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작, 뜻밖의 발견
이번 제주 문화 탐방 6회차는 뭔가 달랐다.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제주를 걷고, 듣고, 느끼는 여정. 처음부터 끝까지 낯섦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한라산의 정상 이름을 다시 배운 일이었다. 한라산의 정상은 ‘백록담’이 아닌 ‘혈망봉이라는 이야기. 백록담은 분화구의 이름이고, 혈망봉은 그 분화구를 바라보는 봉우리의 이름이라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알고 있던 이름이 틀렸다는 충격. 마치 오래된 친구의 진짜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된 듯한 민망함과 신기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동안 너를 백록담이라 부른 내 무지를 용서해줘."
그 순간부터 이 탐방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하나하나 다시 배우는 배움의 시간이 되었다.
말과 사슴, 섬이 품은 존재들
제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말을 귀하게 여겼다. “사람은 굶어도 말은 굶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기후와 지형이 말을 키우기에 적합했던 제주는 고려와 몽고 시대를 거치며 말 품종 개량의 중심지가 되었고, 말은 곧 이 섬의 자부심이 되었다.
몽고는 낙인과 거세 같은 목축 기술도 제주에 전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라는 섬에 말은 단순한 가축이 아닌, 시대를 견디고 문화가 된 존재였다.
한편 사슴은 사라졌다. 녹용을 얻기 위한 무분별한 사냥으로 인해 멸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이 났다.
“조상님들, 녹용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제주 곳곳에 남아 있는 ‘녹’이라는 지명들은 그들의 흔적이다. 이제는 말이 남고, 사슴은 사라진 그 자리. 제주의 자연과 사람, 그 안에 얽힌 이야기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봄꽃이 가르쳐준 제주
식물 이야기 역시 놓칠 수 없었다.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를 처음 알게 된 날.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고 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잎과 함께 피고 독성이 있어 절대 먹으면 안 된단다.
"진달래는 먹달래!"
간단한 농담 하나가 평생 기억할 지식을 만들어줬다.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차이도 흥미로웠다. 편백나무의 납작한 잎은 편육을 닮았다고 하셨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배가 꼬르륵댔다. 식물 수업에서 식욕이 돋을 줄은 몰랐다. 이쯤 되면 생태 교육이 아니라 먹방 탐방 아닐까 싶었다.
김만일, 말을 바친 이름
탐방 마지막에 들은 김만일 이야기는 단연코 압권이었다. 임진왜란 때 말 500마리를 나라에 바친 인물, 헌마공신 김만일. 그의 삶이 너무 궁금해져서 탐방 후 직접 기념관까지 다녀왔다.
기념관에는 그의 헌신과 후손들이 200년 넘게 제주 목장을 운영하며 지역을 지켜낸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말 그대로 ‘말로 나라를 지킨 사람’. 존경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텅 빈 집에 예술이 들어왔다
가시리 마을의 레지던시 프로젝트도 인상 깊었다. 빈집을 예술가에게 빌려주고, 예술가는 마을 주민에게 재능을 기부하는 구조. 그림, 음악, 요가, 요리까지 다양한 재능이 마을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나도 재능이 있다면 참여해 보고 싶었지만… 내가 가진 가장 확실한 재능은 ‘잘 먹기’ 정도라, 잠시 고민하다 웃고 말았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뜨겁게 응원했다.
혈망봉에서 시작된 여정은 결국 내 안의 제주를 새롭게 그려줬다. ‘제주를 안다’고 말했던 과거의 나는 이제 조금 부끄럽다. 이름 하나로 시작된 변화는 말을 다르게 보고, 사라진 사슴을 떠올리게 만들고, 봄꽃 하나도 깊게 들여다보게 했다.
혹시 당신도 아직도 한라산 정상 이름을 백록담이라 알고 있다면, 이제는 나처럼 자신 있게 말해보자.
"한라산의 진짜 정상은 백록담이 아니라 혈망봉이야."
혈망봉, 김만일, 가시리 마을, 그리고 제주야. 오늘 하루 정말 고마웠어. 너희 덕분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졌어.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첫댓글 후기 감사합니다 ㅎ 저도 못 간 김만일 기념관도 갔다 오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상미님 ♡
그대는
글로 감동을 안겨주는
재능이 있어요 !!
마음속 진실과 즐거움을
뿜어내는 샘물처럼 맑아요 !!
늘 선사해주시는 좋은 글들
감사드립니다~~~~^~^ !!
@이온유(이미숙) 💕 소녀소녀한 감성을 가진 이미숙선생님의 답글에 감동받았습니다. 지금 저는 어깨춤 추고 있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큰 사슴이 오름*에
사슴이 살지 않는다니,
총 맞아 죽은 사슴처럼....
저도 아프네요~~~!!
인간의 욕심이 ...
사슴의 아름다운 천국을
무너뜨리고 말았군요 !!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이땅과 세계도...
언젠가
욕심많은 사람들 때문에
*큰 사슴이 오름*처럼
없어져 버릴까요 ????
지식과 능력을 가진 멋진 인간인데,
지금도 넘치는 욕심들 !!
그놈의 욕심이...
욕심만 버린다면 ????
모두가 행복할텐데 ~~~~
그럴 수 있을텐데 ......!!
욕심은 끝이 없다라 하지만 언젠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낄 날이 올 것입니다^^
뽑아놓은 헤드라인(제목)들이
아주 멋지네요~
가슴에 쏙쏙 들어올 뿐만 아니라
내용을 읽고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유인성이 강한 훌륭한 타이틀입니다.
카피라이터의 소질과 능력이 돋보이네요 ㅎㅎㅎㅎ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앞으로 기대에 부흥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