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태지 - 이말재 - 109번 위치목 -
톱날능선 - 병풍재 - 원점회귀.
8km. 1만 7 천보. 7시간 반.
팔공산 주능선 기온 21도.
팔공산 꼭대기는 이미 가을 날씨.
군위 쪽에서 부는 바람에
벌써 찬 기운이 섞여 있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하늘은 높고 구름은 예뻤다.
참석자 : 하숙생님. 은풀잎님.
대덕화님. 초심님. 한소.
포항에서 먼 길 와서 험한 바위길 도와주신
초심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초심님은 대덕화님과 은풀잎님을
마치 친누님같이 마음을 다해 극진히(?) 모셨다.
그냥 봐도 다 보일 정도.
대덕화님과 은풀잎님 모시기가
장차 걱정이다.
초심님이 산행에 자주 못 오시면
이 분들에 대한 초심님의
특별한 대접이 뜸해질 것이고
그 불똥(?)이 전부 나에게 쏟아질까 두렵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초심님의 서비스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모두 농담이다.
하여튼 초심님의 부드러움과 남자다움에
동갑내기 동성 남자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
산사나이들에게는
산꾼만이 갖는 독특한 인간미가 있다.
토종된장 같은 진득함이 있다.
그런 분들과 어울리게 되면
잊고 살던 많은 덕목들을 새삼 배우게 된다.
영혼의 에너지를 충전받게 된다.
어려운 산행에서
서로 붙잡아주고 격려해 주신 길벗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린다.
대덕화님의 차를 얻어 타고 수태지로 이동하였다.
하숙생님은 따로
서봉 동봉을 둘러보고 하산하셨다.
이번 번개 산행은
운무 때문에 지난번 톱날 능선 산행 때
톱날 능선 풍광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여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던 은풀잎님이
다시 한번 가보자고
제안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2주 만에 다시 톱날능선을 올랐다.
올해 들어 다섯 번째 길이다.
지난번 톱날능선 산행후기.
https://m.cafe.daum.net/dobojourney/1KpX/23576?svc=cafeapp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은풀잎님 덕분에 정말 좋은 구경을 했다.
팔공산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톱날 능선은 언제 와도 감흥이 넘친다.
만족과 기쁨의 미소가 만면에 가득한 길벗님들을
보노라면 더 이상 행복할 수가 없었다.
눈빛만 봐도 이심전심으로 교감으로
동행자의 흥분도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깃발로서도 당연히 그러하였고
개인적으로도 진심으로 만족스럽고 행복한 산행이었다.
지난 톱날능선 길이
'걱정과 초조' 그리고 나중에 산행을 마치고
전부 무사함에 대한 '안도와 감사'로 점철된 것이었다면,
이번 산행길은 짧은 단어로 압축하여 나타내기 어렵지만
굳이 표현해 보는 것을 허락받는다면
'환호와 감동 그리고 충만'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今日我行跡(금일 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오늘 내가 걸어가는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란 뜻이다.
무수한 약점을 가진 깃발이
산을 오를 때마다
카페에 어쭙잖은 산행후기라도 남기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작은 키에 배불뚝이.
동작이 둔하고 무섬증이 많음.
약한 시력에 급한 성격.
근력과 지구력은 평균 이하고.
약점 나열하고 보니
안 좋은 점 다 끌어 모은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완전 낙제점이다.
게다가 후기에 담을 생각을 가다듬으며
풍경을 응시하고
까물대는 퇴영 기억에 의존한
길 안내. 그리고 잦은 알바.
이런 연유로 느려 터진 발걸음.
거기에 카메라마저 들이대고
시간 까먹으니
속에서 천불이 난다.
늘어진 산행속도는
전부 깃발 책임이다.
이런 단점에도
산길에 기꺼이 동행 댓글 달아주시는
회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 수면에 비친 산 그림자가 아름답다. 수태지
물이 맑아 마치 면경 같다.
처음부터 주능선 도착할 때까지 등산로에
낙엽이 두텁게 깔려있어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이 루트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부드럽기로만 따지면 팔공산 전체에서 최고다.
많이 알려진 다른 등산로는
무릎 관절과 상극인 돌계단 천국이다.
이 길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용되던 곳이다.
주말에도 사람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람 모르게
꼭꼭 숨겨두고 자기들만 쓰려고 하는 게 본능이다.
비가 오면 대부분의 등산로는
배수로 역할을 떠맡는다.
빗물로 토양이 유실되고 나면
깊게 파인 등산로엔 돌멩이와
나무뿌리만 남는다.
