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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 새 사도직 수행을 위해 1915년 여성 작업실 마련
- 성 바오로 딸 수도회를 창립한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왼쪽)와 가경자 테클라 메를로 수녀.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제공.
‘모두 나에게 오너라.’(venite ad me omnes)
1901년 12월 31일 밤. 당시 이탈리아 알바교구 신학생이었던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밤샘 기도를 하던 중 성체로부터 특별한 빛이 오는 것을 느꼈다. 빛이 비춤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살아야 하는 부르심을 느꼈다. 이 말씀은 알베리오네 마음에 새로운 세기 사람들을 위한 새 시대, 새로운 사도직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할 ‘수도 가족 창립’이라는 원대한 꿈을 꾸게 된다.
1907년 6월 29일 사제품을 받은 야고보 알베리오네는 1914년 바오로수도회 전신인 ‘작은 노동자’ 인쇄 학교를 설립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에도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지녔던 그는 1915년 6월 15일 인쇄학교가 위치한 케라스가 광장에 ‘여성 작업실’을 열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사제서품 1년 만인 1908년 「사제의 열의에 참여하는 여성」을 저술해 ‘교회 내 여성들의 사도직 참여 열정을 절대 배제하지 말 것’을 강조한 바 있는데, 작업실 마련은 이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것이기도 했다.
작업실은 시작됐으나 인력 확보가 시급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때 알베리오네 신부는 재봉 교사이자 교리교사였던 데레사 메를로를 만난다. 함께 일할 것을 제안하자 평소 수도 생활을 꿈꾸던 데레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후 이 작업실에서는 젊은 여성들에게 재봉 기술과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서원을 개원해 인쇄학교에서 제작된 서적을 보급하고 성물을 판매했다. 1918년에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수사(Susa)지역에 진출해 교구 주간지를 발행하게 됨으로써 고유 사도직을 시작하게 됐다.
특별한 명칭이 없었던 이들 공동체는 성 바오로 사도에 대한 깊은 신심을 눈여겨본 주위 사람들로부터 ‘바오로 딸’로 불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수도회 공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1922년 7월 22일 회원 9명이 첫 종신서원을 했고 데레사 메를로는 성 바오로 사도 제자였던 ‘테클라’라는 수도명으로 초대 총장에 임명됐다. 1929년 3월 15일 알바교구 관할 수도회로 인가받은 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1953년 3월 15일 비오 12세 교황으로부터 수도회 인가와 회헌에 대한 최종 승인을 받았다.
회원들은 1931년 브라질을 시작으로 1930년대에 미국, 중국과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에 진출하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회원 수가 점차 증가하며 유럽 지역 외에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도 계속해서 파견됐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성 바오로 수도회(1914), 성 바오로 딸 수도회(1915) 창립 이후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사도의 모후 수녀회와 재속회 5개를 세웠다. 그는 바오로가족 모두에게 사도 성 바오로를 수호자요 아버지로 세웠다. 바오로 사도의 정신은 수도회 존재와 활동을 살리는 원천이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3월 14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바오로딸수도회 (중)
사회커뮤니케이션 수단 적극 활용
- 영화제작 카메라를 보고 있는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창립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딸수도회 제공.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는 새로운 시대에 통용되는 사회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회원들이 잘 이해하여 선을 전하는 사도가 되도록 성숙한 신앙과 봉사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수도회 창립의 카리스마는 다음의 네 가지로 집약된다. ▲ 세상이 스승이신 주님을 믿게 하며, 그리스도 신비의 충만함이 인간의 전면적인 부르심 안에서 구원을 얻게 한다 ▲ 바오로 사도의 정신으로 구원 메시지를 설교하기 위해 새로운 선교적 열성이 필요하다 ▲ 이 설교는 사회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도록 한다 ▲ 사회커뮤니케이션 수단은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회원들은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삶과 영성을 본받아 카리스마를 부단히 쇄신하며 사도직에서 결실을 맺도록 충실할 의무가 있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이르는 길·진리·생명’이라고 선포하신 말씀에 따라 삶과 사도직, 존재 전체로 스승 예수를 따르도록 했다. 길·진리·생명이신 스승 예수께 대한 신심은 바오로 가족의 중심이 되는 영성이다. 특히 성 바오로 딸 수도회는 진리를 선포하는 사명 수행을 하고자 스승 예수께 지성의 성화를 위해 기도한다.
