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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신고 스크랩 단오 김종업(氣박사1호) 박사학위논문 4/5
익명 추천 0 조회 319 18.09.30 07: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편으로 인간이 질병을 얻고 또한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수련적 의미에서 해석하고 있다. 소위 風邪라는 개념인데, 이는 좋지 않은 기운으로서 피속에 돌아다니는 병의 근원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풍사를 제거하는 근본은 精氣로서 구체적 행동요령이 사랑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대개 풍사의 우환은 혈맥 속에 숨어 드러나지 않으면서 몰래 다니다 어두워지면 더욱 빠르게 치닫는다. 이것이 몸을 죽이는 무서운 흉기가 되는 줄 모르고 오래 지내기 마련이다. 그러면 풍사가 경을 통해 고황122)에 들게 된 다음에는 의사를 찾아 묻고 약을 쓸지라도 때는 이미 늦는다.(의가는 병이 난 후에 치료하고, 도가는 병이 나기 전에 병을 치료한다.)

정기와 풍사는 마치 얼음과 숯을 서로 한 그릇 안에 담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정기가 머물면 풍사는 스스로 달아난다. 그러면 모든 맥이 저절로 유통하고, 三宮123)도 자연히 오르내린다. 그러니 질병이 어떤 연유로 만들어지겠는가? 점차 정밀하게 힘을 더해 가면 곧 수명을 늘리고 생명이 정해진 기간도 물리치게 된다. 설령 그 길에서 찌꺼기 정도만 얻더라도 역시 편안하고 기쁘게 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격에 맞는 생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가 감히 이것을 여러 동도자에게 주는 것도 또한 서로 사랑하는 길이다. 이를 세밀하게 살펴 나의 외람됨을 용서한다면 매우 다행한 일이겠다.」

폐기에 대한 疑念의 방법론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단, 여기서 말하는 눈이란 육체의 눈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까지도 포함해서 이해해야 한다. 소위 天目이라고 하는 느낌 상태를 감지하는 눈인데, 이마 앞쪽의 인당혈을 말하는 것이다. 상단전이 열리게 될 경우 빛의 상태에서 수련자의 주관이 개입될 경우 원하는 象이 맺히게 된다. 또한 왼편과 오른편을 보라는 것은 좌뇌와 우뇌 상태의 느낌을 보라는 것이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하나의 점이 생리학적으로 볼 때는 두뇌의 송과체가 자리한 곳인데, 여기가 인당혈이다. 소위 둘이 하나요, 하나가 둘이라는 점으로서 태극을 알게 하는 인체상의 중요한 지점이다.

「삼가 옛사람의 말씀을 살펴 보건대, “따르면 사람이고, 거스르면 선이 된다”고 했다. 대개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은 넷을 낳고, 넷은 여덟을 낳는다. 그리고 이것이 육십사로 나누어지는 데까지 이른다. 이를 가지고 세상 모든 일로 삼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첩족단좌(양발을 포개어 앉음)하고 수렴색태(눈을 아래로 깔고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함)하여 세상만사의 어지럽고 뒤섞인 것을 거두어 들여 한 얼, 태극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도라 한다. 폐기란 눈을 깃발로 삼아 뜻이 가는 대로 기의 오르내림과 좌우 전후로 움직임을 이루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기를 오르게 할 경우는 그 위를 보고, 기를 아래로 내리게 할 경우에는 그 아래를 보라. 바른 눈을 닫고 왼 눈을 열어 그 위를 보면, 곧 왼쪽 기가 돌아 오른다. 왼 눈을 닫고 바른 눈을 열어 그 위를 보면, 곧 바른쪽 기가 돌아 오른다. 기를 내리는 데는 앞에 있는 임맥을 이용하고, 오르게 하는 데는 뒤에 있는 독맥을 이용한다. 그럴 경우 신이 가면 곧 기가 가고, 신이 머물면 기도 머문다. 신이 이르는 곳이면 기도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눈으로 領을 삼는 것이 마치 군중에게 깃발을 쓰는 것과 같다. 이제 위를 보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눈을 뜨지 않고 다만 눈동자를 굴려 위를 보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대개 위가 성하고 아래가 허하다. 그래서 이처럼 기가 오르는 것이 번번히 병이 되어 상하가 서로 교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기가 내려가 戊己土124)에 있게 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삼아 비위가 조화롭게 통하게 하고 혈맥이 두루 흐르게 해야 한다.(이것은 다만 세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단을 지키는 요체도 역시 그 中을 법도대로 바르게 지키는 데 있다.)

능히 혈맥을 두루 돌게 하여 임독125)이 모두 통하는 데 이른다면, 명을 늘이고 죽음의 기한을 물리치는 것을 어찌 반드시 안 된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수단의 길은 반드시 폐기를 첫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다리를 포개어 앉아 손을 단정히 하며, 눈길을 편안히 하고(8가지) 눈빛이 서로 어울리도록 하며, 눈은 발을 내리듯이 하여 아래를 보고, 신과 기는 반드시 배꼽 아래 단전 중심에 함께 머물도록 한다. 그리하면 상부의 풍사는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가라앉는 것과 같이 졸졸거리며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풍사는 먼저 가슴에서 배로 내려간다. (처음에는 배가 꽉 차오르고, 다음에는 배에 통증이 생긴다.)

그리하여 기를 내려보내는 길을 얻은 다음에는 몸이 화평해지고, 마른 기운에 윤기가 나며, 몸에 있는 모든 맥들이 두루 돌아 크게 퍼진다. 그러면 한 홀(意)126)이 깊이 녹아들어 눈앞에 하얀 눈이 펄펄 내리는 듯하다. 그러면 내가 형체 안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형체가 내 안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는데, 깊고 조용하며 드러나지 않고 은은할 뿐 아니라 정신이 흐릿하여 황홀한 상태가 된다. 이미 태극이 아닌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에 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말하는 참된 경계요 참된 길과 방법이다. 이외에는 모두 삿된 말과 망령된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2. 胎息

胎息이라는 것은 胎로 숨을 쉰다는 뜻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胎는 배꼽과 그 주변부를 말하는 것이고, 수련적 의미로서의 胎息은 단전호흡을 일컫는 말이다. 음식과 허파로 호흡하여 살아가는 몸은 중단전, 즉 가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수련의 이미로 호흡을 통한 폐기를 어느 정도 완성하였다면, 하단전을 운영주체로 하는 내부호흡 과정 속에서 마침내 태가 완성된다고 한다. 이것이 아랫배, 즉 숨쉼으로서 몸의 주체를 삼는다는 것인데, 중심을 하단전에 두면 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태는 氣息127)을 하기 위한 터전으로서 육체적인 중심도 되고 마음, 즉 氣의 중심도 되는 장소를 말한다. 따라서 胎息은 氣息이요, 현대적 의미는 단전호흡을 일컫는 말이다.

