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담론이어야-제12회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심사평

제12회 천강문학상 수필 심사평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담론이어야  본심 심사위원 권대근(수필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헤겔이 묘사하는 예술은 세계를 긍정하고 세계와 타협하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그러나 헤겔의 논리처럼 세계를 긍정하는 예술은 현실의 모습을 부질없이 미화할 뿐이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현실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데서만 발견된다.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고 세계에 대한 비판을 담음으로써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절대적 진실을 주장하지 않고 현실의 극복을 주장한다. 말과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작가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수필도 예술에 속한다. 냉철하고도 엄정한 판단으로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미적 진보의 펜을 휘둘러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천강문학상 공모작 본심에 오른 수필을 조명해 보는 것은 a better world를 추구해야 하는 문학의 목적에 비추어 당연한 심사위원의 시각이라 하겠다.훌륭한 수필가는 사회의 한 복판에 서서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문제를 작품 속에 담아내려고 늘상 노력해야 한다. 한 알의 보리나 밀에서 우주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수필에 독자는 매력을 느끼는 법이다. 좋은 수필은 무엇보다도 푹 찌르는 맛이 있고, 톡 쏘는 맛이 있어야 한다. 감성적인 아름다움으로 정서를 풍요롭게 해줌은 물론 현대독자들의 지적 욕구도 동시에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힘의 문학으로써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우리 수필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두루 갖추고 있지 못해서 우선 안타까웠다.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뜨겁게 하는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주었다거나 수필적 메시지가 현실에 대한 강한 직시와 적발의 모습을 띠고 있고 있는 것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뛰어난 문장력을 뽐내면서 신변사를 널어놓았던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공모전은 문장력만으로 승부를 걸어서는 안 된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수필가들은 늘 수필의 출발점을 인식에 두어, 제재에 대한 심오한 철학과 성찰, 그리고 관조를 시도하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미적 구조로 재조직, 담론전략으로 형상화해서 독자들에게 구성적 비유로 전달하는 주제의 존재론적 생성과정을 중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작품 앞에 ‘훌륭한’이란 형용사가 놓여지길 원한다면 ‘작가의식’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제12회 천강문학상 수필 부문 본심에 오른 이는 45명이었다. 한 사람이 3편의 작품을 내었으니, 심사위원 두 사람은 작품수 135편 중에서 대상 1편과 우수상 1편 모두 두 편을 골라야 했다. 이렇게 많은 수필이 본심에 오른 것을 보면서, 우리는 예심에서부터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하고 수작들이 많을 것 같아 내심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본심에 오른 작가들의 묘사력은 뛰어났다. 그러나 미적인 사유와 근대적 성찰 등 작가의식이 아직까지 개인의식에 머물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우리 심사위원은 의식의 발전이 미적 감수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적 진보에 이르러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감동을 주는 수필이 탄생된다는 믿음 때문이다.대상을 받은 김만년 씨의 <철길론>은 미적 사유가 뛰어난 작품으로 우리네 인생과 인간의 관계성을 철길에 견주어 낸 수작이다. 인문학적인 사유를 통해 수필 속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담아내려 한 것은 작가정신의 발로라 아니할 수 없다. 