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찬수 판사님,
안녕하십니까? 판사님께서 현장 검증을 제안하셨을 때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으로 인해 지난 10년동안 여러 차례 재판을
받았지만 현장검증을 직접 요청하신 판사님은 안계셨습니다. 아시다시피 해군은 제가 군사시설을 파손시키고
영내를 무단 침입하였다고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객기로 일탈행위를 한 무법자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갗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상황은
폭력으로 남의 집을 차지한 도둑들이 그 집안에 있는 보물을 찾으려고 울타리를 뜯고 들어온 주인을 재물 손괴와 불법 주거 침입죄로 고소한 것과도
같습니다. 강정에 지어진 해군기지는 국가 안보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편법과 불법으로 지어졌습니다. 정부가 주민들을 비밀리에 꼬득여 돈과 이권을 약속해 자기편을 만들어 앞잡이를 삼음으로써 마을공동체를 붕괴시켰습니다. 강정마을 공동체는 찬성과 반대파로 갈라져 서로 싸웠고 해군기지가 이미 완성되었지만 아직까지도 깊은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정해군기지 건설은 정부 스스로가 민주주의라는 우리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현저히 훼손시킨 범죄행위였습니다. 2007년 9월 17일 제주도 유관기관 대책회의에서 국정원은 주민들을 겁박해서 공사를 진행하라고 충고했고 이후 2011년 부임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연인원 700명의 시민을 사법 처리하여
이 불법적인 공사를 도왔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당시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추진했던 정치인들과 공무원들
다수가 현재 구속 수감되어 있거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전대통령과 조현오 전 경찰청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등이 그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군납비리에 연루된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마을까지 찾아와 직접 사과까지 했다는
사실이 이 해군기지 건설 과정이 떳떳하지 않았음을 반증합니다. 그러나 내게 이상한 일은 그들이 불법으로
완공한 해군기지는 지금 강정에 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구럼비 바위는 그 기지안에 갇혀 있습니다. 강정 앞바다 공유수면에 위치한 구럼비는 원래 모든 시민들의 공공재였습니다. 구럼비
바위는 많은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했던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한 느낌을 주는 천혜의 자연 유산입니다. 해군은
대부분의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그 위에 시멘 콘크리트를 부어 부두와 군사시설들을 세웠지만 차마 이를 모두 매장하기에는 양심에 걸렸는지 그 일부를
억지로 공원화 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습니다. 웅장한 자태는 사라지고 초라한 몰골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그것 만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지난 3월 7일은 공사측이 구럼비 바위를 화약으로 파괴시킨지 8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구럼비가 일부 남아 있는 기지내 수변 공원에 들어가 예전에 늘 그곳에서 했었던 것처럼 제주도가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고 강정 마을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도록 그리고 구럼비가 다시 복원되어 모든 시민들에게 개방될 수 있도록 기도 드렸습니다. 저는 지난 2월 14일부터
그 날까지 세차례 정식 방문 요청을 하였으나 서로 다른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저는 달리는 구럼비
바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 기지의 휀스를 절단해 입장했습니다. 저는 구럼비 바위가 자신의
세력을 키우려는 군부의 집단 이기주의에 의해 부당하게 사유화 된 것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구럼비는
모든 시민의 것입니다. 구럼비 안에서 솟아나는 할망물은 신성한 샘물이었습니다. 해군들은 주민들의 종교적인 성정을 무시한 채 타부를 건드렸습니다. 저는
강정 행군기지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군사기지가 들어서서는 안되는 곳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군부가 권력욕에 이끌려 세력확장에 눈이 멀어서 성스럽게 구별되어야 할 공공의 자연 유산을 국민으로부터 빼앗아
배타적으로 점유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 습관을 따라 구럼비를 향해 걷다 보면 불현듯이 나타나는
절조망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해군기지는 자신들이 삼킨 구럼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반드시 토해내는
날이 불원간에 올 것입니다. 저는 그 다가올 미래를 미리 살아내는 것이고 그로 인한 고통을 달게 받을
것입니다. 저는 전쟁도 군대도 반대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있어야 할 것, 존중해야 할 것들을 무시하고 파멸시키는 반인도주의적인 법죄행위입니다. 저는 강정해군기지를 페쇄하고 이를 동북아시아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평화 회담과 협상의 장소로 전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럼비는 다시 복원하여 원래의 주인인 우리 국민 모두에게 반환되고 개방되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이미 군사기지는 지어졌는데 왜 10년이 다가도록
이미 끝난 일을 붙들고 있냐고 꾸중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힘있는 자의 불의와 패악질에
저항해도 결국 피해만 보게 된다는 자기 검열과 강자 앞에는 스스로 무릎을 꿇는 비겁한 굴종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성세대는 그런 비굴한 침묵이 철이 드는 것이고 부끄러운 방관과 외면을 성숙해 가는 것이라고 세뇌해왔습니다. 한 때 강정 마을 주민 대부분이 해군기지 건설이 부당하다고 강렬하게 반대 했었습니다. 그 때 강정마을 전체를 노랗게 뒤덮었던 저하의 깃발들은 꺽이고 부러져 변두리에나 을씨년스레 서 있습니다.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쓰인 [해군기지 결사반대]는 이제 빛이 바래 알아볼 수 조차 없고 세찬 바닷바람에 실밥들이 풀려나가 손바닥만해진 초라한 깃발들이 듬성듬성
서 있을 뿐입니다. 이제 더 이상 강정마을회는 해군기지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정의롭다고 여겼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제는 포기했습니다. 해군은
이제 마을에 평화가 왔으니 화해와 상생을 이야기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마을을 짓누르는 이 침묵과 고요는
찬성도 동의도 아닙니다. 좌절과 낙담이고 환멸과 체념입니다. 약사
빠른 이들은 나서서 정부의 보상금과 지원금을 나누어 갖는 일에 혈안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안타깝게도
강정안에 있는 어느 교회나 사찰도 정의를 외치는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유일하 정의의 소리는
작고 남루한 미사 천막을 지켜오신 소수의 천주교 사제들과 수녀와 수사들뿐 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강정마을을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소수의 마을 토박이들입니다. 저는 이들과
한 몸입니다. 아무리 시류가 변하고 대세가 기운다해도 저는 “검은
것은 검다. 흰 것은 희다”라고 증언하는 증인으로 남을 것입니다. 해군은 불법적으로 구럼비 바위를 점령하고 그 위에 군사기지를 지었습니다. 저는
해군기지 안에 갇힌 구럼비 바위의 진정한 주인인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구럼비에서 종교적인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 7일
그곳에서 평화의 섬 제주도가 전쟁도 군대도 없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도록, 그리고 상처입은 강정 마을
공동체가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도록 기도드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2011년
3월 8일 강정에 내려온 이 후 지금까지 매일 아침 드렸던
기도였습니다. 처음에는 구럼비 바위에 걸어가서 기도했습니다. 그
해 9월 구럼비를 둘러싸고 철조망과 장벽을 쌓은 이후에는 그곳까지 바다로 헤엄쳐 가서 기도 드렸습니다. 해군이 저를 물속에 집어 넣기도 하고
바다에서 구타하기도 했지만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해군기지를 지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된 후에는
구럼비가 멀리서 나마 보이는 강정포구 방파제 끝에서 기도 드렸습니다. 저는 저의 신념과 행동 모두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한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앞으로도
빼앗긴 모든 시민들의 재산인 구럼비를 되찾아 그곳에서 이전처럼 평화를 위한 기도를 계속할 것입니다. 재판장님은
이런 저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판결이든 역사의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2020년 8.20
제주 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