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고색동전통농악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처음 이곳 고색동에 이사 왔을 때 놀란 것은 농악대의 풍물 굿이었다. 시골 농촌의 고향에서조차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보니 잊고 살았던 것인데, 더구나 도시에 나와서 그런 길거리 풍물패의 흥겨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감회가 새롭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색동은 아직도 봄이면 모를 심어 농사짓는 모습을 볼 수 있은 곳으로 수원의 서쪽에 위치한 변두리 마을이다. 도시와 농촌의 정서가 공존해 있다고 할까. 나와 같이 시골의 농촌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고향을 느끼며 살아가기 딱 좋은 곳이 아닐까싶다.
22일 토요일 오후였다. 초겨울 찬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궂은 날씨인데도 그때 난데없이 어디선가 농악대의 풍물소리가 집안까지 들려왔다. 의아하게 생각되어 달력을 보았더니 마침, 음력으로 시월초하루였다. 상달이라고 해서 마을의 무슨 행사가 열린 것은 아닌가 하여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소리만 구성지게 들려왔다. 그러나 좀이 쑤시는 바람에 도무지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궁금한 소리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옛 고향의 정취 가득한 고색동마을의 풍경 _2
설레게 했던 농악소리가 들려온 곳은 집에서 멀지 않았다. 그런데 마을행사 같지는 않았고, 분명 상가 건물의 앞에 진을 치고 서서 한마당 굿판을 벌이는 모습이 집들이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오늘이 아마 이곳 상가에서 개업을 하는 날이었던 모양이다. 안에 들어가서 한바탕 주방 굿을 울리는가 싶더니 또, 건물 주위를 돌며 신명나게 지신밟기가 울려 퍼졌다.
예로부터 우리조상들은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해 들어가면 쇠 소리를 내어 잡귀를 몰아내고 행운을 빌었다. 이른바 집들이였던 것이다. 그럴 때면 빠질 수 없는 것이 풍물놀이였고, 반드시 여기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돼지머리와 술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이곳 상가 역시 시월상달 초하루 길일을 맞아 개업식을 한 것이다. 우리 고유풍습을 살려 농악대의 풍물놀이까지 벌이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겠지만 이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술과 돼지머리를 놓고 풍물을 치므로 하여 신들을 달래고, 입주나 개업을 축하해 주러온 손님들과 함께 행운을 기원하며 어울림은 자연과의 한마당이며 그야말로 신인동락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전통농악은 옆에서 가만히 구경만 하여도 어깨춤이 절로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쉽게 다가가 함께 즐기며 어울릴 수가 있어 좋다. 밤낮없이 힘든 농사일을 하는 가운데서도 우리조상들이 억세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저 막걸리와 함께 우리의 전통농악이 주는 힘이 아니었을까.
옛 고향의 정취 가득한 고색동마을의 풍경 _3
상쇠인 꽹과리를 필두로 하여 징, 장고, 소고, 북, 피리젓대, 포수 등으로 꾸며진 이날 풍물패의 등장은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 깜짝쇼 같았다. 상가의 주인은 장사가 잘 되는 대박의 꿈을 꿀 수 있어 좋았고, 이런 자리에 호기심어린 눈으로 구경나온 사람들이라고 하여 돼지머리와 함께 막걸리 한잔 사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옛 고향의 정취 가득한 고색동마을의 풍경 _4
행사가 끝나고 난 뒤 음복하는 동안 나는 여성단원 한분과 얘기할 수가 있었다. 고색동전통농악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은 모두 오십여 명이 된다고 했다. 오십대 후반에서부터 칠십대의 연령층으로 웬만큼 큰 행사가 아니면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는 없다고, 오늘 이 자리에는 이십 여명만 왔다고 했다.
이렇게 손 맞춰 활동하다보면 마음이 즐겁고 건강에도 좋다며, 언제 아프다거나 늙을 틈이 없다며 해맑게 웃어주었다. 올해 칠학년 삼반이라는 그의 삶의 미학은 허세가 아니었다. 노인정에나 다녀야 했을 그 나이에 제비처럼 날렵한 몸매하며, 강단 있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바로 에스라인 몸 짱이었다.
또 지난번 제 오십일 회 화성문화제 행사 때에는 시민퍼레이드에서 이곳 고색동 전통농악대가 으뜸상을 수상했다는 것이었고, 이들은 고색동관내의 행사뿐만 아니라 수원과 화성 권은 물론 다른 지역의 시도까지도 행사가 있을 때면 초청 받아 간다며 자랑했다.
농악은 우리 고유 삶의 문화요, 방법이며 생존의 뿌리인 것을 나는 또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변화와 성장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연과 전통의 보존을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고 있는 이들을 지켜볼 수 있고, 그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산다고 생각하면 고색동마을은 그저 고향과도 같은 행복이 젖어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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