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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서 두 편으로 올리는데 두 번째 글입니다. 첫 번째 글을 찾아서 읽으시고 다시 두 번째로 오시기 바랍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보물- 율법 Million Church: The Most Important Treasure in Human History — The Law
복음의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2000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천주교는 약 400년 전에 개신교는 약 150년 전에 들어왔습니다. 노아 홍수 후에 살았던 사람 중에 율법이 오기 전 약 1000년 동안 살았던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양심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율법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 1000년 동안 주어졌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 살았던 모든 사람 즉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사람은 양심에 의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을 들을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복음을 듣지 못했던 사람은 모두가 양심에 의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복음이 들어와서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율법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의 모든 인간을 비롯해서 창조물을 통치하시는 근거가 양심과 율법입니다. 다른 종교나 도덕이나 국가의 헌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에게 넣어둔 양심과 그리고 직접 누구나 보게 주신 율법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하나님의 통치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통치하고 내 나라가 나를 통치한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있으며 믿는 것은 막연한 무엇을 믿으면서 지내는 것입니다. 아직도 즉 자신과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사는 것입니다. 절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에서 나를 속박하는 세상에서 나를 건져서 자유롭게 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통치를 믿는 것 그리고 온 우주적이며 역사적이며 종말까지 율법을 통해서 다스림을 믿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믿음과 최후 심판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최후 심판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성경에는 모두가 다 믿는 이 믿지 않는 사람 다 율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는다고 하고 또 심판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이 바로 율법이 무엇이며 성도가 율법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되는지를 설명하기에 예수와 율법, 율법과 성령의 관계가 바로 신약 성경의 핵심입니다. 이런 관계가 가장 중요하고 이를 사람이 믿는 것입니다. 믿음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그분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믿음보다도 성령이 누구시며 어떻게 성령을 받고 어떻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믿음보다 율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측면에서 예수를 믿으니 믿는다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믿음 이전에 이미 계시는 예수님과 사역과 오신 의미, 그리고 성령의 사역과 오신 의미, 그리고 인간과 지구와 우주가 사라져도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인간보다 더 중요한 율법이 어떡하며 믿는 이에게 율법은 무슨 의미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대상에 대해서 인식도 없이 누구를 믿는다고 하면 그 말은 거짓입니다. 예를 들면 만난 적도 없고 본 적도 없고 아는 바도 없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내가 믿는다고 하면 우리 말을 그대로 인정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너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거야 하고 물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 믿는 대상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그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지 왜 신뢰할 만 한지 분명하게 설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흠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리고 다시 오십니다.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빠졌습니다.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성도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내용이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졌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나 입니다. 우리를 사랑해서라 대부분 답을 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은 우리가 바로 천국에 가지 않으면 적어도 수십 년 혹은 백 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 땅에서 예수를 믿으면서 보내야 합니다. 무언가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대부분 관심도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위의 내용을 다 안다고 해도 예수님에 대해서 50% 정도만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건져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일에 대해서 100%를 이해하고 이제는 우리가 새 생명으로 살면서 해야 되는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에서 빠져서 죽게 된 사람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나를 건진 분이 죽었습니다. 죽었어야만 했던 내가 살아서 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나를 살리려고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하던 일을 대신해 주어야 합니다. 그분의 가정은 어떤지 살피고 그분이 평소에 하던 일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분의 부모나 형제에게 이분이 하던 일이 무엇인지 살펴서 대신 내가 해 주어야 그분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에 관심도 없고 도리어 남은 가족과 이웃과 그 사람이 속했던 나라와 집단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나를 대신해서 죽은 사람에게 도리어 해가 되고 내가 죽도록 그냥 두는 것이 그분에게 더 좋은 일이었습니다. 유족이 되고 살기가 가장이 없어짐으로 어렵게 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금품을 갈취하고 그들의 직장을 빼앗고 그들의 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셈이 될 것입니다. 물론 고인이 되신 분이 평소에 선하게 살고 정의로운 분이셨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타인을 살리는 일에 자신의 생명을 바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잘 못 알고 잘 믿지 못하면 틀림없이 예수님께 대적이 되고 해가 되는 일을 서슴지 않고 할 수가 있다는 면에서 예수님께서 평소에 하시던 일과 하고픈 일에 대해서 즉 그분의 우리에 대한 뜻에 대해서 이 땅의 뜻에 대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잘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살려주면 많은 사람이 새로 얻은 생명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분주하게 됩니다. 새로 살게 된 즉 죽었던 사람임을 속히 잊고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데 대부분 이렇게 살면 그렇게 자신을 살려 주신 분의 뜻과 정반대로 살게 됩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 10명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십니다. 병에 걸려서 격리가 되어 사람 사이에서 너무나 비참하게 살던 사람이 정상인이 되니 이제는 예전에 하지 못한 일을 한다고 너무나 분주합니다. 그래서 오직 10명 중에서 한 명만 예수님께 찾아와서 감사를 전합니다. 나머지 9명은 나은 몸으로 자신이 못했던 일을 한다고 정신이 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세상은 너무나 화려하고 하고 싶은 일이 두 눈에 가득합니다. 마음은 급하게 세상을 향해서 갑니다. 교회에 몸을 두고 마음은 세상으로 정신없이 다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 놀랍게도 이 글을 쓰고 유튜브를 보던 중에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젊은 해경이 70대 중국인을 바다에서 살리고 대신 죽었습니다. 해루질을 하려고 들어간 70대 중국인의 구조 요청이 있고 젊은 해경이 이를 구조하기 위해서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물이 불어나자 바로 구조가 어려우니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중국인은 물에 떠다니다 구조가 되고 우리의 젊은 해경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눈물이 납니다. 온 국민이 분노합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런데 중국인은 무슨 반응을 보일 것인지 궁금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이 이보다 더 처참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죄로 인해서 원수가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분의 독생자를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로 바치고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그분의 구원의 사역을 전하지도 않고 먹고 마시면서 사시렵니까?
저도 별로 다를 바가 없던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고 목사가 되라는 말을 무시하고 행정고시 1차 시험에 붙었기에 바로 순종하지 못하고 2차 시험도 보고 떨어지니 다음 해까지 또 1차를 다시 보고서 비로소 성적이 형편없이 나오기에 고시를 포기하고 목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십 년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아래의 말씀도 알기는 알았지만 이렇게 산다고 했지만 그 본래 의미를 잘 모르니 제 마음대로 사는 것이 많았습니다. 저역시 온전치 못한 사람입니다. 모두가 함께 올바로 가기를 바랍니다.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분의 즉 아버지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세움은 무엇이며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우리는 그분의 원하시는 일과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분명하게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여러가지 비유로 혹은 질문에 답하심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나가서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절차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명령을 무시하면 바로 예수님의 뜻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절대로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일은 그분의 뜻대로 하는 데서 비롯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기다렸다가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대로 믿고 마음대로 행하면 절대로 그분의 뜻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이렇게 연결이 되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이들에게 또 예수님을 잘 믿으라고 전하는 편지가 서신서이며 성령의 인도로 말세를 잘 준비하면서 사라는 내용이 예언서로 모든 신약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죄인이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반드시 받고 성령의 인도로 사라는 내용이 신약 성경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거듭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제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 속에 너무나 중요한 성령을 받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바로 세상에 나가서 무엇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절차를 무시하고 자신이 신학하고 성경을 배웠다고 마음대로 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가 이를 검토하는 사람에 온 세상에 없기에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해도 누가 뭐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볼로는 지금으로 말을 하면 성경학자요 정통인 사람입니다. 자신이 배운 바를 거침없이 전하면서 잘 하고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따르지 않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움직이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은 자신보다 신분이 너무나 천합니다. 이들이 자신에게 배워야 한다고 믿고 행할 수도 있는데 이 부부가 아볼로에게 성령에 대해서 아냐고 했을 때 이 사람은 정직했습니다. 들은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보면 성령을 모르고 신학도 하고 성경도 잘 배운 이에게 평범한 성령을 받은 집사가 묻습니다. 목사님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렇게 물었을 때 한국에 있는 목사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저는 아볼로와 같이 정직하게 답을 할 목사가 감히 한 명도 없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집사님! 왜 목사에게 그런 것을 묻습니까? 제가 집사님을 지도해야 되는 목사인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혹은 집사님은 무슨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고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 이 목사는 저도 받았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제 지도나 잘 받으시면 됩니다. 이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경험이 없이 성경을 배우고 신학을 한 목사가 성령을 받은 성도를 지도하는 세상이니 어떻게 교회가 바로 갑니까? 성령을 성경대로 받은 사람은 누구나 직분에 상관없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성경대로라면 별로 이런 사람은 가르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성령을 성경대로 누가 받았다고 하면 바로 그 사람을 믿겠습니다. 저도 예수님께서 오셔서 저를 회개하게 하셨고 5년을 회개하고 그리고 1991년 5월 19일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로 예수님 이름의 세레를 받고 다음해 1992년 초봄에 신림동 선민교회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불로 세례를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목사가 되어 이렇게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것은 처음 예수님을 믿고 약 6년이 걸렸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고 불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 1:33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고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2000년을 교회와 성도를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신약의 성경은 성령과 관련이 없는 성경이 없고 사도와 제자와 모든 성도는 성령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사도와 성도가 다 성령을 받은 공동체였습니다. 이 공동체도 문제가 생깁니다. 누가 문제를 만듭니까? 예수님도 믿지 않고 성령도 없는 유대인이 문제입니다. 오직 구약을 알고 율법을 알고 이를 그대로 또 주입하려고 합니다. 착한 성도를 꾀어서 자신의 종으로 삼습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도 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고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걱정을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여기까지 와야 기본입니다. 마치 행시나 사법시험을 공부하는 학생이 부지런히 준비를 해서 사법 시험에 겨우 합격한 상태입니다. 단계입니다. 믿는이의 이 단계는 회개입니다. 성경 공부도 신학도 중요하지만 먼저 회개를 해야 됩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는 것이 믿음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이 흔들이면 다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 중의 기본이 회개입니다. 나머지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준비를 하셨고 인간은 자신이 할 수가 있는 회개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회개를 도우십니다.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회개는 죄를 자각하고 과거의 죄를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회개입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예수님의 전도의 첫 마디가 회개하라 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첫 마디도 회개하라 였습니다. 성경을 배워라 신학을 해라 가 아닙니다. 그리고 목사에 대한 예수님의 질문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온갖 것을 다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거듭나게 된 성도는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잘 받게 됩니다. 복음의 원리입니다. 죄인을 회개하게 하시고 물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을 받게 하심으로 새롭게 창조된 성도가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복음입니다. 성령도 없고 사랑도 없고 신학있고 지식이 있어 설교를 하나 어찌 이 자들이 올바른 목사로 성도를 섬깁니까? 이들이 자신의 배를 채웁니다. 나라가 망해도 불의가 판을 쳐도 조금도 걱정없이 모든 수십년 수백년 먹을 재산을 쌓아두고 헛소리로 일관하니 제가 보기에 1000명 대형교회 목사 1000명이고 이 중에 별로 다른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이들을 경고하고 바로잡고 성도들을 각성시키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제게 이렇게 하도록 모든 성경의 이해와 진리에 대해서 알게 하셨고 저는 하나님께저 주신 깨달음을 전하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성경에 대해서 온전하지 못하고 다른 분야에 대해선 즉 돈을 벌고 하는 일에는 너무나 못난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의 증거는 첫째 성경의 기록대로 복음을 전하면서 착하게 삽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자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전하는 사람이 나누어야 하고 모든 것을 인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렇게 살도록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성령으로 늘 충만케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슨 수로 나에게 늘 힘들게 하는 동료를 참고 가족을 참고 이웃을 참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분의 명령인 온 세상의 통치 규범을 잘 배우고 지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법을 잘 배우게 하시고 잘 지키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이해하게 하시고 도전하게 하시고 열심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아래 구절은 그 도전의 말씀입니다. 비유는 때론 예수님께서 직접 풀어서 설명하시는 데 아래 구절은 성령과 함깨 성도가 풀게 해설이 없습니다. 같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풀어야 하는데 여러 버전을 보면 쉽게 풀립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5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는 누구나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낡은 것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And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scribe who has become a disciple of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head of a household, who brings forth out of his treasure things new and old."
