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슬퍼할 것인가
「기소영의 친구들」
정은주 창작동화 / 해랑 그림 / 사계절
2023.09.06. 조옥자
내가 초등학교 4학는 때 아는 사람이 처음으로 죽었다. 내게 좋은 말을 해주던 작은 할아버지가 어느날 돌아가셨다. 작은 할아버지 집으로 동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혼자지낸 밤은 내게 무서움이었다.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작은 할아버지가 내게 혼령으로 나타날까봐 걱정했었다. 작은 할아버지의 상여가 나가고 장례를 마친 후에는 작은 할아버지 죽음이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명절 때 할아버지를 뵙지 못할 뿐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5인조에게 큰 사건이 생긴다. 5인조를 유지시킨 핵심 인물 기소영이 죽었다. <기소영의 친구들>은 기소영이 죽었다는 비보로 시작하여 기소영의 친구들이 소영의 빈자리를 서로 채워가며 성장하는 동화이다. 우리 동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친구의 죽음에 대한 소재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에는 친구의 죽음을 다루며 죽은 자를 대하는 미숙한 현대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장례식장에 못 가게 방침을 내린 학교장의 대처는 무책임하고 죽은 자에 대한 예의없는 태도를 드러낸다. 영진이의 말처럼 “아, 진짜! 어이없네. 소영이가 자살한 것도 아닌데 뭘 동요하지 말라는 거야?” 학교장의 방침은 진짜! 어이없다.
“옛날 옛날에 한 공주님이 살다가 죽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린드그렌의 <메리트 공주님>이란 글이 있다. 주인공 메리트는 자기에게 친절을 베푼 요나스 펫터를 향해서 굴러오는 바위를 보고, 자신의 몸으로 바위를 멈춰세운다. 메리트는 요나스 펫터를 살리고 죽었다. 메리트가 죽어서 친구를 살린 이야기는 무거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삶의 일부분으로서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이별은 어떻게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메리트 장례식에 요나스 펫터가 앞에 서서 국기를 들고, 아이들은 모두 꽃을 들었고, 몹시 슬퍼하며 울었고, 위로의 말이 있었고, 슬픔을 표현한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모든 일이 끝난 뒤에 아이들은 예전처럼 요나스 펫터가 봐둔 새 집을 보러갔다. 슬퍼할 시간을 가진 후에 아이들은 죽음을 삶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왜 우리 동화에서는 이 중요한 절차를 소홀이 대하는지 안타깝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이별의 시간은 삶에서 중요하다.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한 기소영의 친구들은 단절되고 통제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분신사바를 하고, 49제도 지낸다. 소영이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해서는 안될 이야기를 꺼낸 것처럼 조심스럽다. 소영이의 책상에 놓인 조화를 언제까지 놔야 하는지 몰라서 아이들은 고민한다. 담임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데 그런 모습이 생략되어 있다. 소영이의 앨범을 보내려는 담임의 자세는 공무원과 비슷해 보인다. 소영이 납골당 앞에서 채원이에게만 꽃을 들려줄 것에는 아쉬운 부분이다.
내 주변에는 성수대교 붕괴로 학교친구를 잃은 슬픔을 아직도 간직한 사람이 있고, 화재에 친구를 잃어 불만 보면 가슴이 두근 거린다는 사람이 있다. 어린 사람일수록 울고 슬퍼할 시간을 갖게 해야하고, 죽음을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대해야 한다. 동화에서처럼 친구를 잃었다는 슬픔보다 연화와 영진이의 비밀을 채원이로 대체하는 것으로 슬픔이 표현되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교와 집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서초동 교사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동화와 다르지 않아 더 안타깝다. 동화가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고민스럽다. <기소영의 친구들>은 슬퍼하며 이별할 시간을 주지 않은 어른들에 의해 아이들은 49일간 슬퍼하며 친구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첫댓글 옥자님, 감상글 감사합니다!!
감상글 너무잘읽었어요! 정말 휘리릭 읽을수있던책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