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있는 덕후>
누구에게나 덕후 하나씩은 존재한다. 나한테 덕후가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든다면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라. 아마 생각이 바뀌게 될 거다.
조금 전 새벽 2시,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켰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분명히 잠에 들기 전에 창문도 다 닫고, 문단속도 하고, 집에는 나뿐이라는 걸 확인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어딜 가든, 어디로 숨든 그 녀석은 다 찾아냈고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여름에.
언제부터 그 녀석의 존재를 인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태어난 순간부터 덕후를 달고 있었던 셈이다. 나에게 남아 있는 그 녀석에 대한 첫 기억은 5살 때 떠난 가족 여행에서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게, 펜션의 수영장이 정말 크고 공기가 들어간 에어바운스가 설치되어 있어 어린 나에게는 궁전처럼 보였다. 해가 질 무렵, 엄마는 이제 저녁 먹어야 한다며 수영장에서 나오라고 했지만 집 모양의 에어바운스가 마음에 쏙 들었던 나는 여기서 잘 거라며 떼를 썼다.
“다온이 여기서 자면 밤에 모기들이 친구하자고 할 텐데?”
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다며 물 미끄럼틀을 타러 씩씩하게 올라갔다. 조금 이따 다시 데리러 올 생각이었는지 엄마가 등을 돌리고 가는 게 보였다.
그때였다. 귀에서 갑자기 ‘위잉-‘하는 소리가 들렸고, 겁이 많아 동물이고 곤충이고 구분 없이 무서워하던 나에게는 그 작은 존재가 주먹만하게 보였다. 본능적으로 손을 휘휘 저었지만 내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가까워지며 왼쪽 귀에 가서 ‘위잉-‘, 오른쪽 귀에 가서 ‘위잉-‘하는 소리에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엄마 말대로 나랑 진짜 친구하자는 거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벌레들은 물에서 살지 못하니까 물 속으로 숨자는 좋은 계획이 떠올라 그대로 미끄럼틀을 타고 물 속으로 빠져들었다. 5살이었던 나에게는 숨을 못 쉬는 것보다 좋다며 날 쫓아오는 그 작은 덕후가 더 무서웠고, ‘갔을까?’ ‘아냐, 아직 안 갔을 거 같아. 조금만 더’ 하다가 정신이 희미해졌다.
그 다음의 기억은 없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펜션 안에서 수건을 가지고 나오는데 수영장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이상한 느낌에 뛰어와 물 속에 빠져있는 나를 건져냈다고 했다. 모기가 그렇게 싫었냐며 지금은 웃지만,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을 그 사건에 나는 그 녀석이 더 싫다. 오늘은 반드시 잡아내고 잘 것이다. 어딜 가든, 어떻게 해서든 나를 찾아 쫓아다니는 내 덕후를.
보라, 당신에게도 덕후가 있지 않은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외로울 때 이 덕후를 떠올리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지도 모른다. 존재는 별로 달갑진 않겠지만, 잠깐 피식 하고 웃을 수는 있을 테니까.
+) 하 원래 약간 숨바꼭질처럼 스릴러처럼 쓰려고 했는데 ㅜㅜ 쓰다보니 그냥 이렇게 됐네요…ㅋㅋㅋㅋㅋ (영화 제목을 여쭤본 이유엿습니다...헤헤)
첫댓글 -내 얘기 좀 들어봐-> 도입부 주목도가 높음. 자신감 있어보여서 좋았음.
-두 번째 문단에서 충분히 미스터리 느낌이 났음. 아쉬운 건 모기가 덕후인데, 모기가 왜 덕후인지 설명이 없어서 공감이 덜 된 느낌. 사람을 무는 걸 비유한 거라면 연결고리가 너무 약한 거 같고. 모기가 사람 타겟하고 쫓는 모습을 sf처럼 쓴다면 덕후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모기가 어떤 사람을 목표물로 한 이유, 언제 타깃하고 시간 노리고 이런 구체적이 모습이 보인다면 좋을 듯.
-피 빨아먹고 죽는데, 그런 모습도 극한의 덕후 모습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첫 문단에서 '끝까지 들어보라'는 말이 기대감 줘서 좋았음.
-두 번쨰 문단에서 원인 찾는 흥미진진함을 줘서 독자들에게 수수께끼 푸는 걸 줘서 재미요소라고 생각.
-두 번째 문단 특히 여름에 라는 거에서 모기인가 라는 예상이 들었음. 정체를 알 수 있는 부분들이 계속 있어서 수수께끼 주목도가 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
-정체의 소리를 '위잉'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놈 소리가 들렸다'정도로 하면 스릴러 살릴 수 있을 것 같고 모기 정체 끝까지 숨기다가 마지막에 드러내면 좋을 것 같음. 재미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음
-마루는 강쥐 에피소드 중에 잠잘 때 괴물이 나타난다고 해서 마루가 잡아주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거 참고해도 좋을 듯. 여기서도 별거 아닌 걸 공포의 대상으로 했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