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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혈(天刃血) 018(제1권 18)/1018
7장 초현 생사도(初顯 生死刀)
☆초현 생사도(初顯 生死刀)(1)
*서문아에 대해 무언가 알아내는 것은 포기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철방의 식구들이지 서문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무강은 빈 수레를 타고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러자 좀 전까지 텅텅 비어있던 연무장에 무인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창창창-!
그들 사이에서는 쇠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무강이 안력을 끌어올려 그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그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서···문아!’
창을 들고 싸우는 사람은 서문아가 분명했다.
비무를 하는 듯 했다.
서문아와 손을 섞고 있는 사람역시 웅풍대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생사의 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치열하게 서로를 공격했다.
휘휘휙-!
마치 뱀처럼 휘어지며 공격하는 검은 창, 그에 상대 역시 도를 휘두르며 대항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기다란 창을 제 몸처럼 휘두르는 서문아의 모습은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도저히 그녀가 연약한 여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적무강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수레를 몰아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철방으로 돌아온 적무강은 장인들에게 이번에 들어온 주문을 이야기하고 창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작업대에 섰다.
그의 작업대 위에는 이제까지 창고에 고이 모셔놓았던 *철죽이 놓여 있었다.
철죽은 쇠보다 단단한 대나무였다.
철죽은 몇 백 년 전에 이미 멸종해 구하기도 쉽지 않을 뿐 더러 다루기는 더 쉽지 않았다.
일반 칼이나 톱으로는 자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장인들은 철죽을 줘도 원하는 대로 다를 수 없었다.
그러나 적무강은 달랐다.
그는 결코 평범한 장인이 아니었다.
다른 장인들이 볼 수 없게 몸으로 철죽을 가린 적무강이 조그만 소도를 들었다.
슈우우~!
소도에 희미하게 도기가 맺혔다.
도기가 맺힌 소도를 철죽의 마디에 대자 너무나 쉽게 갈라졌다.
슥슥슥!
적무강은 철죽의 막힌 마디를 모두 파냈다.
비록 철죽이 쇠보다 단단했지만 도기를 견딜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적무강은 도기를 예리하게 압축해 철죽의 내부를 미끈하게 만들었다.
“훗-!”
그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맺혔다.
아마 기관지 질식이나 무공 말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 살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를 제일 잘 만드는 사람을 꼽으라면 적무강은 서슴없이 자신을 택할 것이다.
그가 괜히 철방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물론 생사도를 복원하기 위해 이것저것 공부하는 과정에서 익힌 것이지만 적무강은 누구보다 사람을 죽이는 도구를 만드는데 익숙했다.
지금 그가 만드는 것도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였다.
그것도 매우 극악한 위력을 지닌······.
단지 한번 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한번 이상은 쓸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는 매우 신중한 눈으로 철죽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다듬었다.
다른 장인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도 그의 작업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하성문이 다시 *하가철방으로 돌아온 것은 보름이 지난 후였다.
그는 그동안 자신들이 이주할만한 곳을 찾아 다녔고, 덕분에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정확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가철방이 옮겨가기 위해서는 십자성의 지하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검은 기름이 필요했다.
*하성문이 찾아다닌 곳은 인근에 마을이 있으면서도 땅에서 기름이 나올만한 지형이었다.
현재 그는 두세 군데 정도로 하가철방이 옮길 곳을 압축해두었다.
“어디로 옮기는 게 좋을까? 일단은 몇 군데 후보지를 뽑아두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야.”
*하성문이 *적무강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보아온 곳을 적무강에게 설명했다.
적무강은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운남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나 그곳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열악해. 그리고 몇 군데 더 있기는 한데 그곳에서 기름이 나온다는 보장을 할 수 없어. 그리고 근처에 인가도 드물고······.”
하성문은 무척이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적무강은 잠시 그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정색을 하고 그에게 말을 했다.
“아저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세요.”
