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
< 성석제 장편소설 ‘투명인간’을 읽고 >
2018.2.
너와 나 우리는 모두 같은 존재(성석제의 투명인간을 읽고).hwp
더불어 차 상 희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는 단연 ‘미투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용기를 내어 자신이 겪었던 힘겨운 일들을 대중들에게 고백함으로써 그로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미투 운동은 성적 발언과 행동뿐만이 아니라 문학, 방송, 영화, 체육계로 확대되고 있다. 하룻밤이 지나면 또 다른 입에 담기도 힘든 사실들을 마주하게 되는 나날들이다. 지금 한창 열리고 있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스포츠로써 정정당당하게 흘린 땀의 대가를 겨루는 것이 아니라 파벌과 권력의 관계 속에서 선수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을 대하게 된다. 나는 미투 운동에 참여하게 된 많은 이들이 어쩌면 투명인간으로 살다가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에서 돈, 권력, 사회적 관습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마치 없는 듯이 취급되었던 만수와 그의 가족들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 역시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한 편이었고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나의 이런 못 본척하는 태도 역시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감히 입에 담지도 못했던 사실들이 이제는 다큐멘터리로 영화로 제작되어 우리가 과거의 진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렇게 조금씩 혼자 또는 소수가 정의를 위해 싸웠다면 이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인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고 더 많이 가졌고 더 특권을 누려야만 한다는 생각들이 타인과 나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서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시스템과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한창 미투 운동으로 인한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고백이 이어지는 사회적인 현상을 보면서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는 기운이 느껴진다. 다만 용기 내어 고백한 사람들이 호기심의 대상으로 또는 언론이나 다른 관계들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타인의 삶에 대해서 나의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관심이 아니라 타인의 삶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줄 수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와 나의 관계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가족, 사회, 그리고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고 우리는 같다는 동질감이 투명인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써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길이 아닐까한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는 그의 곁을 스쳐가는 행인이며 자전거를 탄 사람, 차량 운전자 수천 명에게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보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 - P. 10 -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 - P. 11 -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리라. 천분을 넘어서는 것을 욕심내지 마라. 욕심이 과하면 탐심이 생긴다. 탐심은 남의 것을 훔치게 만든다. 도둑질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면 안 된다. 필요한 것을 약속하고 빌려라. 먼저 말을 하고 구하면 얻으리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훔치는 건 안 된다. 훔치지 마라. 훔치고 나면 너는 네 것을 모두 도둑맞게 된다. 네 삶을 도둑맞는다. 그러면 너에게 무엇이 남겠느냐.‘ - P. 28 -
'뭘 쓴다는 것은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사람에 대한 생각, 감정, 어떤 순간을 문장으로 표현하면 조금 더 그게 선명하게 보이고 정리되고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 - P. 237 -
‘나는 오래도록 신용불량자였고 그때 은행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투명인간이었다. 사실 돈 모아서 부자 될 게 아니고 남들한테 자랑할 게 아니면 돈 많이 필요 없다. 투명 인간이 되면 어차피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돈 많이 필요 없다. 투명 인간이 되면 어차피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옷 자랑, 돈 자랑, 피부 좋다 자랑할 일이 뭐 있는가. 기본적인 생활만 해결되면 끝이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고 댓가를 번다.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그게 편하고 사람 사는 노릇을 하고 산다는 기분을 안겨준다.’ - P. 363 -
'죽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사는 게 훨씬 쉽다. 나는 한 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지하고 지켜줘야 한다. 내가 포기하는 건 가족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내 생명보다 귀한 사람들, 어머니, 누나들, 나의 아내, 동생들, 나의 아들, 그리고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 아버지, 형님까지 모두 그렇다. ‘
‘단지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거다.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나기를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은 나의 뿌리이고 울타리이고 자랑이다. 나는 그들이 정말 좋다. 지금도 그렇다.’
- P. 365 -
‘이렇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식구들 건강하고 하루하루 나 무사히 일 끝나고 하면 그게 고맙고 행복한 거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에도 가만히 참고 좀 기다리다보면 훨씬 나아져요. 세상은 늘 변하거든. 인생의 답은 해피엔딩이 아니지만 말이죠, 난, 난...’ - P. 367 -
‘소설은 위안을 줄 수 없다.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함께 느끼고 있다고, 우리는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써서 보여줄 뿐.’
- 성석제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