성 바오로 사도에 대한 신심은 바오로 사도처럼 관상과 활동을 조화시키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의와 창안을 불러일으킨다. “바오로가족은 성 바오로 사도를 아버지요, 스승이요, 귀감이요, 창립자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우리 수도회는 그분에게서 태어났고 그분에게서 양육 받고 자랐으며 그분에게서 정신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초대 총장 가경자 테클라 메를로 수녀는 “창립자 정신을 살기 위해 예비 수녀들과 회원들에게 바오로 사도에 대한 열렬한 신심을 간직하고 매일 바오로 사도에게 전구할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수도회는 성모 마리아를 사도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사도들의 모후’로 공경한다. 이런 사도들의 모후께 대한 신심은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을 봉헌하고 은총을 청하며 삶과 사도직을 통해 자신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주는 사도적 자세를 길러준다.
실제적인 신심을 기르는 데 있어서 회원들은 가톨릭 교리 지식을 깊이 익히는 것과 함께 묵상, 성체조배, 양심 성찰을 가까이한다. 알베리오네 신부는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예수님에 대한 신심과 성체를 통해 힘을 길어내도록 모든 회원에게 1시간 성체조배를 의무화했다.
또한 매달 피정과 대피정(연피정)으로써 묵은 인간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합된 새로운 인간을 형성시키려 노력한다. 성화를 위해 매일의 미사와 전례를 경건히 살아가며 복음삼덕 실천에 있어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사도들의 모후이신 마리아와의 일치를 지향한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3월 21일, 이주연 기자]
[교구 수도회 영성을 찾아서] 성바오로딸수도회 (하)
다양한 미디어로 복음 전파에 주력
-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지난해 10월 문을 연 커뮤니케이션공간 바오로딸 혜화나무 전경.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1960년 12월 13일 이탈리아 출신 에울랄리아 뎃토레 수녀와 일본, 필리핀 선교사 수녀들이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로써 한국에서의 성바오로딸수도회 역사가 쓰이게 된다.
첫 공동체는 서울 흑석동성당 입구 작은 일본식 2층집에 꾸려졌다. 그곳에서 2년 동안 활동하며 가난한 상황임에도 현재의 서울 미아동에 건물을 지어 1962년 12월 수녀원을 이전했다. 이후 2년 후인 1964년에는 일본의 제본 기술자 수녀가 임시로 파견되며 출판사도직 활동도 활력을 얻었다.
1981년 관구 승격 후 회원 수는 점차 증가했고 파키스탄과 대만 등에 선교사 파견도 이어졌다. 1994년 테클라 메를로 수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계 복음 전파에 더욱 매진한다는 ‘선교계획’을 발표하고 마카오 등지에도 선교사를 보냈다.
2021년은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지 61년이 되는 해다. 현재 수도회는 서적과 음반, 영상, 인터넷 등 시대가 제공하는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해 복음을 전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011년부터 디지털 문화를 받아들여 유튜브채널(youtube.com/fspkorea)을 개설했다. 또 2020년 4월에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나누기 위해 유튜브 ‘하루 10분기도’, ‘희망 편지’ 및 가톨릭 음악 채널 ‘바오로딸뮤직앤’(youtube.com/fspmusic)을 열었다.
수도회는 신자들의 성경 교육에도 앞장섰다. 1978년부터 바오로딸 성경학교를 시작해 우편 및 동영상 강의로 성경 배움터를 마련하는 등 신자들의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았다.
사람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을 증진시키는 신기술 발명을 복음 선포에 활용하겠다는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감은 성령의 선물이었다.
수도회는 디지털 발전을 선용해 보다 신속한 방법으로 복음과 교리, 교회의 소리를 전하기 위해 ▲ 창작 단계 ▲ 기술 제작 단계 ▲ 보급 단계 등을 거친다.
창작단계는 대상자들 필요성에 맞는 메시지를 개념화하고 작품화하는 단계다. 사명이 더욱 구체적인 구원 메시지로 선포되는 첫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 제작 단계에서는 제작된 메시지에 생명을 불어넣고 대량화한다. 보급단계는 사도직의 결론적이고 결정적인 단계며, 만들어진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가장 신속히 도달케 하는 경로다. 보급은 수도회 사도직의 절정이다.
1961년 서울 충무로 서원을 시작으로 전국에 문을 연 분원과 서원은 16개다. ‘구원은 완결되어 있지만 그 혜택이 사람들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고 밝힌 창립자 정신의 열매라 할 수 있다.
현재 수도회는 51개국에서 사도직을 펼치고 있으며 전체 회원은 2090명, 한국 회원은 235명이다. 수원교구에는 2016년 2월 1일 진출해 정자동주교좌성당과 분당에 서원을 개원했으며 교구와 협력해 계속해서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21년 3월 28일,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