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연고
권 순 경
긴가민가하며 연고를 발랐다. 발바닥에 일어난 각질 때문에 이불을 덮을 때마다 버석거리는 불쾌감이 신경을 거슬렸다. 약상자에 대수롭잖게 넣어둔 호랑이 연고를 혹시나 하며 꺼내들었다.
딸아이가 홍콩 여행을 다녀오며 사 온 호랑이 연고는 싱가포르에서 만든 피부소염제로 약이 귀하던 시절에 피부통증의 만병통치약으로 군림하며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그 때를 생각하며 홍콩 등지를 여행할 때면 기념으로 구입해 오는 모양이다.
약 뚜껑을 열면 훅 끼쳐오는 멘톨의 싸한 냄새가 약효에 대한 그다지 강한 믿음을 주지는 못하지만 만병통치약으로 소문이 났다니 발바닥쯤에는 발라도 될 것 같았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연고가 도무지 효과가 없어 그냥저냥 저절로 낫기만을 바라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호랑이 연고는 정말 소문대로 몇 번을 바르고 나니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약상자 속에서 뚜껑의 봉합마저 뜯지 않은 채로 방치되었다가 문득 생각나 찾아내었더니 명약이었다.
요즈음 나는 약도 없는 마음병에 시달리면서 햇볕 쨍한 날에도 아득히 들려오는 청승맞은 빗소리에 마음을 둥둥 떠내려 보내곤 한다. 행여 우산을 들고 마중해 줄 사람이 없나 사방을 둘러보지만 죄다 밝은 햇살 속을 헤집고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내가 살펴야 할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나니 갑자기 생겨난 한가한 시간들이 자꾸 나를 무력하게 한다. 이곳저곳 재미나고 신나는 곳이 없나 기웃거려 보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갱년기 마음병을 치유할 만한 곳은 찾지 못했다.
오랜만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먼 산을 덮어오는 자욱한 안개가 마음까지 답답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전화번호부를 죽 훑어보지만 지금 이 시간에 때맞춰 나와 같이 안개를 걷어 낼만 한 사람이 없어보였다. 이름 하나하나를 읽어갈 때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삼가야 할 명백한 이유가 하나씩 생각났다. 그렇게 짚어 보고나니 아무도 없었다. 전화기의 화면이 자동으로 깜깜해지고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우렁차게 수신음이 울렸다.
뜻밖이었다. 친구라고 할 만한 사이도 아니고 서로 주고받을 용건이 있는 관계도 아닌, 혹시나 하며 전화번호부에 기록된 그런 어정쩡한 사람이었다. 몇 년에 한번 전화 통화를 하고 아주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면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는 각자 가던 길로 가고는 했다. 그냥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며 포도밭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뛸 듯이 반갑지는 않았지만 따라 나섰다. 아줌마들은 눈인사만 하면 금방 몇 십 년 지기처럼 편한 사이가 되어 생면부지의 남편이나 시집식구나 자식이야기를 더하고 빼는 것도 없이 털어 놓는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들과 유쾌한 수다를 떨었다. 앞뒤도 맞지 않는 이야기들이 포도밭 농막 속을 마구 뒹굴어 다닌다. 이야기의 파편들이 아무렇게나 찔러대는 바람에 켜켜로 쌓였던 갑갑함이 부서져 빗방울의 편린에 섞여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다. 남의 속내까지 헤아리려 들지 않는 별 사이가 아닌 사람들이 마냥 편하기만 하다. 밭고랑에 툭툭 떨어지는 무심한 빗방울이 튼실한 포도나무를 키우며 처방전 없는 호랑이 연고가 발바닥의 상처를 낫게 하듯이 가끔은 무심함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빗소리가 잦아드니 먼 산이 밝아오고 마음속을 덮고 있던 희뿌연 안개도 산등성이로 슬금슬금 올라간다. 내 인연의 끈에 묶여 무심하게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치료해 줄 수 없는 야릇한 마음병을 때때로 별다른 진단 없이도 거두어 준다.
이 비가 그치면 눈부신 햇살과 유쾌한 수다를 떨며 덜 여문 마음을 단단하게 익혀 갈 것이다.
유통기한
권 순 경
부모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가.
아흔 아버지가 일흔 아들을 걱정한다며 이 세상을 떠나야 부모노릇을 그만 둔다고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는 가끔 힘든 상황을 맞을 때 무덤 속에 계신 부모님께 찾아가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며 보채고 칭얼거린다.
한가한 주말 아침 남편이 느닷없이 산소에 다녀오자고 하며 분주히 채비를 한다. 갑작스런 통보에 어리둥절해하며 설거지를 하다말고 멀뚱히 보고 있으니 ‘그냥’ 하며 어색함을 감추려 애를 쓰고 있다. 평소 ‘그냥’ 산소를 다녀올 만큼 효심 있는 아들도 아니며 산소를 찾아야 할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의아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뜨악한 표정으로 눈을 맞추고 있는 내게 작은 소리로 낼 모레가 아들 면접 아니냐며 눈빛을 비껴간다.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남편은 자신만을 굳게 믿으며 지나칠 만큼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존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산소를 다녀오고 신통력으로 소문난 단골 보살님의 부적을 품어오는 형수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혀를 찼다.
유난히 가을을 타는 사람이라 가을바람 탓인가 하며 산소로 가는 내내 달라져 보이는 남편을 흘끔거렸다.
시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들은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아들였다. 술잔을 올리며 예를 갖추는 남편이 참 작아 보이고 여려보였다. 고집과 아집으로 곁가지를 스스럼없이 쳐내며 하늘로만 높이 뻗어가는 홀로 선 나무처럼 기세등등하던 남편이 두 손을 모으고 숙연히 머리를 조아린다.
“우리 아들 잘 돌봐 주이소.”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는 늘 엄격한 아버지이며 집 밖에서는 세상사와 함부로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고수하는 힘든 사람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싸고돈다며 아이 역성을 들 때마다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그만하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다 했다고 늘 말문을 막아버렸다.
그런데 오늘은 먼 길을 달려와 돌아가신 부모님께 손주 잘 보살펴 달라고 간청을 한다. 청춘을 두루 돌아 세월의 짐만을 잔뜩 지고 있는 남편의 어깨에 가을바람이 일렁인다. 억새를 흔드는 실바람에조차 어깨가 흔들리면서도 태산인양 버티고 앉아 자식의 바람막이를 하고 있다. 자신의 어깨에 바람 드는 것은 아랑곳 않고 자식의 머리칼에 찬바람이 스칠까 노심초사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맥없이 흔들리는 나이 든 아버지를 여전히 든든한 자신들의 보호자로 의지하며 힘껏 기대고 있다.
부모의 유통기한은 기한이 없는가 보다.
무덤 속에 있어도 자식이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 부모 노릇을 한다.
나이 들어 힘들고 지친 아들이 가여워 무덤 속 아버지는 가을 햇살을 타고와 아들의 처진 어깨에 힘을 넣어주고 있다.
아들은 가을 햇살을 받으며 다시 태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