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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八回 里克兩弒孤主 穆公一平晉亂
제28회: 이극이 두 어린 주군을 죽이고, 진목공(秦穆公)이 진(晉)나라의 난을 평정하다.
話說,荀息擁立公子奚齊,百官都至喪次哭臨,惟狐突託言病篤不至。里克私謂丕鄭父曰:「孺子遂立矣,其若亡公子何?」丕鄭父曰:「此事全在荀叔,姑與探之。」二人登車,同往荀息府中。息延入,里克告曰:「主上晏駕,重耳夷吾俱在外,叔為國大臣,乃不迎長公子嗣位,而立嬖人之子,何以服人?且三公子之黨,怨奚齊子母入於骨髓,只礙主上耳。今聞大變,必有異謀。秦翟輔之於外,國人應之於內,子何策以禦之?」荀息曰:「我受先君遺託,而傅奚齊,則奚齊乃我君矣。此外不知更有他人!萬一力不從心,惟有一死,以謝先君而已。」
한편, 순식이 공자 해제를 후계자로 옹립하니, 백관들이 모두 진헌공의 빈소에 나와서 곡을 했지만 오직 호돌은 병이 위독하다고 핑계하여 나오지 않았다. 이극이 은밀히 비정보에게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마침내 군주가 되었는데, 망명한 공자들은 어찌 되겠습니까?” 했다. 비정보가 말하기를, “이 일은 모두 순식 아저씨에게 달렸으니 잠시 가서 그의 뜻을 살펴봅시다.” 했다. 두 사람은 수레를 타고 함께 순식의 부중(府中 ; 관아)으로 갔다. 순식이 그들을 맞아들이니 이극이 말하기를, “주상은 세상을 떠나시고, 중이와 이오 두 공자는 모두 국외에 있습니다. 아저씨께서 나라의 대신이 되어 어찌하여 맏이 공자를 즉시 맞이하여 군주의 자리를 잇도록 하지 않고, 첩의 소생을 세워서 어떻게 사람들을 승복시키려 하십니까? 또한 세 공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해제 모자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혔으나, 단지 주상을 꺼려했을 뿐입니다. 지금 주군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들은 반드시 다른 계책을 세울 것입니다. 진(秦)나라와 적(翟)나라가 밖에서 그들을 돕고 나라 안의 사람들이 내응한다면 그대는 무슨 계책으로 막을 것입니까?”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나는 선군의 부탁을 받아 해제의 스승이 되었으니 해제가 곧 나의 군주이오. 그밖에 다른 사람은 나는 모르오. 만일 힘이 모자라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오직 한번 죽어서 선군에게 보답할 뿐이오.” 했다.
丕鄭父曰:「死無益也,何不改圖?」荀息曰:「我既以忠信許先君矣,雖無益,敢食言乎?」二人再三勸諭,荀息心如鐵石,終不改言;乃相辭而去。里克謂鄭父曰:「我以叔有同僚之誼,故明告以利害。彼堅執不聽,奈何?」鄭父曰:「彼為奚齊,我為重耳,各成其志,有何不可。」於是二人密約,使心腹力士,變服雜於侍衛服役之中,乘奚齊在喪次,就刺殺於苫塊之側。時優施在旁,挺劍來救,亦被殺。一時幕間大亂。荀息哭臨方退,聞變大驚。疾忙趨入,撫屍大慟曰:「我受遺命託孤,不能保護太子,我之罪也!」便欲觸柱而死。
비정보가 말하기를, “죽음은 헛된 일입니다. 어찌 생각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나는 이미 충성과 신의를 선군에게 맹세했소. 비록 나의 죽음이 헛된 일이라 하더라도 어찌 약속을 저버리겠소?” 했다. 두 사람이 재삼 권유했으나 순식의 마음은 철석같아서 끝내 말을 바꾸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왔다. 이극이 비정보에게 말하기를, “나는 아저씨와 (전장에 함께 나간) 동료의 정의(情誼)가 있어서 이로움과 해로움을 밝혀 깨우쳐 주려고 했지만, 그가 굳게 고집하여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비정보가 말하기를, “그는 해제를 위하고, 우리는 중이를 위하니, 각각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인들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하고, 이에 두 사람이 비밀리에 모의하여 심복 중에서 역사(力士) 한 사람을 변장시켜서 해제의 호위 군사들 속에 섞여 들어가게 했다. 그 역사가 상주의 처소에 있는 해제를 거적자리 옆에서 찔러 죽이니, 그때 옆에 있던 우시가 칼을 빼 들고 구하려 하다가 그 역시 함께 살해되었다. 순식간에 상막(喪幕) 안에서 큰 난리가 일어났다. 그때 순식은 빈청에서 곡을 끝내고 퇴궐하려던 참이었는데,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빈청으로 뛰어 들어가서 해제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대성통곡하며 말하기를, “내가 선군의 탁고(託孤 ; 고아를 부탁함)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자를 지키지 못했으니 이것은 나의 죄다.” 하고, 문득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죽으려고 했다.
