동쪽을 접하고 있는 서산으로 가는 길이 내륙으로 통하는 육상교통의 유일한 관문이다. 태안반도에서 바다로 315km 정도를 나가면 중국의 산둥반도로 통하는데, 일찍이 대륙문화가 서해를 통해 태안반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옛날 백제시대 불교문화가 이곳 태안을 통해 들어와 번창하였고, 안흥만(安興灣)은 여송무역선(麗宋貿易船)의 기항지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 또 안흥만 북쪽의 원북면 청산리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인천항을 내왕하는 정기 여객선이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뤄 경인문화(京仁文化) 유입에 한몫을 했으나, 육상교통의 발달로 이제는 해상교통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인평저수지 방향의 너른 들판. 지나온 옥녀봉 방향. <백화산성 터(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212호)> 백화산 정상에 축조된 백화산성은 고려 충열왕(1275-1308) 때 축성되었으며, 성의 규모는 길이 700m, 높이 3.5m로, 성 안에는 2개의 우물이 있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어, 동쪽으로는 서산의 북주산, 남쪽으로는 부석의 도비산과 연락을 취했다. 지금은 폐성 되어 700여m의 성곽만이 남아 있다. 태안읍지(1872년)에 의하면 축성한 지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퇴락하였으나, 지세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 있어 사람이 발 붙이기 어려운 곳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09:29 백화산 정상 인증을 남기고, 09:30 백화산 정상을 뒤로한다. '쌍괴대'라 새겨진 바위 앞을 지나, <쌍괴대(雙槐臺)>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커다란 고목으로 백화산 정상에 있던 느티나무를 어느 마차꾼이 마차 바퀴를 만든다고 베어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나무 계단길을 내려서면, 09:33 우측으로 군부대로 가는 임도가 있는 곳에서 이정표를 만나는데, 어느 쪽으로 가도 태을암으로 갈 수 있다. 09:35 태을암 도착. <태을암(太乙庵)>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산 42번지 백화산(白華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다. 절이 창건된 것은 고려시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는 왜구가 서해안에 출몰하며 한창 기승을 부릴 당시인데, 바닷가에 면한 태안 지방은 인근의 서산과 마찬가지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어 군민 대부분이 다른 지방으로 이주할 정도였다. 이와 같은 사정은 조선이 개국되면서 많이 좋아져 1413년(태종 13) 태안군이 되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1479년(성종 10) 경상북도 의성현(義城縣)에 있던 태일전(太一殿)을 이곳 백화산으로 옮기고, 그 때 함께 옮겨 온 단군 영정을 봉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곧 국조신(國祖神)이라 할 수 있는 단군을 이곳으로 모셔 옴으로써 그의 가호를 받아 민생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옮겨 온 태일전 아래에는 백제시대에 조성한 마애삼존불상이 있었으나, 태일전과는 직접적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일전은 이렇듯 바다의 안녕을 바라는 목적이 짙었는데, 그러나 실제 거리가 연해(沿海)와는 다소 먼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을 느꼈다. 그래서 1480년 태일전은 그대로 두고 단군 영정만 안흥진 성 안으로 이안하였고, 남은 태일전 건물에는 불상을 모시고 태을암이라 하였다. 이렇게 해서 태을암이 창건된 것이다. 더군다나 태일전 아래에는 마애삼존불상이 있으므로 절을 창건하기에는 적합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약 80여 년간이 지나니 건물은 점차 퇴락되어 가는데, 그 규모가 워낙 커 쉽사리 중수하기에 벅찼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른다. 최근에는 1978년 법당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절에서 서쪽으로 10여m 지점에 태안마애삼존불상이 봉안된 보호각이 있다. 태울동천이라 새겨진 바위 옆으로 내려와 태을암 경내로 들어선다. 마애삼존불 오른쪽 바위에는 '태을동천(太乙同天)'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오르면 바둑판이 새겨져있고 일소계(一笑溪)라 새긴 석판이 세워져 있다. 