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격동하는 일을 경계할 것(當戒激動)
시편 106:32-33
激動何也? 卽使人忿怒也. 對不正事發不正心者也. 妨神內住害神充滿者莫此爲甚. 據民數記二十章一 - 十三節, 則當時民衆不堪飢渴, 反逆于上帝及摩西, 其時神欲救濟, 而摩西及亞倫反發激怒, 故摩西因此被害, 摩西果如何人也? 彼卽秉至上之權而治民衆者也, 彼盡忠于上帝之家, 卽上帝之老僕也. 四十年旅行于曠野, 而今禍害臨于彼之頭上也. 我儕亦同彼遭阨乎? 摩西之遭阨, 失其榮冠者也. ◇或以此歸告于民衆者有之, 而民亦不無過失, 民衆發惡, 激摩西之心, 摩西不忍忿憤之心, 反發激怒, 彼以此而失莫大之榮光也. ◇今吾人或認此爲義, 憤然於神之前, 爲可憎者, 與神之交通, 及爲神奉仕之事, 爲一大障碍物, 吾人當念之哉. 又據出埃及記十七章, 則摩西於四十年前, ◇擊盤石之時, 民衆求水, 發怨行惡, 圍神之僕, 摩西發極惡之言, 而摩西少不動念, 專委于上帝之手, 神果降臨救彼, 由此觀之, 則當靜恬俟神來臨可矣. 然如發激怒, 則神不能臨御, 是魔激之故也. ◇此時不失一步而敵魔, 則永遠勝利, 魔知此故伺機激動, 使之發怒, 然神主張我體, 則能敵惡魔而猶有餘力矣. 此民數記二十章六-七, 與出埃及記十七章內矣. 時摩西及亞倫, 呼訴于神前, 至十節則不正之魔, 侵入于摩西之心內, 彼當命令于盤石, 而反以杖擊盤, 發怒于民衆曰, 反逆之衆乎, 口發妄言, 然而神久忍惡者, 而使摩西爲己僕, 使之久忍, 反不能忍而激怒, 貽汚神性, 預言者心內之罪藪, 使惡者之眼, 不能視神忍耐之聖性矣. 於路加福音九章五一-五五. 撒馬利亞人不迎耶蘇, 其不正之靈入弟子之心, 請主降火滅之, 此決非聖徒所持之心, 爲神所悲痛者. 今日神亦降鎧甲, 吾等之心亦有此不正者乎? 此吾莫大之損害也. 吾等當沈黙不動不受魔激可也. 馬太二十六章四十七節, 以下, 彼得以聖徒, 亦發激怒而奮鬪, 故主警戒曰, 我欲復讐, 則天軍必來助我, 命使鞱劒. 主欲治完傷耳, 而吾等欲削之者也. 主猶赦猶大之罪, 而呼曰親舊, 太二十六章五十. 主於苦痛中猶發此言. 或曰吾等若如此, 則皆爲無骨蟲云, 甚不然. 五旬節日, 彼得聖神充滿, 能說敎悔改, 不如前日削耳之彼得矣. 故激怒者一時, 而使人錯過一生矣. 吾等愼勿被擊, 吾等妝未至天國在地上, 學主心法, 常虛心企待可也. 主使吾環境發惡, 日日練我等之信心果不動搖乎, 小不忍亂大謀, 彼果爲神之選器乎? 主在架上, 有遺七言, 讀此七言而不覺心悚兌乎? 赦彼彼不知也, 此言何等聖嚴也?
격동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것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일을 상대하여 올바르지 못한 마음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정신이 안에 있으면서 해로운 정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에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민수기 20:1-13에 근거해 보면 그 당시 백성들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과 모세에게 반역하였는데, 그 당시 하나님께서 구원하려 하였으나 모세와 아론이 반발하고, 격노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것 때문에 피해를 입었습니다.
모세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가장 높은 권력이 있었으며 백성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40년간 유랑하였으나 그를 해치는 화가 그의 머리 위에 다가왔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와 함께 재난을 당해야 합니까? 모세가 만난 재난은 그의 영광의 관을 잃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백성에게 돌아가서 고한 자도 있었으니 백성도 과실이 없지 않았습니다. 백성이 반발하며 모세의 마음을 격동시키자 모세가 분노의 마음을 참지 못하여 격노하다가 이것 때문에 막대한 영광을 잃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의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서운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가증스럽게 하나님과의 교통함과 봉사에 장애물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염려해야 합니다.
또 출애굽기 17장을 근거해 보면 이렇습니다. 모세가 40년 전에, 반석을 지팡이로 쳤을 때 백성들이 물을 구하면서 원망하며 하나님의 종인 모세를 에워 싼 뒤에 나쁜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조금도 마음을 흩트리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이 임하셔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고요히 하나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격하게 성을 내면 하나님은 오실 수 없습니다. 이는 마귀가 격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때 실수하지 않고 마귀와 대적하면 영원히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다가 격동시켜서 분노를 발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주장하시면 능히 악마와 대적하고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는 민수기 20:6-7과 출애급기 17장 에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 앞에 호소하였는데, 민수기 10절을 보면 마귀가 모세의 마음에 침입하였습니다. 모세는 마땅히 반석에 명령하여야 하는데 반대로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치며 백성을 향하여 성을 내며 ‘반역한 무리들이라’고 망언(妄言)을 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모세를 자기의 종으로 삼고 오래도록 참았지만, 드디어 참지 못하고 격노함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더럽히고 예언자의 마음속에 죄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참으시는 거룩한 성품을 볼 수 없게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51-55에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한 영이 제자의 마음에 들어가서 주님에게 불을 내려 멸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결코 성도의 마음이 아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비통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늘에서 투구와 갑옷을 내린다면 우리의 마음도 역시 이와 같이 부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는 막대한 손해가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침묵하고 동요하지 않아서 마귀의 격동을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26:47에 베드로가 성도(聖徒)로써 격노하여 분투하였지만 주께서 경계하셨습니다. ‘내가 복수하려고 하면 천군(天軍)이 반드시 와서 나를 도울 것이다’ 하고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칼에 잘린 상한 귀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유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며, 그를 ‘친구’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50). 주님은 고통 중에도 오히려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그와 같이 하였다면 모두 소갈머리도 없는 무골충[無骨蟲]이라’고 하지마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순절날 베드로에게 성신(聖神)이 충만하여 회개에 대해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날 병사들의 귀를 베던 베드로와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격노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일생을 그르치게 합니다.
우리들은 신중히 하여 공격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을 이 땅위에 이루게 하여 주님의 마음을 배워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동요하지 않도록 연단시키십니다. 작은 것을 인내하지 못하면 큰 계획이 어지러워집니다.
주께서 십자가 상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곱 개의 말씀을 읽으며 두려움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으나, 그들은 ‘저 사람은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 말이 얼마나 거룩하고 엄숙한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