그는 *감사여와 *당사혁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려줬다.
적무강의 말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하성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적무강의 말이 끝났을 때에는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럼 어떡·····해야 하지? 이주를 하지 않는다고 말해볼까? 그럼 우리를 가만둘까?”
그가 말을 더듬었다.
사실 하성문의 반응은 당연했다.
그는 적무강처럼 칼에 생사를 거는 무인이 아니라 장인이었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일을 생각해 본적이 없는 그로써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적무강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의 손을 잡아줬다.
그러자 조금씩 하성문이 안정을 되찾았다.
적무강이 희미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철방에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무····강아!”
“저를 믿으십시오. 결코 그들이 아저씨에게, 철방의 사람들에게 손 하나 까닥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무강의 음성에는 흔들림 없는 굳은 심지가 그대로 실려 있었다.
때문에 하성문은 그의 음성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을 느꼈다.
하성문이 물었다.
“네가 어찌하려느냐? 십자성은 무인들의 집단이다. 그것도 천하에서 제일 강한, 그들을 상대로 우리가 어찌 무사할 수 있겠느냐? 차라리 이곳에 그냥 있는 것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매일 같이 살인을 위한 도구를 만들어야 하는데 견딜 수 있겠습니까? 저는 상관없지만 아저씨는 견디지 못할 겁니다. 아저씨는 너무 착하니까······.”
“무····강아.”
“모든 것을 저에게 맡기십시오. 아저씨에게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전 이런 종류의 일에 대처하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냥 아저씨는 평소대로 하세요.”
적무강의 힘 있는 말에 불안하게 떨리던 하성문의 눈동자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그의 머릿속에 예전에 하노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만약 철방과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무강이에게 도움을 청하거라. 그 아이가 도와줄 테니.’
그때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의 아버지는 이런 사태를 미리 짐작했을지도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다시 적무강을 바라보았다.
적무강은 무척이나 신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또 다른 신분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마침내 하성문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철방의 식구들 목숨, 모두 너에게 맡기마. 부탁한다.”
“맡겨만 주십시오. 우리 철방을 우습게 여긴 자들은 모두 후회하게 될 겁니다. 반드시······.”
적무강은 마지막 말에 특히 힘을 주었다.
그러자 하성문은 왠지 적무강의 말처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적무강이 저런 눈빛, 저런 표정으로 말을 하면 반드시 그가 말한 것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창을 만드는 작업은 무척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백 자루나 되는 창을 한꺼번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창의 양은 기껏해야 열 자루에서 열다섯 자루 정도, 때문에 십자성이 주문한 창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적무강은 창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남 좋은 일 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기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무강은 은밀히 *철홍을 만났다.
철홍은 은밀하게 불러낸 적무강에게 신경질부터 냈다.
“임마, 도둑괭이냐? 왜 이렇게 사람을 은밀하게 불러내?”
“지금 헛소리 할 시간 없다. 내말 잘 들어라.”
“에?”
평소와는 다른 적무강의 태도에 철홍이 입을 다물었다.
적무강이 이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나, 그럴 때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적무강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 나 믿지?”
“으응!”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라.”
적무강은 십자성에서 진행하는 하가철방에 관한 일을 철홍에게 모두 털어놨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철홍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콰-앙!
그가 마침내 탁자를 세게 내려쳤다.
“그래서 우리 하가철방을 원한다는 거야? *당가하고 *십자성이······.”
철홍이 이를 부득 갈았다.
하가철방은 그에게도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장인의 길을 걷기 싫어 참호대에 들어갔지만 고아로 자란 그에게 하가철방은 그가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곳 이었다.
그런데 그런 하가철방이 윗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고, 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마저 목숨이 위험하다니 그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내가 가서 대주님께 말씀드려야겠어.”
“철홍아!”
“대주님이라면 분명히 우리를 도와줄 거야. 그러니까.”
