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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은 전반적 상황이 다윗이 아닌 저자가 쓴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셋쨰 하늘과 깊음에 대한 비유적 묘사가 6절에 등장합니다.
43장은 적그리스도에 대해 다루며(1절), 천년왕국의 빛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3절).
44장은 굉장히 예언적인 성격이 강한 시편인데 여기에서 대환란 예언의 금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발견되는 '다니엘의 칠십째 주'의 교리적 묘사들은 셋째 하늘에서 어린 양의 혼인식이 진행되는 동안(시 45장) 땅에 있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시편 42장>
1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
2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오니 내가 언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겠나이까?
3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밤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
4 내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 내 안에 있는 혼을 토해 내나니 이는 내가 전에 무리와 함께 갔었고 거룩한 날을 지키는 무리와 더불어 기쁨과 찬양으로 소리지르며 하나님의 집으로 갔었음이니이다.
5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그를 찬양하리라.
6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 혼이 내 안에서 낙담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인들의 땅과 미살 산으로부터 주를 기억하리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뒤덮나이다.
8 낮에는 주께서 그의 자애를 베푸실 것이요, 밤에는 그의 노래가 나와 함께 있으리니 내 기도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드려지리로다.
9 내가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퍼하며 다녀야 하나이까?” 하리라.
10 칼로 내 뼈를 찌름같이 내 원수들이 나를 비방하며 그들이 날마다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도다.
11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
<시편 43장>
2 주는 내 능력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어찌하여 주께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퍼하며 다녀야 하나이까?
3 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셔서 그것들로 나를 인도하게 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들로 나를 데려가게 하소서.
4 그때에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의 지극한 기쁨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리이다. 정녕, 오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하프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내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
<시편 44장>
코라의 아들들을 위하여 악장에게, 마스킬.
1 오 하나님이여, 옛날, 곧 우리 조상들의 날에 주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일러주기에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으니
2 즉 주께서 어떻게 주의 손으로 이방을 내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심으셨으며 주께서 어떻게 그 백성을 괴롭게 하시어 그들을 쫓아내셨는가 하는 것이니이다.
3 그들이 자기들의 칼로 땅을 얻어 소유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된 것이니 이는 주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니이다.
4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을 위하여 구원을 베푸소서.
5 우리가 주를 통하여 우리 원수들을 누르고 주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들을 밟으리이다.
6 이는 내가 내 활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요, 내 칼도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7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 우리가 온종일 하나님을 자랑하며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나이다. 셀라.
1 수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는 것같이 오 하나님이여, 내 혼도 그처럼 주를 갈망하나이다.
2 내 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갈망하오니 내가 언제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서겠나이까?
3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에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니, 내 눈물이 밤낮으로 내 음식이 되었나이다.
4 내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 내 안에 있는 혼을 토해 내나니 이는 내가 전에 무리와 함께 갔었고 거룩한 날을 지키는 무리와 더불어 기쁨과 찬양으로 소리지르며 하나님의 집으로 갔었음이니이다.
5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의 얼굴의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그를 찬양하리라.
6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 혼이 내 안에서 낙담하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인들의 땅과 미살 산으로부터 주를 기억하리이다.
1-2절, 다윗은 제사장이 아니기 때문에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는데 '하나님 앞에 서겠나이까?'(2절)라고 묻기에 이 구절은 설명하기에 교리적으로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뜻도 아닌 것 같습니다.
3절,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절), 이 구절은 다윗이 개인적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 그가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 시편 기록자가 다윗이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혼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고 명절에 대해 갈망하는 것(신 16:16)이 아닙니다. '내 눈물이 음식이 되었나이다'는 시편 6:6과 마찬가지로 비유적 표현입니다.
4절, '내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란 기도 응답이 되지 않는 것과 그의 주변에서 '그분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마 27:43).
5절, '그의 얼굴의 도우심'은 기도 응답이 그분 앞에(2절)서 나타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주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시고 네게 은혜로우시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그의 얼굴을 네게 드시고 네게 화평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라(민 6:25,26).
6절, '내 혼이 내 안에서 낙담하나이다' 42장의 혼은 낙담한 혼이고 불안해하는 혼이며, 토해내진 혼이고 갈망하는 혼인데 그 배경에는 갈보리가 숨어 있습니다. '요단 강과 헤르몬인들의 땅과 미살 산'은 다윗과 연결짓기 어려운 지명들인데 다윗은 요단을 건너기는 했어도 거기서 '하나님을 기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헤르몬인들 가운데 있는 어떤 산을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미살은 헤르몬 산 근처의 어떤 작은 산이라고 추측되지만 성경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시편 기록자가 누구든 간에 그는 떨어진 세 장소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 헤르몬인들의 땅: 이 장소는 환란 때 셋째 하늘의 모형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때 그곳에 있습니다(솔 4:8).
2. 요단 땅: 요단은 죽음의 모형으로 기적적으로 건너는 일이 세 번 벌어진 곳입니다(여호수아, 엘리야, 엘리사).