驪姬急使人止之曰:「君柩在殯,大夫獨不念乎?且奚齊雖死,尚有卓子在,可輔也。」荀息乃誅守幕者數十人,即日與百官會議,更扶卓子為君,時年纔九歲。里克丕鄭父佯為不知,獨不與議。梁五曰:「孺子之死,實里丕二人為先太子報仇也,今不與公議,其跡昭然。請以兵討之!」荀息曰:「二人者,晉之老臣,根深黨固,七輿大夫,半出其門,討而不勝,大事去矣。不如姑隱之,以安其心而緩其謀。俟喪事既畢,改元正位,外結鄰國,內散其黨,然後乃可圖矣。」
여희가 급히 사람을 보내어 말리면서 말하기를, “선군의 관이 빈소에 있는데 대부는 어찌 혼자 생각을 못 하십니까? 비록 해제는 죽었지만 아직 탁자(卓子)가 있으니 가히 도울 수 있소.” 했다. 순식이 즉시 상막을 지키는 자 수십 명을 죽이고, 그날 바로 백관들과 회의하여 다시 탁자를 군위에 앉혔다. 그때 탁자의 나이는 겨우 9살이었다. 이극과 비정보가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고 회의에 나오지 않았다. 양오가 말하기를, “어린 해제의 죽음은 사실 이극과 비정보 두 사람이 전 태자 신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벌인 일입니다. 오늘 조정 회의에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자취가 명백합니다. 청컨대 군사를 보내 토벌해야 합니다.” 하니, 순식이 말하기를, “두 사람은 진(晉)나라의 노신들이라 그 뿌리가 깊고 무리는 견고합니다. 칠여대부(七輿大夫 : 제후의 뒤를 따르는 일곱 대부)의 절반이 그 문하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을 토벌하여 이기지 못하면 대사를 그르치게 됩니다. 그러니 잠시 참았다가 그들을 안심시킨 다음에 천천히 도모해야 합니다. 선군의 장례를 끝내고 개원해서 탁자의 군주 자리를 확립한 다음에 밖으로 이웃 나라들과 우호를 맺고, 안으로 그 무리가 흩어지게 한 후에 그들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오.” 했다.