“철홍아, 내말 잘 들어.”
“그렇지만······.”
그 순간 적무강이 철홍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이미 작심하고 하는 일이니까. 더구나 명령을 내린 자가 십자성의 *문상이라면 아마 번복될 일은 절대 없을 거다.”
“그럼 어떡하란 말이야? 이렇게 가만히 지켜보자고?”
“아니, 그래서는 안 되지. 저들이 자기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다.”
“네가 무슨 힘이 있어서? 솔직히 우리 힘으로는 내성의 정예 중 단 한명만 나와도 몰살이야.”
그때 적무강이 눈빛을 빛내며 말을 했다.
순간 그의 강렬한 눈빛에 철홍의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그것은 결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철홍이 무언가를 깨닫고 말을 더듬었다.
“너·····너?”
“그래, 나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철방의 식구들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거야 그렇지.”
“너 이것을 익혀라.”
얼떨해하는 철홍에게 적무강이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누런 책자였다.
*원월검보(圓月劍寶).
책자에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이게 뭐냐?”
“*우리 집안에서 예전에 수집한 무공 중의 하나다. 아마 네가 익히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대신 최대한 빨리 외운 후 태워버려라. 그리고 남들의 눈을 피해서 익혀.”
“자···잠깐, 난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지금 사태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그리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철홍은 무척이나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가철방이 혈겁을 당할 거란 사실만으로도 심장이 떨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와 가장 친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적무강이 실은 무공을 익힌 고수였다.
그러니 그의 머릿속이 오죽하겠는가?
적무강은 그런 철홍의 마음을 충분히 짐작했다.
그러나 더 이상 설명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철홍에게 당부했다.
“넌 하가철방의 일에는 절대 참가하지 마라.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럼 나는 가만히 두고 보란 말이냐?”
철홍이 화를 냈다.
그러나 적무강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현재로는 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넌 다른 방식으로 도와줘야겠다. 오히려 그 일이 더욱 힘들고 괴로울 게다.”
“어떻게 말이야?”
“내가 준 무공을 익혀. 이미 오래전에 강호에서 실전된 무공이니까 알아볼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넌 무공을 익히며 기다려라. 내가 밖으로 나가면 이곳 내부의 사정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너?”
“우린 친구지? 그렇다면 날 믿어라.”
적무강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잠시 바라보던 철홍이 고개를 힘 있게 끄덕였다.
“그래! 널 믿으마. 널 믿지 않으면 누굴 믿을까? 오냐, 널 믿고 내가 여기 있으마. 그리고 이 무공을 익히마.”
“고맙다.”
적무강과 철홍이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손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비급은 반드시 외운 후에 태워버려라. *하가철방의 일이 터지고 나면 가장 먼저 조사를 받을 사람은 너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하가철방에 연락을 끊고 절대 두각을 나타내지 마라. *원월검보에 수록된 무공도 반드시 남들 모르게 익히고. 지금 당장은 내공이 부족해 펼칠 수 있는 초식이 몇 개 없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익힌다면 나중에는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알았다. 내 반드시 그렇게 하마. 너도 몸조심해라. 그리고 철방의 식구들을 잘 부탁한다.”
“그들은 나에게 맡겨라. 나중에 다시 만나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마.”
“그때 질펀하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 하자.”
“그래! 그리고 *서부대주를 살피는 것 잊지 말고.”
“알았다. 이 상황이 되어서도 여자라니. 난 서부대주 무섭던데, 네 취향은 정말 못 말리겠다.”
“후후~! 뭐, 사는 게 그런 거지.”
“크하하하! 그렇지! 사는 게 그런 거지.”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비록 오늘밤이 *십자성에서 같이 하는 마지막 밤이 될지 모르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두 사람은 같이 웃었다.
*철홍은 언제고 훌륭한 역전의 패가 되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적무강의 느낌이었다.
(우각 지음, 고향설 추천, 연곡 rem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