3. 미살 산: 이 장소는 확인되지 않으며 그것이 작은 산이라면 시편 65:12나 72:3에 나오는 곳 중 하나일 것입니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음이 깊음을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뒤덮나이다.
8 낮에는 주께서 그의 자애를 베푸실 것이요, 밤에는 그의 노래가 나와 함께 있으리니 내 기도가 내 생명의 하나님께 드려지리로다.
9 내가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어찌하여 주께서는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퍼하며 다녀야 하나이까?” 하리라.
10 칼로 내 뼈를 찌름같이 내 원수들이 나를 비방하며 그들이 날마다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는도다.
11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
7절, '깊음'은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 사이에 있는 큰 물층을 말하며(창 1:2) 재림하시는 주의 군대가 그 깊음을 통과해서 아래로 내려오는 곳입니다(사 51:10; 63:13).
주께서는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셨으며 물들 가운데 있는 용들의 머리들을 부수셨나이다(시 74:13).
'주의 폭포 소리'는 많은 물 소리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뒤덮나이다'는 하나님의 죄인에 대한 진노(욘 2:3, 시 88:6)를 묘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는데 그것을 '침례'(물에 잠기는)(마 20: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노의 침례'를 받기 전에 침례인 요한에게서 물침례를 받으셨습니다(마 3:16).
그의 발은 용광로에 달군 듯한 빛나는 놋 같고,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계 1:15)
8절, 시편 42편의 저자는 자기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고 있고(8절), 동시에 그분의 자애(9절)로 인해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늘에서, 깊음에서, 죽음에서, 미살에서.
'밤에는 노래로'(욥 35:10)는 겟세마네로 가는 길에서(마 26:30), 감옥 속에서(행 16:24-25), 그리고 우리가 누워있는 침대에서(시 149:5) 불리는 노래입니다.
9절, 원수(적그리스도)가 압제하는 동안 '반석'이신 분께 붙어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10절,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조롱섞인 질문은 대환란 때 악인들이 이스라엘 남은 자들에게 하는 말인데 그때 이미 환란 성도들의 피가 엄청나게 흘려진 다음에 던지는 질문입니다.
어찌하여 이방이 말하기를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해야 하나이까? 주의 종들의 흘린 피를 갚아 주심으로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가운데 주를 알리소서(시 79:10).
어찌하여 이방으로 말하기를 “지금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게 하리이까?(시 115:2)
11절, 5절과 약간 차이가 있는데 '얼굴의 도우심으로' 대신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으로 바꾸어 5절을 되풀이했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이 나타나서 도우시고 그 결과로 11절에서는 시편 기록자의 얼굴이 회복됩니다.
2 주는 내 능력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어찌하여 주께서 나를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가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퍼하며 다녀야 하나이까?
3 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셔서 그것들로 나를 인도하게 하시며 주의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들로 나를 데려가게 하소서.
4 그때에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의 지극한 기쁨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리이다. 정녕, 오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하프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5 오 내 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담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내 안에서 불안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내 얼굴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요, 내 하나님이신 그분을 내가 여전히 찬양하리라.
1절, '불경건한 민족'과 '불의한 사람'은 마지막 때를 언급한 것인데, 그때 민족들은 '열 왕'(계 17:12)의 통치를 받으며 열 왕은 '불의한 사람'을 우상 목자(슼 11:17)로 따를 것입니다.
화자는 주님께서 속히 재림하셔서 시온의 논쟁에 대한 보상을 집행해 주실 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분발하시사 나의 심판을 위하여 나의 송사를 위하여 깨소서(시 35:23).
이는 주의 보복의 날이요, 시온의 논쟁에 대한 보상의 해라(사 34:8).
2절, 이 구절도 교리적으로 대환란 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3절, '주의 빛'(요 1:1-6)과 '주의 진리'(요 17:17)를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 재림 때 나타나서 천년왕국 떄 세상을 채울 빛입니다.
완전한 아름다움인 시온에서 하나님께서 빛을 발하셨도다(시 50:2).
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로 다시 돌이키시어 주의 얼굴을 비추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구원을 받으리이다(시 80:3).
흑암에서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으며, 죽음의 그림자의 땅에 거하는 자들 위에 빛이 비치었도다(사 9:2).
일어나라, 빛을 비추라. 이는 네 빛이 왔고, 주의 영광이 네 위에 솟아났음이라(사 60:1).
'주의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은 천년왕국의 '거룩한 산'(사 62:1)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분의 '말씀(word)'이고(요 17:17), 말씀은 '말씀들'(words)로 이루어져 있으며(요 8:47, 행 24:1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그분의 성호들 위에 높이셨습니다(시 138:2).
4절, '하나님의 제단'은 B.C.1000년에 거기 있었고 A.D.30년에도 있었듯이 천년왕국 때도 땅의 예루살렘에 있게 될 것입니다(겔 40:46).