(영어 두가지 한글 세가지 버전입니다. 이를 보면 특히 영어로 보면 많이 풀립니다.)
참으로 다번역 성경 찬송을 운영하시는 분들의 노고도 크시고 모든 성도에게 너무나 큰 도움이 됩니다. 저도 삼성에 갔다가 교사를 하시는 평신도께저 제게 소개를 해서 알게 되었고 이분과 이 앱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참 고맙고 귀한 일을 하십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그냥 여러 가지 버전만 읽어보아도 뜻이 조금은 더 잘 보입니다. 우선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로 이해하면 조금 더 그 뜻이 분명하게 인식이 됩니다. 새것과 옛것에 대해선 새 보물과 옛 보물로 이해를 하면 더 무언가 중요한 것이 느끼어집니다. 그리고 곳간을 보물을 보관하는 창고로 이해하면 단순하게 곡식을 저장하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고 집주인의 신분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해를 하면 곡식을 보관하고 아침저녁으로 꺼내서 주는 분이 아니라 굉장히 중요하고 많은 값어치가 나가는 보물을 소유한 주인으로 집주인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보물은 신 구약 성경이고 보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 율법을 잘 배운 학자가 선생이 그리고 후대인 우리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잘 받으면 즉 성령을 통해서 신 구약 성경을 잘 이해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신 구약 말씀을 보물창고에서 꺼내셔서 양무리에게 적절하게 먹이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또 신 구약 말씀도 잘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학교 수백개 수천개가 덤비고 하버드를 비롯해서 수천의 명문대가 덤벼도 성령을 받은 한 명을 절대로 이기지 못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성령을 받은 분이 또 그렇게 공부까지 하고 사랑까지 하신다면 온 지구에서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신앙인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성령을 받은 성도를 전도하게 하시고 성경을 읽고 깨닫게 하시고 바울과 같이 삶의 현장에서 고난을 받게 하심으로 이들이 온 세상의 대학의 교수를 깨닫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고 50만 한국의 전도자는 10년 20년 30 년 전도의 삶을 지속하시고 성경을 가까이 하시고 늘 겸손하게 배우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순복음 교회는 성령에 대해서 온 세상에서 앞서고 통합의 장신대는 말씀에서 온 세상에서 가장 앞선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둘이 하나가 되면 가장 이상적인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시고 또 천주교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위에서 논의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건설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100년 잘 사는 것은 세상의 사람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도 천재적으로 잘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은 오직 성도외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구원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율법에 대한 이해와 직결이 됩니다. 구약 성경의 처음이 율법이고 모세 오경입니다. 마지막이 최후 심판이 모든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을 상대로 예수님께서 각자의 양심으로 혹은 율법으로 심판을 하십니다. 예수님도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성령님께서도 역시 율법을 완성하려 오셨습니다. 이를 확인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2:13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우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 예수님의 명령이십니다. 우리 주인의 명령이십니다. 모두가 따라야 합니다. 위에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구워하신 목적을 밝힙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정의와 사랑과 믿음이 율법의 정신이 됨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로마서의 연결이 성령을 통해서 연결이 됩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으면 정말로 어려운 부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성령의 인도로 많은 시간이 걸려서 여기 왔습니다.
우선 바울 사도는 성령을 받고 즉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합니다. 약 20년을 온 로마 제국에 전합니다. 주로 속국입니다. 그리고 로마에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 성도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아래는 자신의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경험을 쓴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폐하지 않고 굳게 세웁니다. 성령의 인도로 과거에 자신이 육신이 약해서 하지 못하던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다 이행합니다. 성령이 없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하고서 아래와 같이 쓰는 것입니다. 이제 아래 구절을 보시고 그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산 증거를 역시 로마서로 보입니다. 로마서 7장 6절에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정의로운)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바울 사도가 담대하게 증거하게 된 계시가 그의 율법의 능력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로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거듭나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아래 구절과 같이 잘 받고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절대로 이렇게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래의 구절은 한글 번역으로 그 본래의 의미에 가지 못함으로 제가 다시 조금더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영어로 보시는 분은 바로 압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영어로 보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본문의 본래 의미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제가 밑줄을 친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번역하면 불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번역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로마서를 인도하는 등불인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절대로 지키는데 어렵게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영어로 보면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이 성경의 진리로 가는 여정은 이렇게 번역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영어도 하시고 한글도 조금 아시니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앞서 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는 이제 모두가 할 수가 있고 한 언어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하나 되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위대한 찬양의 대상이며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서 오직 우리가 바뀌고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을 바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완성, 굳게 세움,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룸에 이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도록 우리를 예수님께서 구원하신 것이고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이 없고 믿음만 있고 행동도 사랑도 없는 곳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아니라 세상의 나라요 지금의 한국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성령도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저는 예수님도 없고 성령도 없는 오직 율법만 있는 이스라엘과 비교를 할 때 이기기 힘들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 세상을 품고 이스라엘도 품고 갈 정도로 사랑이 넘치고 정의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장 17절에서 이를 분명하게 표현하셨습니다.
롬 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천주교 개신교를 힘들게 하는 로마서 1장 17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구절대로 살고자 하고 천주교도 그 구절대로 살고자 하면서 500년을 다투면서 화해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지식인이면 왜 그럴까 과연 누가 옳을까 그 구절은 도대체 무엇이지 하고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보아야 정상인데 어느 교회에 소속하게 되면 바로 교리로 무장해서 그 교리를 따라서 로마서 1장 17절을 보니 절대로 올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바로 보시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신칭의의 정확한 의미로 초대합니다. 천주교인 개신교인 모두를 초대합니다. 종교개혁에 관심이 있는 학자 모두를 초대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쉽습니다. 교리의 굴레를 벗어나면 너무나 쉽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다 있습니다. 증거가 차고 넘칩니다. 왜 루터는 이렇게 성경을 보지 않고 로마서 1장 17절에 머물렀고 천주교는 오직 야고보서에 머물렀습니다. 모든 성도에게 시원한 성령의 바람이 임하길 바라며 큰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을 역시 다양한 버전으로 보겠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이방인에게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기록된: "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입니다." 와 같이 말입니다.]
맨 마지막에 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와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부분이 우리가 보는 번역과 다릅니다. 중학교 영어로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보입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이 문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어인 의인 그리고 동사인 살 것이다. 그리고 천치사구 믿음을 갖고 로 되어 있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선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반드시 하루하루 살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도 아니요 믿음+ 행위도 아닌 즉 천주교 주장도 아니고 개신교 주장도 아닌 내용이 본문에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증거입니다.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부분은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찾아서 보여 드립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85세 경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심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입니다. 세 번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주이고 이제는 매일 주님을 뵈옵고 동행합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10세 때 무렵입니다. 분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잘 믿다가 어떨 때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악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를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할 때 이미 행한 의는 기억되지 않고 악인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성급하게 로마서 1장 17절만 보시고 또 이렇게 깊고 정확한 의미가 있는 로마서를 겉만 보시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조금도 지키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모두의 최후의 심판자가 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로마서로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모든 분께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먼저 이렇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과 믿음의 질과 종류가 분명하게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로마서 4장이 증명하고 야고보서 2장이 증명합니다. 이 이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논쟁을 접고 서로 부족한 이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믿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2000년 전에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런 내용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됨에 있어서 이렇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저도 경험적으로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약 17년 이상이 경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서 처음 도표(이신칭의에 대한 도표)와 같이 이해하고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의 의미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적어도 20년 이상은 걸린 이해입니다. 제가 게으르고 목이 곧고 그리고 고집이 세어서 그렇게 걸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늘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습니다. 빨리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제가 너무나 무심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렸지만 여러분이나 다른 성도는 오늘 바로 이해하고 믿고 행할 수가 있습니다.오직 성령님의 한결같으신 사랑의 인내와 인도때문에 제가 이렇게 이해하게 되고 전하는 것입니다. 고시에 실패하고 모든 일을 포기하고 낙망하고 살았다면 절대로 예수님도 성경도 성령님의 인도로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낙망했지만 성령께서 저를 세우시고 그동안 8년 하루에 13시간 공부한 대학 대학원의 사회과학을 다 사용해서 전하게 하십니다.
제가 모스탄 대사와 700명의 교수에게 전한 자료입니다.
할렐루야! 온 우주에 삼위 하나님의 이름이 대대로 영광을 받을 지어다! 하늘아! 만물아! 온 지구상의 인생아! 만든이를 기억하고 찬양하라!! 그분의 마음에서 나온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의 율법을 찬양하라!!
