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레위기 15:1-18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인격과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배려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악한 자인 것입니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에 대하여 마음이 닫히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상처가 잊혀 지며 마음이 풀리기도 하고 또 십자가를 만난 사람들은 그 십자가의 은혜로 자기 마음을 스스로 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 어떠실까요? 하나님은 사람들이 짓는 죄로 인하여 상처를 받으십니다. 하나님도 죄로 인하여 받은 상처를 시간이 지나면 잊고 스스로 푸실까요? 하나님은 결코 사람이 그 죄를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할 때까지 그 사람에 대하여 닫힌 마음을 열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철회되지 않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공의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그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죄의식이 없습니다. 죄가 죄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 앞에 서 있는 줄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 안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 딴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뭔가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기도와 전도와 헌금과 봉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겠습니까?
은밀하게 자기 죄를 감추는 사람도 있고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지 감각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나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도덕성이 훨씬 떨어집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가 소돔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목사나 성도들이 윤리의식이 훨씬 부족합니다. 그래서 감독이나 감리사 선거를 할 때 돈을 뿌려도 전혀 죄의식이 없습니다. 담임목사 자리를 팔고 그것을 돈으로 사도 죄의식이 없습니다.
정말 이상하고 희한합니다. 세상은 부정선거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돈 몇 만원을 받고 밥을 먹어도 안 됩니다. 돈으로 어떤 자리를 매수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나 교회는 그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젓이 합니다.
하나님은 무슨 죄든지 용서해 주시는 은혜의 세계이기 때문인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일까요? 저는 한 번도 안한 건지 못한 건지 모르지만 커닝을 신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했습니다. 신학교의 의자와 벽은 다 빼곡하게 글자로 시커멓게 적혀있었습니다. 시험을 볼 때 부정행위를 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또 종이 되겠다고 모인 그 학생들이 교실을 온통 부정한 죄악으로 도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끔찍한 것은 그 부정한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음성으로 은밀하게 숨어있던 죄가 그 부끄러움을 벗고 양성으로 공개된 것입니다. 저도 죄가 죄인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모르게 은밀하게 짓던 죄는 하나님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는 죄를 지으며 죄의식도 없이 버젓이 죄를 공개적으로 짓기도 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말입니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는데도 그렇게 산 것입니다. 어떤 신학생이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한 것입니다. 기숙사는 먼 곳에 사는 학생을 우선순위로 배정하기 때문에 자기가 현재 사는 곳이 아니라 먼 친척 집으로 주소를 옮겨놓은 것입니다. 기숙사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오히려 지혜로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십자가 앞에 서니 그게 아닌 것입니다.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정말 기숙사에 들어가야 할 누군가의 방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앗은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알고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오히려 떠벌리는 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기숙사에서 짐을 빼서 나온 것입니다.
신학교에 가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채플시간이 있습니다. 채플을 이수를 해야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몇 시간 이상을 빠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채플에 참석할 수 없는 사유서를 내었지만 그것은 소위 핑계였던 겁니다. 부정하게 채플을 빠지고 이수를 한 것입니다.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 서니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러고도 하나님의 종인가? 학교 행정실을 찾아가 나는 부정하게 채플을 이수했다고 밝힌 겁니다.
그것 때문에 졸업을 한 학기 뒤에 하게 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이미 다 통과 되었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이 학생이 사정을 한 것입니다. 날 탈락시켜달라고 말입니다. 결국은 한 학기를 더 다닌 것입니다. 학교를 한 학기 더 다니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알아도 누구하나 문제를 삼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버젓이 그렇게 하고 그것이 성공하면 자랑처럼 떠벌립니다. 커닝도 실력이라고 말합니다. 부정한 행위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십자가 앞에 가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구원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믿음과 구원은 그래서 다른 것입니다. 아주 작은 죄도 아주 은밀한 죄도 모든 죄는 다 지극히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다 부끄러운 것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남자의 유출병은 성생활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말합니다. 유출병이 발생하면 그 사람은 부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남자의 생식기에 발생하는 질병은 은밀한 것입니다. 그것은 옷이나 음식이나 집에 발생하여 부정을 입은 것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은 다른 사람에게 숨길 수 없지만 은밀한 부정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의복과 피부와 음식과 집에 발생한 부정에 대하여는 제사장이 진단하는 과정이 있지만 생식기에 발생한 부정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되어 스스로 진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과 외모를 중요시합니다. 경건도 외적인 거룩함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위선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어떤 사람의 말은 심령에 떨어지는 권위가 있지만 어떤 사람의 말은 귀에 잘 들리지도 않는 것입니다.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과 심령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볼 수 없지만 하나님만이 보는 마음과 심령이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볼 때 자기 주제파악도 못하는 사람은 말 것도 없고 말입니다. 유출병은 외적으로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은밀하게 보시는 주님 앞에서는 감출 수가 없는 부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은밀한 부정을 주님 앞에 인정하고 속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숨겨진 모든 죄악을 다 찾아내시는 지극히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의식이 없으면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죄를 사람들 앞에 얼마든지 공개적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또 그 죄를 사람들 앞에 공개함으로 양심에 남아 있는 약간의 죄의식까지도 털어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죄를 사람들 앞에 공개하고 그 죄에 대한 의식은 없어도 그 죄는 여전히 은밀하게 그 사람의 마음과 영 안에 숨어있는 것입니다.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나는 그 죄를 사람들 앞에 드러냈다고 그 죄가 용서받거나 사라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한 번은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는데 어떤 목사님이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침 해외에 목회를 갈 기회가 왔나봅니다. 해외에 나가느라 대학원을 마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을 대신하여 다른 목사님이 대학원 과정을 마친 것입니다.
그걸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겁니다.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목사님은 대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한 그 목사님이 고생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오래 된 일입니다. 세상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죄도 없어지는데 하나님 앞에서도 죄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집니까?
저도 신학교에 다닐 때 어떤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리 시험을 봐준 적이 있습니다. 의리와 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통회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 목사님도 대학원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해외는 나가는 그 사정과 또 부탁을 받을 때 거절하지 못했을 겁니다.
참 우리는 왜 그런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안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불신자들보다도 양심도 도덕도 윤리도 없는 부족한 삶을 삽니다. 어떤 죄는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은밀하게 짓고 또 어떤 죄는 죄의식도 없어져 사람들 앞에서 떠벌리고 공개하기도 합니다.
조국의 딸 조민은 부정입학으로 이미 의사고시까지 합격한 의사면허증이 취소가 되었습니다. 정유라는 부정입학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졸업장이 취소가 되어 중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와 성도들의 세계는 죄의 무풍지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까?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말은 세상이 이 시대의 목사와 성도들에게 하는 조롱이 아닐까요? 그것이 세상의 불신자의 입을 통해 교회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아닐까요?
은밀하게 보시는 주님 앞에 우리가 숨길 수 있는 죄악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강하고 밝은 빛 앞에 설 때에야 아무도 모르게 지은 죄가 드러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떠벌리며 지은 그 은밀한 죄가 실체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가 쓴 석사논문에도 부정한 죄가 있었고, 제가 딴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에도 죄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다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 부끄러운 죄악과 죄의식도 없이 버젓이 떠벌리며 지었던 죄악들을 통회하고 애통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주십니다.
주님의 은혜로 나의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십자가 앞에 나아와 자기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그 마음을 찢으며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용서해주시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 나가지 않으면 은밀한 죄를 감추고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한 감각도 없어질 것입니다. 결국에는 아무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심판대 앞에서 그 죄가 드러나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는 날에는 영원한 고통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주실 때 그 기회를 잃지 마시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가장 복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