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풍자시
그의 시(詩)는 민중을 향한 풍류와 해학과 풍자로 사람들의 구전을 통해 회자되기 시작한다.
[아향청산거 (我向靑山去) = 나는 지금 청산을 찾아가는데
녹수이하래 (綠水爾何來) = 녹수야 너는 왜 흘러오느냐
송송백백암암회 (松松柏柏岩岩廻)(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 사이를 돌아가니)
수수산산 처처기 (水水山山處處奇)(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기묘묘하구나.)
촉촉첨첨 괴괴기(矗矗尖尖怪怪奇)(꼿 꼿, 뾰족뾰족, 괴괴한 경개가 하도 기이하여)
인선신불 공감의(人仙神佛共堪疑)(사람도 신선도 신령도 부처도 모두 놀라 참말인가 못 믿을 것 같다)
평생시위 금강석(平生詩爲金剛惜)(내 평생의 소원이 금강산을 읊으려고 별러 왔으나)
급도금강 불감시(及到金剛不敢詩)( 이제 금강산을 대하고 보니 시를 못 쓰고 감탄만 하는구나.]
또한 그가 함경도 어느 곳에서 기거하다가 속 좁은 친구 내외가 끼니 문제로 서로 나누는대화를 듣고 파자를 풀어서 파자로 반박하는 일이 발생한다.
김삿갓은 전국을 떠돌다가 하루는 시골 어느 서당에 들려서 하룻밤 유숙할 것을 청하자 마음 씀씀이가 고약한 훈장은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찾을 멱(覓)'자 4개로 운을 떼어시를 짓게 했다.
이에 김삿갓은 '사멱난운(四覓難韻)'라는 시를 지어 훈장을 곤란케 하고, 기어이 하룻밤 묵어가기도 했다.
[허다운자 하호멱 (許多韻字何呼覓) = 많고 많은 운자에 하필 멱자를 부르는가?
피멱유난 황차멱 (彼覓有難況此覓) = 첫 번 멱자도 어려웠는데 이번 멱자는 어이 할까
일야숙침 현어멱 (一夜宿寢懸於覓) = 오늘 하룻밤 자고 못 자는 운수가 멱자에 걸리었는데
산촌훈장 단지멱 (山村訓長但知覓) = 산촌의 훈장은 멱자 밖에 모르는가?]
또한 당대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가렴주구를 폭로한 시가 있다. 선화당, 낙민루, 함경도, 조기영의 한자 훈을 바꿔서 기가 막히게 가렴주구를 폭로한 시다.
[선화당상선화당 (宣化堂上宣火黨)(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행하니)
낙민루하낙민루 (樂民樓下落民淚)(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민 함경도 (咸鏡道民咸驚逃)(함경도 백성들이 모두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가 조기영 (趙冀永家兆豈永)(조기영의 가문이 어찌 오래 가리오)
어느 시골의 노인 회갑연에서는 말석에서 푸대접을 받자 즉석으로 축시를 지어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도 있었다.
첫 소절을 보고 가족과 하객이 몰매를 치려하자 두 번째 소절로 그들을 탄복시켰다.세 번째 소절에서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다가 마지막 연에서는 맛 좋은 술을 청한 후극찬으로 마무리한다.
[피좌노인 비인간 (披坐老人非人間) = 저기 앉은 늙은이는 사람이 아니니
의시천상 강신선 (疑是天上降神仙) =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선 같구나.
슬하칠자 개도적 (膝下七子皆盜賊) = 슬하 일곱 아들 모두 도둑놈이니
투득천도 헌수연 (偸得天桃獻壽宴) = 천도 복숭아를 훔쳐다 잔치를 빛내는구나.
이렇게 김삿갓은 평생 방랑하며 유리걸식하다가 잠시 집에 들러 노모와처자식(황씨부인. 장남 김학균, 차남 김익균)의 안부를 확인하고는 곧바로 다시 떠나곤 했다.충청도 계룡산 밑에 기거할 때는 아버지를 찾아간 아들 김익균을 재워놓고 몰래
도망하기도 하였다.
이후 1년 만에 다시 경상도 어느 산촌으로 찾아간 아들을 만났으나 이번에도 심부름을보내놓고 줄행랑쳤다.그리고 3년 뒤 경상도 진주에서는 아들을 만나 귀가할까 마음먹었으나 이내 변심하여 용변을 본다는 핑계로 도망하였다.아들 김익균에게 3차례나 귀가를 권유받았지만 계속 거절하고 방랑을 이어갔다.
[이십수하 삼십객 (二十樹下三十客) =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서른 나그네에게
사십촌중 오십식 (四十村中五十食) = 망할 놈의 마을에선 쉰밥을 주더라.
인간기유 칠십사 (人間豈有七十事) = 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
불여귀가 삼십식 (不如歸家三十食) = 내 집에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이 시에는 20세, 30세, 40세 50세, 70세 나이를 비유해 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