로마서 1장 17절과 로마서 7장 6절은 먼저 구절은 이신칭의를, 다음 구절은 성령으로 사는 법을 설명합니다. 결국은 믿음으로 매일 매일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게 된다로 이해하면 이는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내 마음대로 율법도 없이 사랑도 없이 독재로 군림하는 삶이 절대로 아닙니다. 조직이 크지고 재정이 늘고 개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 교회도 국가도 독재가 되고 이런 곳은 예수님의 나라와 정반대가 되니 교회가 그렇게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당은 3년에 신부를 교체합니다. 재정도 마음대로 할 여지가 없고 천주교 교구 청에서 관리하고 결국은 이탈리아 교황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장로 권사도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통제가 국가로부터도 성도로부터도 없이 40-50년을 혼자 목회하고 장로도 권사도 목사가 임명하는데 영향력이 있고 재정도 복식 부기가 없이 운영되고 국가의 통제가 없으니 얼마나 독재가 쉬워집니까? 율법에 따르고 성령의 인도에 따름이 절대로 없는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1000개 대형교회 한국의 모습이며 누가 더 타락했습니까? 바로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천주교의 비리를 캐어서 로마서 1장 17절의 10% 이해도 아니 되는 이해로 개신교를 세워 500년이 지났지만 세상은 자본주의 물결로 교회도 세상도 휩싸여서 수많은 빈민이 희망도 없이 사는데 모든 자본을 선점한 대형교회 목사는 이 나라가 공산화 되든지 누가 다스리든지 관심이 없고 오늘도 물질을 밝힘에 모든 정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도 무시하고 성경도 무시하고 성령도 무시하고 사랑도 없이 살면서 누가 자신의 비리를 성경적으로 분별하고 진리를 전할까 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악행을 성경의 올바른 이해로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시니 진리가 더욱 빛을 발하면 이들은 온 한국에서 가장 악한 자들로 헬조선을 만든자로, 40명의 자살자를 매일 낳게 한 자로, 청년이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낳지 않게 만든 주범으로 기록이 되어 역사적으로 악한 자들로 기록이 되어 주님 오시는 날까지 그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박국서 2장 4절 즉 이신칭의의 근본이 되고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이 된 구절을 올바로 이해를 해서 온 나라를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the enemy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but the righteous person will live by his faithfulness—(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 보아라, 적군은(이 때 적군은 바벨론) 교만하고 그 의도들이 올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살리라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살리라)
하바국 선지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 중에 불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모두가 의롭고 하나님과 그 나라를 사랑한 사람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왕비가 많았습니다. 다윗의 이스라엘이 너무나 강대국으로 주변국이 알아서 스스로 조공과 여자를 바치는 상태에서 여자가 많았습니다. 기원전 608년 경에 하박국서를 기록할 때 남 유다는 완전히 멸망을 하는 586년 보다 18년 전이었습니다. 당시의 견딜 수 없는 불의를 하박국은 다음과 같이 고발합니다.
합 1: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4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다가 참다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묻습니다. 도대체 이 악한 나라를 하나님께서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세상에서 불의가 성행하면 가장 살기 어려운 계층이 약하고 가난한 계층입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불의는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반대로 불의로 재물을 모으고 가난한 사람을 약탈한 악인은 이대로 이대로를 외칩니다. 절대로 어려움이 없습니다. 오늘날 대형교회 목사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 이 민족이 죄를 범하고 또 범하고를 하루 이틀도 아닌 일년 이년도 아닌 무려 1000년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기원전 1446년에 시내산에서 약속을 하나님과 체결하고 쉬지 않고 악을 행하고 행하기를 1000년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데로 처벌을 하십니다. 바벨론이 침략해서 성읍을 봉쇄하자 실제로 1000년 전에 신명기에 약속한 대로 벌이 임해서 자신의 자녀를 삶아서 먹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온 결과입니다. 구약은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율법을 중심으로 하십니다. 그리고 지키면 축복이 어기면 저주가 임할 것에 대해서도 약속을 하고 그 약속대로 율법을 완전히 어겨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28:52 그들은 너희를 온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성 안에 몰아넣고 마침내 너희가 그토록 믿는 높고 튼튼한 성벽들이 허물어지기까지 공격할 것이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에 있는 모든 성 안에 너희를 몰아넣고 공격하리라.
53 너희 원수가 이렇게 너를 포위하고 몰아치면 너희는 자기 뱃속에서 나온 소생,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아들딸을 먹게 될 것이다.
608년에 하박국이 정의로우신 하나님께 심판을 촉구하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에 하박국이 묻습니다. 왜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악하지만 그대로 더 악한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 바벨론이 정의롭지 못하고 교만하다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정의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하루하루 살게 될 것이다라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가 이를 로마서 1장 17절로 옮겨서 이신칭의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그냥 평범한 일상에서의 믿음의 사람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이스라엘 이란 나라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택함을 받은 나라가 1000년 만에 멸망을 자신들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으로 당하게 됩니다. 당시에 사는 사람은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랴 하고 믿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늘 평안을 선포합니다. 별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거짓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당대에 예레미야나 하박국이나 에스겔, 다니엘 등은 정의롭게 살고 선하게 살면서 망하는 동족과 함께 하면서 정확하게 예언을 합니다. 하박국은 당대에 가장 흉악한 나라가 조국을 치려온다는 소식에 창자가 흔들리고 정신이 혼미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처참하고 소망이 없는 비극적인 종말을 보아야 합니다. 나라는 무너지고 망하게 되고 포로로 잡혀갈 일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악하게 악하게 흉폭하게 율법을 무시하고 삽니다. 그런데 의인은 이런 가운데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믿음을 지키면서 삽니까? 오직 믿음도 아니고 오직 믿음+행위도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남의 일과 같이 흘러가는 성경 해석은 이런 상황에서 조금도 성도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현실이며 때론 축복이지만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입니다.우리에게 36년 일본의 압제와 6.25동란으로 수백만 명이 죽는 비극이 있었고 당시에 성령으로 복음이 불을 일듯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집트에 붙어야 살고 어떤 사람은 아니다 바벨론에 붙자 하고 어떤 사람은 앗수르에 붙자고 합니다. 강대국에 붙어야 산다고 저마다 주장합니다. 지금으로 보면 중국이나 미국에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하박국과 의로운 성도는 먼저 하나님을 믿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첫째는 이런 악한 세상을 끝을 내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받아 들이기 어렵지만 바벨론이 와서 멸망을 시킴을 믿습니다. 예레미야도 이를 믿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항복을 하면 산다고 해서 나라는 망하지만 죽지는 않고 사는 법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런 예레미야의 말을 무시하고 성문을 걸어 잠그고 항전을 하다가 양식이 떨어지고 자녀를 1000년 전의 하나님과 약속대로 삶아서 먹다가 항복하나 다 죽습니다. 고관대작의 집이 불이 타고 왕자들이 시드기야 왕이 보는 앞에서 다 칼에 죽고 그리고 그 죽는 모습을 본 눈을 파냅니다. 그리고 사슬로 결박해서 포로로 수백킬로를 끌로 갑니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창자가 꼬이는 충격이지만 받아들이고 믿는 것입니다. 의인은 바벨론에 항전하지 않습니다. 배신자란 소리를 듣고 매국노란 소리를 국민에게 들으면서 참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믿음의 길이며 의인의 길입니까?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절대로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항전이 사는 길이요, 항전이 애국이라 믿으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해서 절대로 의인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박국과 예레미야와 이들이 옳다고 믿던 작은 무리는 이대로 순종합니다. 숨겨놓은 그루터기와 같은 의인이 수천 명 있었습니다. 당연히 에스겔도 다니엘도 순종합니다. 그래서 살아서 타국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높은 자로 삽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대적하며 율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살던 모든 고관의 집이 불이 타고 이들도 다 죽습니다. 항전하고자 발부둥 치던 무리는 다 처단을 받으니 하나님의 심판은 죽일 자 살릴 자를 가려서 하는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의롭게 사는 그분의 참된 백성을 언제나 아무리 어려운 가운데서도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정의롭게 어떤 경우에도 순교를 하는 경우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의가 무엇입니까? 바로 어디에도 없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율법에 오직 있습니다. 각국의 헌법도 어느 정도 보장하지만 절대적인 정의는 오직 하나님의 율법에만 있으니 모든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법이며 헌법이며 일생을 걸쳐서 죽자 사자 배워야 하는 법인 것입니다.
렘 39:6 바벨론의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이제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민의 전성시대가 왔습니다. 괴롭히던 왕과 고관 대작이 다 죽고 이제는 넓은 땅을 죽어가던 가난한 사람이 다 경작하게 됩니다. 의인은 이렇게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때론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견디어야 비로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소극적이고 죽은 이해로 절대로 이렇게 어려운 현실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믿고 견딜 수가 없이 이리 저리 방황하며 바벨론에도 붙고 앗수르에도 붙고 이집트에도 붙고 재물을 의지하고 악을 의지하고 하다가 다 죽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택한 민족도 악을 행하면 방법이 없으니 이 원리를 신약에서 적용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가 벌을 받을 것입니다. 6.25는 어찌 설명합니까? 일본의 패망은 어찌 설명하며 영국이 세계의 40%를 가지고 있다가 작은 섬나라로 쪼그라 든 것은 어찌 설명합니까? 믿는 자에게 오는 불행이 너무나 다양하게 틀림없이 있으며 이는 자신의 악과 정말로 밀접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물론 욥과 같은 의인의 고난과 순교자의 고난과 바울의 고난도 있습니다. 잘 분별해야 합니다.
