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신들의 횡포(橫暴)
이의방은 자기 딸을 동궁에 드려 정권을 잡고 조정을 문란케 하며 정중부는 그 아들 정균(鄭鈞)으로 더불어 위복을 마음대로 하다가 나이 70에 달하여 치사(致仕)의 뜻을 보이니 낭중 장사의(張思義) 그 뜻을 아첨하여 재상은 궤장(几杖)을 사하여도 치사는 않는다 함에 중부 기뻐하였다. 예관(禮官)이 왕께 아뢰고 궤장을 주시니 그 아들 균이 아버지의 위에 있으며 교만하기 말할 수 없고 태후의 궁을 빼앗아 역사를 시작하여 때에 서경에서 종종 반란이 일어나고 따라서 도적이 일어나며 처처에 익명서가 붙어 무신들의 전횡을 비방하는 등 자못 수습하기 어려웠다. 정균이 두려워 사직하고 여러 날 조정에 참여치 않으며 정이 두 집의 위세는 횡포하기 심하여 그 집 문객과 노비 등까지 위세를 믿고 조정대관을 함부로 능욕하여 마지않는다. 그들의 가옥은 사치하기 왕궁 같고 고관대작이 다 그 집의 주장으로 되니 활 쏘는 무신들이 학식과 도덕이 없는 고로 민심을 수습지 못하고 자기들의 처신하는 법도 모르거든 하물며 나라의 큰일을 어찌 무식한 무관들이 주장하리오.
이의방은 윤인첨을 장수로 삼아 서경을 친다 칭하고 군사를 서교에 모르며 승도(僧徒)들도 군사에 좇으며 이의방은 종종 선인문(宣仁門)에 나아가니 정균이 가만히 승도를 시켜 의방 뒤를 살펴 그 무리 고득원(高得元) 유윤원(柳允元) 등을 죽이니 정이의 사이가 또한 좋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런 단점을 가지고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한 무신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하고 또 자기들의 잘못은 더욱 모른다. 일반민중의 마음을 잃고 자기 당파끼리 또 합하지 못하니 그 형세는 고성낙일이다. 그 중에 이의문은 더욱 횡포하여 공신이란 호를 빙자하고 백성의 집을 빼앗으며 도 토지를 빼앗아 점령하고 처 최씨는 집의 여종을 함부로 죽이고 의문은 남종을 죽이는 일이 있으나 감히 말하는 자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