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안고20기 모임 팜플렛
안동고등학교
태마가 있는 제20회 동기회 전국 모임
*일시 2024년 10월 25일(금) 12 : 00
*장소 안동 그랜드호텔 그랑데 켄벤션 홀
(주소/ 안동시 관광단지로 346-84 054-851-9000)
진행 회순
식전 행사 동기생들의 악기 연주
1부
진행 : 최태규 /안동지구 동기회 사무국장
개회 / 안동지구 회장 이동백
국민의례 / 함께(안고 54회 이상민 성악가 애국가 선창)
경과 및 참석 보고 / 안동 동기회 총무 김화동
지역 대표 인사 / 서울: 남승석, 대구: 심주학, 영주: 김종걸, 부산: 김우년
안동 대표 인사 / 이동백 회장
공로 휘호 증정 /2023년 대구 동기회장 김병식 및 총무 류경선, 송종인, 박중규
건배 2명 이동백, 최선호
영상 시청 - 안고 20기 졸업 반세기와 노년의 모습-(동기 조규환사진작가 제작,편집)
오찬 및 정 나누기
2부
진행 : 김화동/안동지구 동기회 재무국장
노래자랑 다함께 차차차
마무리 진행 진행 : 최태규 /안동지구 동기회 사무국장
기념품 전달 / 안동지구 동기회 회장 이동백
의견 주고 받기/ 내년도 모임 여부
교가 제창 및 폐회 / 안동지구 전년도 회장 권기욱
단체 사진 촬영/ 4시 30분 경
영상 편집 제작/ 조규환(안동)
참가자 명단
(서울지구/28) 강성목 권대선 권용복 권용호 권기창 금창석 김동수
김언종 김원모 김영일 남승석 남효석 박규진 박용규 서정만 송종인
심원보 이극선 이동태 이백형 이상익 이용섭 이재갑 조동헌 조성묵
전영철 최동진 최선호
(부산지구/6) 김경환 김만식 김우년 김주호 이헌욱 박중규
(대구지구/12) 권재호 김병식 김영주 김재원 김주년 김형규 류경선 박종두
박해철 심주학 이상열 최정환
(안동지구/44) 강성백 강인순 강혁구 권기욱 권오룡 권오종 권오직 권용진
권중억 권태두 금천수 김규동 김동식 김용호 김상현 김정식 김치동 김화동
남문호 류광한 마상완 박병일 박성호 변우옥 석수진 손호익 신덕진 이동백
이재진 이창영 이태규 이회명 임영길 임영학 장종규 전재식 조규환 조상문
천삼근 최재동 최태규 황수한 황천석
(영주지구/10) 김시준 김시한 김시현 김종걸 나진훈 류연특 박영우 박춘배
석국원 이기주
(청송/ 2) 심광섭 황하종 (상주/ 1) 권창혁
(의성/ 1) 권영호 (예천/ 1) 이양식
(대전/ 1) 천명국 (문경/ 1) 이유훈
(포항/ 2) 김명한 신재원 (제천/ 1) 박이동
(여주/1 ) 김완수
20회 동기회 발자취
1. 개괄
20회 동기들은 1968년 1월, 478명이 응시한 가운데 치러진 고입 시험에서 합격한 368명이 그해 3월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마치고, 1971년 2월에입학 당시보다 16명이 준 352명이 졸업하였다. 류시근 교장 선생님의 근엄하면서도 온후溫厚한 환영사와 신입생 선서로 이어진 입학식을 마치고, 콜타르를 칠한 패널 벽체에다 마룻바닥으로 된 일본식 교사校舍에서 안동고 학창 생활을 시작하였다.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본관으로 옮겨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 학업을 이어갔다.
당시 인상적인 일을 살펴보면, 우선 입학생들의 출신 지역의 다양성을 꼽을 수 있다. 인근의 영주, 영양, 청송, 의성, 예천은 물론 멀리 충북 단양, 영덕, 군위에서 안동고로 유학하러 왔다. 자연히 자취생이 많아 연탄가스를 마셔 가며 학업을 이어갔다. 주로 도보나 자전거로 통학했으나, 남으로는 군위 화본역에서, 북으로는 단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한 동기들도 있었다.