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런 글귀는 이곳 벼슬아치나 유생들이 이곳을 유유자적하며 풍류를 일삼던 곳이었으리라 짐작케 한다. 태안 마애삼존불 안내판.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泰安 東門里 磨崖三尊佛立像, 국보 제307호)> 우리나라 마애불상의 초기 예로, 부채꼴 바위 면에 사각형 감실을 마련하여 중앙에 보살상을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1구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삼존불상과 달리 2구의 불입상과 1구의 보살입상이 한 조를 이루는 특이한 삼존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2구의 불입상은 양감 풍부한 얼굴에 크게 번지는 미소,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 U자형 주름과 Y형 내의가 보이는 착의법, 도톰한 듯 날카로운 대좌의 연꽃무늬 등 세부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양식 특징을 보인다. 좌우 두 불상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뒤로 물러나 작게 새겨진 보살입상은 높은 관에 아무런 무늬도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본래는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게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으며,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 하여 보주를 감싸 쥔 이른바 봉보주인(捧寶珠印)을 나타내고 있다. 불신의 하반부가 노출되어 백제시대의 연화대좌가 확인됨으로써, 그 도상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상 요충지에 자리함으로써 6세기 중반 경 중국 북제양식 불상과의 영향 관계 파악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에 선행하는 조형양식을 지닌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상이란 점에서 국보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 좌우에 여래입상과 중앙에 보살입상을 조각했다. 이는 중앙에 본존불을,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일반적인 삼존불 배치와는 다르다고. 지금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마애삼존불이라는 역사적 가치에 비해 많이 훼손되어 있어 좀 안타까웠다.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이 머리였다. 머리 모양이 그동안 보아온 우리나라 부처님과 달리 중국 부처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는 중국의 석굴 바깥쪽에 새겨진 불상들과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백제초기의 불상이라서 정교하고 세련된 맛을 덜하지만, 백제인 특유의 넉넉하고 포근한 느낌은 잘 살아 있다. 태안 마애삼존불 모습. 마애삼존불을 뵙고 돌아서는 백두들. 태을암 경내 풍경. 태을암 대웅전. 태을암을 뒤로하는 백두들. 09:40 태을암 해우소 옆을 지나 군부대로 이어지는 포장 임도에 올라서고, 09:43 백조를 닮지 않은 백조암에서 100여 m를 내려서다가 좌측의 등로로 접어든다. 태을암을 뒤로하고 임도로 나서는 백두들. 09:44 조그만 언덕 정도의 암봉을 넘어서, 09:45 조금 내려가니 태을암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09:47 등로 한켠에 돌탑들을 쌓아서 등로에 돌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을 지나고, 09:49 태안초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좋은 등로를 두고, 우측 한적한 정맥길로 접어든다. 09:51 낙조암 아래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가야 할 금북정맥 방향으로 태안여고가 내려다 보인다. 태안읍내 방향 조망. 태안읍 삭선리 방향으로 가야할 금북능선도 가늠해 본다. 우측 백조암에서 내려오는 능선. 전망바위에서 가야할 금북능선을 가늠해 보는 백두들. 09:58 빨간 벽돌 건물인 태안 교육청(좌)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태안여고 건물도 보인다. 모래기재 도착. 모래기재에서 태안여고로 가는 들머리. 모래기재로 내려서는 백두들. <모래기재> 충남 태안읍 삭선리와 남문리를 잇는 603번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고갯마루에는 태안여고와 태안 교육청이 자리 잡고 있다. 10:00 태안교육청 뒤편으로 이동하여, 10:01 태안여고 정문에서 우측 로즈홀 옆 도로를 따라 금북길을 이어간다. 