⌜“태식경”에 이르기를, “태는 기를 가라앉히는 가운데서 맺어지고, 기는 태가 있는 가운데서 쉰다. 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면 살게 되고, 신이 몸뚱이를 떠나가면 몸은 죽게 된다. 만일 장생을 얻으려면 신과 기가 서로 머물러서, 신이 가면 기가 가고 신이 머물면 기도 머물러야 한다. 이를 힘써 행하라. 이것이 바로 참된 도의 길이다”라고 하였다.

폐기가 점차 익숙해지고 신기가 차츰 바른 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차근차근 기를 아래로 밀어서 배 아래 ‘모제’128)에 이르도록 한다. 이 기가 숨쉬는 것이 어디서 시작했는지 그 근본을 찾아 세심하게 연구하고, 숨의 출입에 따라 호흡함으로써 기식이 늘 그 중에 있도록 한다. (이것이 이른바 현빈일규129)이고, 수단지도는 여기에 있을 뿐이다). 그런 다음 입과 코 사이로 기가 나오지 않도록 한다(그러나 항상 일촌 정도의 기가 입과 코 사이에 머물도록 한다).

이것이 이른바 모태에서 숨쉬는 것이고, 이른바 뿌리로 돌아가고 명을 회복하는 길이다. (이를 반본환원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는 입과 코로 호흡하지 않는다. 다만 탯줄로 임맥과 통하고, 임맥은 폐와 통하고, 폐는 코와 통한다. 그러면 어머니가 토하면 태아도 토하고, 어머니가 마시면 태아도 마시게 된다.
탯줄이 한번 끊어지고 나면 호흡은 입과 코로 통하고, 급기야는 몸에 지녔던 영양분을 잃어버리고 당연히 진기130)도 녹아 없어진다. 이 때문인가! 질병이 생겨나고, 요절하게 될 것이다. 만일 이 귀복하는 법을 얻어서 정진을 그치지 않는다면, 곡식을 피하고 산에 오르는 것 모두 이것으로 말미암는다. 옛사람의 시에 “집이 훼손되면 쉽게 고칠 수 있고 약이 말라도 사는 것은 어렵지 않네. 그러나 귀복법을 아는 것을 금은보화를 산과 같이 쌓는 것이네”라고 했다.)

그러므로 태식한 다음에야 기는 처음처럼 부드러워지면서 원만해진다. 기가 원만해지면 본래의 자리에 머물게 되고 마침내 호흡이 없는 숨에 이르게 된다.

“태식경”에 이르기를, “기가 바르게 자리를 잡으면 곧 무호흡이 된다.”고 했다. 옛날 갈선옹은 매번 무더위에는 깊은 연못에 들어 십일만에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것은 아마 폐기하여 태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3. 周天火候

주천(周天)이란 직역하면 하늘을 돌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늘이란 내 몸속에 있는 기를 뜻하는 말로서 육체화 된 몸과 상반되는 개념이다.131) 즉 육체를 形이라 할 때 정신적인 부분을 氣라고 하는 것인데, 하단전에 터를 둔 정신적인 분야의 기는 사람을 소우주라고 표현하듯 인체내부의 작은 우주를 돌리는 것으로서 언어적 표현이 주천이다.

화후란 불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수련적 의미로서의 개념인데, 火는 고체화된 열의 형태로서 인체내부에 스며있는 뜨거운 기운이다. 候는 기체화된 불로서 몸 내부를 운행하는 熱氣를 뜻하는 말이다.132) 따라서 주천화후란 몸속에 들어있는 뜨거운 기운을 기체화된 형태로 변환하여 숨길을 따라 운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화(火)에는 안팎이 있다. 그 안은 느리고 밖은 빠르다. 초기에는 기와 혈이 함께 허해서 폐기를 한 지 오래 되지 않아 화후가 배꼽과 배 사이에서 쉽게 일어난다. 그러다가 이것이 오래되어도 흩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일정한 온기가 그 사이에서 나온다. 이때에는 자연스레 혈기가 점차 충실해지고, 화기의 내부도 느려진다. 또한 문무 진퇴의 법133)이 있으니 이를 잘 살펴야 한다.

주천화후라는 것은 단지 열기가 온 몸에 두루 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신과 기가 함께 제복 사이에 머물러 있을 때, 만일 뜻을 더하여 볼 수 있다면뜻을 더하고, 숨을 불 때는 문무화후와 양근의 법도대로 하고, 진퇴의 법에 따른다. 그러므로 아주 조심스럽게 살펴야 한다. 만일 신심(信心)을 정정(正正)하게 한 후에 火를 법도대로 밀고 가면, 곧 방광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고 양 신장이 펄펄 끓는 듯하다. 그러나 허리 이하부터는 오히려 시원하며 평상시와 다르다. 만일 화후를 가볍게 밀고 갈 수 없다면 곧 온 몸에 화열이 미쳐 오히려 몸은 화상을 당한다. 곧 온기가 작은 상태에서 점차 뚜렷해지면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이처럼 열기가 이르는 곳은 점점 훤하게 열리고 넓어지면서 위에 도달한다.)

이것은 마치 꽃봉오리가 점차 피어나는 것과 같아서, 소위 화지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산수화지라는 것은 虛와 極에 이르러, 精과 督을 지켜낼 때를 말한다. 이때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처라 할 것이다.)

그러기를 오래하면 열이 점점 일어나 몸을 채운다. (이것은 연꽃이 피어 점차 감로를 맺고, 그 감로가 점차 진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때 물이 거슬러 위로 올라가, 달콤한 침이 입안 가득히 고여 醴泉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옥장금액이란 것이다.) 뱃속이 크게 열려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이 되면, 잠깐 사이에 열기가 온 몸을 두루 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천화후라는 것이다. 진실로 법도대로 火를 운행시킬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제복134)의 한 치 세 푼 아래를 하단전이라 하는데, 이곳과 상단전(니환궁)이 함께 응하기를 마치 香과 같이 한다면, 이른바 玉露(단전의 다른 이름)의 火가 따뜻해지고, 頂上(니환)에서는 자색구름이 날아다닌다.

