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라퍼
“제발, 제발 좀 옛날의 당신 모습으로 돌아와 줘! 다소곳 하게 내 말에 순종하던 당신의 모습은 어딜 간 건지? 계획은 물론, 상의도 없이 혼자 일을 벌이고 무조건 밀어 붙이고.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어. 나도 젊은 나이가 아닌데. 노인인데.....”
남편의 푸념은 매일 똑같다. 늘어진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나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믿고 하는데 남편의 고질병인 보호본능이 시도 때도 없이 작동하여 스스로 구덩이를 파 놓고서 원망의 화살은 언제나 나를 향한다.
나이 들면 남편은 모름지기 황희정승이 되어야 살아남는지 아직도 모른다. 마누라의 말에는 항상 이래도 옳소, 저래도 옳소로 일관해야한다. 순간 손바닥 뒤집듯이 변덕을 부려도 바로 수정모드로 들어가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진주에서 알게 된 한 살 어린 교대 후배, 기선이의 딸 결혼식이다. 혼사가 결정되기 전부터 나의 오지랖은 부팅이 시작되었다.
상견례를 하기 위해 자기가 입을 옷을 골라 주러 진주 롯데몰로 오라던 기선이의 부탁, 열 일 제껴 두고 갔다. 기선이가 찜 해 두었다는 아이작바바의 원피스는 상견레 옷차림으로는 좀 날렸다. 5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기에는 좀 뭣한 옷이기도 하고.
하이힐은 못 신으니까 점잖은 구두고 사야한다는 말도 했고 남편의 와이셔츠와 양복, 넥타이와 구두도 골라 달라고 했다.
남편 옷과 신발은 선택이 어렵지 않았다. 넥타이는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애들 아빠가 혼사 때 맸던 걸 보내 주기로 했다.
기선이의 옷과 신발은 내 것을 빌려 주기로 했다. 그 옷차림에 맞는 핸드백도.
점잖은 크레송 원피스 앙상블과 발리 구두, 페라가모 핸드백을 기선이 남편이 맬 넥타이와 함께 택배로 보내 주었다.
고민스럽지 않게 옷을 마련하고 편하게 상견례를 잘 마쳤다고 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을 것을 언니를 꼬셔 이바지 음식도 해서 서울로 올려 보냈다.
서울 사돈댁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사양했지만 새벽에 만든 싱싱하고 맛있는 자연산 생선꾸러미와 해물 상자에 온 가족을 불러 사진을 찍게 하고 인정샷을 보내왔다.
그 반향이 너무 좋았던지 신이난 기선이는 폐백음식과 답례봉투까지 꾸려 달라고 한다.
나는 혼자 다 할 것처럼 흔쾌히 콜!
문제는 갑자기 나가게 된 기간제교사다.
퇴근하고 일을 하려니 시간도 부족하고 체력도 딸린다.
우리 언니는 물론 약국일을 보는 마리아언니까지 불렀다. 마리아 언니는
“내가 쪼꼬미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이사 가고 싶다. 이 무슨 일이고? 그렇게나 일이 하고 싶나?”
물론이다. 나는 일 하는 거 엄청 좋아한다. 일을 하면 신이 난다.
자정까지 폐백음식을 만들고 서울까지 오가는 음식답례봉투 80개를 꾸렸다.
물론 내용물의 대부분은 기선이가 부산 깡통시장을 접수해 택배로 보내 온 일본 과자가 대부분이다.
없는 게 없다. 빵도 뚜레쥬르 통영 한진점에 카스테라를 시켜 두었다. 통영 이마트에서는 생수와 음료까지. 언니와 나는 컵과일을 만들어 각을 세워 꾸며 넣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기선이가 딸의 혼사가 이루어진 게 얼마나 신이 났던지 과자 개수를 엄청나게 보냈다는 점이다. 야시 같이 기똥찬 맛들을 골라 있는대로 사다보니 정작 투명봉투에 넣을 때 예사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보고 어이가 없는지 쳐다만 보고 있다. 잔소리를 할까봐 얼른 술상을 차려 갖다 바쳤다.
새벽에 까사베르데에 가서 과일케익을 만든 것에 꽃과 덩굴식물로 가디쉬를 했다. 흐르지 않는 분홍색 파스텔톤의 초로 하나 꽂고.
모든 것을 우리 승합차에 실었다. 한 차 가득이다. 진주까지 도착하니 공설운동장 앞에 28인승 버스가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남편은 2호차 도우미로 배정되어 있었다.
간결한 말로 혼주를 대변한 인사를 하고 혼주의 성의도 전했다.
남편은 이 나이에 그걸 자기가 굳이 해야겠냐며 ㅈ짜증을 부렸다. 그러더니 결혼식을 마치고 오면서 다른 말을 했다.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고 자기가 한 일도 그 아름다운 일을 하는데 조금은 보탬이 된 것 같다며.
신랑, 신부 아버지의 주례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은 모든 이를 숙연하고 고귀하게 만들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통영에 도착하니 새별이었다.
온 몸이 부셔지는 것 같아 차에서도 자기 전에도 몸살 약을 먹었다.
몸은 욱신거려도 아펠가모 웨딩호텔의 폐백 수모분의 칭찬에 ㄱ입이 귀에 걸렸다.
“폐백음식 숱하게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정갈한 음식은 처음 보내요. 가운데 과일 꽃꽂이는 누구 아이디어 인가요?”
속으로 저요저요 했지만 참았다.
너무 나대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