20회 동기들이 입학하던 해에 치러진 제9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차전놀이로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았다. 당시 차전놀이 초대 기능보유자인 김명한옹과 체육 담당 조만제 선생의 지도에 따라 이백형 동기가 동부군의 대장을, 2학년 강대화 선배가 서부군의 대장을 맡아 활약하였다. 대통령상을 받은 이듬해, 동대문 운동장에서 개최된 전국체전에 초청받아, 박정희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전놀이를 시연하였다. 이로써 안동고는 차전놀이 역사에 길이 남을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선생님도 개성이 뚜렷한 실력 있는 분들인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 후 안동, 서울, 대구, 부산 등지로 나가, 튼실하게 삶의 터전을 잡아 살아가고 있다. 지역별로 동기회를 결성하여, 정기적인 모임을 통하여 서로 친목을 도모함은 물로 상부상조하고 있다. 특히 2019년 5월에는 지역동기회가 한자리에 모여 친목과 우의를 다졌다. 그 당시 모인 자리에서 합동 모임을 매년 지역별로 돌아가며 실시하기로 하였으나,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하고 있다. 졸업 30주년을 맞이한 2001년 10월에는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모시고 사은의 밤을 열었고, 모교 교정에서 열린 총동창회 친선체육대회를 주관하였다.
고 이대걸(2017. 10. 8. ~ 2019. 11. 29. 재임) 동기가 14대 총동창회장으로서 모교 발전에 헌신한 바 크다.
2. 주요 행사 내용
가. 졸업 30주년 사은의 밤 및 개교 50주년 친선체육대회 주관
2001년 9월 30일, 재학 시절 3학년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시내 금성예식장 식당에서 졸업 30주년 기념 사은의 밤 행사를 개최하였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참석한 70여 명의 동기들이 여섯 분의 은사님을 모시고 가르쳐주신 은혜에 큰절로 감사드린 후에 학창 시절을 회고하면서 친목을 다졌다. 다음 날 20회 동기회가 주관해서 치른 개교 50주년 친선체육대회에는 500여 명의 동문이 참가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편 이날, 20회 서울 동기들이 기증한 백송 두 그루를 교정에 기념 식수하고, 그 백송에 ‘동문의 나무’, ‘기원의 나무’란 이름을 달아 주었는데, 지금도 교정의 그 자리에서 수세樹勢 좋게 자라고 있다.
나. 20회 전국 동기회 문경새재 걷기
2019년 5월 21일, 안동고 20회 전국 동기 53명이 참가한 가운데 안동 동기회(회장 최태규) 주관으로 문경새재 걷기 모임을 가졌다.
최태규 안동 동기회장과 최선호 서울 동기회장의 발의로 개최한 이 행사는 문경새재 제3관문 쪽의 고사리 주차장에서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모인 동기들이 주차장 마당에서 ‘오~ 반갑다 친구야! 정말로’란 슬로건이 쓰인 플래카드를 걸고, 솔개처럼 구름 한 장이 뜬 파란 하늘 밑에서 기념으로 사진 몇 장 찍은 후, 제3관문으로 출발했다. 새재를 넘어 세 시간쯤을 걸으면서 주막에 들러 막걸리도 마시고, 추억어린 정담을 나누기도 했다.
오후에는 제1관문 문경관광호텔에서 장기 자랑 및 노래자랑 등의 여흥과 차기 모임을 위한 의견 수렴의 시간을 가졌다. 해가 서녘 하늘로 설핏하게 기우는 시각에 다음 해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남긴 채 작별했다. 이날 행사는 졸업 쉰 해에 가까운 즈음에 만나, 학창 시절로 돌아가 아련한 추억에 젖어 들게 한 귀한 모임이었다.
나. 20회 전국 동기회 수안보 모임
2022년 11월 25일, 안동고 20회 전국 동기 6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지구 동기회(회장 최선호) 주관으로 수안보 상록호텔에서 모임을 가졌다.
2019년 9월에 발생한 코로나로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러 3년간 우리 안동고 20회 전국 모임도 잠정 중단되었다. 중단된 지 3년 만에 다시 모임을 이어가게 되었다.
서울과 안동의 중간 지점쯤인 수안보에서 모임을 갖고, 동기들 간의 우의를 다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흥 시간에는 각자의 숨을 끼를 맘껏 발산하는 기회로 삼았다. 종일 만남을 가진 뒤 대구에서 만길 것을 기약하고 아쉽게 헤어졌다.
다. 20회 전국 동기회 팔공산 모임
2023년 10월 20일, 안동고 20회 전국 동기 92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구지구 동기회(회장 김병식) 주관으로 팔공산 뉴스호스텔에서 모임을 가졌다.