철로에 담긴 의미를 철학적인 사유로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인간 탐구라는 큰 틀 속에서 ‘더불어 함께’라는 주제 지향성을 견인한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 따가운 반성적 성찰을 더하여 부부간의 거리를 수치로 환산하고, 그 거리를 ‘배려의 거리이자 존중의 거리’ ‘백 년을 동행하는 지순한 사랑의 거리’이기도 하다는 의미로 치환해서 형상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문학적 성취에 빛난다고 하겠다. 자기본위의 삶에 대한 성찰은 물론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탁월한 사유가 돋보이는 이 수필은 ‘철로’를 통해서 ‘평심’과 ‘항심’을 읽어내고, 종국에는 ‘철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으로 의미화해나가는 작가의 서술전략으로 말미암아 다른 작품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는다. 동륜에 깍인 철길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서 ‘빛나는 것은 언제나 상처 뒤에 오는 것은 아닐까’하며 반문하는 작가의 깨달음은 동양시학의 ‘시궁이후공론’을 불러오게 한다. 이런 멋진 의미화는 형상적 사건을 통해 제시됨으로써 메시지의 직설성에 따른 비문학성을 완화시키고 문학성을 배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상작은 결과 발표 후 이중으로 투고했다는 수상자의 소명에 의해 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당선이 취소되었다. 우수상을 받은 윤종희의 <만灣, 만滿, 만晩>은 만남, 이별, 재회, 다시 별리의 지루한 반복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된 작가가 남편과의 관계미학을 세 지점으로 나누어, 처음의 ‘만灣’은 ‘만나고 굽어지다’로, 두 번째 ‘만滿’은 ‘비우고 채우다’로, 마지막 ‘만晩’은 ‘저물며 깊어지다’로 의미화해서 풀어낸 구성미학이 빛나는 수필이다. 만의 탄생에 첫 만남의 계기를 견주고, ‘파도’, ‘바다’를 그 사람으로, ‘육지’ ‘해안선’에 자신을 비유한 전략부터 좋았다. 작가는 어떨결에 캠퍼스 커플로 발전하게 되어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는 과정과 둘의 관계를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기수지점에 이르면 둘은 하나로 섞인다.’로 풀이하고, 그의 접근을 ‘파도가 물의 경계선을 넘어온다’로 묘사하는 등 탁월한 구성적 비유가 돋보이는 수필이다. ‘보랏빛 노을이 수면 위를 드리운다. 바다는 은결을 반짝이며 고요해진다. 수평선 위로 천천히 만월이 뜬다. 저녁은 또 다른 시작의 시간이다. 깊어가는 만의 어깨에 슬쩍 마음을 기댄다.’라는 마지막 만晩에 대한 묘사는 결혼과 사랑의 미학을 여러 비유를 통해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문학적 감동을 견인하였다. 대상작에 버금갈 정도로 구성전략이나 발상이 신선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수상에 뽑힌 이유라면 아무래도 소재적 한계에 따른 정서의 객관화가 ‘부부’라는 관계의 미학에 머물렀기 때문이라 하겠다.오늘날 수필은 잡문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본격문학으로 터를 잡아가면서 우리나라 수필가 인구도 의외로 방대한 규모로 늘어났다. 인적 자원뿐만 아니라 작품의 질적 측면에서도 80년대 이전에 비해 그 수준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이러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겠지만 의병장 곽재우 장군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기성작가와 신인작가를 구분하지 않고 거금의 상금을 건 천강문학상 같은 전국 규모의 공모전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김진섭이나 김광섭의 초기 수필에 관한 정의를 들먹이며, 수필의 성격을 ‘비전문성에 두면서 여기의 문학’에 두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의 수필에 관한 정의는 유효하지 않다. 수필에 관한 정의는 그만큼 진화해왔고, 이제 수필의 개념은 문학론이나 예술론의 입장에서 정의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결국 문학적 성취와 작가정신은 수필문학의 중요한 존재 근거가 된다. 여기에 주변적 타자의식과 생태성을 결합하여 인문학적 사유를 확장해나가야 하는 것이, 지식정보화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수필 문학이 존속하고 나아가 제 역할을 확충해갈 수 있는 길이라고 할 것이다. 이는 형상적 체험과 미적 진보의 결합을 통한 작가정신의 확대를 이루어가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당선된 분께 축하를 보내며, 좋은 작품으로 우리 수필을 빛내준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제13회를 준비하는 분들은 작가정신이라는 수필적 지향성과 인문학적 사유가 빛나는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보길 바란다. 천강문학상은 아무 데도 발표하거나 수상한 적이 없는 신작을 대상으로 한다. 아울러 이번 대상작 문제와 같이 심사결과 발표 후 선정된 작품이 취소되는 일이 없도록 작가 자신의 윤리성에도 엄격한 잣대를 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