상단전이 물을 끌어들이고 하단전이 물을 대는 모양이 마치 서로 고리를 이루어 끝을 보이지 않는다면, 진실로 이 火로 하여금 온기를 잃지 않도록 기를 수 있을 것이다. (하룻 동안 자오묘유에 반드시 화를 밀고 나가 따뜻한 기운이 한숨도 진화가 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것을 밤낮을 하루같이 늘 하여 10개월에 이른 후에야 胎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하고 밝은 기운이 위로 올라 니환궁에서 맺어진 것을 선가에서는 ‘현주’라고 부르고 불가에서는 ‘사리’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꼭 그럴만한 이치가 있다. 그러나 도를 이루는 여부는 오로지 사람의 정성 여하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다만 일찍 도달하는 것이 귀할 뿐이다.

문득 듣자하니 화기로 약을 달이고 단으로 도를 이룬다고 하는데, 이것은 신으로 기를 다스리고, 기로 형에 머무르고, 그러면서 이들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은 재주는 알기 쉬우나 바른 길은 만나기 어렵다. 비록 그 길을 우연히 만났다 할지라도 전심으로 행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천 사람 만 사람이 배워도 마침내 배움을 이룬 사람은 한두 사람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배우는 사람 모두는 정성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한다.

또 시에 이르기를, “정기가 몸 안 비어 있는 부분에 늘 꽉 차 있으며, 어찌 편안한 곳에서 초연함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달마는 태식법을 얻었기에 능히 면벽하여 마음을 살필 수 있었던 것이다”라고 했다. “황장경”에서는 “세상 사람들은 五穀의 ‘정’을 먹어 배를 불리는데, 나는 홀로 이 음양의 기로 배를 불린다”고 했다.
이상의 두 시를 가지고 살피건대, 벽곡135)은 전적으로 胎息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벽곡을 하여 오로지 이 음양의 기로 배를 불리 수 있다면, 地互가 닫히고 天門이 열릴 것이다. 그러니 어찌 平路에서 仙에 오르는 것을 불가하다고 하겠는가.

앞의 세 조목에 비록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으나 오늘 한 조목을 행하고 다음 날에 또 한 조목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세 조목에 대한 공부는 전적으로 ‘폐기’ 안에 달려 있다. 다만 공부에는 깊고 얕음이 있고, 등급의 높고 낮음이 있을 뿐, 비록 변화하고 하늘을 나는 술법이라고 할지라도 모두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니, 오로지 그 정성에 달려 있을 뿐이다.」



제3절 권극중의 無息과 주천화후


권극중은 조선 중기에 내관사상의 이론과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다. 호는 청하이며 자는 靜止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언급한 그의 수련적 성과는 다음과 같다.

「단학의 분야에서는 함열 사람인 도사 남궁두와 고부 사람인 청하자 권극중이 있는데, 이들은 또한 方術을 수련하여 이름을 떨쳤다.」

권극중은 주역 「참동계 주해」를 인체와 접목하여 인간의 생노병사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정립하였으며, 삶과 죽음을 동일시하게 보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전통 仙道의 사상을 같은 뿌리로 보고 인간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즉, 先天一氣의 회복이 영생을 얻는 길이라는 명제 하에 단의 修練 전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1. 기본 사상

권극중은「인간은 몸과 마음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전인적 존재이다. 또한 우주의 본체도 ‘이것이다’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미묘한 전체이므로 통틀어 一氣라고 개념만 설정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농은유집의 갑골문 천부경에서도 나타난 大氣合의 기 개념을 그대로 원용한 것 같이 보이는 내용으로서, 현재의 인간은 하나의 기가 分化되어 성명정을 만들고 이것이 64괘까지 발전된 형태로 나타나 각종 감정과 욕심이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권극중의 참동계 주해는 주역을 해석한 내용으로서 주역 자체가 우주변화의 원리이므로 이를 인간에게 적용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인간이 자연과의 합일상태가 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修丹이며, 이에 이르는 방법이 性命雙修, 仙丹好修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 명을 동시에 수련해야 한다는 성명쌍수는 마음수련과 기의 단련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뜻이고, 선단호수는 수련과 명상을 함께하여 신선에 이르러야 한다는 뜻으로서 기본은 성, 명, 정을 하나로 일통하는 합일의 개념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근래의 수련 방법인 호흡, 의념, 동작을 같이 해야 한다는 수련론과 맥을 같이한다.

「시작 없는 이전에 도가 있으니 이를 태극이라 하며 그윽하고 황홀하다. 그 속에 한 물건이 있으니 선천일기라 하며 신령스럽게 주재한다. 空으로서 有를 포함하고 氣로서 道에 합하여 뒤섞임이 없으니 이것이 조물주가 만물을 생성하는 근본이다. 근본에서부터 말단으로 흐르면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 도가 되고, 흐름을 거슬러 환원하면 신선과 부처처럼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도가 된다.
 
무엇을 근본으로부터 말단으로 흐른다고 하는가?
 
하늘에서는 理氣를 통괄하는 體가 되고 사람에게는 性命을 바르게 하는 用이 되어 이를 나눔으로 쓰는 것이다. 일기가 나누어지면 음양오행이 되고 후천이 된다. 후천이라는 것은 형질이 있는 것이다. 열자가 “낳지 않는 움직임이란 없고 존재하지 않는 이룸이란 없다”고 하였으니 이것이다. 음양은 사람의 형질을 이루고 선천일기는 음양과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같이 부여되어 사람의 正命이 되고 태극은 一氣와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眞性이 된다. 형체가 있은 연후에 쌓이기만 하고 변화가 없다면 우주 또한 막힐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해서 無로 돌아간 연후에 낳고 낳는 도를 베풀 수가 있으니 이것이 조화의 향상됨이다. 형체가 있는 것은 반드시 변화함이니 천지도 비록 크지만 형체가 있어서 머물고 무너지고 없어짐을 면하지 못하니 하물며 만물이랴. 만물은 변화 속에서 낳지 않을 수 없고 죽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것이 근본으로부터 말단으로 변화되어 한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 도이다.
 
무엇을 거슬러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는가?
 
선천의 생명은 태어날 形도 없고 소멸할 質도 없어서 변하지 않는 眞性으로 有無를 꿰뚫는다. 형체를 떠나면 초연히 독립하다가 형체를 만나면 그 속에 깃든다. 형체가 괴멸되면 근원으로 돌아갔다가 변화를 따라 다시 태어나 윤회를 계속한다. 따라서 육신이 피폐하기 전에 수련하면 신선과 부처가 될 수 있다. 性을 닦으면 부처가 되고 命을 닦으면 신선이 된다. 태어나고 죽는 몸을 변화하여 理氣의 근원을 회복하는 조화가 나에게 있으니 내가 나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흐름을 거슬러 근원으로 돌아가 죽지도 낳지도 않는 도이다.