천주교 100년의 순교의 역사에서 1만 명 이상이 너무나 잔인하게 이씨 조선의 왕권과 양반에 의해서 순교를 합니다. 그 모습도 로마 박해 이상입니다. 너무나 참기가 어려워서 하박국이 하나님께 호소하듯이 황사영이 교황에 도움을 청하는 백서를 보내다가 발각이 되어서 순교를 당합니다. 그리고 100년의 박해가 쉬지 않고 일어납니다. 왕과 양반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양반도 상놈도 없이 서로 평등하며 하나님 앞에 형제요 자매라고 하니 나라를 흔드는 사교로 규정하고 모든 천주교인을 다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외국인 신부도 조선에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쉬지 않고 오시고 순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불의로 살 수가 없는 지경이 되니 만주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를 떠납니다. 그리고 일본이 마침내 1910년 조선을 멸망시킵니다. 죽일 사람 죽이고 왕자는 포로로 일본에 잡아갑니다. 바벨론이 한 일과 대부분 같습니다. 그리고 왕토요 양반의 토지를 토지 조사사업으로 다 뺏어서 모든 한국의 가난한 농민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양반제도 왕권사상이 무너지고 이렇게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잘 배운 조선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일본도 원자탄 두 발을 맞고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망하듯이 패방합니다. 너무나 똑같은 역사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순교자들은 성인이 되고 복자가 됩니다. 그리고 순교지가 성지가 되고 이들을 죽인 당시의 목사 현령의 비석이 당시는 후손이 거창하게 세웠지만 다 뽑혀서 성지 뒤뜰에 방치가 되어 당시의 진리를 전하는 자를 죽인 주범이 누구인지 전시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심판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한다면 돈 좀 더 가지려 가난한 형제를 외면하고 사랑도 없이 율법도 없이 성령도 없이 절대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재물에 포로가 되지 않습니다. 목사는 성도를 먹이고 입히고 가장 나중에 자신의 것을 챙겨야 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한국에 좌파가 득세하면 중국이나 북한이 될 것이고 우파가 득세하면 또 70년 평화속에 빈부의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집도 땅도 없는 율법의 가르침과 완벽하게 반대가 되는 헬 조선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집 없는 국민 50%, 땅 없는 국민 70%에 가용 국토 50%를 국민의 1%인 50만이 소유하는 현실을 절대로 고칠 세상의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헬 조선이 된 것입니다. 이를 고칠 생각은 없이 좌다 우다 하나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이 땅에 정의가 서기 바라시며 그 정의는 오직 율법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그 법이 바로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이를 저는 모스탄 대사에게 아래와 같이 장문의 편지로 전했습니다. 부디 여기까지도 긴 글이지만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율법이 잘 지켜지는 세상을 역사를 통해서 저는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의 60년 전의 삶이 생각이 났습니다. 천국의 모습을 진실로 보기를 원하시는 분은 우리가 살던 50-60년 전의 고향으로 돌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보지 않았고 경험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모를 일이지만 제가 하루하루 적어도 16년을 나서 자라면서 보고 겪었기에 전하는 것입니다. 제 고향 남해는 섬이고 노량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신 바다입니다. 이 바닷가에서 가을이면 문어를 낚는데 대형입니다. 10킬로 2미터나 되는 놈을 던지면 잡아올립니다. 밤이면 불빛을 보고서 수도 없는 고기가 모이는데 불반 고기반입니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좁아도 온갖 조개와 먹거리가 지천이며 게와 해삼 미역 청각등이 널렸고 홍합도 널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도 또래도 많아서 늘 쉬지 않고 산과 들을 다니며 놀았습니다. 집집마다 집이 있고 땅이 있어서 벼도 심고 채소도 심고 바다는 사철을 쉬지 않고 홍수도 없고 가뭄도 없이 먹거리를 싱싱하게 공급합니다. 그런데 3천년 전에 이 땅에 사람이 처음 왔을 때 아무도 없는 한반도에 공기도 물도 오염이 없을 때 적어도 1000년의 천국을 모든 우리의 조상을 맛을 보았으리라 믿습니다. 중국도 인구가 별로 없고 바다를 건너서 오지 않았고 일본은 기원전 약 400년 경부터 청동기 유물과 고인돌이 있기에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경쟁도 필요가 없습니다. 온 사계절이 분명하고 온화한 한반도가 비어 있습니다. 들과 산이 나즈막하고 강이 있고 물이 있으니 어디든지 살 수가 있는 곳입니다. 처음 전라도로 상륙한 고인돌족인 우리 조상은 살다가 조금 좁아지면 바로 곁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이렇게 군락을 이루며 씨족을 이루며 3000년을 살았으니 우리가 보던 예전 1970년대 까지의 모습입니다. 온돌을 사용하고 볏집으로 지붕을 만들고 흙으로 집을 만들어서 살았고 고래를 잡고 가축도 키우고 동물도 잡아서 먹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드문 드문 여유있게 살면 그리고 먹거리가 넘치면 싸움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온 한국인이 호전적이지 않고 순박한 것입니다. 이 땅에 세워지는 천국은 집과 땅을 모두가 가지고 사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이에 대해서 철저하게 보장합니다. 집과 땅의 소유를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정하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세를 얻어서 사는 나그네로 규정합니다. 땅을 지파별로 골고루 분배합니다. 모두가 집과 땅을 가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땅과 집을 사고 파는 행위를 금하고 판 집이나 땅은 다시 살 수가 있고 50년이 지나면 원상회복을 시킵니다. 왜 이런 법을 만들었습니까? 이 땅에 생명을 하나님께서 보내시면서 자신이 만든 이 세상에서 집과 땅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사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이시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국가나 단체도 다 경계를 정해서 그 경계속에서 살게 하고 함부로 힘이 있다고 주변국을 침략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온 강대국이 이를 어기고 막 나가다 다 멸망했습니다. 오직 다윗 왕이 홀로 60만 대군에 금과 은이 넘치는 경제력에도 작은 이스라엘의 영토의 한계를 지킨 것입니다. 이 율법을 목사가 왜 가르치지 않습니까? 이 한국의 문제를 고쳐서 자살자가 없고 과도한 경쟁을 없애서 모두가 장가가고 시집가고 노인을 모시고 살 집 문제 땅 문제를 이렇게 하나님께서 3500년 전에 모세에게 주신 율법으로 해결을 하셨는데 왜 이 율법을 전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습니까? 1000 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먼저 이 규정을 어기고 집과 땅과 재물을 성도가 하나님께 바친 것으로 선점하고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마귀의 자식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목사가 되어서 거짓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행시에 붙어서 저도 제법 사는 것이 괜찮고 고위직에 있어서 불의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고시로 배운 헌법과 각종법을 금과 옥조로 알고 배우고 지키는 일에 몰두해서 절대로 이런 성경의 진리로 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시에 떨어진 것이 제게도 온 세상에 유익인 것입니다.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는 이런 진리를 전해서 온 한국의 집 문제 땅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자신이 가난하게 검소하게 사는 본을 보이고 장로 권사가 자신을 따라서 그렇게 살고 모든 물질과 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어려운 이웃에게 교인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하지 못하고 세상이 못하는 것을 이렇게 교회가 해야 그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를 해야 할 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망할 짓들만 하고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정말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가 감옥에 가고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누가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삽니까? 미국도 자국에서 좌파가 설치니 타국을 그렇게 관심을 가질 수도 없고 관세로 온 세상을 조정하려고 합니다.
제가 율법을 조금 이해하고 이렇게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면서 과거의 우리의 나라의 천국과 같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실로 정이 넘치고 10계명의 5-10계명이 그대로 지켜지는 그립고 꿈과 같은 고향입니다. 고향이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은 기억을 준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하던 친구와 그리고 너무나 착한 가족과 그리고 네 것과 내 것이 없는 형제와 그리고 주변의 나를 부모님같이 사랑하던 친척과 이웃이 있었기에 그리운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서 가장 천국의 모습에 가까운 모습을 지녔습니다. 조상이 물려준 다양한 절기와 놀이가 또 있었습니다. 늘 찬치가 쉬지 않고 가무가 있었습니다. 모든 한국이 다 그랬습니다. 이런 삶이 청동기 시대 우리 민족이 전라도로 상륙했을 때부터 3000년을 어어온 것입니다. 조상이 순박했고 한국이라는 땅을 찾아서 메소포타미아에서 이동을 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민족에 대한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기초로 가지고 온 세상의 역사를 성경을 통해서 살피다가 홍수후 온 지구로 흩어진 셈족의 청동기 시대 고인돌 족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들이 4000년을 지구의 주인으로 백인이 1500년대 이주하기 전까지 역시 우리와 같은 천국의 삶을 살았으리라 믿고 공부를 하다가 이들이 남긴 암각화에 주목하게 되고 위의 자료를 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지리학자, 고고학자, 역사학자, 성경학자 등이 깊이 연구해서 밝혀야 하는 천국의 모습이며 진정한 성경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읽으시는 분은 첫째 글에 암각화 그림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네이버 블로그의 오천만의 로마서의 글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외에는 한국의 문제를 고칠 분이 없습니다. 일본이 36년 이제는 중국이 우리를 통치하려고 합니다. 저와 교회가 싸우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싸웁니다. 진리를 전해서 교회를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제 모스탄에게 보낸 편지를 보십니다. 이미 보신 분은 다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모스 탄 교수님께
사랑의 하나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넘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의롭게 되고 거듭난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워야 합니다.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입니다. 정의의 주님! 이 땅에 사는 주님의 백성이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그 나라를 속히 세우기를 원합니다. 모스 탄 교수님을 통해서 정의를 이 땅에 세우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한량없으신 자비가 교수님과 한국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온 세상이 올바른 로마서의 이해로 하나가 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주여! 교수님과 우리 민족을 붙잡아 주옵소서! 어지러운 세상에서 주님의 백성이 정의롭게 살게 새 힘을 주시고 위로의 영으로 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저와 같이 비천한 인생에게 베푸신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교수님과 온 세상에 나눕니다. 주여!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1. 정의에 대한 관심
샬롬! 교수님을 한국에서 뵙고 저와 한국민 모두가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미국인으로서 헌출한 외모에 늘 미소를 띠며 웃으면서 모두를 대하시는 모습에 모든 한국인은 구세주를 뵈온 것과 같이 기뻐하고 환호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영적인 지도자가 못하는 일을 오셔서 겨우 몇일 머무르는 사이에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 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키시고 사용하시는 온 세계적인 예수님의 강력한 군사임을 믿습니다.
한국에 있는 무명의 목사가 신학도 하시고 법을 전공하셔서 명문 법대의 학장님이신 교수님께 편지를 드림은 교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정의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고 싶어서 입니다. 정의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너무나 지대합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님이신 렌달 교수님의 "정의란 무엇인가"하는 책은 한국에서 100만 부가 더 팔렸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님께서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시고 한국인과 정의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렇게 정의에 대해서 한국인은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의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이 정의인가 하는 부분에 오면 너무나 다양한 정의에 대한 개념 정의가 있는 것에 놀라고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랜달의 정의론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은 자신이 정의롭다 하고, 법을 전공하신 분들은 자신이 정의를 위해서 산다고 합니다. 정의는 좋은 단어지만 모두가 자신이 정의롭다고 하니, 그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학술적으로 통일이 된 정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의로 나아가는 저의 여정은 비록 순간의 어려움이 있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매우 흥미롭고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분의 전적인 인도를 따라서 진리를 깨닫는 기쁨이 늘 충만했고 주님의 위로가 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제 40년의 모든 삶이 다 녹아있습니다.
2. 이신칭의에 대한 과정적인 이해
가장 먼저 하나님께서는 제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에 대해서 경험적으로 아래와 같이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개신교의 오직 믿음의 교리에 대해서 처음부터 잘 믿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면 바로 용서가 된다라는 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롭게 되는 과정을 알게 하시고 이를 정리하게 하시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 간증문 모집에도 보내게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도표로 보여드립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은 너무나 중요한 부분입니다. 로마서의 수신자는 당시에 거의 모든 분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분들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첫 열매인 우리라고 하고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끝내려고 하느냐 책망도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잘 확인하고 우리도 예수를 믿고 반드시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아서 성령을 선물로 받는 일이 로마서를 이해하는 일보다 먼저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내용입니다.
제가 모스탄 대사와 700명의 교수에게 전한 자료입니다.
