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직과 신원
욍이 위에 오르신 후에 백관과 군대를 종로거리에 버려 세우고 역적 괴수 이이첨(李爾瞻) 정인홍(鄭仁弘) 윤인(尹訒) 한찬남(韓纘男)과 승려 승지와 무당 복등 등을 목 베이고 찬서 임취(任就) 등 백여 인을 유배하고 부원군 이시언(李時彦) 등 88인을 부처(付處)하고 좌의정 박홍(朴弘) 등 20여인의 관직을 삭탈하고 평안 병사 박엽(朴燁)과 충주 병사 한희길(韓希吉)과 의주 부윤 정준(鄭遵) 등을 그 임소에서 목 베이라.
그 중에 박엽은 평안감사가 되어 고루거각에 기생을 모아 놓고 주야로 풍류를 일삼고 무고히 백성을 죽이고 백성의 피를 긁어먹던 자인데 이때 선전관이 밀지를 가지고 와서 군대를 아문에 외어 싸고 원수의 전령을 보이고 서슴치도 않고 시가에 목을 베이니 백성들이 와서 그 시체을 찢어가거늘 금하여도 금할 수 없더라.
처음의 병이 궁문에 들어옴에 박원종의 아들 박자흥(朴自興)이 그 아비로 더불어 양주로 도망하여 목사 박예안(朴禮安)으로 하여금 기병케 하고 수원 방어사 조유흥(趙有興)에게 영을 내려 기병케 하여 양군이 합하여 병을 발하려 하다가 반정의 소문을 듣고 정지하였더니 박원종이 할 수 없이 금천 과천(果川)절에 가서 깊은 못물에 빠져 죽었다.
김신국(金藎國)으로 평안감사를 삼고 우계 성혼(牛溪成䡣渾)의 관작을 회복하고 또 장현광(張顯光) 김집(金集) 박지계(朴知誡) 등을 불러 육품(六品)의 관직을 주어 가마타고 올라오게 하고 폐조 시에 바른 말하다 죽은 유생 조경기(趙慶起) 조목(趙穆) 조수륜(趙守倫) 등에게 관직 추증하고 치제(致祭)하다.
조속은 폐모의 그릇된 것을 말하다가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 절도에 유배하고 있었다. 또 권필(權韠)은 궁유율(宮柳律)로 인하여 참혹히 맞아 죽은 고로 이때에 관리를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관직을 추증하였고 장만(張晩)으로 8도 원수를 삼고 또 명하여 유희분 유희발 박응서 등을 목 베이고 중외에 공의를 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