비록 그러하나 거슬러 올라갈 때 조화의 묘용 중에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금단의 제조이다. 양의 기틀은 음에 있고 음의 기틀은 양에 있으니 이 법은 乾(하늘, 양)을 솥으로 삼고 坤(땅, 음)을 화로로 삼으며, 離火를 써서 坎水를 끓이면 음 속에서 양기가 나와 부르고, 양 속에서 음정이 화답해 순식간에 합하여 약이 되니 이를 金丹이라 한다. 이것은 보통의 음양이 아니고 선천정기이다.……
중략 ……건곤은 위로는 천지를 비유하고 아래로는 남녀를 비유한다. 감리는 몸 밖으로 일월을 비유하고 몸 안에는 심장과 신장을 비유한다. 사람의 몸은 소천지이니 천지일월의 도를 몸 속에 갖추고 있다. 채집한 金丹은 천지의 精과 神이요 일월의 혼백이다.」136)

요컨대 주역에서 설명하는 만물분화 과정, 즉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넷, 넷이 팔괘를, 이어서 64괘까지 변화한다는 물질의 생성과정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로 돌아간다는 논리이다. 인간에게 적용하면 태어난 곳으로의 회귀가 도를 얻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태극도설의 기본사상으로서 주염계의 이론과도 맥을 같이 하지만 수련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2. 수련법

수련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練己이다. 이는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삶을 말하는 道家의 청정무위를 실천해 가는 삶으로 이해되는데, 구체적인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 성적 욕망의 절제를 통한 保精이 그것이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신고의 목적과 동일한 내용이나, 설명은 다음과 같이 하였다.

「연기는 자기 몸을 단련함을 일컫는다. 단을 얻은 후를 진련이라 하고 단을 얻기 전을 산련이라 하니, 산련의 공부가 지극한 후에 진련을 얻을 수 있다.
 
산련이란 무엇인가? 일신의 삼요를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이 삼요인가?
 
단서에서는 心, 身, 意를 삼요로 삼는다. 身이란 몸으로서 그 중 腎臟이 가장 중요하다. ……중략…… 누가 묻기를 신장의 속성이 반드시 삿되다면 몸을 해치는 것인데 어째서 중요하다고 하는가? 답하여 말하기를 신장은 낳고 죽이는 기틀을 겸하기 때문이다. 오장은 각각 하나지만 신장은 둘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잘 쓰면 금단의 약이 생산되고 못 쓰면 본성과 원기를 소모하여 죽음의 길로 이끈다.……중략…… 그러므로 연기는 持心과 함께 단법의 처음과 끝이다. 다만 나이가 어린 자는 욕화가 치열하여 돌아보지 않으려 하고 노쇠한 사람은 의지가 약해서 스스로 단념한다. ……중략…… 누설을 막고 약물을 견고하게 하여 쉽게 이루도록 하여야한다……중략…… 」137)

정기의 보전이 되면 삶 자체가 청정해지며 건전한 생명력이 오래 간다고 하였다. 그러한 몸을 가지고 도덕적 선행의 실천이 練己의 핵심으로서 이는 수련의 전제조건일 뿐만 아니라 수련 전, 수련 후에도 지속적으로 실천해야할 덕목으로서 강조하고 있다. 소위 신고에서 말하는 功完으로서 공적을 완수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성명쌍수론에서 밝힌 수련법은 命의 수련, 즉 호흡을 통한 氣의 축적을 우선하고 이에 따라 성, 즉 마음수련으로 가는 단계를 거친 다음, 마음과 기를 동시에 수련하는 단계적 합일법을 제시하고 있다.

호흡을 통한 기의 축적법과 느낌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가부좌의 자세로 정좌한 후 시선은 코끝을 보고 코는 배꼽을 향하게 한다.

2)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생각 자체를 끊으며 기다리면 협척관(옆구리의 갈비뼈와 배가 닿는 부분) 부근에서 기의 움직임이 느껴지며, 경맥이 소통되고 사지가 부드럽게 된다.

3) 털구멍이 가려워지고 방광이 타는 듯하며, 허리 위 양쪽 신장이 끓는 듯하거나 배꼽 부근에서 따뜻한 감촉이 느껴지면 선천의 丹이 발동하는 징후이다.

4) 이때 급히 채취하여 후천기와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뜻한 기운이 아랫배에서 발동하면 이를 협척관을 통해 등 뒤로 타고 머리위로 올려 보낸다. 그 후 다시 가슴부위(黃定)로 내려 보낸다.

5) 黃定에 이르면 이를 一心으로 굳게 지켜 합일시킨다.

다음 단계는 주천화후이다. 周天의 의미는 앞에서 정염의 방법론에서 잠깐 설명하였거니와 권극중은 구체적인 형태와 인체의 숨길로써 말하고 있다. 즉 周天은 우주론에 기인하는 바, 천체의 순환을 대우주로 보고 인체를 소우주로 본다는 의미에서 기의 순환을 뜻하는 것이다. 근래에는 소주천, 대주천이라 하여 상체에서 순환하는 기를 소주천, 발바닥까지 전체를 순환하는 기를 대주천이라고 하는데, 소주천에 대해 권극중은 하단전에서 등뒤 독맥을 경유하여 머리, 가슴을 거치는 임맥으로 통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 경로를 표현한 것은 미려(꼬리뼈) → 명문(요추 2-3번 사이) → 이환(흉추와 경추사이) → 상악(정수리) → 입 → 하단전 순으로 표현하였다. 대주천은 인중(윗 입술 위)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슴, 하단전, 양 허벅지, 발바닥 등을 거쳐 독맥으로 이어지는 순서를 말한다고 하였다.

火候의 의미를 권극중은 구체적인 의미로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몸속에 있는 純陽의 기를 인체에 동화시킨다는 뜻인데, 火, 즉 불의 개념을 세부적으로 논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 기운은 인체 내의 水火 2개의 氣 중 육체는 순수하게 陰의 기운이라 하였다. 즉 몸을 水의 기운으로 형성된 물질개념이라 한다면 내부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양의 기운을 火라고 하는 바,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사용한 것이다. 구체적인 수련의 형태로서는 최초의 하단전 기운을 藥, 수련과정에 일어나는 열기를 火, 완성된 단계에서는 丹이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화후의 개념은 수련 단계에서 일어나는 따뜻한 기를 인체에 동화시킨다는 뜻으로서 이는 인체의 전면부인 임맥, 후면부인 독맥을 한 바퀴 돌면 周天이 된다는 뜻으로 설명한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주천화후하는지에 대해서는 호흡과 마음의 집중을 통해서라고 하였다. 즉, 性命雙修論인데, 요즘의 개념으로는 의념과 호흡의 합일로서 調心과 調息의 동시 수련법이다.

