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동 건널목 안쪽
우리 살던 옛집 있었다
낡은 단층집은
뜰에 모과나무 한 주 하늘로 세우고
마당 가득 참새들을 키웠다
나는 아내랑 결혼해 장모 모시고
그 집에서 살았다 그 안에서
새로 태어난 아이도 참새들과 더불어
한 가족으로 반짝반짝 자랐다
우리 집 앞집은 3층 여관
뒷집은 5층 여관, 옆집은 모텔이었다
밤낮없이 연인들 드나들고 노름꾼들 붐볐다
언젠가 서리 내린 가을 달밤
5층 노름꾼들 서로 다투다가 만 원짜리 지폐 흩뿌려
우리 집 지붕 위에서 돈 잔치 벌인 적도 있었다
사내들이 모과잎 쌓인 지붕을 함부로 밟고 다니며
지폐 줍는다고 난리 쳤다
나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 포기하고
우리 가족을 지켰다
그 후로 비만 오면 지붕에 물이 새고
뒤꼍에서 고양이가 울었다
어느 비 오는 날 아침 부엌의 벽이 무너져
밥 짓던 장모가 자칫
변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랄랄라
눈 맑게 자란 아이는 말을 배우고
마당에서 참새랑 어울려 세발자전거 타고
로봇 안고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어쩔 수 없이 그 집 떠났다
트럭에 이삿짐 싣고 신축 아파트로 옮겨
옛집 잊고 말았다
-[시와사상](121호, 2024 여름)에서
카페 게시글
조성래의 시
모과나무가 있던 집
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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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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