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향우회 주최로 안산둘레길 걷기 행사가 있었다.
서대문구 안산의 둘레길이다.
구청장이 안산 둘레길을 잘 만들어 재선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잘만들어졌고 유명해 졌다.
휠체어를 타고도 돌 수 있게 참 잘만들었다.
비가 와서 가기 싫었지만 조례초등학교 동문회를 대표하여 눈도장을 찍기 위해 참석했다.
하지만 향우회 간부들은 없고 순천산악회 명찰을 단 사람들의 행사였다.
그들이 산악회 회원을 모집하는 행사로 보였다.
과거 서울의 빈민들이 달동네를 이루며 살았던 안산.
시영아파트등 근대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서울 사람들의 똥을 퍼다 모아뒀던 곳.
21회 양재근 동문이 서대문의 터줏대감이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회장님과 나,김만수,그리고 양재근 동문이 함께 했고
우리끼리 독립문 족으로 와서 한바퀴 돌았다.
마무리도 양재근 동문 사무실에 들어가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무악재역 4번출구로 모이라했다.
원래 독립문역 4번출구에서 올라야 하는데 코스가 다른 모양이다.
무악재를 넘어 독립문쪽으로 왔다.과거 서울에서 퍼온 똥을 모아뒀던 곳도 건물이 들어섰다.
오르는 초입에 일제시대 때 서대문 형무소가 공원화 되어 있었다.
붉은 벽돌의 높은 담장은 교도소를 상징하는 듯
전두환의 12.12 때 유명해진 수방사 건물이 보인다.
안산둘레길의 고유명사는 "자락길"---임산부,노인,장애인도 걸을 수 있도록 만들었단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조국근대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오르다 보니 인왕산이 고스란히 보인다.
성하의 계절에 무성한 나무들이 정글 같다.
화장실도 외모는 예술적이다.
아카시아 숲길이다.온통 아카시아나무다.5월의 산행이 황홀할 것 같다.
음슾한 곳의 아카시아 나무엔 이끼까지 끼어 흡사 열대 정글 같다.
누군가가 산행길에 비에 물이 고여 썩는 것을 방지하려고 의자들을 세워 놨다.
가는 길에 개복숭아 나무가 많았고 열매도 많이 열렸다.
바구베기 출신 21회 양재근 동문의 안내를 받았다.
전망대가 있었다.
인왕산,북한산이 다 보였다.
청와대,무악재터널,주요건물과 시설물들이 보였다.
멀리 이 산의 정상인 봉수대가 보인다. 바위 절벽이다.
우산 쓰고 하는 산행은 처음이다.
둘레길 군데군데 정자도 몇개 있었고 운동장 시설도 있고 약수터,쉼터도 있었다.
산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상에 다녀와야 제 맛이 날 것같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이렇게 산길이고 바위길이다.
정상으로 가는 바윗길이 멀리 보인다.
약수터를 볼 때마다 먹고싶지 않아도 한 모금 하는 것이 산행인의 예의이다.
운동시설도 두 군데 있었다.둘레길 개발 전부터 이 곳은 유명한 곳
그나마 이런 산 속을 걸어야 도시의 묵은 때가 조금은 벗겨질 것이다.
20회 동창모임도 이곳에서 한 번 해야할 것 같다.
반 정도 왔다는 지점이다.쉬지않고 돌면 두 시간 걸리는 길인데 한 시간째 걷던 곳
지나가는 등산객보고 찍어 달랬다.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 많지만 이런 조림사업도 업적이다.수십년이 흐른 뒤 우리가 혜택을 보게 됐다.
메타세콰이어 숲속에 데크시설로 넓게 쉼터를 만들어 놨다.광장이다
저런 산길에 벤치를 드문드문 두어 숲을 체험하게 해야 하는데
이 또한 60~70년대 조림사업의 결과 소나무 숲
몸이 불편한 부모 모시고 효도할 수 있는 길이다.
과거 이 곳까지 길이 있었던 곳을 포장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시비가 있었다.
이 곳 안산에도
시골에서 무작정 올라와 몸으로 먹고살던
도시빈민들이 천막치고 얼기설기 집짓고
생계를 꾸려나가던 달동네 촌이 많았단다.