偶人은 주천의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이란 호흡을 뜻한다. 마음과 호흡은 서로 의존관계에 있으므로 마음이 평온하면 호흡이 고르고 어지러우면 거칠다. 노자가 끊어지듯 하되 끊어지지 않게 하라는 의미는 바로 호흡이 고른 상태이다. 화후는 불의 기운이 마음을 두는 곳에 따라 이동하는데, 마음을 등 뒤로 두어 위로 오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인체의 독맥으로 마음을 두어 서서히 위로 오른 후 정수리를 통해 아랫배까지 내려오게 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은 숨길을 따라 생각의 집중을 통하면 화후가 되는 것이다.」

화후가 숨길이라면 권극중은 숨의 단계를 보통의 호흡에서 배로 하는 胎息, 숨 자체가 없어지는 無息으로의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이 육체에 깃들면 전적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의존한다.
정신은 순수한 기에 깃들이는 것으로서 숨을 안정시켜 無息에 이르게 할 것이다. 무식에 이르면 생사가 없으니, 생사는 숨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기를 지킴이 곧 環丹이니, 환단은 무극에 복귀함이다」.138)

「평범한 사람은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氣息을 할 수 있다. 도인은 丹을 얻은 후에 胎息으로 변화하며 丹이 익은 후에는 胎息이 변화하여 無息이 된다. 胎息이란 호흡이 온 몸의 毛孔 속에서 미미하게 하는 것으로서 코나 입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로 호흡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어머니의 호흡을 따르고 스스로는 호흡하지 않는 것과 같다. ……중략……

無息이란 성태가 대성하여 몸속에 또 하나의 몸이 있어 元神과 그것이 합해진 상태를 말한다. 元神과 成胎가 합해져 스스로 조화를 부려 육체와는 다르게 된 것이다.
호흡이 나고 드는 것은 생사의 상징이다. 호흡 자체가 없어지면 생사를 초월함이니, 몸의 더럽고 찌꺼기 같은 氣가 조각 조각 떠가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마치 햇빛이 창틈으로 들어와 먼지를 비추는 것과 같다. 벽관(외부와의 교류를 끊음)하고 호일(오직 하나를 추구함)하여 3년 내지 9년을 수련하면 흩어질 먼지가 없어진다. 이것이 神이 虛로 화하고 虛가 無로 화하여 낮에도 그림자가 없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으니, 眞仙眞佛의 상태라 말할 수 있다,」139)

無息의 단계는 입과 코로 숨쉬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숨을 쉬는 것으로써 수련자 스스로는 호흡이나 생각이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偶人은 이 단계 전을 피부호흡이라 하고 있으며, 이 단계에서 無息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하는데,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단전에 계란만한 丹이 형성되고, 단 자체가 자전하면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주기를 반복한다. 이름하여 기가 숨을 쉰다(氣息)는 느낌이 맞을 것이다. 丹이 점점 확산하여 가슴과 머리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원기둥으로서 수축과 확산을 하게 되는데, 마치 뱀이 온몸으로 호흡하듯 내몸 전체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게 된다. 그 리듬은 의식적으로 숨을 쉬는 주기와 같다. 생각 자체를 그 느낌에 동화하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에 숨의 주기가 없어지고 환한 느낌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무식단계가 아닐까 한다. 즉 무식이 오기 전에 온몸으로 행하는 피부호흡이 먼저 오므로 이 단계에서 더욱더 고요한 마음의 청정상태를 유지해야 무식으로 가게 된다.」
 
또한 偶人은 無息을 잘못 이해하여 일상적인 호흡을 끊는 것으로 판단,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아 호흡 자체를 끊으려고 시도한 경험을 말하면서 수련은 결코 하는 것이 아니라 닦으면서 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숨길을 따라 생각을 인체부위로 돌려보면 숨은 점점 깊어진다. 단순한 시간개념으로 몇 초 몇 초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고 잡념을 없앤 상태에서 그냥 관조하는 것이다. 자연히 느낌이 오고, 그 느낌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단계로 이동하면 수련은 되는 것이지 억지로 돌리려고 해서는 안된다. 소위 어느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욕심 자체가 수련의 걸림돌로서, 周火入魔(불의 기운은 아랫배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거꾸로 두뇌 쪽으로 올라가서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가 되어 몸에 병이 생기거나 심하면 요절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제4절 소결론 (지감, 금촉, 조식과의 비교)
 
 
위 3인의 수련방법을 자세히 보면 삼일신고의 수련원리인 감각의 추구(止感), 부딪힘의 금지(禁觸), 숨쉼의 조절(調息)등으로 최종단계인 性을 통하라는 것을 전부 내포하고 있다.
 
김시습이 말한 養性의 개념과 신고에서 말하는 通性과도 근본내용은 일치한다. 방법론에 있어서 腹氣, 練龍虎는 숨쉼을 고르게 하고 의념을 통일하여 인체 에너지의 파장을 축적하는 것으로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調息과 禁觸의 다른 표현이다. 禁觸은 얼핏 외부와의 마찰을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인체 내부의 水기운과 火기운의 조화로운 운행을 뜻하는 것으로서 감정의 과다작용을 경계하는 말로 판단된다. 즉 水昇火降140)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로서는 연용호의 개념이 금촉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염이 제기한 閉氣, 胎息, 周天火候도 위와 동일한 관점이다. 閉氣는 의념을 집중하여 아랫배에 기를 저장한다는 점에서 止感의 세부 방법론이며, 胎息은 調息의 다른 이름이다. 다만 周天의 개념은 감각의 차원에서 논해야 하는 관계로 일반 수련단체에서 말하는 임독 양맥의 돌림, 즉 水昇火降의 개념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性을 통한다는 신고의 근본 목적면에서 볼 때 사람을 근본되는 하나로 본 관점이나 인체의 하나 됨을 의미하기 때문인데, 이는 하늘(天)을 하나로 보는 개념과 그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周天火候란 감각으로 하늘과 하나 되는 자리의 추구, 즉 止感의 또 다른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권극중의 無息은 수련과정에서 느끼는 세 감각뿐만 아니라, 목적면에서의 通性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숨이 없다는 것은 죽음의 세계로서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를 동일한 점에서 느끼는 깨우침의 세계인데, 한마디로 신고에 있어서의 性通功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의 설명은 백석의 개념을 인용한다.