개신교 일반 성도와 달리 저는 오직 믿음 교리에 대해서 그렇게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저를 구원하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가 그냥 일반 개신교회의 가르침을 따라서 오직 믿음의 교리는 올바르고 흔들 수도 없는 개신교의 기둥과의 같은 교리로 믿고 천주교에 대해서도 마음이 닫힌 상태로 살았다면 절대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 성령께서 제게 이신칭의 교리에 대해서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를 저는 밝히는 것입니다. 개신교인으로 살면서 오직 믿음의 교리를 따르지 않았기에 위의 이친칭의 이해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의 성경의 도표도 그릴 수가 있었으니 진실로 개신교 500년의 역사에서 거의 누구도 보지 못한, 그렇지만 분명하게 성경에 있는 진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우선 이신칭의는 저의 전적인 경험으로 위의 이해로 갔습니다. 바울 서신의 '믿는 자"는 지금의 성도와 달리 모두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의 로마서는 사도행전 2장 37-39절의 절차를 지켜서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당시에 로마교회에서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지금의 교회의 구성원과 성령의 선물을 받음에 있어 다릅니다. 이를 확인을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와 2000년이 흐른 지금 로마서는 글자 한자 변함없이 동일하지만 교회는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이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정확하게 이신칭의를 개신교의 가르침대로 믿지 않고 의롭다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17년 이상이 흐른 후, 즉 전도하고 신학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논문을 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게 너는 의롭다 하는 마음을 주셨는데 저는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저는 이를 받는 것이 감지 덕지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십자가 구원의 은총도 감당이 어려운데 어찌 저와 같은 이를 의롭다 하십니까 하는 마음이 당시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정리를 해서 도표도 만들고 간증문도 작성해서 모두에게 과정적 이신칭의로 알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도표와 같이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믿음의 여정이 이해가 되었고 야고보서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아무도 잘 설명하지 않는 로마서와 하박국서 그리고 야고보서를 이신칭의와 같이 엮어서 설명했고 너무나 놀라운 이해로 감동하고 감격해서 온 세상의 교회와 신학교 목사님께 서툰 영어로 속히 알린 것입니다.모든 과정을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3. 아브라함 여정과 믿음 그리고 하박국과 야고보서
위의 도표는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해하게 하셔서 구원의 파노라마라는 내용으로 정리를 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 하고 끝나지만 그 믿음이 과연 어떤 믿음인지 아브라함과 하박국과 야고보서의 내용을 보면서 확인을 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교리는 이신칭의로 로마서 1장 17절에 있습니다. 그런데 1장 17절은 바울 사도가 성령의 감동으로 처음 사용한 말씀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서 하박국서의 2장 4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온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하박국서 2장 4절의 내용을 참고를 해야 합니다. 하바국서에 가서 정확한 내용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4장에서 75-85세 무렵과 100세 무렵을 4장 1-16절에서 그리고 4장 17-22절에서 잘라서 설명하는데 이를 정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110세 무렵도 정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 믿음이 시간이 가도 한결같아야 하고 변치 않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반드시 의롭게 살아야 되는 믿음임도 보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루터는 너무나 성급하게 천주교와 다른 교리를 만드느라고 절대로 이렇게 저와 같이 로마서의 내용을 살피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만약에 그가 로마서 1장 17절은 총칙이고 이를 4장과 7장과 13장과 3장 그리고 14장에서 풀어서 설명한 것을 이해를 했다면 이를 반드시 설명을 했을 것이고 우리는 500년을 절대로 천주교와 다툴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모든 루터 전문가는 그의 로마서의 이해와 저의 이해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아브라함의 여정에 관한 창세기 내용을 이해를 해야 또 되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위의 도표로 정리를 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교리 안에 위와 같은 내용과 아래에 제가 소개하는 내용들이 다 포함이 되어 있으며 이를 다 연결을 시켜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4. 정의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한편으로 이신칭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순서대로 조금씩 기존의 천주교와 개신교와 다른 이해를 허락하시고 또 정의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갖고 성경을 보게 하시고 세상의 불의를 통해서 정의에 대한 목마름도 늘 갖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약 8년 전쯤에 정의에 대해서 깊이 알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공부를 가고자 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의에 대한 주리고 목마름은 세상에서 불의를 너무나 많이 보고서 입니다. 저는 대학원을 두 곳이나 졸업하고자 세상의 밑바닥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청소, 경비, 재활용품 수거, 과일 장사, 공공근로 등의 수입도 작고 남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이 일들을 하는 가운데 너무나 불의를 많이 보았으며 힘이 없어서 이 불의에 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이 불의한 세상을 할 수만 있다면 고치고 싶은데 그런 일을 하기엔 저는 너무나 약했습니다.
그래서 좌절도 하기도 했고 미국으로 정의에 대해서 배우려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미국의 하버드와 예일, 그리고 프린스턴에 그리고 영국의 옥스퍼드에 제가 준비한 자료를 약 8 권의 책과 함께 보냈습니다. 제목을 서울 보고서라고 정했습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Report from Seoul Korea(서울 보고서)
1. 칭의에 대한 논의는 칭의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간증)
2. 500년 전 천주교의 문제는 칭의가 아니라 회개의 문제였다(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
3. 칭의 된 자의 의로 나중에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가 없다(겔 33:12-13)
4.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성도의 믿음과 사랑의 행위가 반드시 동시에 필요하다(사복음서의 예수님 말씀)
5. 구원의 의미는 다양하고, 구약의 구원과 신약의 구원의 비교를 통해서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난다(출애굽기와 구원의 파노라마)
6.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인 율법은 지금도 성도가 반드시 실천해야 되는 천국의 법이다(사복음서의 예수님 말씀)
7.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이며, 이는 최후 심판의 확실함과 불가피성을 설명한다(롬 3:21-26)
8.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는 성도의 과거의 죄다(롬 3:21-26)
9. 성령에 의한 세례는 현시대에도 반드시 필요하다(행 2:38, 성경 정리를 통한 성경공부)
10. 성경의 올바른 이해는 반드시 성도가 반드시 성령을 받고 전도를 함을 통해서 온다(모든 성경의 저자들)
11. 교회의 설립은 베드로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냐 보다 예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마태 16:16)
12.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역사이다(하나님의 더하심(행 2:47)과 자라게 하심(고전 3:6)과 성경적 교회 성장)
13. 목자의 노력으로 성도는 예수님을 알게 된다(골 2:1-3과 깨달음)
14. 성경의 해석의 기준은 두 가지 가장 큰 계명, 그리고 십계명, 그리고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율법과 그 외 성경의 말씀의 순서로 질서를 세워야 한다.
15.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 북한, 그리고 온 세계에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한국인은 모든 세계의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잘 믿어야 한다(대한민국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 그리고 사명)
16.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한 올바른 연구가 시급하다(모든 신학의 초점이 이 분야로)
그리고 이와 관련된 책자 약 8권을 같이 동봉해서 보냈습니다. 현 시대의 신학의 내용과 다른 점이 많고 새롭기에 저는 곧 바로 이 4개 대학에서 답이 올 줄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수백 년이 된 산삼을 4 뿌리나 보여주셔서 반드시 이들 대학에서 제 자료를 보고서 곧 검토를 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약 7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약 7년의 세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허락하시고 이를 위의 대학과 온 세상의 교수님 약 700분께 보내게 하셨습니다. 제가 새로운 내용을 이해할 때마다 700분의 교수님께 보냈으니 적어도 4번은 보냈고 답장을 주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정의가 무엇인지 배워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 정의에 대한 열정이 식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참다운 정의를 성경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율법을 보게 되었으니 무엇이 정의인지 배울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모세가 하나님께 기원전 약 1446년에 받은 이후로 약 3500년간 이스라엘과 예수를 믿는 사람에 의해서 연구가 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일부 유대인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나머지 유대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들 유대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구세주로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율법 즉 모세 오경은 온 세상의 그 누구보다 그 어떤 나라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지키고자 합니다.
이에 비해서 천주교를 비롯한 개신교, 정교회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이 세상의 법으로 주신 지가 3500년이 지났으나 그 가치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율법을 잘 배워서 지키고자 하는 예수를 믿는 성도는 천주교와 개신교에서도 많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나 교회의 전통으로 율법을 잘 배우고 가르치는 교회가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후 2000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 율법에 대한 놀랍고 새로운 이해가 일어났으니 이는 하나님의 이 민족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이 됨을 믿습니다. 그 과정과 내용을 전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영어에 능통하시고 신학을 하시고 법을 전공하신 모스 탄 학장님께서 온 세상에서 이 진리를 가장 깊이 이해하실 분으로 저는 믿습니다. 비록 구글을 이용해서 한글로 된 내용을 영어 번역으로 보내기에 그 의미가 올바로 완전히 전달이 되는 부분은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핵심 내용은 조금도 어려움이 없이 그대로 전달이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한글로도 보내니 영어로 보시고 한글도 아시는 분의 도움으로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온 세상의 신학교에 보냈지만 일부는 그 내용이 새로운 것입니다. 제가 보내는 이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가 핵폭탄보다 더욱 강력해서 중국의 공산당을 이기고 한국에서 불의를 척결하고 온 세상의 교회를 새롭게 하고 하나가 되게 하는 20세기 최대의 잇슈가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온 세상에서 불의를 발견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 애를 쓰는 교수님께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울러서 북한에 대한 사역은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관심을 두시는 분야인데 이 분야에서 가장 열심히 일을 하시는 교수님께서는 향후 온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영적이며 정치적이며 법적인 지도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5. 율법!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정의의 근원: 율법이 세상의 희망이다.