태안여고 운동장 건너편에 금북정맥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보이지만, 태안여고를 우회하기로 한다. 돌아본 백화산 방향. 10:03 태안여고 정문에서 200m 정도를 가다가 굽은 도로 직전에 좌측으로 들머리가 있지만, 등로 상태가 험악하여 다시 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92.5봉을 우회하기로 한다. 10:07 92.5봉을 우회하여 정맥길과 다시 만나고, 돌아본 92.5봉 날머리. 계속해서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시멘트 포장 마을길을 길게 지나야 한다. 10:12 도로 옆 농가의 감나무에는 아직도 까치밥으로 남겨 둔 홍시가 매달려 있다. 돌아본 92.5봉과 백화산 방향. 오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고도의 백화산 방향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10:15 이어지는 콘크리트 농로를 따라 언덕도 넘고, 앞쪽에 보이는 송전탑까지 직진 방향의 도로를 따른다. 고갯마루를 넘어오는 백두들. 10:18 금북능선 마루금 위에 도로가 개설되어 있어서 편안한 걸음을 계속한다. 편평한 도로 위에 떨어진 빗물은 어느 쪽으로 흘러 갈런지 고민도 하며...ㅋㅋ 10:21 가야 할 예비군 훈장장 앞쪽으로 634번 지방도가 새단장을 한 듯 깨끗이 포장되어 있다. 예비군훈련장 앞 삭선교차로를 건너는 백두들. 634번 지방도 삭선교차로를 건너니, 우측으로 태안순복음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10:24 태안예비군훈련장 정문으로 이동하여, 예비군훈련장 우측으로 난 길을 따르다가, 10:27 좌측으로 철조망을 넘은 흔적이 있는 곳에서 다시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비군 훈련장 철조망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울타리를 따라 산으로 든다. 10:28 예비군훈련장 울타리를 따라 잠시 올라가다가 철조망을 넘어 훈련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마치 예비군이 되어 훈련을 받으러 온 느낌으로! 훈련장을 따라 오른다. 원형철조망 넘는 것은 우리가 전문가 수준인데..ㅋㅋ 10:35 이런 철조망 통과는 우리와 관련이 없다. 우리는 눞지 않고 걸어서 통과! 금북정맥 능선 전체가 예비군훈련장이다. 10:40 '찔러총!' 교장에 왔으니 여기가 마지막 인가 보다. 그렇게 예비군 실전교육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통과하고 나면, 10:46 삼각점이 있는 159.7봉에 도착한다. <퇴비산(退飛山 159.7m)> 퇴비산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위치한 산으로, 표지판에 이곳을 퇴비산으로 표현했으나 지도상에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봉우리를 퇴비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159.7봉 표지판. 산행이 종반으로 넘어가면서 배낭털이를 시작한다. 10:51 157.9봉을 뒤로하고, 10:59 좌우로 희미한 족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 조그만 봉우리를 넘고, 11:04 잠시 후 개봉산(150m)을 지난다. 지도상에는 표시되지 않은 봉우리에 '개봉산'이란 코팅지를 붙여 놓았다. 금북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서 내려간다. 아마도 이곳이 지도상 퇴비산 갈림길 봉우리인 듯하다. 11:13 개봉산을 지나 희미해진 금북길을 따라 내려가면, 11:14 좌측으로 서해산업이란 레미콘 업체가 보이고, 우측으로 지도상 퇴비산으로 표기된 봉우리도 보인다. 11:16 차도고개에 도착하는데, 소원면 방향으로 '소원면'표석이 세워져 있다. 32번 국도가 지나는 '차도고개'에서 잠시 후미를 기다린다. 오늘 하루 동안만 32번 국도를 3번째로 만난다. <차도고개> 충남 태안군 소원면과 근흥면의 경계로, 태안에서 안면도로 가는 32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11:17 차도고개에서 32번 국도를 건너 구수산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는데, 차도고개에서 금북길은 구수산으로 올랐다가 우측으로 휘감아 내려 다시 32번 국도로 내려서야 하는 형태다. 즐거운 산행을 위해 우회파들은 그냥 도로를 따라 3분 정도 거리에 있는 유득재로 향하고, 할 일이 있는 소수들만 구수산을 향한 급경사 오름길을 시작한다. 돌아본 차도고개. 11:22 낙엽이 잔뜩 쌓인 가파른 오름길이 한참 동안 이어지고, 11:24 겨우 주능선 위로 올라 우틀하여 능선을 따른다. 11:29 전방에 있는 두개의 봉우리 중 어느 것이 구수산 일지...ㅉㅉ 그냥 우회하고 말걸~~, 살짝 후회도 든다. 11:29 곧이어 나타나는 두번째 봉우리는 허물어진 '옛 산성터'로 보이고, 봉우리 정상에는 누군가 주변 돌을 주워다 돌탑을 만들어 놓고는, '구수산성' 설명지를 올려놓았다. 