⌜사람은 죽는다는 상념의 에너지 장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죽음을 각인시키고 있다. 원래의 근본자리를 통해 보면 육체 에너지 파장의 흩어짐이 죽음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삶에 있어서 의식의 연결 상태가 절대의 자리를 모르고 있는 때문이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레벨이 저차원과 고차원의 혼합체임을 모르는 無知가 원인이지 죽음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본성의 자리에서는 스스로 自覺하는 에너지가 묘하게 혼합되어 육체라는 물질로, 영혼이라는 비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죽음은 신고에서 말하는 心氣神의 흐트러짐을 말하는 것이지 원래 자리인 性命精까지도 소멸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결국 道家 계통의 수련법을 정리한 김시습이나 정염, 권극중도 삼일신고의 내용을 방법론으로 저술한 것으로서 그 근본은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제5장 삼일신고 수련원리의 현대적 적용
 
 
 
선지자들은 수련에 대한 의미를 사랑의 도로써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141) 몸을 건강하게 하여 천년만년 산다는 장생불사는 변화와 소멸의 원리를 거스른다 하여 바른길이 아니라고 했고, 공중부양이나 투시, 염력, 축지 등 초능력의 얻음은 잡술이라 하여 철저히 금기하였으며, 이를 사용하는 자는 단명한다고 하였다.142)

수련의 참 목적이 性通功完이라고 할 때, 수련의 입문자가 가져야 할 핵심은 功完이다. 앞에서도 설명하였지만 功의 기본은 자기완성과 타인사랑이다. 자기완성은 시대와 환경의 조건에 따라 방법론에 대한 어지러움을 탄생시켰다. 그러기에 북창은 “너무도 쉽고 간단함에도 邪術에 얽매인 사람들이 많아 용호비결을 쓴다.”고 하였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우주 본체가 하나임을 깨달을 때 가능하다. 즉 내 몸은 근본 되는 하나에서 나왔고 만물도 근본되는 하나에서 나왔기에 나와 만물의 뿌리가 같으므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143) 불교에서는 이를 ‘萬法歸一’이라 하였고 도가에서는 ‘修一(하나를 지킨다)’이라고 하였으며 김시습도 ‘存三包一(존재하는 근원의 세 요소를 하나로 한다)’이라 하였다.144)

사람이 이를 실천해 가는 방법론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삼일신고에서 제시한 근본은 止感, 禁觸, 調息이다. 감정을 그치고 부딪침을 금하며 숨쉬기를 고르게 하라는 것이고, 이는 먼저 알고 나중에 깨닫는(先知後覺) 단계론적 방법을 택한다. 단계를 무시하고 곧바로 본성의 세계로 가는 直指本心의 길도 있으나 여기서는 논하지 아니한다. 따라서 바르게 아는 수련적 인체론을 먼저 알고, 호흡의 방법과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며 마음의 근본자리로 돌아가는 법을 인체변화와 함께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제1절 몸수련, 지감과 調身의 느낌과 방법론
 
 
몸 수련은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바른 호흡, 균형 잡힌 영양, 운동의 세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145) 물론 세 가지 요소뿐만 아니라, 감정의 사용과 수면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설명의 편의상 몸 중심으로 논하고자 한다.

몸 수련의 핵심은 인간의 형이상학적 개념 설정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몸이 움직이는 근원의 에너지가 어디냐를 놓고 본다면 근본은 하늘과 땅이다. 이를 수련적 의미로 본다면 天氣(하늘 기운)는 호흡으로부터 받아들이고 地氣(땅의 기운)는 음식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이 둘은 철저히 상호간에 뿌리를 두고 교호 결합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고 하였다.146) 수련적 의미의 숨쉼이 아닌 인체보존을 위한 호흡의 의미로만 본다면, 코와 입으로 들이쉰 숨은 음식의 소화와 노폐물 제거를 위한, 즉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라는 단순 공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몸(육체)만을 위한 음식이 중심이고 호흡이 보조이며,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열을 생산한다는 것이 운동이라는 단순개념이다.

이것이 현대인의 건강 상식이 한계를 가진 이유이며 주어진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7․80살까지만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련의 근본은 바로 음식이 주관하는 현대인의 삶을 숨쉼(그냥 호흡이 아닌, 피부호흡, 무호흡 등의 총칭)이 주관하는 몸의 상태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몸수련, 즉 調身의 개념은 단순한 운동으로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俠義의 개념이 아니라, 감정을 다스리고 욕망을 억제하며 타인을 이해하는 삶의 기본자세를 망라하는 실천적, 전인적 인간됨을 뜻하는 廣義의 개념인 것이다.
 
1. 몸에 대한 수련적 상식
 
수련의 목적이 건강이냐 깨우침을 통한 자기완성이냐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弘益人間 制世利化(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편안케 한다)’의 관점이다. 그러나 그 출발은 나로부터 시작한다고 보면(정확한 표현은 나라고 인식되어진 개체) 현재의 내 몸 상태에 대한 개괄적 이해가 필요하다.
한의학에서 설명하는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불건강, 즉 삶에서의 부정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147)
 

선천적 체질

   ․양인

   ․음인

생활습관

․성생활

․지나친 감정

․노동의 강도

음식의 섭취

․영양상태, 폭음, 폭식 여부

․유독성 음식(술, 담배)

외부기운

․기후의 영향

․환경요인(물, 공해)

 
위의 도표에서 보듯, 개인의 건강한 삶은 여러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나의 의지 밖에 있는 것은 체질과 환경이고 의지 안에 있는 것은 음식섭취와 생활습관이다. 권극중이 말한 練己의 개념은 자기수련을 뜻하는 용어로서 위에서 말하는 생활습관과 음식의 균형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생활습관인데, 몸 수련에 있어서의 상식은 적당한 노동, 감정의 균형, 절제된 성생활이 핵심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과 운동이 과거에는 구분이 없었으나 오늘날에는 직업이 세분화되고, 운동자체가 직업으로까지 발달된 경향이 있고 보면 “몸은 움직이고 마음은 다스린다”는 수련의 핵심은 좀 더 설명을 필요로 한다.
 
