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으로 돌아오는 베풂
친구와 같이 광주 청심병원 재능기부 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전 봉사는 끝났고 이제 오후 봉사를 갈 차례였다. 빛고을 전대병원에 가기 위해 95번 버스에 올랐다. 겹겹이 서있는 사람들을 뚫고 버스 한 편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친구는 청심병원 환자들의 안타깝고 애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는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송화 주공 아파트 승강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승강장 앞 나무 앞에 선 흐느적거리는 물체가 보였다. 몸이 성치 않은 승객이 버스를 타기 위해 가로수를 보듬고 몸부림 치고 있었다. 마음은 탈수 있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 같았다. 40대 후반쯤 보이는 버스기사님이 운전대를 놓고 일어섰다. 그러곤 쏜살같이 내려가 그 흐느적거리는 사람을 안고 힘겹게 올라와 좌석에 앉혔다. 친구와 나는 감격에 박수를 우레와 같이 쳤다. 승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우며 ‘우리 기사님 멋쟁이!’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돌려주었다.
‘자기내면이 들어날까, 감춘 속마음이 들통날까. 포장에 시름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늙은 노인, 장애자를 보면 오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비껴가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기사님은 모든 내면을 다 내보이고, 진실함이 묻어났다. 요즘 찾기 힘든 남자 천사였다. 한참을 달려 노대동 건강타운이 눈앞에 보였다. 몸이 불편한 승객은 내려야 하는지 앉은 자리에서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친구와 둘이 부축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멋진 남자 승객 한 분이 일어나 그분을 부축하고 내려 승강장 좌석에 앉히고 올라왔다. 우리 둘은 또 힘찬 박수를 쳤다. 몇 명 안 되는 승객들도 한 마음이 되었다. 기사님도 승객이 다시 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런 미담이 또 어디 있을까? 가슴 벅차고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기사님은 또 한 사람의 승객을 찾아서 열심히 달리고 달렸다. 종점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멀미 나는 하루를 운전대에 걸어놓고 주섬주섬 보따리를 싼다. 다음기사님과 교대를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종점에서 좀 더 가야 해서 버스에 앉아 기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기사님은 가볍게 손사래를 치고 내렸다. 그런데 어떨 결에 확인 할 것을 놓치고 말았다. 버스 기사님 성명이다. 누구인지 알아둘 걸 참 안타깝다. 생각은 언제나 늦다. 인터넷에라도 올릴 걸 그것도 참 아쉽다.
버스에서 내린 후에야 아차 싶었다. 이런 미담은 전래동화처럼 만방에 스며들어야 좋을 것을. 너무 흥분해서 잊고 말았다. 전대병원에서 봉사자들과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후 봉사를 했다. 빛고을 전대병원은 말 그대로 관절 병원이라 휠체어를 이용하거나 목발을 사용한 환자가 많이 있다. 평소에도 신경을 썼지만 기사님의 본을 받아 그날은 더 열심히 봉사를 하려고 노력 했다. 봉사는 남에게만 하는 봉사만은 아니었다. 하다 보면 자신에게 하는 봉사도 되었다. 조금이나마 힘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건강을 가진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봉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뉘우치고, 깨달았다. 좋은 세상에서 늙어간다는 것도 큰 축복이라는 생각도 했다. 오늘은 아름답고 참 좋은 하루였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오늘 있었던 미담을 떠올리며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