11:36 다시 조금 내렸다 오르면 '구수산 분기봉'에 도착한다. 연무로 시야가 흐린 상태의 소원면 방향을 배경으로! 11:38 구수산 분기봉을 뒤로하고 낙엽 수북한 등로를 따라 내려서면, 11:44 유득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S OIL 주유소와 관광버스 주차장이 있는데, 날머리는 주차장으로 이어져 있다. 11:47 32번 국도에 다시 내려선다. 오늘 네번째로 32번 국도와 만나는 유득재에 도착한다. <유득재> 충남 태안군 소원면 유득 마을에 있는 태안과 안면도를 연결하는 32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로, 고개라기보다는 그냥 평지처럼 보인다. 금북정맥꾼들이 빠짐없이 들렀던 '등나무 슈퍼'는 철거되어 황토흙으로 덮인 터만 남았다. 11:48 '등나무슈퍼' 대신 태양슈퍼에 들러, 김치 안주에 션한 막걸리를 한잔 들이키고,
11:52 슈퍼를 나와 시목초등학교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금북길을 이어간다. 도로 우측으로 잘 단장된 전원주택을 지나고, 11:55 시목초등학교 입구를 지나 계속 직진한다. 좌측으로 시목초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11:57 시목 구판장과 삼은교회를 지나고, 11:59 마을 안 도로 위로 참새 때가 환영 행사를 하고 있다. 12:03 좌측에 서해철망 공장을 지난 지점에서 직진의 우측 길로 접어들어, 장대리 방향으로 계속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12:08 금북능선 위의 도로를 따라오는 백두들. 12:10 장재로 이어지는 도로를 계속 따라 가면, 12:12 '도루개'라는 예쁜 이름의 삼거리 고개가 나온다. 태안군 소원면 장대1리 삼곳말 정류소가 있는 삼거리로, 이곳에서 직진의 비포장 도로를 계속 이어간다.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면 앞쪽으로 금북능선으로 짐작되는 능선이 보이는데, 금북길은 중앙 뒤쪽의 전봇대가 있는 밭으로 들어가서 능선으로 올라야 되지만, 12:17 조금 더 진행하여 도루재에서 5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지나니, 저 멀리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는 곳이 보이고, 단지를 바라보면서 우측 임도를 따라 들어간다. 12:19 임도를 따라 고갯마루로 올라서며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12:22 돌아본 백화산 방향으로 지나온 태안군 소원면의 금북능선이 가늠된다. 돌아본 고갯마루 건너편 봉우리. 저곳이 금북능선이지만, 저곳으로 오르면 등로가 희미하여 개고생! 12:23 능선 위로 오르며 이내 88봉 삼각점을 지난다. 전원주택 뒤 능선길 가운데에 주먹만한 삼각점이 하나 박혀 있고, 시그널에 88봉이라고 쓰여 있다. 12:31 이곳에서 직진의 좋은 등로를 버리고, 좌측 개간지 가장자리를 따라 꺾어서 내려가야 한다. 그냥 능선을 따르다가 '빽~'에 돌아오고, 12:32 시멘트 도로 건너 숲으로 들었다가, 12:34 다시 도로로 내려선다. 도루개재에서 장재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즉 도루개재에서 그냥 도로를 따라와도 된다는 예기지만, 정맥꾼이 그럴 수야..ㅋㅋ 12:37 우측으로 도로를 따르면, 우측에 우렁각시탑이 있다. 금북정맥꾼들은 모두들 우렁각시탑에 들리는 모양이다. <우렁각시탑> 우렁각시 전설이 호남과 충청도 지방에 널리 퍼져있다는데, 이 마을도 그런 전설이 있는지 우렁각시탑이 세워져 있다. 일년 내내 농사지어 소작료로 빼앗기고, 군역과 부역에 시달려야 했던 이 땅의 백성들은 때로는 아내까지도 빼앗겨 저항하다 아내와 같이 죽거나, 아니면 아내와 함께 지혜를 발휘해 관리나 임금을 죽여 세상을 바꾸었다는 예기다. 12:46 우렁각시탑에서 돌아 나와, 계속 도로를 타고 내려오니 32번 국도를 5번째로 만나면, 12:48 오늘의 종착지인 장재(쉰고개)가 보인다. 애마가 기다리고 있는 장재 전경. 장재 버스정류장. 12:49 32번 국도는 직진하여 만리포로 이어지고 좌측 도로는 안흥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다음 구간 금북길은 직진의 국도를 따라 조금 진행하여, 좌측 통신탑이 있는 능선으로 이어진다. 13:03 태안의 목감탕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13:51 목욕탕 뒤편 태안여중 전경. 13:59 게국지 전문이라는 식당에서, 추운 겨울날의 정맥길 한자락을 술잔에 녹인다. 태안의 명물이라는 '개국지', 전에 1박2일에 방영되며 입소문을 탔는데 그저 그런 정도의 맛이다. 혹시 태안에 올 일이 있으면 한번 정도! 15:19 고만고만한 금북정맥 한자락을 마치고 서울로 향한다. 등산하러 태안에 올 일이 있을까 했는데, 정맥 마루금 산행을 하다 보니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헤매게 된다. 그래서 대간길이 좋고, 정맥길이 좋다. 정맥길 끝나면, 기맥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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