정부에서 시영아파트를 지어 이들을 수용하려 했고
정작 그들은 입주권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가 또 달동네를 이루고 살았다.
집을 줘도 들어가 살 형편이 못됐던 것
조국 근대화의 뒤안길에는
이렇게 몸이 부셔져라 일한
30,40년대생의 세대가 있었다.
도시개발과 정비는
경제력이 없는 빈민들을 계속 내몰았다.
그들 나름대로 보금자리를 이루고 살게
두지를 않았다.
그들에게는 86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이
잔치가 아니라
삶의 고통과 무게를 더해주는
아주 좋지않은 행사였을 것이다.
이 두 행사 때문에 보금자리에서 쫏겨나야 했으니까!
멀리 구기터널 지난 북한산자락이 보인다.
자락길이 없을 때 시민들이 오르던 여러 갈래의 산길이 있었다.
그런 길 중에는 달동네 주민들의 생활길도 많았을 것이다.
열대우림 지역의 정글 같다.
인생은 하염없이 걷는 것
중국 황산의 절벽길처럼 수평을 맞추기 위해 다리를 놓아 만들었다.
안산초등학교 운동장이 보인다.
내려가는 길도 금강산길처럼 지그재그로 데크를 만들었다.
과거 달동네 흔적이다.담장과 굴뚝이 그대로 남아있다.
비가 온 후라 계곡의 맑은 물이~~
서대문 형무소 공원이 고스란히 내려다 보인다.출발점에 다 왔다
인왕산 정상에는 군시설과 성곽이 보인다.
중국 서안의 화산 절벽길처럼 가파른 산 옆으로 이렇게 대크를 만든 것이다.
자연 그대로~~
과거 시영아파트 흔적.
절벽위에 위태롭게 건설했다.
9평인데 방이 두 개였다.18만원이면 살 수 있었다.
담쟁이 넝쿨도 잘라서 술을 담궈 마신단다.-소나무를 타고 올라간 것이 약효가 좋단다.
고사목이 담쟁이 넝쿨의 요람이 됐다.
시영아파트 흔적
계단식 아파트에 난방은 연탄이었다.
21회 양재근 동문 사무실인 경성렌트카로 들어가 쉬었다.
비와 더위에 두 시간 쉬지않고 걸은 힘든 몸을 쉬게해 줬다.
에어컨과 선풍기와 수박으로 피로를 푼 다음
양재근 동문이 익숙한 솜씨로 햇반과 삼겹살을 사무실에서 구워 점심으로 내 놓았다.
아주 멋지고 맛있는 점심이었다.
독립문 역으로 오는 과정에서 독립문을 보았다.
독립문 역시 공원화 됐다.파리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었다니~~
시민 생활에 있어 광장과 문은 중요한 시설물이다.
군중을 선동하고 교육하고 홍보하는데
광장은 필요했고
거대한 에술이자 건축물인 문은
권위의 표상이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며
정권을 향해 정신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구조물이다.
그래서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광장과 거대한 문이 많다
특히 유럽---로마시대때부터
이 두 시설물은 발전돼 왔다.
많이 배우고 돈이 많은 집 자식들
지식인들의 이기심은
이승만 서재필에게도 있었다.
건국의 아버지.독립운동가 등으로 표현되지만
그들의 개인 이익 우선주의는
역사의 재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교육수준이 아주 낮았던 그시절
이 두 인텔리는 화려한 스팩으로 지도자
반열에 올랐고
그들은 솔직히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과 가문을 위한 이기심이 앞섰던 면도
많았다.하지만 지금도 그러는데 그 때에도
학력은 애국심에 앞선 평가수단이었다.
서재필 머리위의 비둘기--무슨 생각을 할까?
독립운동을 하다가 숨져간 애국자들의 영령을 모신 곳
유명하지 않았지만 같은 목적으로 순국한 애국지사들이 엄청 많았고
그들의 힘으로 독립이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안중근,김구,윤봉길 등 처럼 유명해지지는 않았어도
같은 가치의 목숨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숨져간 애국지사들을 생각하다.
첫댓글 선배님, 정말 대~~~단 하십니다.
그날 함께하지 못했지만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