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2막8장 (1부)
내가 8살이 되는 1965년도는 국내외로 많은 사건이 발생되였다.
국외에서는 내생일날 조인된 "한일기본조약"이고,가을에는 월남으로 청룡부대가 파견된 것이다.
치욕의 시간을 가져야 하였던 36년간의 일제 강압기에서 30년전인 1985년.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이하였건만 그치욕을 채 잊기도 전에 박정희 정권은 한일수교를 하고 말았다.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일본의 국교수립으로 한일 무역도 활발히 전개되였다.
일본이 그당시에는 우리가 따라잡아야할 선진국에 속해 있었고 중국과 소련의 강대국속에 미국만 의존하기도 벅찾을 것이다.
이에 일본의 선진기술과 자본을 차관하기 위한 몸부림일수도 있었다.
아뭏튼 1965년 말도 많은 "한일수교"가 합법화됨과 동시에 그사건은 두고두고 국민정서를 자극하고 말았다.
일본의 "조센찡"속어가 말해주듯 천박한 인종차별은 일본에서도 빈번히 일어났고. 추후에는 "조총련"이란 남한의 적대적 단체가 일본내에 탄생하여
한국을 혼란에 빠뜨리기 일쑤 였다.
일본은 남한간첩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였고 그중심에 조총련이 있었던 것이다.1974년 육영사 여사를 시해한 문세광이도 재일교포 인 것이었다.
일본은 추후 독도문제로 가깝고도 먼 이웃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백마부대,청룡부대,맹호부대,십자성부대, 비둘기부대 총35만명을 8년간 베트남 으로 파견한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 써 있는 고엽제 상이 군인문제가 말해주듯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나 실전 전투를 터득한 국방력은 더한층 강화되였다.
그 유명한 전쟁 영웅담이 넘쳐나고 월남전 영화는 전세계에 붐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맹호의 노래가 그당시 유행하여 나도 종종 따라 불렀다.
그리고 그음절이 지금도 생각난다.
맹호는 간다.
자유 통일위해서 조국을 지킵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이름 맹호부대,맹호부대 용사들이아
가시는곳 월남땅 하늘은 멀더라도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곁을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마음 님의 곁을 따르리라.
"맹호부대"
그당시 그노래를 모르면 간첩이었으니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정신의 투철함과 미국의 권유로 월남 파병을 한것으로 생각하나 사실은 또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당시 직장이 이러다할것이 없던 시국에 1966년도에는
독일에 1만명 가까운 여간호사를 파견한다.
이는 직장이 많치 않던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 실업자를 구제하고 외화벌이의 기회로 남자들은 월남파병으로 여자들은 독일 간호사로 파견하여 실업자를 구제하고 외화벌이를 하게 만든 박정희대통령의 고육지책 이었던 것이다.
박대통령이 외화벌이를 위해 타국 멀리 떠나는 여간호사를 보고 눈시울을 흘렀다는 일화는 유명하기도 하였다.
그당시 독일 간호사 파견 인기는 대단하였다
몇년만 다녀오면 집한채는 거뜬이 샀으니 말이다.
1장은 국외이야기 하다 끝나네요
2장에서는 나의 가족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