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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 1: 12 나를 능하게 하신 - 딤전 1: 17 홀로 하나이신
3. 바울을 향한 주의 은혜 ( 1: 12 - 17 )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전 1: 12 나를 능하게 하신 -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
1]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능하게 하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뒤나모산티'(*)는 '힘있게 하였다'는 뜻이다(has given me strength, NIV).
이 단어가 부정 과거 시상인 점은 바울이 성령의 선물인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이미 과거에 부여받았음을 시사한다(Guthrie).
바울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능력 때문이다.
2]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을 그리스도께서 충성되이 여겼다는 말은 이상하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적인 주권 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을 개종시키고 그에게 능력을 부여하신 다음에 그를 충성되이 여기신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결코 위대하거나 행위의 온전함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에 의하여 복음 사역의 사명을 수행하였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직분(*, 디아코니안)이란 말은 '봉사'를 의미한다(service, NIV, JB). 그러므로 사도의 직분은 사랑과 헌신의 정신으로 주님께 드리는 봉사이다(Earle).
사도 바울은 본래의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묻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回心)하였을 때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Hendriksen).
딤전 1: 13 긍휼을 입은 것은 -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1]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비방자의 헬라어 '블라스페몬'(*)은 '상해를 입히다'는 뜻을 지닌 '블라프토'(*)와 '연설'을 뜻하는 '페메'(*)의 합성어로 롬 2: 24에서는 '모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Robertson).
* 롬 2: 24 -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
박해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브리스텐'(*)은 '거만(倨慢)한 사람',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사람'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행동을 하였다는 것을 서슴지 않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말함으로써 비웃음을 살 수도 있으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한 것은 자신의 무가치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위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Calvin).
바울은 과거에 비방자, 핍박자, 폭행자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방했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해롭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불신앙 중에 무지함으로 그런 악을 행하였다. 비록 그 죄악이 심히 컸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바울을 불쌍히 여겨주셨다.
2]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알지 못하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신앙적인 문제이다.
당시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훼방하고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것인 줄 알았다. 즉 그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암매(暗昧) 상태에 있었다.
이처럼 바울의 과거 잘못은 영적 무지에 기인한 것이었지만 성령을 거스른 죄까지는 이르지 않았다(Hendriksen).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징계 대신에 긍휼을 베푸셔서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사도로 불러주신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알지 못함이 긍휼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 엡 2: 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롬 2: 4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딤전 1: 14 우리 주의 은혜가 -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
1] 우리 주의 은혜가
주의 긍휼과 은혜는 넘치도록 풍성하였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에게 주 예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주셨다. 구원의 은혜는 구원에 이를 참된 믿음과 또 예수님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죄인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며 그가 거룩한 직분까지 받았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었다.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믿음과 사랑은 은혜로부터 온다.
바울은 여기서 '함께'(*, 메타)라는 전치사를 사용함으로써 은혜로부터 오는 믿음과 사랑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하였다.
3]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풍성하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레플레오나센'(*)은 '휘페르'(*,'위에')와 '플레오나조'(*, '많다')의 합성어로 '대단히 풍성하였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훼방하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도륵 하셨다.
혹자는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자신의 사도직을 공격하고 중상모략(重喪謀略)하는 악한 무리들에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Calvin).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는 비록 무지함으로 믿는 이들을 핍박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마음을 가졌었다.
주께서는 충성된 마음을 좋게 여기시는 것 같다. 주께서는 바울을 구원하신 후 직분까지 주셨다. 우리는 맡은 일이 크든지 작든지 충성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 직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은 자기의 직분을 잘 이해하고 겸손히 충성하는 것이다.
딤전 1: 15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은 이미 12-14절에서 언급되었다.
바울이 큰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확실하게 알아야 할 사실이다.
1]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미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는 '충분히 믿을 만하다', '전적으로 확실하다'는 의미로 확실하게 권유(勸諭)하는 완곡어법이다.
이런 표현은 목회 서신에만 5번 나온다.
* 딤전 3: 1 -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 딤전 4: 9 -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 딤후 2: 11 -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 딛 3: 8 -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본 절과 4: 9에서는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이라는 부가 어구가 첨가되었다(Earle).
혹자는 이 말에 대해 당시에 요한이 자주 사용하던 표현으로 추측하나(Robertson)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표현은 목회 서신에만 나오는 바울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미쁘다는 말은 ‘믿을 만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신실한 말씀이요 사람들이 전적으로 받을 만한 말씀이다. 그것은 온 세계에 심히 복된 소식이다.
2]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 마 9: 13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사도들도 증거 하였다.
* 롬 5: 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기독교 진리의 가장 중요한 사실, 곧 복음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다(Simpson).
'세상에 임하셨다'는 단순히 성육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떠나기까지 일어난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Lenski).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은 유대인 청년이었던 역사적 인물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 곧 구주이심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신적인 구주를 약속하였다.
* 사 9: 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미 5: 2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바로 그 약속된 신적 구주께서 오셨다. 그는 죄인들을 구원하려고 오셔서 예언대로(사 53:5) 그 몸에 찔림과 상함의 고난을 받으셨다.
