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앞서서 '율법과 관계없는 죄'와 '율법과 관계있는 죄'에 관하여 진술하였다.
이제는 '율법과 죄의 관계'에 대하여 논증할 차례이다.
과연 '율법과 죄의 관계'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금과법을 주시기 이전에 벌써 죄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악'이 있었다.
이 '악'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싫으심' 또는 '싫으신 것'을 말한다.
여기서 '싫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싫으신 구체적 실재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관념적 실재로서의 대상을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ㅇ르 명하시기 이전 곧 아담에서부터 모세 때까지 세상은 인간의 죄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여기서 '죄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싫으신 것' 곧 인간 내면에 악성으로 존재하는 구체적 실재로서의 대상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금과법을 명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명하셨는데 그 까닭이 무엇일까, 그 까닭에 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밝혀주고 있는가?
'율법과 죄의 관계'에 대하여 논하는 데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금과법과 모세 율법의 효능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금과법과 율법이 무슨 효능이 있기에 인간에게 명하신 것인가,
또는 금과법이나 율법에 의해 인간 세상에 가득한 죄와 범죄를 줄이시거나 아주 없애시려고 명하신 것인가,
아니면 금과법이나 율법으로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시려고 명하신 것인가?
이러한 여러 의문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1)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과법을 범한 사실로 인하여 자기 스스로가 죄인임을 깨닫고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리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음성을 듣고 두려워서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가 죄인임을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금과법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는 에단동산의 금과법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선악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아담과 같은 범죄,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금과법을 직접적으로 범한 사실이 없다.
그러나 온 인류는 그 내면에 가득히 채워진 죄에 대하여 온갖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명하시기 전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온갖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율법을 명하시기 이전으로 그들 스스로가 죄를 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 하여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정죄를 받아야 비로소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성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죄를 범하였으면서도 그 자체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불의한 자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벧후2:12~13)고 하였다.
타락하여 불의한 자들이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라는 말은 인간의 이성 자체가 어두워져서 스스로를 죄인으로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를 범하는 행동을 하였을 때에 그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정죄해 주는 기능으로서의 율법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