 
2. 운동과 노동, 도인의 본질
 
 
생활습관 중 직업적 몸의 움직임은 노동이고 호흡을 통한 에너지의 교환을 운동으로 정의한다면, 수련적 의미로서의 움직임은 導引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즉, 노동과 운동의 개념 구분없이 마음을 긍정적인 상태로 한 후 움직이는 모든 동작은 導引이다. 끌어당기고 내뱉는 일체의 행위로서 호흡과 결합된 움직임을 말하는데, 생각이나 감정, 인식, 충동 등 마음의 변화없이 순수하게 몸의 움직임을 뜻하는 말이다.148) 따라서 현재 각종 수련단체(요가, 국선도, 단학선원 등)에서 행하는 육체요법은 도인체조의 법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중국권 내의 태극권, 우슈나 권법, 무술의 道로써 목표를 위한 이름(우슈, 태권도, 검도, 합기도) 또한 몸의 움직임을 통한 도의 길을 보는 것이 이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바른 도인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육체의 움직임에 대한 음양관적 논리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음양의 개념은 본고에서 논할 바가 아니나, 움직임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뻗는 동작은 陽이고 당기는 동작은 陰이다. 양의 본질적 기능은 發散이며, 물질의 형태가 아닌 기의 상태로 보는 것이다.
 
음의 본질은 收斂과 貯藏으로서 물질의 형태이다. 오늘날의 운동종목으로만 본다면, 내뻗는 동작 위주의 축구나 배구, 테니스 등 구기운동과 태권도 등은 양의 운동이라 할 것이고, 끌어당기는 유도나 레슬링 등이 음적인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몸의 상태로 보아도 대략 유추가 가능한데, 양의 운동종목은 몸매가 늘씬한 반면 음의 운동 종목은 근육질 위주이다. 근본적으로 양운동은 발산이고 음운동은 저장이기 때문으로 보는 것인데, 도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것이 아닌, 당김과 내어 미는 동작의 조화가 가장 좋다고 할 것이다. 실제 요가의 각종 동작이나 태극권의 움직임 등은 당김과 내어 밈의 전신조화를 목표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2절 調息, 호흡 수련과 방법
 
 
크게 보아서 기수련은 호흡 수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단전호흡, 뇌호흡 등 모든 수련단체들이 호흡 위주로 명칭을 붙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거니와 실제 도인체조, 심신이완법 등 수련의 예비동작 모두가 호흡을 하기 위한 준비단계인 것이다. 따라서 호흡과 관련한 문제는 이 논문의 핵심주제이므로 좀 장황하게, 그리고 해부학적 및 수련적 모든 관점을 망라하여 논해 보고자 한다.
 
 
  1. 호흡의 생리학적 전개149)
 
 
인체가 필요한 산소를 받아들이고 대사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과정을 호흡이라고 한다. 호흡활동은 횡격막, 늑간근 등의 호흡근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즉, 吸氣 시에는 횡경막과 외늑간근의 수축으로 인해 흉곽용적이 커지게 되고, 흉곽 용적에 반비례하여 흉곽 내 압력은 감소하게 되므로 쉽게 공기가 폐 내로 유입된다. 반면, 呼氣 시에는 횡경막과 외늑간근이 이완하여 흉곽 내 용적을 감소시킴으로써 공기가 쉽게 폐로부터 배출된다.

폐포와 폐포 모세혈관, 조직과 조직 내 모세혈관 사이에 일어나는 가스교환은 확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확산은 분압차에 의해서 생긴다. 즉 폐포 내의 산소분압은 폐포 모세혈관을 흐르는 혈액의 산소분압에 비해 높기 때문에 폐포 내에서 폐포 모세혈관 내로 산소가 확산되어 들어간다. 이산화탄소의 확산은 산소와 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 분압차 이외에 가스 교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확산 경로의 길이, 폐포 주위 모세혈관의 혈류량, 혈액 내 적혈구 수 및 헤모글로빈 농도, 폐포 환기량 등을 들 수 있다.
 
 
2. 수련적 의미로서의 호흡
 
 
수련에 있어서의 숨쉼은 단순한 가스교환이라는 생리학적 관점 이외에 천지자연과 나와의 교류로 본다.150) 우리가 생각하는 인체는 외부로부터 단절된 별도의 육체인 것 같지만 피부 내면을 자세히 보면 온통 구멍 천지이다. 남자는 약 70조 개, 여자는 약 60 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것이 몸이기에 각각의 세포와 외부와의 교환은 어느 때든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코와 입으로 들이쉬는 숨의 양이 피부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고, 또한 우리가 인식하기 때문에 입과 코로 숨쉰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151)

숨이란 생명활동의 내적 흐름이다. 여기에도 길이 있고 운동이 있으며 대사활동을 한다. 시작하는 머리와 끝나는 꼬리가 있고, 들어오는 내용물과 나가는 폐기물도 있다.152) 외부의 氣가 들어와 내부의 폐기물과 동화하는 과정을 거친 후 배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김시습과 정북창, 권극중은 火候라고 표현하였고 文武의 방법이 있다고 하였다. 문무의 방법이란 움직임과 고요함을 뜻하는 것으로써 동작과 호흡의 일치를 정의한 것이다.

전통 동양학에서는 숨쉼을 통해 入出하는 기를 6개로 구분하였는데, ‘風, 寒, 署, 濕, 操, 火’가 그것이다.153) 이것은 존재는 있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고, 6氣는 결국 인간의 몸을 이루는 4대 구성, 즉 ‘氣, 水, 火, 土’의 성분이 된다는 것이다.154) 따라서 숨을 쉰다는 것은 외부의 천지 기운을 내 몸과 함께 동화하는 행위인 것이므로 수련의 핵심이 호흡, 그 중에서도 내호흡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셋이 하나가 되게 한다는 신고에서의 의미로서 볼 때, 정기신을 하나로 합하게 하는 행위의 처음과 끝이 숨쉬기임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기본 원리, 자세, 調心과 調息의 방법과 느낌
 
 
인체를 수련적 의미에서는 精과 氣(몸), 氣와 神(마음)으로 구분하여 논한 바 있지만, 실제의 방법론은 자세와 호흡, 뜻으로 설명할 수 있다.155) 偶人과 法光, 百石은 스스로의 경험과 느낌 세계를 위와 같이 구분하여 설명하였으며,그 내용을 자세히 분석하여보면 신고에서 말한 원리와 동일하였다. 방법에 대한 질적 연구자 세 사람의 제시 내용을 권극중과 정염, 김시습 등이 기록한 조선시대 문헌과의 비교 결과 핵심 방법론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가 가능하였다.
 