3]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이 괴수라고 고백한 본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1) 내가 괴수 죄인들의 무리에 속해 있다.
(2) 내가 역사적으로 첫 번째 괴수이다.
(3) 내가 가장 나쁜 죄인이다.
여기서는 (3)의 해석이 가장 타당하다. 혹자는 본 절에서 바울이 '건전하지 못한 비실제적인 겸손'을 취하고 있다고 말하며(Scott), 또한 '형식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Easton).
그러나 본 절에서 바울은 참으로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 있다(Guthrie).
특히 바울은 현재형 동사를 사용하여(*, 에이미, '...이다') 회심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자신의 과거를 깊이 회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의 이러한 죄의식과 참회의 고백은 그의 복음 사역을 승리로 이끄는 근본적인 동인(動因)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그가 예수를 비방했고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해쳤기 때문이었다. 모든 죄가 다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지만, 특히 예수님과 그 복음을 대적하는 행위는 죄 중에도 큰 죄이다. 하나님과 그의 복음 진리를 대적하는 것은 매우 심각하게 큰 죄이다.
딤전 1: 16 긍휼을 입은 까닭은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1]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13절에 이어 바울은 자신이 긍휼을 입은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수의 긍휼은 그의 오래 참으심에서 온다(Lenski).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토'(*)는 행렬 가운데서 순서상 '첫 번째'를 말한다. 따라서 바울 자신은 미래의 신자들 가운데서 예수의 오래 참으심의 첫 번째 대상으로서 본보기가 되었다는 의미이다(Guthrie).
2]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어라는 동사 다음에 나오는 구문을 보면 '위에'(*, 에피)라는 전치사가 여격과 함께 온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확고한 기초가 됨을 나타낸다(Guthrie).
이처럼 요동하지 않는 굳건한 반석 위에 신앙의 근거를 둔 사람들에게 바울은 모본(模本)이 되었다.
본의 헬라어 '휘포튀포신'(*)은 '실례', '본보기'라는 뜻이다(example, NIV). 이는 바울이 예수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바로 그 죄인들의 '견본'이라는 말이다.
* 벧후 2: 6 -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구주 예수께서 죄인의 우두머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주께서 그에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셔서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죄인의 괴수 같은 큰 죄인이 주의 긍휼을 입어 구원받았으므로, 이제 어떤 죄인이라도 주의 긍휼을 입을 수 있음이 증거 되었다. 어떤 크고 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구주 예수께로 나와 그를 믿으면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 있다.
딤전 1: 17 홀로 하나이신 -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
1] 영원하신 왕
본 절은 바울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의 외침이다.
혹자는 이것을 '유대교의 예배 의식'이라고 주장하지만(Lock) 두 가지 면에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첫째, 영원하신 왕이라는 표현이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 엡 2: 7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 엡 3: 9, 11 -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이 표현이 유대인에게 친숙한 표현이긴 하지만,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위대한 왕으로 자칭했으나 단명한 '네로'와의 대조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둘째, 유대 사회에서는 두 세대, 즉 현 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하는 습성이 있었다.
바울은 두 세대 가운데서 공히 지배하시는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Guthrie).
2]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본문은 '영원하신 왕'과 동격으로 세상의 모든 왕이나 다른 신들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유일한 지존성(至尊性)을 강조한다.
썩지 아니하고(*, 아프다르토)는 성경 전체에 언급되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 시 103: 15-17 -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 롬 1: 23 -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은 피조물들과 달리 불변성을 지니셨다.
* 시 45: 6 -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 히 13: 8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도들의 영생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
보이지 아니하고(*, 아오라토)는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계신 영이심을 말한다.
* 골 1: 15-16 -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며 다만 믿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 히 11: 27 -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홀로 하나이신(*, 모노)은 하나님이 다른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唯一)하시고 초월(超越)적인 신으로서 우리의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 되심을 강조한다.
* 요 17: 3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엡 4: 6 -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3]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은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는 하나님을 왕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섭리자 곧 통치자이시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가 모든 일을 행하신다.
그는 영원하신 왕이시다. 그는 존재의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또 그는 썩지 않으신다. 모든 피조물은 다 죽고 썩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고 썩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또 보이지 않으신다. 그는 보이지 않으시는 영이시다. 그러나 그는 모든 존재 세계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홀로 하나이시다. 세상에는 한 하나님께서 계시다. 다른 신들은 모두 헛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다 가짜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우시다. 그의 지혜는 무한하시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속성들을 열거한 후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기를 기원하였다.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송영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왕이시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만세의 왕, 영원하신 왕, 곧 주권적 섭리자이시며 썩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으시나 홀로 하나이시며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만 경외하며 섬기며 순종하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철학자들이다. 철학은 우주와 인간의 근원과 의미, 죽음과 그 너머 등에 대해 질문하지만, 참된 대답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 믿는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참된 대답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철학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가진 자들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구주이시다.
그는 구주 예수를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는 죄인의 괴수 바울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하실 것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으시고 구원과 새 삶을 주셨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불러 그의 일꾼을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핍박자 사울을 불러 복음 전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그는 오늘 우리도 그의 긍휼과 능력으로 구원하셔서 여러 가지 직분을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