이 글을 쓰는 저는 약 39년 전에 하나님께서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으로 저를 찾아오셔서 회개를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5년 동안 회개하며 과거에 살던 방식을 버렸는데 1991년 5월 19일 예수님의 이름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서울의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수님께 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3년 동안 쉬지 않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전도하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서 약 120개국 50만 명에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39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제게 일어난 것입니다.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은행에 다니다가 대학에 늦게 들어가서 8년 동안 하루에 13시간을 행정고시 준비로 보냈는데 1점차 낙방을 하고 목사가 되어서 이렇게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에 대해서 정말로 새로운 이해를 허락하셨는데 한 번에 다 이해가 된 내용이 아닙니다. 조금씩 순서에 맞게 차근차근 성령께서 제가 로마서를 이해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조금은 해야만 가능합니다. 모든 한국의 중학생 이상의 영어를 하시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한 내용을 순서대로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고자 하니 보시고 검토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세상의 불의를 보면서 소망을 잃고 있다가 율법의 정의를 보고서 저는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로마서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 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순서대로 로마서를 이해시켜 주실 때까지 저는 전혀 율법과 로마서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절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좀 더 관심을 갖고 보게 하시고 그리고 공부를 시켜주셨습니다. 특히 레위기는 사람들이 읽지도 않고 어려운데 관심을 갖고 조금씩 배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이해 할 수가 있게 성령께서 예수님의 두 가지 계명을 보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아는 마태복음의 두 가지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장 큰 계명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그리고 이 두 계명을 10개로 설명하면 10계명이 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이 아는 내용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요, 5-10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10가지로 가장 큰 두 가지 계명을 조금 세부적으로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유대인 랍비가 모세 오경 즉 율법서를 보면서 하라는 규정 248 규정, 하지 말라는 규정 365 규정으로 나누었습니다. 사랑의 실천이 온 율법에 세부적으로 규정이 되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613율법을 관통하는 율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모두가 성경에 본문이 있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정의와 사랑과 믿음이 율법의 정신이 됨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즉 다시 말해서 율법에는 가장 중요한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이 나타나 있는데 이는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시며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표현이 되었기 때문임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런 성품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온 인류에게 주신 법에 그분의 성품이 그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입니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고 우리는 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조금만 주의를 해서 구약을 보면 온 구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 즉 모세 오경에 대한 찬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 찬양을 신약의 모든 성도가 유대인과 같이 구약의 이스라엘과 같이 조금도 변함없이 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한 찬양을 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원리를 아시는 모든 분이 되시고 앞으로 율법을 잘 배우시고 찬양하고 성령의 인도로 완성하는 복된 분들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시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편 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시편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편 119: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만 우선 이해를 하고 몇 년 동안 율법의 중요성에 대해서 쉬지 않고 증거했습니다.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에는 이런 제 글이 순서대로 그대로 다 있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이해도 일반 개신교인과 다른 이해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믿고 믿음만 너무나 강조하고 율법과 행위에 대해서는 다음으로 생각합니다. 모든 개신교를 믿는 나라의 전통인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믿고 살다 보니 바울과 예수님 사이에서 갈등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저는 이를 여기까지 이해를 하고 다음과 같이 미국과 온 세상의 신학교 교수님께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6. 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옥스퍼드에 진리를 전하다.( 2018년 무렵)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로마서를 차근차근 새롭게 이해를 시켜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망극합니다. 저는 보통 이하의 사람에 불과합니다. 일생을 불효로 살고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극히 불량한 저질의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도 패역한 온 세상에서 가장 못난 크리스천에 불과합니다. 이런 저를 선택하셔서 이렇게 로마서를 새롭게 이해하게 하심은 모든 저보다 나은 크리스천이 올바른 로마서의 이해를 접하고 올바로 살면 그간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악하고 저질인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저보다 못함이 없는 모든 분을 어찌 용서하지 않으시겠으며 큰 사람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악인을 사용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7. 작은 로마서 갈라디아서의 선행 학습
율법의 가치와 율법의 위대함과 율법의 세상의 불의를 고칠 유일한 법임을 보았지만 이 율법에 대해서 기존의 개신교의 가르침이 너무나 완고하게 오직 믿음으로 굳어 있어서 과연 율법에 대해서 로마서는 어떻게 설명을 하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의 이해는 먼저 작은 로마서라 불리우는 갈라디아서를 잘 이해를 해야 쉽겠다고 생각해서 갈라디아서를 먼저 잘 살펴 보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보통 로마서 연구가나 갈라디아서 연구가가 잘 언급하지 않는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로마서인 갈라디아서는 오직 믿음이 또 중심이겠지 하고 보면 절대로 성령의 강조에 대한 성경임을 잘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저는 아래와 같이 정리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도 그렇고 로마서도 그런데 성령에 대한 이해가 없이 함부로 이 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면 결코 이 둘 성경을 올바로 깊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사역의 이해가 없이 로마서로 직행을 하면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우선 작은 로마서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이해를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의 책으로만 보고자 하면 100독을 해도 성령의 부분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먼저 성령의 사역을 보자 하고 갈라디아서를 보시고 그 다음에 로마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믿음, 율법, 성령)
| 1부 서두 | 2부 바울의 복음과 성령 | 2-4 믿음, 율법 5 성령 | 3부 맺는말 |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
| 1부 | 1 | 서두 | 인사. 복음의 기원 사도권 | | 4 | 복음과 성령 | 육과영 | 하나님의 자녀 약속과 성령 | |
| 2부 | 2 | 바울의 | 믿음 율법 | 바울과 다른 사도 안디옥사건 믿음으로 얻는 구원 | 5 | 성령 | 성령의 인도 성령의 열매 | ||
| 3 | 율법이냐 믿음이냐 성령을 받음 | 3부 | 6 | 맺 는 말 | 할례와 십자가 인사 | ||||
1장 복음의 기원과 사도 된 내력
1-5 인사;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사도 된 바울
6-10 다른 복음은 없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녀 된 너희가 다른 복음을 따른다.
11-17 바울의 사도 된 내력; 내가 전한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임
18-24 3 년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15일)와 야고보를 만남
2장 안디옥 사건과 믿음으로 얻는 의
1-10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사도 베드로와 같이 바울을 이방인 사도 인정
11-14 베드로를 책망; 안디옥에 야고보의 사람들이 오자 이방인과 음식을 먹던 베드로가 피하자 바울이 이를 책망함 바나바도 베드로와 같이 행동함
15-21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베드로의 범죄, 죄와 율법에 대해 죽은 바울
3장 성령 받음과 율법과 복음
1-14 성령 받음에 대해, 믿음에서 나는 의, 율법과 저주, 저주의 해방과 성령 받음
1-5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졌다.
6-9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한 설명
10-14 율법으로 인한 저주와 그리스도의 나무에 달림으로 저주에서 속량된
우리와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침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음에 대해 설명
15-20 율법과 약속;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할 수가 없고 율법은 세상을 죄 아래 가두어 놓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약속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21-29 율법과 믿음;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어 역할을 하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었으니 그리스도의 것이면 약속의 자녀이고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된다.
4장 하나님의 자녀(자유와 성령) vs 육의 자녀(종, 하갈의 자녀)
1-7 하나님의 자녀; 초등 학문에 있다 때가 차매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우리를 구원하시어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을 받게 하심
8-20 갈라디아 사람에 대한 걱정; 여러분은 예전에 우상을 숭배하다가 다시 우상을 섬깁니까? 가짜들의 열심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분발하자
21-31 하갈과 사라 약속의 자녀와 성령의 자녀; 하갈은 육의 자녀로서 약속의 자녀는
이삭이듯이 여러분은 성령의 자녀로서 자유인이며 하늘의 유업을 받을 자이다.
5장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육체의 일에서 자유하자
1 그리스도의 해방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12 할례를 주장하는 이를 베어버리라, 성령을 통한 의의 소망을 기다림
13-15 그리스도인의 자유;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16-24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절제
gentleness, self-control.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함, 선함, 신실함, 신사다움)
25-26 우리가 성령으로 살아야 하니 성령의 인도를 받읍시다.
6장 할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니 사람의 잘못을 온유함으로 바로잡고 유혹에 주의
2-5 서로의 짐을 지고 겸손하고 각자 자기 일을 살펴야 하며 자기 짐을 진다
6-10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하고 성령을 따라 낙심치 말고 선을 행함
11-18 겉치레 하는 자들이 박해를 면하려 할례를 주장한다. 나는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할례를 받고 안 받고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 되는 것이
중요, 나는 예수의 낙인이 찍혔다. 축도
분명하게 성령을 3장 걸쳐서 설명하십니다. 갈라디아서를 작은 로마서로 이해하고 오직 믿음에 대한 글로 보고자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로 성령에 대한 글임을 보기 어렵습니다. 갈라디아서가 성령에 대한 글임을 보아야 큰 갈라디아서인 로마서도 올바로 이해가 됩니다. 성령의 이해가 없이 로마서를 이해하면 모든 로마서를 그 본래 의미대로 절대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8. 로마서 이해의 가장 중요한 등대! 마태복음 5장 17-20절 말씀
그리고 우리를 참된 진리로 인도하는 예수님의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 마태복음 5장에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죽어도 죽어도 로마서를 절대로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20절은 로마서를 이해하게 하는 등불이며 등대입니다. 어려운 로마서를 환히 비추는 등불이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의 빛에 로마서를 비추지 않으면 절대로 절대로 로마서의 이해의 곁에도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천주교 개신교 공히 이 위대한 로마서를 환히 비추는 빛 된 말씀을 멀리 두고 자신의 능력으로 로마서를 이해하고자 하니 우리가 보는 예수님 오신 후 2000년, 바울 사도가 로마서를 쓴 2000년을 모든 학자가 모든 노력을 다했으나 그 로마서의 올바른 진수를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로마서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온 세상에 환히 빛나게 되니 이 빛이 곧 온 세계 교회를 비추는 새로운 등불이 된다고 믿습니다. 한국에서 빛이 나와서 온 세상의 교회를 밝힌다는 예언의 말씀이 이렇게 실천이 됩니다. 인도의 타고르 시성의 동방의 등불이 곧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져서 드러난 로마서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저는 분명하게 단언합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비춤이 없는 즉 이 예수님의 말씀을 배려하지 않는 모든 로마서의 이해는 루터든 천주교든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우리가 로마서의 이해로 가기 전에 제가 앞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을 다 이해를 해야 하고, 여기에다가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말씀을 로마서의 이해의 등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등불이 로마서를 인도하는 데로 가야 올바른 로마서의 진수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너무나 분명하고 너무나 정확해서 이 지구상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진리가 있으니 온 세상이 다 덤벼도 절대로 바꿀 수가 없는 진리입니다. 무엇입니까? 여기서 흔들린 사람은 그 누구도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신학자가 여기서 걸려서 넘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천지가 무너져도 바꾸지 않는 진리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바울 사도의 주가 되시며,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과 종의 신분이 바뀌거나 흔들리면 모든 로마서의 이해는 올바르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흔들리면 로마서에 대해서 절대로 올바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로 잡지 못한 사람은 오늘 바로 잡고 여태까지 잘못 이해한 로마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교수님께도 도전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즉 바울 사도의 모든 서신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쓰인 것이고 절대로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4 복음서에서 하신 말씀을 위배하지 않고 도리어 굳게 세웁니다. 이 원리를 어긴 로마서의 이해는 부족하고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로마서는 쓴 목적이 있지만 즉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고픈 바울 사도의 간절한 바램으로 쓰였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쓰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기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과 성령의 뜻은 언제나 일치가 되어 있어 절대로 배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단적으로 저는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로마서를 썼다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바울은 그렇게 목적을 밝히지 않았지만 로마서를 전체적으로 올바로 이해를 해서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성취하는 내용이 목적이 되어 있다면 제 주장이 맞을 것입니다. 이를 신학자가 2000년 동안을 모르고 있었다면 이제 새로운 2000년의 시작과 함께 새롭게 이해를 하고 바로 가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신학자가 이를 모른다고 이 말씀대로 성도가 살지 않았을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를 신학자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바울과 같이 산 사람들은 모두다 로마서의 가르침을 순종한 것입니다.
이제 이신칭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 율법의 중요성의 이해, 갈라디아서의 이해, 그리고 하박국서와 창세기의 이해를 바탕으로 로마서의 이해로 들어가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고 바로 로마서로 직행한 루터와 모든 신학자는 앞으로 이런 절차를 잘 지켜서 올바른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할 것입니다.
9. 로마서는 법적 성경이 아주 깊은 성경이다 즉 율법과 관련이 너무나 많다.
