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갖춘 마디 윤미애 그분이 오셨다. 섣달 열여드레 시린 달빛 받으며 오신 모양이다. 서걱대던 댓잎도 잠든 시각. 제주가 위패에 지방을 봉하자 열린 대문사이로 써늘한 기운 하나가 제상 앞에 와 앉는다.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망설이다 들어온 걸음일까. 촛불은 병풍에 두 남자의 실루엣을 그리며 천장 향해 솟는다. 허리가 꾸부정한 제주가 한 순배 술을 올리고 용서라는 절을 하자, 고개 숙이고 있던 그의 아들은 신뢰라는 절을 한다. 망자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업둥이가 지내는 내 아버지 제사 날이다. 큰 오빠는 아버지에게 못갖춘마디 같은 자식이었다. 깨진 유리온실 속의 시들어 가는 화초 같은 아들이었다. 가슴여미는 아픔으로 무섭게 스치거나 소용돌이치다가 비워진 쉼표와 마지막 마디의 음표가 만난 후에야 완성되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자식 때문에 더 많이 아파야했고 더 많이 내어주고 보듬었는지도 모른다. 자식 셋을 연이어 잃은 아버지의 상심은 컸다. 품에 안아보지 못한 자식들로 인해 외아들로 자란 아버지는 한동안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 일로 쫓겨난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찾아 나선 걸음에 얻은 자식이 큰 오빠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태어나자마자 골골대며 잦은 병치레로 부모님의 애간장을 어지간히도 태웠다. 시오리 신작로 길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는 콜록거리며 담요에 쌓여 병원을 오가는 오빠가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아버지 생의 여린내기 음반 위에서 불안정하게 구르고 있는 선율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후, 내리 아들 딸 넷을 더 얻어 여린내기로 시작된 아버지의 삶은 음역을 넓혔다. 가난했지만 자식으로 인해 마음만은 부자로 살았던 그때, 아버지의 인생연주라는 선율은 안정감 위에서 봄 아지랑이처럼 다복한 꿈을 꾸며 따뜻하게 피어올랐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무릎을 독차지하고 응석만 늘어가는 큰오빠 때문에 형제간에 엄살, 정 투정이라는 나지막한 외침들로 아버지의 악보선율은 그리 매끄럽지는 못했다. 약해진 마음이 더 문제였다. 허약한 몸을 무기삼아 오빠는 동생들의 내리사랑까지 자신의 것으로 여겼다. 형의 도움을 받아야 할 오빠들이 되레 신발 안 돌멩이 같은 그의 가방을 메고 먼 등하굣길을 오갔다. 나와 여동생도 노는 시간이면 손톱 밑 가시 같은 오빠를 살피려 달려갔다. 또래들한테도 따돌림을 당해 외톨이가 되어가는 그를 보호하기 위한 우리 형제들의 노력은 가히 필사적이었다. 어쩌다 미처 그를 돌보지 못해 다치거나 앓아눕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이 날아들었다. 그에 상반되는 벌도 달게 받아야 했다. 보통빠르기의 4분의 3박자, 내림나장조인 아버지의 선율은 못갖춘마디로 인해 가사와 마디가 불일치해 자연스럽지 못했다. 부드럽지도 않았다. 그로인해 우리들은 일찍이 가족이란 청하지 않아도 내리는 눈비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 거역할 수 없는 섭리 앞에 작은 나를 느끼며 순응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나이가 들어도 오빠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점점 더 게을러지고 나태해져 갔다. 맏이로써의 책임감도 신뢰도 저버렸다. 어렵게 벌어 보내온 다른 오빠들의 돈마저 사업자금으로 탕진했다. 부도를 내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모든 전답을 빚쟁이들한테 내어주고 오빠를 찾아다녔다. 미덥지 못한 오빠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건 아버지였다. 우리는 하나, 둘 아버지 곁을 떠났다. 나 또한 평생 자식 편애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앙칼지게 대들어도 봤지만 그를 향한 당신의 믿음에는 도돌이표도 쉼표도 없었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혈육 인데. 같이 가야지” 하면서. 오빠는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기고서야 결혼을 했지만 생산을 하지 못했다. 그 원인이 당신 아들한테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버지는 나오지 않는 헛기침 두어 번으로 아린 속을 달래는 듯 했다. 장손으로 조상보기 부끄럽다며 양자들이기를 권하는 일가친척들의 등살에도 아버지는 반응이 없었다. 부실한 몸에 가진 것 없는 오빠에게 양자 줄 사람 또한 없어 보였다. 세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분열이라는 뜨거운 대립과 융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듯, 마디라는 능선을 불협화음으로 숨차게 넘어오던 아버지의 연주는 절정에서 숨고르기가 필요해보였다. 그해 시월, 삶은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기에 맞잡을 두 손이 필요했을까? 누군가 대문 앞에 놓고 간 업둥이를 오빠는 숙명처럼 거두었다. 그리고 그 업둥이를 안고 온 사람이 바로 당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조금씩 변해 갔다. 마지막에야 완성되는 사람이 있다. 그 무엇에 대해 절실한 결핍을 느끼면서 아주 느리게 성숙했던 내 오빠가 그랬다. 똑똑하고 건강했던 형제들 속에서도 결코 낙오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힘이었다. 즉흥적으로 벌하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실수도 게으름마저도 껴안고 용서하며 기다려주었던 아버지. 헌신과 평범함으로 못갖춘마디의 빈틈을 아우르고 포용력을 보여줌으로써 사랑과 구원이라는 완성된 연주를 이끌어 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때론 놓친 삶이라도 되돌이표로 되돌려 다시 갖춘 삶을 살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다. 연주자들은 말한다. 못갖춘마디를 연주할 때는 앞에 한 박자 쉬는 부분을 명확하게 느껴야 된다고. 그래야만 막판 셈여림의 조절이 가능하다고. 그렇다면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놓친 한 박자도 한 번 더 믿어주고 보듬어 주면 마지막에는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진리를. 아버지의 말년은 평온했다. 오랜 병상생활을 하면서도 영특한 업둥이로 인해 일생 다하지 못한 즐거움을 누리셨다. 큰아들의 늦은 성공으로 여유와 효도를 받으며 꼭짓점의 마지막 음표를 완성한 후에야 생을 마감하셨다. 