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잊지 마라
맛깔나는 영화여행/2003 건방떨기
2011-06-22 22:27:49
<2003년 12월 24일 개봉작 / 15세 관람가 / 135분>
<강우석 감독 /출연 :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1. 강인찬, 사형.
그러나,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실미도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새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김일성의 목을 따겠다는 목표 하나로 지옥같은 훈련을 받으면서 목숨을 언제 잃어버릴지 몰라 때로는 걱정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신분을 찾고 새 삶을, 광명을 찾는 것. 이 땅에 태어난 자들이여, 광명은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영화 <실미도>는 알고보면 꽤 단순한 영화다. 조국통일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684특수부대원은 훈련에 몰입한다. 그들은 사회에서 버려진 쓰레기들. 그러나, 세상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훈련을 통해 거듭내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것. 강인찬은 평양에 가겠다는 목표 하나로 그 지옥같은 훈련을 끝까지 버티어낸다. 목적이 그를 독종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실미도>는 한곳으로 초점이 집중되어 있지 않다. 산만한 듯 하면서 산만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 그것은 684부대의 대장의 모호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상부의 명령을 받아 명령을 수행할 뿐이지만, 어떤 선택도 직접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강인찬의 어머니사진조차도 그는 조중사의 선택에 맡길 뿐이다. 이처럼 영화 <실미도>는 영화 자체에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다.
죄수들을 거듭나게 했던 684부대원들은 그들이 버려짐을 알았을 때,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자 끝내는 사고를 치고 말았지만, 끝끝내 그들의 존재는 무장공비라는 이름하에 묻혔을 뿐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옹호할 수도, 비판할 수도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 자체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너무나 몰입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선택조차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은 옳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죽어가는 그 순간만이라도 내 이름 석자를 남기고 갈 수 있다면. 결국은 <실미도>는 너무나도 강렬한 자아에 대한 강요를 하고 만다.
그 순간의 슬픔. 아마도 내가 아직은 죽음을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오열같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실미도>는 군더더기 많은 영화다. 대장은 우유부단하면, 그 밑의 두 부하는 극적으로 대립하지만 너무나 그 선이 뚜렷하다. 강인찬 등을 비롯한 죄수들은 각자의 개성이 있지만, 그 역할이 밋밋하다. 전체를 보면, <실미도>는 아쉬울 것 없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이켜보면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 영화. 선이 굵은 이 영화가 웬지 블록버스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이건 너무나 큰 피해의식이 아닌가. 큰일이다. <실미도>라는 섬.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하다.
2. 시간도, 세월도 다 잊어버린 채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잊지 마라. 여긴 실미도야.”
시간도, 세월도 다 잊어버린 채 그들은 훈련에 몰두한다. 목표는 있는데, 삶은 없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실미도>는 엄밀히 말해, 근본적인 인간의 자아에 대한 물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강제적인 상황에서의 질문이다. 극적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다수를 위해서, 1명을 희생할 것인가. 1명을 위해서 모두를 죽일 것인가. 내가 살기 위해 그들을 죽일 것인가, 아니면 함께 죽을 것인가. 영화는 선택한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살겠지만, 그들도 결국은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망 앞에서 죽음음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다수를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잊지 마라. 여긴 실미도다. 여기 와 있는 한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 차라리 가치있는 죽음을 택하라. 우리는 대체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고나면 공허해진다. 그것은 슬픔이라는 감정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그들은 피로 이름을 새기면서 죽어가는데,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만족이다. 세상에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그들. <실미도>는 그렇게 공허한 피로 물들어 있다. 그러니까, 잊지 마라. <실미도>에는 시간도, 세월도 다 잊어버린 채 죽음을 바라보고 사는 그들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