지난 행의 결정에 따라 대구지구가 주관한 전국 모임에는 무려 92명이나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2022년 전국 모임을 주관한 서울지구 회장과 총무에게 공로패를 증정하는 등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으로 행사가 알차게 진행되었다.
전문 진행자의 사회로 2부 여흥 시간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닌 장기를 마음껏 풀어놓음으로써 모두가 힐링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해를 기다려 안동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모임을 마무리 지었다.
3. 추억의 길목에서
가. 제주도 수학여행
1969년 당시로서는 드물게 우리는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용두바위의 기기묘묘한 형상을 보고 감탄하기 시작한 제주도 여행은 이 섬의 서쪽을 돌아 서귀포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협제굴, 산방굴사, 정방 폭포 등 모두가 신기한 모습이었다.
서귀포에서 5‧16 도로를 타고 한라산을 종단할 때, 만난 한라산의 가을 풍광이 아름다웠음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한라산 기슭에서 만난 목장들의 전원적 풍경은 이국적 정취를 만끽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부산에서 하룻밤을 꼬박 물길을 달려 제주에 닿은 아리랑호에서의 그 지긋지긋하게 해대던 배멀미의 고통을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이 깨끗이 씻어주고도 남았다.
여행은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며 막바지로 접어들어 귀향할 일만 남았는데, 돌아오는 날 아침, 갑작스런 풍랑으로 배가 떠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노자(路資)는 다 떨어지고, 일이 매우 난처하게 꼬여 들었다. 일대 소동을 치른 후에 도리 없이 제주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을 수 없었다.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며,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산 귤 한 바구니를 손에 들고 도라지호인가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올 때처럼 배멀미는 피할 수 없었다. 배멀미에 시달리느라 부모님 선물을 잠시 잊고 있은 게 탈이었다. 하선하려고 귤 바구니를 찾으니, 귤은 온 데 간 데가 없고 빈 바구니만 선실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날 그 귤 본 사람 여기엔 없겠죠!
2.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초청 차전놀이
1968년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명예롭게도 대통령상을 받은 차전놀이는 이듬해에 전국체육대회 개막식에 초청되어 박정희 대통령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시연하게 되었다.
예약한 기차가 배정되지 않아 긴급으로 청와대에 연락하여 객차 두 칸을 배정받아 상경, 장비 반출 과정에서 역무원의 금품 요구의 해프닝을 거쳐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차전놀이 복장으로 서울 시내를 활보하여 동대문 운동장으로 가는 길었다. 옆구리에 꿰찬 짚신에 관심을 보인 이쁜 서울 여학생들이 그걸 줄 수 없냐고 접근하는 바람에 몇 녀석들은 시연에 쓰일 그 짚신을 덜컥 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짚신 없이 도착한 동대문 운동장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400명이 한꺼번에 정문을 통해 입장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왕좌왕한 끝에 대회 개막 시간이 임박해서야 학생들만 옆문으로 간신히 입장했다. 인솔 교사들이 입장했을 때에는 이미 차전놀이 시연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문제는 차전놀이의 마무리 장면에서였다. 승패가 결정 나면, 이긴 쪽은 짚신을 공중으로 날려 승리의 감격을 누리고, 진 쪽은 짚신으로 땅을 치며 석패의 울분을 달래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짚신은 이미 이쁜 서울 여학생 손에 넘어간 뒤였으니, 대통령님께서 내려다보시는 데서 몇 녀석들은 곱다시 손방이 되어 그저 빈손을 어찌 다스려야 할지 몰라 그저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통령께서는 손뼉을 쳐서 격려해주셨다. 대통령께서는 그렇게 어리석은 녀석들인 줄을 꿈에도 생각지 못하셨으니, 그저 멍하니 앉은 놈들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 역시 이 자리에는 없겠죠, 뭐!
짚신이사 이왕 남의 것이 되었으니,
양말 상투나 삐뚜름히 덮어쓰고
임꺽정전의 서림이처럼 간살스럽게 헤헤거리며 어깨춤을 출거나
토지의 영팔이처럼 쭈뼛쭈뼛, 주척주척 다리춤을 출거나
하회탈춤의 초랭이처럼 해뜩해뜩, 촐싹촐싹 오두방정이나 떨어볼까나
‘월사, 덜사’
‘덜사, 월사’
오십 년 전의 것이
천둥처럼 지축을 울리면서
귀에 와 박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