누군가가 그랬다. 결코 갈대는 약한 식물이 아니라고. 속에서 자라나는 새끼 갈대가 바람에 깔리지 않고 자라기를 바라며 지켜주다 저 혼자 힘으로 버틸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몸을 뉘인다고. 갈대가 여름까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던 그 이유처럼. 그렇게 살다 가셨다. 아버지가 보인다. 생각을 접어보면 그의 사랑과 좌절도 보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틀 속에 가둬 놓은 채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만 했던 지난날들. 이상하다. 아이 다섯을 키우고 이제 겨우 아버지를 이해했을 뿐인데 사랑하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인 것이. 놓친 못갖춘마디의 첫음절을 붙잡고 마디마디 넘어오던 아버지를 기억하면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꿈이 일어나 춤을 춘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드리는 제사는 나 자신과의 교감이기도 하다.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소감] "숙명처럼 끝없이 글쓰기 되새김질"
지친 몸을 누이는 늦은 밤에도 외양간 소는 끝없이 되새김질을 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생존을 위한 그들만의 숭고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숙명처럼 끝없이 글쓰기를 되새김질 했습니다.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꼭꼭 씹어 내면 깊숙한 위(胃)에 쌓는 그 일은 온전히 외롭고도 쓸쓸한 내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울컥울컥 목구멍을 넘어오던 그것들을 운명처럼 함께 품어가고 싶었습니다. 기약 없는 날들이었지만 그 기약 없음을 사랑했습니다.
들꽃이 피는 계절에는 그 사랑 또한 아득했다가, 강물이 불어 가로수가 잠기는 계절이면 처연하기도 했습니다. 아픔이었고 때로는 고통이었지만 그 조차도 진득이 품었습니다. 아득한 빛을 향한 그리움으로 살아온 시간들. 그러고 보니 삶이란 겪는 사람의 것이지 밖에서 바라보는 이의 것은 분명 아닌 가 봅니다.
수필을 짝사랑하는 내 사랑의 도량형은 어떤 형태일까?불안하고 초초했지만 그냥 온전한 그 사랑 하나만으로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남다른 삶을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들이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못갖춘마디 같은 그 한 시간 한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 악보가 완성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되새김질은 시작될 것이고 또 아파해야 하는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이 기쁨을 가만히 음미하려고 합니다.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영광의 자리에 이름을 올려주신 전북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손 잡아주신 김영식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시거리문학 회원 여러분들과 이 기쁨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매일 밤 물그릇 들고 나가 기도로 마음을 보태준 남편과 지켜보며 응원해주던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합니다.
▲윤미애, 1956년 경북 포항 출생,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 수필 대상, 포항소제문학상 최우수상
[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심사평] "가슴속 각인된 아버지 모습 형상화"
심사 대상작품은 총 열 명의 작품 25편이었습니다. 젊음의 숨결보다는 중년 이후의 원숙함이 자리 잡은 본심 작품들의 행간에는 일상의 소재를 다루는 만만치 않은 필력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후반부 생을 문학세계 속에서 아름답게 가꾸어 보겠다는 결의가 두드러졌으나, 젊은 열기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쉬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일상적 삶과 밀착된 소재들을 다루면서 그것들로부터 느낀 감흥이나 회한, 또는 과거의 아련한 기억 등 다양한 개인의 경험을 기술한 것들이었습니다. 글쓰기의 숙련도에 초점을 맞추어 심사자는 읽기를 거듭했습니다. 상당한 문학적 교양이 반영된 작품으로는 ‘창(窓)’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유수한 작가들의 작품을 끌어들여 ‘창을 매개로 펼쳐진 인간사의 풍경’을 숙고했습니다. 생활 속에서 터득한 살림살이의 지혜를 통해 ‘누름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른이 필요한 시대라는 점을 강조한 ‘누름돌’도 공감이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옛 추억 속의 나와 부모님의 삶의 모습, 또는 시아버지의 속정 깊은 사랑에 대한 회고 등을 다룬 작품들 중 ‘달천 참외’와 ‘무성영화’와 ‘못갖춘마디’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생을 성찰하는 깊이와 넓이를 포용할 수 있는 수필문학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심사자로서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당 2편이나 3편에 이르는 응모작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다시 고려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못갖춘마디’를 당선작으로 결정했습니다.
못난 아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가슴 속에 각인된 아버지의 모습을 형상화한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못갖춘마디’는 망자의 아들과 그 아들의 업둥이가 지내주는 제사 이야기를 서두에 제시하면서 부족한 자식을 끌어안고 마지막까지 신뢰를 보낸 부성애(父性愛)를 부각시켰습니다. 진솔하고 담담하게 엮어나간 망자(亡者)에 대한 추억과 병치된 ‘못갖춘마디와 같은 큰 오빠의 생애’가 조화로운 무늬를 이룬 점이 ‘못갖춘마디’의 미덕입니다. 압축과 절제의 함축미와 여운을 갖춘 문학의 길이 수필에서도 실현될 수 있다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를 바라며, 당선을 축하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