그러나 오늘 등산로는 신기하게도
빗물에 토사가 휩쓸려 간 곳이
거의 없었다.
전체 3km 구간에서
물길 흔적이 남은 곳은
수십 미터에 불과했다.
경사는 당연히 있었다.
군데군데 된비알도 있었다.
수태지 고도는 450.
주능선은 1000 고지.
좌우 풍광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정도로
길 양쪽 숲이 빽빽하였다.
신림봉 낙타봉 장군봉이
얼핏 보일 때도 있었다.
↓이말재.
수량이 풍부한 용무골 물을
생활용수가 부족한 부인사로 끌어오는
인공 보와 물도랑이 있었다.
과거 수천 명의 승려가
부인사에서 숙식을 해결하였다.
관개 수리시설의 끝이라는 의미에서
이말재 이름이 붙었다.
마당재에서 시작하여 수태지와 신무동으로
내려가면서 좌측에 수태골,
우측에 부인사를 거느린 능선을
'신무능선'으로 통상 부른다.
산에는 흙이 있고 바위가 있고
바람과 구름이 있다.
나뭇잎이 찰랑거리고 다람쥐가 뛰어다닌다.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운무가 피어오른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초록 나무와 예쁜 꽃들.
풀벌레들의 합창, 새들의 지저귐이 있다.
산행은 자연을 우리에게 그저 준다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연의 축복이다.
삼성암지 정자가 096-01이다.
96번은 서봉이다.
↓용무골 개울.
이 계곡 물과 수태골 물이 합쳐 용수천이 된다.
개울 건너서 좌틀하면 마당재.
우틀해야 109번으로 간다.
↓마당재로 올라가는 길. 127번은 마당재다.
어제오늘 연속 산행과 수면 부족으로
대덕화님 컨디션이 산행 초반에 별로였다.
초심님이 옆에서 차분하게 도와드렸다.
주능선에 도착하고 나서는
본래 컨디션 회복하여 거의 날아다녔다.
은풀잎님은 산에 오면
다람쥐로 변신한다.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종적을 따라잡기 어렵다.
사진 한번 찍으려면
일부러 불러 세워야 할 정도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하숙생님도 워낙 빨라서
항상 내 시야권 밖이다.
그래서 하숙생님을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출발할 때. 밥 먹을 때.
그리고 헤어질 때만 하숙생님 얼굴 본다.
거짓말 살짝 보태면.
↓나뭇가지 사이로 장군봉 꼭대기가 설핏 보였다.
겨울이 오면 산속의 바람은 사나워지고
이슬은 무서리로 변해 나무를 에워싼다.
바람조차 무채색으로 불어오는 회백색 계절 겨울,
어디에서도 생명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산죽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혹한에 맞서 펼쳐지는 산죽의 군무를 보았다면
산죽이 아직 생생한 것을 안다.
녹색 군무로 무서리를 털어내고,
싱싱한 어깨춤으로
수만 가지 리듬과 율동을 만들어 낸다.
산죽의 생명력은 질기고 억세다.
거친 토양과 바람, 혹한의 추위에도 굳건하게 버티고 이겨낸다.
꼿꼿하되 유연한 잎과 줄기는
선비의 기개와 품격을 오롯이 드러낸다.
산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우울한 마음은 사라진다.
처음에 복잡했던 마음이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정상으로 향한 마음 하나로 모아진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도인이 된다.
주능선 도착점.
109번 길이 110번 길보다 좋았다.
여기 109번에서
톱날능선 마침점 병풍재(119번 위치목)까지 1km.
오늘 도보 왕복거리는 전체 8km.
편도는 왕복에서 절반 떼어낸 4km.
그러므로
수태지에서 주능선까지 거리는 3km.
등식이 글보다 이해하기 쉽다.
(8÷2) - 1 = 3.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톱날능선.
바로 앞 데크계단이 까마득하다.
50 미터 정도를 몇 개의 계단으로
가볍게 오른다.
산행의 즐거움은 세상을 굽어보는 조망에 있다.
등산의 제일 큰 의미는 산 정상에 올라서서
멋진 조망을 보는 것이다.
그 순간만은 세상이 나의 것이 된다.
가슴이 뻥 뚫리는 호연지기를 맛보게 된다.
↓장군봉이 홀로 우뚝 솟아있다.
좌측에서부터 서봉 장군봉. 낙타봉. 성인봉.
그리고 빨간 지붕의 신림봉.
그 뒤로 보이는 대구의 부끄러움 골프장은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미정덤.
