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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세상
전도서 2 : 12 - 26
전도서 1장과 2장의 첫 부분에서 솔로몬이 세상의 학문과 교제를 통해서 만족을 얻어보려 했으나 헛된 것을 깨달았고 아예 차원을 낮게 해서 육신적인 쾌락을 얻으므로 만족한 생활을 하여 볼까 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말초 신경의 자극은 되고 잠시의 쾌락은 되지만 심각한 병이 들어 고통하는 때 근본적으로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마취제를 사용해서 잠시동안 고통만 없게 잊어버리게 하고 그 약의 성분이 다하면 오히려 더 고통 당하는 것 같은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쾌락 역시 헛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17절 이하를 보십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 다 헛되서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 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다.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야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내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17-20절) 하였습니다.
시편 39편 6-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위의 두 성경 구절에서 우리는 다윗과 솔로몬의 인생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거듭 ‘진실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영국의 스펄젼 목사님은 이 말씀을 강해 하다가 하는 말이 “역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중요한 대목에 가서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하는 말씀을 하시곤 하였는데 그 조상 다윗을 닮아서 그 어법(語法)을 사용하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된 것 뿐입니다. 헛되지 않은 것이 무엇 있습니까? 흔히 땅을 사면 된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해도 땅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땅은 변하지 않을지 모르나 인간은 변합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닙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인생은 지나갑니다. 그림자처럼 말입니다.
저는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아도 이거 참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인생 40여년을 어떻게 지내 보냈는지 지금 생각하니 제 일생의 반 이상은 살았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것을 느낍니다.
예배 시간이나 그밖에 모임 때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주의 젊은 종’이라는 말씀으로 기도하십니다. 아마 우리 원로 목사님께서 전개해 계시기도 하려니와 사실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하니까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제 얼마 안있어서 ‘젊은 종’이란 호칭은 점점 사라질 것이고 조금만 더 있으면 ‘늙은 종’ ‘노종’호칭이 쓰여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는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 일생입니다. 그림자같이 지나갑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거리에는 허다한 군중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라나 이들도 언젠가는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로 말하면 3만의 식구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적어도 1년에 2백 여명은 먼저 하늘 나라에 갑니다. 아마 그 동안 30여년을 지내오는 동안에 상당히 많은 분이 벌써 저 나라에 가셨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장로님께서 그런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30여년전 처음 시작할 때는 거의 젊은이들로 구성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그때의 청년들이 다 노년이 되어서 친구들이 자꾸 줄어든다고 하셔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귄 친구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한사람 두사람 하늘 나라에 먼저 가기 때문에 땅 위에는 점점 줄어든다는 표현이 맞는 것입니다. 다 지나갑니다.
여러분, 바벨론과 앗수르의 군대를 생각해 보세요. 그 나라의 왕이 세운 궁전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건설해 놓은 도시를 보세요. 다 어디에 갔습니까? 메데와 파사 나라를 보세요. 그들의 영광이 오늘 어디에 있습니까?
헬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놀라운 문화, 강력한 정권, 불가사의한 신전(神殿)들은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은 폐허되어 터만 남아 있습니다. 구라파와 온 세계를 석권하던 로마는 어디에 갔습니까? 나라고 개인이고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표현대로 하면 모두가 헛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림자라는 말은 사는 날이 짧고 순간적이란 말입니다. 옛날 모세는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시편 90편 10절)하였습니다.
날아가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이 인생에 대한 진리를 알기 때문에 한 종류의 사람은 “내일 죽으려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하는 사람이고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인생”에 너무 마음을 쏟지 말고 영원한 세상에 마음을 두고 거기를 바라보며 거기를 생각하며 거기를 위해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지는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알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인생들은 이 헛된 일에 분요합니다.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생존 경쟁이 심한 세상입니다.
며칠전 어느 젊은 실업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금 만 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기업체의 회장으로 계신 분입니다. 그의 조부모가 신실한 교인이었고 그의 모친은 현재 어느 교회의 권사님이요, 그의 부인도 혜화동에 있는 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하며, 애들도 교회에 잘 다닌다고 합니다. 자기는 사업에 바쁘다 보니 교회에 잘 다니지 못하지만 술 담배는 절대로 안한다고 합니다. 그분의 말이,
“목사님, 저는 이런 예수 믿는 가정 배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기 때문에 이 경쟁 사회에서 경쟁을 하는데 얼마나 손해가 많은지 모릅니다. 믿음 없이 사는 사람들은 아무런 마음의 가책을 받지 아니하고 마구 덤비며 사업을 하지만 제 경우는 무슨 일이든지 하려면 마음의 소리를 듣기 때문에 주저하게 되고 가책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일날 교회에 안나가고 집에 있으면 애들이 아버지는 교회에 안나가겠어요? 하고 물을 때 이것처럼 괴로운 게 없습니다. 저는 이둘 사이에서 끼어서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비교 전도서 2장 22-23절).