먼저 로마서가 법적인 서적임을 밝힙니다. 모스 탄 교수님께서 신학과 법을 동시에 공부하시고 법대 학장이시니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가 어려운 것은 로마서가 비록 16장으로 성경의 1.356%에 불과하지만 모든 성경을 압축해서 기록했기에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성경을 잘 이해를 해야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서가 단순한 문학 서적이 아니라 분명하게 법적 성격을 아주 강하게 띈 법률 서적이라 해도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적 마인드가 있는 분들에게 이해가 쉬운 것입니다. 로마서의 저자이신 바울 사도가 본래 율법학자입니다. 그런데 강제로 예수님께 잡혀와서 그분의 종으로 사용이 된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래 말씀에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그러므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모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 즉 율법학자는 그의 창고에서 새 보물도 꺼내고 옛 보물도 꺼내는 집의 주인과 같이 된다."]
제가 영어를 위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로마서는 예수님의 말씀 창고에서 구약과 신약을 다 사용해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 즉 예수님과 신 구약 말씀을 다 꺼내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한정하셨습니다. 절대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학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학자가 반드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율법학자는 다 주인과 같이 됩니다. 그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로마서는 신 구약이 다 녹아있는데 특히 모세 오경 즉 율법의 내용이 많이 녹아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율법학자라만 되는 이유가 됩니다. 모스탄 교수님께서는 영어도 잘 하시고 신학도 하시고 법대 학장님이시니 이런 이해에 있어 온 세상에서 가장 앞서실 분이시고 만약에 로마서를 이렇게 이해하시고 온 세상에 전하시면 틀림없이 온 세상에 큰 빛이 되리라 믿습니다. 교수님의 사역에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가 획기적인 사역의 날개가 되길 기도합니다.
모든 로마서 독자는 언제나 로마서를 비추는 등불!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반드시 상기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대로 모든 성도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율법에 대해서 모르는 자가 어찌 율법을 완수하려 하고 율법을 잘 지키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뜻을 전할 수가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합니다. 그래서 율법학자 바울이 선택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온 세상에 80억이 사는데 바울 사도의 당시는 오직 지구 전체 인구가 2억명 이었기에 한 명의 바울이 필요했지만 지금 시대는 약 40명의 바울과 같은 전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수님의 도전을 촉구합니다.
10. 로마서의 간단한 정리
로마서는 모든 인류를 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죄에 대해서 규정하는 법이 형법입니다. 형법의 “죄형법정주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인데 이 원칙이 그대로 2000년 전의 로마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즉 율법이 오기 전에 범죄한 자는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최후 심판을 받고 율법이 온 이후의 모든 세상의 사람의 행위는 율법에 근거해서 심판을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율법이 최후 심판의 기준이 되는 법임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형벌에 따르면 죄는 반드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됨도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죄를 짓고 죽어야만 하는 모든 인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심으로 이렇게 죄를 예수님께 대속을 시키시고,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사하시고 종국에는 의롭다 하십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분이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셨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는 먼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간과가 있은 후에 나타납니다. 우리가 짓는 어떤 죄이든지 하나님께 바로 처벌하지 않으시고 참으시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다 용서하십니다. 이렇게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회생과 그리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처벌이 대신 그의 아들에게 임하고 이는 하나님의 정의의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됨은 죄인은 절대로 불가하지만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게 된 후에 하나님의 인정에 의해서 의롭게 됩니다. 그런데 그 조건이 믿음입니다. 이런 하나님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에 대한 믿음과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 즉 물세례를 받음을 통해서 죄가 용서됨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믿음을 설명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한결같아야 하고 변치 않아야 됨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살아야 하며 그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야 함을 설명합니다. 이렇게 잘 믿는 믿음과 하루하루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데 이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제 이 명제에 대한 논거가 차례로 로마서에 다 있습니다. 저는 루터가 반드시 보았어야만 하는 로마서의 내용으로 믿습니다. 먼저 4장 전체를 할애해서 먼저 1-16절로 아브라함이 75-85세 때 하나님을 뵈옵고 잘 믿는 순간을 설명하고 의로다 인정을 받음을 설명합니다. 곧 이어서 4장 17-22절로 100세가 되어서 변치 않고 믿음이 모든 여건이 어려움에도 강해짐을 설명하고 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다시 야고보서로 가서 아브라함이 110세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하실 때 행위와 믿음을 동시에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일생을 잘 믿고 즉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고 행함이 있는 믿음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순간의 믿음이 아니라 역동적인 매일의 생활을 통해서 믿음 생활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신교는 오직 로마서 4장 1-16절을 보고서 칭의를 설명했고 천주교는 야고보서를 참고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4장 17-22절의 아브라함의 100세때의 믿음에 대해선 둘 다 침묵을 합니다. 이 100세 때의 믿음을 설명하는 내용을 천주교 개신교가 확인하면 두 종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시간이 왔고 그 시대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 교회의 하나 됨의 큰 뜻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7장에 오면 율법으로부터 자유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참으로 부족합니다. 이 율법으로부터 자유는 옛날 바울 사도가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율법을 알고 율법대로 살고자 했던 과거의 생활의 모습을 접고,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바울 사도의 성령을 따라서 섬기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갈라디아서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로마서의 깊은 이해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의 삶과 로마서 7장 6절은 완전히 일치하는 삶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라는 말씀이 율법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즉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니 이제는 성령을 따라서 바울 사도와 같이 사라고 합니다. 이도 먼저 사도가 20년을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렇게 살아보면서 그렇게 사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으로 보고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보고 읽습니다. 그 다음 책이 로마서입니다. 당연히 성령의 사역에 따라서 전도한 바울 사도의 성령의 감동에 의한 책인데 이제는 성령을 저 멀리 두고 이해하려고 하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냥 사도행전과 같이 성령께서 행하신 사역을 기록한 책이다 하고 읽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실로 바울 사도의 성령의 인도를 받은 2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율법에 대한 지식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라 하는 책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사는 삶과,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사는 사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매일 매일의 삶을 사는 삶과 이렇게 믿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사는 것을 내 기준도 아니고 국가의 법의 기준도 아니고 성령의 기준으로 성령의 인도로 살아라 하는 것이 로마서의 행위의 원칙입니다. 네 것 내 것이 없던 초대교회와 개인의 소유가 극도로 보장된 지금은 이미 초대 교회 공동체 의식과 사랑의 모습이 완전히 파괴가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점검을 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와 비교할 때 사랑과 성령의 원칙이 대부분 무너진 교회에서 이제는 우리는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으로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재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너진 교회의 모습을 율법을 통해서 보고 이를 성령의 인도로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다 보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즉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성령의 인도로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다 보니 로마서 13장 8-10절의 말씀대로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삶은 절대로 율법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웁니다. 이는 로마서 3장 31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로 성도가 살다 보니 이제 우리가 로마서를 갈 길을 비추는 등불인 예수님의 마태복음 말씀 5장 17-20절의 내용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살아서 틀림없이 천국에서 큰 자로 영원토록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바울 사도를 본 받아서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하나님께서는 로마서를 통해서 모든 믿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로마서를 이렇게 정확하게 이해하고 로마서의 가르침대로 살다 보면 틀림없이 마태복음 5장 17-20절대로 살게 되어서 율법을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율법의 완성의 의미는 불완전한 제사인 율법의 제사 제도를 완성해서 자신이 제사장이 되시고 제물이 되셔서 제사의 방법대로 온 인류를 구원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측면이 있고, 또 성도가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를 용서 받아서 성령을 받고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성도가 새롭게 되어서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이제는 완성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로마서 14장 17절의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게 되니 이 나라가 곧 그분의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즉 법서 로마서는 각국의 헌법이 국가의 구성과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 규정한 기본법 이듯이 로마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법적으로 어떻게 세우는가를 설명하는 성경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초가 되는 율법을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완성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책인 것입니다.
즉 죄인인 인류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으로 구원하시고 구원을 받은 성도를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거듭나게 해서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백성이 되는 인간의 의무가 있으니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의롭게도 됩니다. 이 의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그 나라의 백성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이제는 새롭게 되었으므로 자신이 과거에 하던 행실을 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입니다. 성도가 이 의무를 잘 할 때 거룩하고 온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율법이 굳게 서게 되고 완성됩니다. 이 율법이 시행이 됨으로 이 율법에 의해서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지구상에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즉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오심의 목적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그 구원을 받은 백성이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그 율법의 완성을 통해서 그 분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내용이 순서대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늘 염두에 두고서 로마서를 읽고 이해할 때 이 말씀의 범위 안에서 로마서를 이해할 때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이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고 율법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마음대로 해석할 때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위배해서 천국에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사는 삶을 살고, 율법을 전혀 지키지 않고 살고, 성령의 인도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 그 의가 지금의 바리새인 즉 현대의 유대인만 못해서 결국은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내용을 성경 본문을 차례로 보면서 맞는지 확인하겠습니다.
11. 위의 내용을 로마서 본문으로 증명한다.
먼저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을 제 설명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이방인에게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기록된: "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입니다." 와 같이 말입니다.]
