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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불교교설]⑭ 37조도품.. 4념처(4念處)
4념처를 포함한 수행법이 잘 정리 되어 있는 경이 <대념처경>이다.
경에는 4념처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수행법이 나온다.
I. 서언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꾸루 지방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족들의 읍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2.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
1-3.
“무엇이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대념처경>
불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수행은 숨쉬기에서 시작하듯.. 숨쉬는 법은 수행의 기본이 된다.
4념처 수행 역시 숨쉬는 법으로 시작한다.
그러니 숨을 들이쉬고[內息:入息] 있다고 생각하고는 생각을 잡아매어 잘 배우고, 숨을 내쉬고[外息:出息] 있다고 생각하고는 생각을 잡아매어 잘 배워야 한다.
또 긴 숨인지 짧은 숨인지와, 온 몸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다고 잘 배우고, 온 몸으로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한다.
또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하며,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한다.2)
또 기쁨[喜]을 깨달아 알고 즐거움[樂]을 깨달아 알며, 마음이 행하는 것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우며,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3)
또 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의 기쁨을 깨달아 알며, 마음의 안정됨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우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4)
무상함[無常]을 관찰하고 사라짐[斷]을 관찰하며, 욕심 없음[無欲]을 관찰하고
들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며, 들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잘 배우고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며,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하나니,5)
숨관(息觀)을 기반으로 삼고 4념처 수행을 하니.. 4념처를 살펴보면..
537. 수성욕지경(手成浴池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大目?連)과 존자 아나율(阿那律)은 사위국 수성욕지(手成浴池)1) 가에 있었다.
존자 사리불(舍利弗)은 존자 아나율의 처소로 찾아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불이 존자 아나율에게
말했다. 신기합니다. 아나율이여, 큰 덕과 신통력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어떤 공덕을 닦아 익히고 또 닦아 익혔기에 그렇게 되실 수
있었습니까?
4념처는 색, 수, 심, 법 네가지 닦는 것으로 8정도의 정념(正念)이 바로 4념처 수행이 된다.
념
(念)이란 남방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사띠sati라 하여 불자에게는 아주 친숙한 단어가 되었는데.. 그 뜻을 설명하는 글은
많지만 여전히 모호하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그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먼저 색념처를 보면.. 안의 몸을, 밖의 몸을, 안팎의 몸을 관찰하는 것을 색념처라 한다.
그러니 념sati 이란 관찰되는 대상을 '관찰하는..' 이 된다.
안의 몸을 관찰하는 것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몸 내부를 바른 기억[正念]과 지혜[正知]로 관찰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관찰하는 것이다.
밖의 몸을 관찰하는 것은 이 몸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관찰하는 것으로 해골관이 나온다. 곧 이 몸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안팎의 몸이란 이 몸이 죽으면 어떤 변화를 겪는지를 분명하게 보면서 몸에 대한 애착을 끊으며 궁극적으로는 이 몸에 나가 없음을 관찰한다.
II-6. 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7.
“다시 비구들이여, ①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 된 시체가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upasamharati).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대념처경>
수념처에서는 느낌(受)은 접촉이 있으면 생기는 것으로 좋은 느낌, 좋지 않은 느낌,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느낌이 있다.
안의 느낌은 접촉으로 인해 느낌이 생기면 그 느낌이 어떻게 일어나 머물다 사라지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밖의 느낌은 어떤 것이 좋은 느낌을, 나쁜 느낌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를 관찰한다.
안팎의 느낌은 3수(受)가 안팎으로 어떻게 연관을 맺는지를 관찰한다.
IV. 마음의 관찰[心隨觀]
12-1.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② 성냄이 있는 … 성냄을 여읜 … ③
미혹이 있는 … 미혹을 여읜 … ④ 위축된 … 산란한 … ⑤ 고귀한 … 고귀하지 않은 … ⑥ [아직도] 위가 남아있는 … [더
이상] 위가 없는[無上心] … ⑦ 삼매에 든 … 삼매에 들지 않은 … ⑧ 해탈한 …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12-2. “이와 같이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대념처경>
심념처에서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 진, 치를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법념처에서는 색, 수, 심에서 일어나는 법들의 작용이 되는 12처, 18계, 5온의 일어남과 머뭄과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으로 말한다.
법념처 설명을 보면.
“우리가 태어난 이래, 우리의 마음은, 습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개념들과 동일시한다. 이 개념들이 우리로부터 실재를 숨긴다."
"대상
을 볼 때는 마음이 알기 위해서 대상을 형상화하지 않으면 안 되고,
형상화하게 되면 모양은 언제나 나타난다. 그러므로 개념은 없어지지
않는다. 마음을 볼 때는 마음이 아무런 형상화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을 안다면... 진정한 빠라마타(paramattha, 실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 여러분은 법념처에 도달한 것이다.”
- 께마왐사 스님(2004). 심념처(Contemplation of the Mind),
오원탁(香圓)번역, -
위에서 보듯 법은 외부에 그렇게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게 아닌 개념이다. 개념이란 6내입처에 의해 생긴 것으로 말한다.
곧 12처는 물론18계, 5온 모두 외부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닌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4념처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관찰하는 것 sati이 관찰되는 것에 얼마만큼 (마음이) 가득차 있느냐 하는 것으로 수행이 잘되고 있다는 것은..
관찰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이 틀어올 틈을 주지않는 게 된다.
따라서 정념인 4념처 수행이 되려면 8정도의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정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하여 멸진정에 들면 일체가 심연생을 보고 무상, 공, 무아임을 관찰하게 되니.. 아라한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VI. 결어
22.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이와 같이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구경지(究竟智)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 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 년을 닦는 사람은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곱 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구경지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일곱 달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달을 … 반달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칠 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구경지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라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하였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설법을 기뻐하였다. <대념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