얼마나 경쟁이 심한 사회입니까? 양심이고 체면이고 다 집어던지고 경쟁해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업이 크게 확장되었으면 성공입니까? 돈을 많이 모았으면 성공입니까? 세상을 떠날 때 수 10억 수 100억의 재산의 남겨 놓고 가시면 성공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사실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제 죽으면 이 온 세상을 모두 남겨 놓고 갈 작정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이 사는 동안 많은 재물을 쌓아 놓지만 그 재물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저 쌓아 놓은 것으로 끝납니다. 사실 사람에게 입고 먹고 살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위로하지는 못합니다. 종이에 기록한 것 뿐입니다. 그 재산 관리를 위해 얼마나 더 큰 수고와 근심이 뒤따르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영광에 집중이 될 때 문제는 달라집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그가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그 사림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그거 너무 허무한 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에겐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 다윗을 통해서 분명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접근을 의미합니다.
“주여, 나는 이 세상에 얼마나 허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아시지요? 저는 이 세상에 얼마를 살든지 좀 보람있게 살고 싶습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니까요. 주님, 저로 하여금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기도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 삶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리고 주님께 나아와 바른 생활하기 원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갑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갑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갑니다.
복되신 말씀 따르려고 주께로 갑니다.
실망한 이 몸 힘을 얻고 예수의 크신 사랑 받아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갑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는 다윗이나 솔로몬 못지 않은 깊은 신앙에 사시는 분이 계시니라 믿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마 이렇게 기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영원한 것을 위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애를 씁니다. 한 순간이라도 낭비하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하나님, 저는 유년기를 보냈고 20세가 되고 30세 40세 50세가 되었습니다. 내 머리는 백발로 변해 가고 이제는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의 남은 날이 얼마든지 지혜를 주세요.”
여러분 모두가 다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오?” 이 세상 사람들이 헛된 일에 분요한 것을 봅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화려하게 살고, 영광 누리며 살고, 먹고 싶은대로 먹고, 갖고 싶은 대로 갖고, 인생의 세상 낙을 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는 주만을 의지하나이다.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는 세상 사람들이 지킬 수도 없는 재물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곧 세상을 떠날 터인데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데 그들은 그것을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는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아니합니다.”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지난 며칠 동안 바닷가에 가 보았습니다. 애들이 물이 나간 바닷가에서 모래로 성(城)을 쌓습니다. 아주 정성 들여 쌓습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심각합니다. 잘 쌓아 좋았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후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면 성을 쌓았던 흔적이 없어지고 맙니다. 인간이 일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소망은 세상에 있지 아니합니다. 이 세상의 것을 기업으로 받을 자가 아니고 위에 있는 새 예루살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새 예루살렘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잠시 동안 이 세상에 사는 나그네입니다.
이 인생이란 배를 타고 본향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길을 먼저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를 따라가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무엇이든지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원하십니까?
큰 사업을 원하십니까? 솔로몬은 오늘 본문 17절에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하였습니다.
솔로몬에게 있어서 큰 사업은 너무 수고가 되었었습니다. 그 사업에 대한 생각과 염려, 그리고 치밀한 계획과 사업에 대한 집중이 꼭 필요한데 이것이 얼마나 부담과 피곤을 안겨 주었고 그가 노령에 접어 들면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나가도 들어와도 하루 한 시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무위도식 해야 할까요?
자기 중심의 사상이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것이 허무하고 피곤하고 짜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으로 생각할 때 삶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고 보람되고 생기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나 그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요, 단지 하나님의 사업을 재게 맡겨 주어서 나는 그것을 한다고 생각할 때 다시 말하면 나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라고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려라”고 권면합니다. 염려는 하지 말고 결과는 주님께 있으니 나는 충성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하나님과의 동역자입니다. 잠언 16장 1절에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 전서 1장 24-25절).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하는 일은 보람되고 영원합니다. 오늘 우리 하나 하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잠깐되는 세상에 마음두지 말고 저 영원한 하늘에 마음을 두고 자기 중심으로 살아서 피곤하게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 힘차게 생동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