맨 마지막에 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와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부분이 우리가 보는 번역과 다릅니다. 중학교 영어로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보입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이 문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어인 의인 그리고 동사인 살 것이다. 그리고 천치사구 믿음을 갖고 로 되어 있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선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반드시 하루하루 살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부분은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찾아서 보여 드립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85세 경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심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입니다. 세 번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주이고 이제는 매일 주님을 뵈옵고 동행합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10세 때 무렵입니다. 분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잘 믿다가 어떨 때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악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를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할 때 이미 행한 의는 기억되지 않고 악인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성급하게 로마서 1장 17절만 보시고 또 이렇게 깊고 정확한 의미가 있는 로마서를 겉만 보시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조금도 지키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모두의 최후의 심판자가 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로마서로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교수님께 편지를 쓰면서도 모든 분께 이렇게 권하고 있습니다. 양해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먼저 이렇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과 믿음의 질과 종류가 분명하게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로마서 4장이 증명하고 야고보서 2장이 증명합니다. 이 이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논쟁을 접고 서로 부족한 이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믿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수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2000년 전에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런 내용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됨에 있어서 이렇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저도 경험적으로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약 17년 이상이 경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서 처음 도표와 같이 이해하고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의 의미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적어도 20년 이상은 걸린 이해입니다. 제가 게으르고 목이 곧고 그리고 고집이 세어서 그렇게 걸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교수님!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늘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습니다. 빨리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제가 너무나 무심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렸지만 교수님이나 다른 성도는 오늘 바로 이해하고 믿고 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신칭의에 대해서 모두가 올바로 이해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십니까?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그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조건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갖고 아무것도 아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로마서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정확하게 로마서는 7장 6절에서 설명합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영어로 보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본문의 본래 의미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제가 밑줄을 친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번역하면 불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번역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로마서를 인도하는 등불인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절대로 지키는데 어렵게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영어로 보면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교수님! 한국 사람이 성경의 진리로 가는 여정은 이렇게 번역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어도 하시고 한글도 조금 아시니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앞서 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는 이제 모두가 할 수가 있고 한 언어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하나 되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방법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긴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표현은 0.00001%도 없습니다. 옛 사람이 낡았고 과거의 바울 사도가 섬기던 방법이 낡았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에 대해선 그냥 두고 있으니 율법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율법의 문제가 0.00001% 도 없습니다. 옛 사람 바울이 문제이고 그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율법학자라 하면서 실제로 율법의 정신을 다 던져두고 형식적인 조문의 준수로 위선자가 된 과거 예수님을 모르던 바울이 문제이며 바울이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이를 어째 거룩하고 성스럽고 지구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고 온 인류가 다 사라져도 한 점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낡았다고 하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그분의 말씀을 불경 되게 여기고 표현하십니까? 천주교 개신교는 모두가 회개하고 이 구절의 해석을 똑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제가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 학자에게 하는 부탁입니다. 한국은 경제, 군사력이 온 세상에서 10 대국이 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바로 이해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는 국가가 한국인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연구엔 교회를 비롯해서 너무나 인색합니다. 대부분 백만 달러가 넘는 부자 크리스천이 수도 없이 있는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한국의 모습이며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세력의 통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정치를 바로 잡을 것이라 아니라 영적인 측면을 재건해야 합니다. 아니면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것은 힘의 강제가 아니 개인의 각성에 의한 자발적인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교수님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모든 로마서를 읽는 분께 로마서를 비추는 등불!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말고 주목하고 로마서를 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바울 사도는 한 번도 그분의 주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추상과 같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함부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우리는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주목해서 보시 않게 됩니다. 후대에 신학자나 목사가 그의 글 로마서의 왜곡된 이해로 이렇게 하시면 바울 사도가 천국에서 한탄하십니다. 정신을 모두가 차리시고 로마서를 올바로 보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이도 역시 한국의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에게 권하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적어도 20년 이상을 섬기면서 전도하고 선교하고 교회를 세우고 치리 하면서 고린도에 갔을 때 자신이 가보지도 않고 세우지도 않은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에 로마서를 기원 후 약 57년 경에 쓰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성령으로 섬긴 결과를 직접 보고서 아래와 같이 표현을 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자신이 옛날에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 율법의 완성을 봅니다. 예수님의 책망만 받던 과거 율법학자 바울이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 율법의 굳게 섬을 봅니다. 대단한 반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분명하게 율법을 저만치 두고 즉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가운데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다 보니 이렇게 사랑을 하게 되고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 생활을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으로 하다 보니 율법을 도리어 굳게 세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로 잘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약속대로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서는 정확하게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구약의 모세 오경을 너무나 정확하게 잘 지켜지게 하십니다. 로마서의 진정한 목적이 여기 있습니다. 교수님 저는 이렇게 믿고 생각합니다.
저도, 온 세상의 모든 성도도 이와 같이 로마서를 이해하고 성령의 인도로 신앙 생활을 매일하고 그 결과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도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이런 새로운 창조물 피조물에 대해서 이미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확인을 합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예수님을 통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통한 새로운 창조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게 된다는 말씀으로 로마서의 설명과 너무나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창세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통해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동일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어기면 죽고 순종하면 영생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어겼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가족의 의를 보시고 나머지 악한 모든 사람은 홍수로 다 죽이십니다. 법도 없고 악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제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또 의와 공도를 지키게 하려고 율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40년을 사람이 율법으로 살아야 하는 법을 가르치시고 1000년을 지켜 보시고 하다가 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이 타락한 이스라엘을 586년 멸망을 시키시고 400년을 준비하시고 이제는 예수님을 보내십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보내십니다.
에스겔서와 같이 구원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회개하고 그 분의 이름을 세례를 받게 되면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다 용서받게 됩니다. 이제 이런 사람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 거듭난 사람이 즉 바울 사도와 같은 성도가 성령의 인도로 즉 새로운 섬기는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매일 매일 로마서 1장 17절과 같이 하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키게 되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웁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의롭게 하심으로 누구나 차별이 없이 틀림없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법을 주시고 그 법대로 인간이 살아야 하는 원칙을 창세부터 한 번도 포기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시고 하시다가 이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인간을 총동원 전도로 구원하시고 그분의 법을 지키게 하십니다. 이제 이렇게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께서는 더 줄 것이 없습니다. 성도가 이런 원리를 알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믿음 생활을 하는 도리 외엔 다른 방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는 다 주셨습니다. 이제는 최후의 심판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알고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가장 먼저 우선적으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주신 법이 인간을 통해서 지켜지길 바라십니다. 그 율법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공평한 법이며 정의로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법대로 이스라엘이 살고 인간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율법을 완성하면 그 나라가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고자 하는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소망이 창세부터 너무나 강력하십니다. 이 분의 뜻을 잘 받드는 개인과 집단과 국가가 번영합니다. 그렇게 되자면 그분의 법이며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의 근본법인 율법이 지켜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지켜지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000년의 이스라엘의 경험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게 예수님을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이 일을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부르심과 선택과 사역입니까? 모든 남자와 여자 성도는 여기에 인생을 다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실천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교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나라 한국은 교회와 담임이 문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더 성경의 말씀보다 목사의 머리에 깊이 박혀서 먼저 돈과 집고 땅을 성도보도 많이 선점하고 성도를 자신이 복을 받아서 그러니 따르라고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다른 세상의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까? 하나님의 이 땅에 대한 진노는 이런 대형 교회 목사의 행태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이를 고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이 일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세상의 법을 잘 배워서 세상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십니까? 그런데 이 일은 예수님을 몰라도 합니다. 세상의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절대로 절대로 그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이 있는 동안 그분의 구원을 받은 그분의 백성으로 그분의 신부로서 그분의 간절하신 염원을 이루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율법이 성령의 인도로 시행이 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나라의 성격에 대해서,모습에 대해서 역시 로마서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롬 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율법이 완성되는 나라의 모습입니다. 율법은 정의의 법이기에 율법대로 성도가 살게 되면 정의가 세워집니다. 그 정의가 있으면 평화가 당연하게 옵니다. 그 정의와 평화가 있는 나라가 바로 기쁨이 넘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거창하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매일 매일 예수님을 잘 믿고 하루하루 살되 성령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세워지는 나라인 것입니다.
이제 이런 원리도 잊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도 잊고 성령도 없이 사랑도 없이 마음대로 사는 자가 가는 길이 바로 지옥이 분명합니다. 제가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 대부분이 갈 길이라 하는 것은 자본이 넘치는 이 물질의 시대에 물질의 우상에 완전히 빠져서 너무나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나서 하루에 한국에서 자살자가 40명이나 되고, 젊은 이가 장가를 가지 않고, 직장도 없고 늙은 사람은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고 독거하고, 아무런 소망도 없이 병자들이 죽어가는 한국에서 이런 현실을 한탄하고 고칠 생각은 조금도 없이 즉 이웃에 대한 사랑이 1% 없이 먼저 교회에 성도가 낸 헌금으로 가장 먼저 수십억을 하는 아파트를 챙기고 한 달에 1천만이 넘는 사례비를 챙기고 10억원이 넘는 퇴직금을 챙기고 자녀에 대한 특혜를 받고 온갖 이런 것 외에 교회의 특혜를 누리면서 모든 자신의 가난한 교인과 이웃을 외면하는 사람이기에 100% 지옥 외에 갈 곳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악행을 세습을 해서 아들까지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한국에 시행이 된다면 오직 200만 정도만 율법대로 살아도 모든 사람이 집과 땅을 갖게 되고 모두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경쟁이 줄고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자살자가 거의 없는 세상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나 위대한 율법이 있음에도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지키지 않고 솔선해서 부를 챙기고 성도를 자신과 같이 살아라 하니 이들이 소망이 없는 헬 조선을 만든 주범이 되어서 결코 예수님의 마태 복음 5장 17-20절과같이 천국에 갈 수가 없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율법을 잘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12. 도표를 통한 한 눈에 보는 이해
이제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도표로 보여 드립니다.
교수님 길게 로마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길게 글을 쓰다 보니 교수님 보시기에 어색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또한 글의 흐름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본래의 의미가 잘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잘 살펴 보시고 교수님의 신앙에 도움이 되시기 바랄 뿐입니다. 한국의 불의의 문제는 먼저 신자와 목사가 이런 로마서의 원리를 잊고 물질의 우상에 빠져서 완전히 율법이 지켜지지 않는 가운데서 발생한 것입니다. 먼저 영적이고 교회적인 문제가 있고 세상은 빛을 잃은 교회와 성도로 인해서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문제를 바로 잡는 첫 번째 일이 로마서를 이렇게 이해하고 성도가 올바로 살아야 이 땅에 정의가 서고 세상도 이를 보면서 정의롭게 가는데, 이런 문제를 제쳐두고 정치적인 부분 혹은 사회적인 부분의 불의만 척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잘 해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 한국이 율법대로 정의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성도가 성령의 인도로 매일 매일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움을 통해서 이룩이 되고 이런 삶을 먼저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본을 보이고 성도가 따라오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순복음 교회 목사 이영훈의 사무실과 집과 핸드폰이 압수 당하고 압수 수색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감옥에 계시고 세계 최대 교회 목사가 이런 대접을 받는 한국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너무나 악하게 사랑도 정의도 없이 사는 교회와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재명이란 도구를 사용하셔서 교회와 성도가 자신의 악을 깨닫고 속히 회개를 하라고 이렇게 보고만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허락하셨는지 모릅니다.
교회는 속히 모든 목사와 장로가 먼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죽어가는 이웃과 나누기 바랍니다. 모든 대형교회 1000명의 목사는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신의 교인과 나누기 바랍니다. 집도 파시고 사례비도 1/3이상 줄이고 퇴직금도 3억 이하로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압수를 당한 순복음 교회는 만약에 비리가 드러나면 어찌 합니까? 총과 대포가 있는 집단에 자유가 보장이 있습니까?
먼저 알아서 움직이는 교회와 목사가 살 것입니다. 진실입니다.
모스탄 교수님! 안타까운 마음에 교수님께 편지를 하면서 또한 한국 교회와 교인 모두에게도 같이 전하는 것입니다. 양해를 부탁을 드립니다.
교수님께서 오셔서 어두운 한국을 많이 계몽하셨고 큰 희망을 주셨습니다. 부디 교수님의 하시는 일과 가정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번영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교수님의 말씀대로 절대로 잠잠히 있어서는 아니 되고 주님의 인도하심 대로 정의를 위한 전투를 쉬지 말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명하시고 모든 성도에게 명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강한 믿음과 용기를 주셔서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움이 없이 진리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길고 불편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교수님과 학교와 가정과 하시는 일에 늘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서울에서 김 정관 목사가 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모스 탄 교수님께 편지를 보냅니다. 부디 영어로 잘 번역하게 도와주시고 이 땅에 정의가 믿는 우리의 올바른 삶을 통해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모두가 회개하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서 바울과 같이 가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을 긍휼히 여기시고 부디 모든 악이 물러가게 하소서! 우리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