<기본 원리>
 
ㆍ고요한 마음 상태가 가장 우선한 다음, 호흡에 임한다.
ㆍ자세는 단아하게 앉아라.
ㆍ뜻을 집중하여 숨쉬기를 하되, 각 단전의 자전축을 찾아라.
ㆍ몸의 움직임(도인)과 호흡, 의념은 항시 통일되어야 한다.
ㆍ수련의 처음과 끝은 호흡을 축으로 하고, 생각과 동작은 보조이다.
ㆍ세단전을 완성한 후 하나로 통일 시켜라.

<자세의 기초>
 
ㆍ반가부좌, 결가부좌를 하되 회음혈이 바닥에 닿아야 한다.
ㆍ허리는 세우고 눈은 코를 보며 코는 배꼽을 향한다.
ㆍ손은 바닥이 위로 향하되, 무릎에 놓거나 배 밑에 포개 놓는다.
 
<호흡의 방법론>
 
ㆍ숨길에는 병풍을 치듯하고 입은 닫아라.
ㆍ실꼬리의 처음과 끝을 가지고 아랫배까지 끌어 내려라.
ㆍ혀끝은 입천장 돌기에 닿아서 숨길을 터주어라.
 
위에서 말하는 수련원리와 자세, 호흡의 방법론은 설명이 길게 되나 실천의 입장에서는 간단하다. 마음과 호흡, 집중을 위한 단전의 자전축을 찾는 방법 위주로 세 사람의 질적 연구자가 제시하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물론, 호흡 이전에 실시하는 練, 즉 몸의 유연성이나 호흡의 깊이를 하기 위해 導引으로 충분히 몸이 건강하게 된 상태 다음이라야 한다. 인체의 火氣가 위로 뜬 상태라든지, 감정이 수시로 변하여 생각이 많다든지 하는 부적절한 상태에서는 수련을 금해야 함은 물론이다.

우선 기초 준비는 반드시 고요한 마음상태가 전제 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다.

감정의 변화에 따라 氣가 변화하거나 氣質이 탁한 것은 한의학 교과서에서 너무나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즉 분노하는 감정은 기가 위로 뜨고(怒氣上), 슬픈 기운은 울을 맺고(憂氣鬱), 비통한 기운은 흩어지며(悲氣消), 기쁜 기운은 늘어지고(喜氣緩), 고민하는 기운은 뭉친다(思氣結)는 것이다.

따라서 육체에 뿌리를 둔 감정, 즉 희노애락의 일반 감정 자체를 없앤 다음에 호흡에 들어가라는 것은 기본으로서, 이는 調心에 해당한다. 그러나 감정 자체를 다스리기 어려운 초보자는 생각으로 생각을 죽이기 어렵기 때문에 호흡을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숨에 정신을 집중하고 숨길을 따르는 길을 찾는 방법이 수련으로 설명될 수 있고, 숨쉼을 통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調心과 調息은 결코 구분되어 설명하거나 행동하는 것이 아닌, 동시 진행형으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아하게 앉아라는 의미는 자세의 기본이다. 몸의 균형이 비정상적인 사람, 예컨대 아랫배가 나왔다든지 비대한 사람은 단아하게 앉지를 못한다. 생활습관이 육체의 요구대로만 움직인 사람도 신체의 불균형으로 단아하게 앉는 것이 어렵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가를 정신 집중이란 원래의 의미가 아닌 몸만을 위한 체조로만 인식하거나 수련을 기체조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허다하다. 단아하게 앉을 수 있는 선결조건이 몸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앉는 기준은 몸안에서 찾아라고 선인들이나 현재의 수련자들은 똑같이 이야기 한다.156)

즉, 하 ․ 중 ․ 상 단전이 서로 포개져서 기울임이 없어야 하는데, 수직으로 세 덩어리가 바로 선 상태이다. 우선, 다리를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 상태로 놓고, 엉덩이 사이의 회음혈(항문과 성기 사이)이 바닥에 닿도록 하체가 고정되어야 한다. 다음에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 턱을 앞으로 당기며 머리, 가슴, 아랫배가 일직선상으로 놓이게 된다. 구체적인 중심점을 놓고 설명하면 회음, 단중, 백회의 세 혈자리가 수직으로 서게 된다는 뜻이다.

세 번째, 각 단전의 자전축을 찾는다는 의미는 앞서 김시습이 말한 內觀法이다. 즉 내 몸 속을 본다는 듯인데 이는 기의 드나드는 구멍에서부터 연결되는 축, 여기서 파생되는 중심에너지의 자전과 공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하단전의 자전축은 중심자리로 가는 미려(꼬리뼈)와 요추 2ㆍ3번 사이의 명문혈이다. 즉 명문혈에서 시작된 축의 극이 배꼽 아래 극까지를 연결하는 선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는 초보자의 수준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고요한 마음상태에서 꼬리뼈에 콧구멍이 뚤려 있다고 상상하고 그리로 숨의 시작을 잡고, 배꼽 부위까지 일직선으로 들이쉰 다음 숨의 끝을 배꼽 아래에 두면 점차로 축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자전의 의미로서 배꼽 아래 하단전의 중심이 원을 그린다는 것과 그것도 아주 미세한 떨림의 형태로서 시계 방향으로 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 떨림의 자전이 하단전의 중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꼬리뼈와 요추까지 연결되어 전체의 덩어리가 파동으로 전해지는데, 이를 진동이라 하여 수련 입문단계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하기도 한다.157)

또한 하단전이 자전하기 전 진동은 단전 그 자체로서 펄떡이기도 하는 바, 앉은자리에서 엉덩이에 강한 충격형태로 전해져 가부좌 상태에서 마치 개구리같이 점프를 반복하기도 한다. 보통의 형태는 강한 내부의 힘이 아랫배 뭉치에서 폭발의 형태로 온몸으로 전해지는데, 이 때 코로부터는 강한 “킁”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중단전의 자전축을 찾는 것은 하단전을 알고 느낌이 있으면 의외로 쉽다. 배꼽과 명치, 가슴 중앙과 등뒤의 견갑골 아래 부위까지를 상호 연결하는 직선의 집합이 중단전의 축이다. 실제 중단전이라 부르는 마음의 가장자리는 횡경막을 둘레로 하여 등 뒤, 목 아래 부분 전체를 아우르는 중심으로서 명치 윗 부분과 목 아래 천돌혈까지를 일컫는 원의 중심점을 일컫는 말인데, 한의학에서는 전중 또는 단중혈이라 부르는 곳이다.158) 통상 수련단체에서는 이곳을 「임맥이 막히는 핵심」으로 보고 있으며, 인체의 火氣, 즉 불기운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곳으로 이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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