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우리의 미래관 / 고린도후서 3:5-18
바울 사도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영광을 발견하고 기쁨 가운데 노래하며 열세 번이나 영광을 찬미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래에 받을 영광이 풍성할 것을 바라며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 뿐만 아니라 유대인 전체가 이러한 희망 가운데 살다가, 더러는 믿음을 잃고 떨어진 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허락이었습니다.
지중해 동북쪽 구릉에 한 고목이 있었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심고 믿음의 샘물로 물을 주며 피와 눈물로 비료를 삼아 가꾸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고목은 잘 자라 잎이 피고 꽃이 피고 가지가 성할 때에는 엘리야 이하 여러 선지자를 배출하여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믿음이 식어져 잎과 꽃, 가지까지 모두 사라졌고 생명마저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은 큰 곤란을 겪으며 장차 한 위인이 나와 왕국을 건설하고 나라를 찾아 민족을 다시 구해낼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목의 줄거리로서, "내가 바로 너희가 바라는 그 위인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오히려 그분을 핍박하여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장차 위인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지금도 유대인끼리 혼인하고 잡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이 많으니 장차 돈으로 나라를 살 것이라 믿으며 모여들기 시작했고, 지금의 이스라엘 나라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관점이 어떠한가? 우리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습니다. 다만 과거의 요순이나 공맹을 희망할 뿐이며, 조상을 의지하고 소위 "해골 양반"이라 칭할 뿐이며, 내생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없습니다. 조상 산소를 잘 쓰면 자손이 잘된다고 믿고, 그렇지 않으면 정감록을 믿으며 거기에 남조선의 새 나라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 새 나라가 있다고 믿어 동학을 창설하여 조선의 대접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선전하고, 또한 정치에서 쫓겨난 이들에게도 선전되어 한때는 상당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이를 사교라 하여 교주를 처벌하여 죽이자, 이후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많은 이들이 다시 그 새 나라가 거기 있다고 믿다가, 대원군 교옥 사건에서 수십만 명이 죽자 더 이상 그곳에 새 나라가 없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고목과 같습니다. 꽃도 없고 잎도 없습니다. 다른 나무의 꽃과 잎을 빌려다가 이 고목을 장악하고 이를 생명 있는 것으로 믿으니, 언제나 희망은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이어야 합니다. 이 나무에 생명이 있어야만 미래가 있습니다. 물건이 없으면 내가 만들어 쓰고, 남의 것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문자도 내 것을 귀하게 여기고 남의 글만 배우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도 내가 만들어야 합니다. 내 것이어야만 생명과 미래가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