↓닭의장풀.
야생화만이 갖는 묘한 매력이 있다.
미끈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빛깔이 곱고 기품이 있다.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는다.
더 자세한 것은 금박산 후기에서.
https://m.cafe.daum.net/dobojourney/1KpX/23479?svc=cafeapp
마가목. 주능선길에 많이 보인다.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제로 너덜 바위 건너가려면 아찔하다.
숏다리(짧은 다리)의 비애를
롱다리 가진 분은 모를 거다.
바위를 올라갈 경우에는 조금 덜하다.
롱다리 1번 디딜 때
숏다리는 2번 발 뻗으면 된다.
문제는 바위에서 내려갈 때다.
최대 걸음나비(콤파스. 영어가 더 쉽다)가 한치 모자라
발이 디딤석에 닿지 않고 버둥거릴 때가 많다.
웃지 마라. 숏다리는 신경질 난다.
롱다리가 긴 콤파스와 반동 이용해서
바위 사이를 단숨에 풀쩍 건너갈 때,
단신과 과체중이라는 이중고를 겪는 사람은
바위 덩어리 부둥켜안고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숏다리인 내가 봐도 우스꽝스럽다.
저렇게 쉬운 곳을 왜 저리 어려워하나.
두 분은 두려움을 아예 모르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태생적 무서움 결핍증 환자.
ㅍㅎㅎ
겁 멸실도 순서.
무섬증 체감도 역순이다.
은풀잎 >> 초심>= 하숙생 >대덕화>>한소.
나는 죽다 깨어나도 저리 높은 곳은 못 간다.
↓발 붙이기 힘들 정도로 뾰족하게 생긴 바위가
마치 톱날 이가 어긋난 모양새로 솟아있다.
여름에는 무성한 나뭇잎 때문에
많이 가려져있다.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이 되면
삐뚤빼뚤한 바위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을 염두에 두고 톱날 능선이란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초심님과 은풀잎님 두 분만 이 바위에 올라갔다.
병풍재는 시설 공사 중.
병풍재 못 가서 데크 계단에서 점심 먹고
하산하기 위해 유턴.
옛날 길로 109번까지 돌아왔다.
거나하게 차려진 밥상은 아니지만
과일. 김밥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등에 짊어진 먹을거리가 나오면서
가벼워진 배낭은 보너스다.
먹거리를 풀어 나눔의 즐거움을 배운다.
덕분에 가벼움을 얻는다.
산 정상에서 들깻잎쌈 한 볼태기 욱여넣고 냠냠 쩝쩝.
혀의 미각세포들을 자극하는
오묘하고 충만한 맛의 소용돌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
↓계단 내려가면
데크 공사 이전에 다니던 옛길이 나온다.
이 길은 톱날능선 바위 북쪽 밑으로 나있다.
이길 걸어가면 과거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대담하고 바위에 능숙한 사람들은
톱날능선 바위 위를 통과하면서
희희낙락거리며 시끌벅적 떠들어대는데
소심하고 용기 부족한 사람들은
고개 푹 숙인 채,
풀 죽은 표정으로
샛길을 이용했다.
이 위치목들(118번~115번)은
톱날능선 아래 샛길에 있다.
왜냐면 데크 공사 이전에는
90% 이상의 등산객이
톱날능선 바위를 통과하는 대신
톱날 능선 아래 샛길을
주능선 통로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톱날 능선 바위 하단부 샛길이 끝나고
주능선길이 1개로 합쳐진다.
데크 공사가 완료되면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 팔공산의 수려한 풍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하산시작.
110번 하산길에 비해 좋다.
시작점을 찾기 힘든 게 단점이다.
그래도 눈을 부릅뜨면 보인다.
일행이 있더라도 산행길은 결국은 혼자다.
홀로 뚜벅뚜벅 걸으면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산행은 인생길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르막 내리막을 접하면서
"인생은 굴곡 많은 부침의 연속"임을 깨닫게 되고
어느새 마음 넓은 도인이 되어 있다.
마음을 열어야 자연이 보이고
흉금을 털어야 편안함이 온다.
그리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초심님은 몸이 다부지고 날렵하다.
가는그늘사초. 습기 많고 축축한 곳에 많다.
성지골 개울물에 발 담그고 한참을 놀았다.
날이 추워 알탕은 못했다.
수태지에 도착했다.
이때가 오후 4시 반.
7시간 반이 걸렸다.
은풀잎님이 커피와 떡볶이. 납작만두를 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