1 오 하나님이여, 옛날, 곧 우리 조상들의 날에 주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일러주기에 우리가 우리 귀로 들었으니
2 즉 주께서 어떻게 주의 손으로 이방을 내어쫓으시고 우리 조상들을 심으셨으며 주께서 어떻게 그 백성을 괴롭게 하시어 그들을 쫓아내셨는가 하는 것이니이다.
3 그들이 자기들의 칼로 땅을 얻어 소유함이 아니요, 그들의 팔이 그들을 구원함도 아니라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된 것이니 이는 주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니이다.
1절, 대환란과 관련된 44장에서 '조상들의 날에 주께서 행하신 일'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당시의 사건과 유사한 일들이 대환란 때 또 일어날 것처럼 서로 비교하는 것(히 3,4장)을 비로소 이해하게 됩니다.
2-3절, 2절은 여호수아 하에서의 카나안 정복을 언급한 것인데 대환란 때는 '여호수아 대신 예수'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여호수아는 예수의 히브리어 표현). 3절도 여호수아 정복전쟁 때 일어난 일을 묘사한 것인데 재림하실 주님께서는 '주의 오른손과 주의 팔과 주의 얼굴의 빛'으로 끝내실 것입니다.
그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가졌고 또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가진 칼이 나오며, 용모는 해가 그 맹렬한 기세로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6).
4 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왕이시니 야곱을 위하여 구원을 베푸소서.
5 우리가 주를 통하여 우리 원수들을 누르고 주의 이름을 통하여 우리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들을 밟으리이다.
6 이는 내가 내 활을 의지하지 않을 것이요, 내 칼도 나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7 그러나 주께서는 우리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8 우리가 온종일 하나님을 자랑하며 주의 이름을 영원히 찬양하나이다. 셀라.
4절, '나의 왕'이신 분으로 언급되면서 '야곱을 위하여'라고 전환되기 때문에 이 분은 '야곱의 왕'이신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즉 화자 개인의 간구 속에 이스라엘 민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송사를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의 강력한 주장을 내어 놓으라(사 41:21).
나는 주요, 너희의 거룩한 분이며, 이스라엘의 창조주요, 너희의 왕이니라(사 43:15).
무천년 신학자들이 '시기심'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의 왕'이 아니시고 '교회의 왕'이라 주장해도 '야곱'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이름이며 이방인 교회가 아닙니다.
5절, 이것은 재림 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 또는 유대인 환란 성도들이 원수들을 누르고 승리하는 광경을 묘사한 것입니다(말 4:2-3). 이스라엘 남은 자들은 주의 '전쟁 도끼와 무기'가 되어서 적그리스도를 멸하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또 너희는 악인들을 짓밟으리니, 이는 내가 이것을 행하는 날에 그들이 너희 발바닥 밑에 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말 4:2-3).
야곱의 분깃은 그들과 같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만물의 조성자시요, 이스라엘은 그의 유업의 막대기임이라. 만군의 주가 그의 이름이라.
너는 나의 전쟁 도끼요 전쟁의 무기라. 내가 너와 더불어 민족들을 산산조각내며 내가 너와 더불어 왕국들을 멸하리라.
내가 너와 더불어 말과 그 탄 자를 산산조각내며 내가 너와 더불어 병거와 그 탄 자를 산산조각내리라.
내가 또 너와 더불어 남자와 여자를 산산조각내며 내가 너와 더불어 늙은 자와 어린 자를 산산조각낼 것이요, 내가 너와 더불어 청년과 소녀를 산산조각내리라.
내가 또 너와 더불어 목자와 그의 양떼를 산산조각내며, 내가 너와 더불어 농부와 그의 소의 멍에를 산산조각낼 것이요, 내가 너와 더불어 대장들과 치리자들을 산산조각내리라(렘 51:19-23).
6-8절,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고'(눅 1:70-74)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5-7절은 교회시대와 대환란 시대의 유대인의 처한 상태와는 상반됩니다. 나치 포로수용소에 있던 정통파 랍비들이 시편 44:7; 91:7; 107:19-20; 115:14-15; 116:6-9; 118:10-13을 설교하며 그 구절들을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신들에게 적용하려고 애쓰는 것을 상상해 본다면 왜 많은 유대인들이 전후에 '무신론자'로 전향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게 됩니다. 개신교도도 마찬가지로 성경을 시대를 구분하여 읽지 못하면 많은 것을 오해하게 되고 결국 성경을 불신하게 됩니다.
주께서는 세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있었던 자기의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같이
우리의 원수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려 하심이라.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자비를 행하시며 그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라. 이는 우리를 우리 원수의 손에서 구해 내시어 두려움 없이 주를 섬기기를,(눅 1:70-74)
재림 때 유대인들은 '온종일 하나님을 자랑'할 것이며 그 분의 왕국에서 주의 이름을 찬양할 것입니다. 시의적절하게 재림의 표식인 '셀라'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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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