梁五退謂東關五曰:「荀卿忠而少謀,作事迂緩,不可恃也。里丕雖同志,而克為先太子之冤,銜怨獨深。若除克,則丕氏之心惰矣。」東關五曰:「何策除之?」梁五曰:「今喪事在邇,誠伏甲東門,視其送葬,突起攻之,此一夫之力也。」東關五曰:「善。我有客屠岸夷者,能負三千鈞絕地而馳。若啖以爵祿,此人可使也。」乃召屠岸夷而語之。夷素與大夫騅遄相厚,密以其謀告於騅遄,問:「此事可行否?」遄曰:「故太子之冤,舉國莫不痛之,皆因驪姬母子之故。今里丕二大夫,欲殲驪姬之黨,迎立公子重耳為君,此義舉也。汝若輔佞仇忠,幹此不義之事,我等必不容汝。徒受萬代罵名,不可,不可!」
양오가 물러나와 동관오에게 말하기를, “순식은 충직하나 계책이 모자란 사람입니다. 일을 하는 것이 멀고 느리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극과 비정보가 비록 동지이기는 하지만 이극은 옛 태자 신생의 스승으로서 원한이 가슴 깊이 맺혀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극만 제거한다면 비정보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했다. 동관오가 말하기를, “그를 제거할 무슨 계획이라도 있습니까?” 하니, 양오가 말하기를, “지금 장례가 가까우니 동문에 갑사들을 매복시켰다가 그가 장례 행렬을 전송하기 위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뛰어나와 공격하면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가능합니다.” 했다. 동관오가 말하기를, “좋습니다. 우리 집 식객에 도안이(屠岸夷)라는 자가 있습니다. 그는 능히 3천 균(鈞 ; 한 균은 서른 근)을 등에 지고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달릴 수 있습니다. 만약 벼슬과 봉록으로 설득한다면 이 사람이 해낼 것입니다.” 했다. 이에 도안이를 불러 그렇게 말했다. 도안이가 평소에 대부 추천(騅遄)과 친하여 그 모의를 추천에게 몰래 고하면서 묻기를, “이 일을 해야 할까요?” 하니, 추천이 말하기를, “옛 태자가 원통하게 죽어 온 나라에 애통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소. 이것은 모두 여희 모자 때문이오. 지금 이극과 비정보 두 대부가 여희의 무리를 없애고 공자 중이를 맞이하여 군주로 삼으려 하니, 이것은 의로운 일이오. 그대가 만약 망령된 자를 돕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해친다면 이는 불의를 행하는 것이오, 우리는 반드시 그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만대에 이르기까지 욕을 먹게 될 것이오. 해서는 절대로 안 되오.” 했다.
夷曰:「我儕小人不知也,今辭之何如?」騅遄曰:「辭之,則必復遣他人矣。子不如佯諾,而反戈以誅逆黨,我以迎立之功與子。子不失富貴,而且有令名,與為不義殺身,孰得?」屠岸夷曰:「大夫之教是也。」騅遄曰:「得無變否?」夷曰:「大夫見疑,則請盟!」乃割雞而為盟。夷去。遄即與丕鄭父言之,鄭父亦言於里克,各整頓家甲,約定送葬日齊發。至期,里克稱病不會葬。屠岸夷謂東關五曰:「諸大夫皆在葬,惟里克獨留,此天奪其命也。請授甲兵三百人,圍其宮而殲之。」
도안이가 말하기를, “나는 소인배라 아무것도 모르니 지금 못하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하니, 추천이 말하기를, “그만둔다고 하면 반드시 다시 다른 사람을 시킬 것이오. 그대가 거짓으로 허락하고 창을 거꾸로 겨누어 역적들을 주살한 후에 내가 공자를 모셔와 군주로 세우는 공을 그대와 함께 할 것이오, 그러면 그대는 부귀를 잃지 않고 아름다운 이름을 얻을 것이오. 불의를 위하여 몸을 죽이는 것보다 낫지 않겠소?” 하니, 도안이가 말하기를, “대부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했다. 추천이 말하기를, “마음이 변하지 않겠소?” 하니, 도안이가 말하기를, “대부가 미심쩍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맹세를 하겠습니다.” 했다. 그래서 닭을 잡아 맹세를 하고 돌아갔다. 추천이 즉시 비정보에게 전하니, 비정보가 또한 이극에게 알렸다. 각각 가병을 정돈하여 장례식 날 일제히 거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이윽고 헌공의 장례식 날이 되었으나 이극은 병을 핑계 대고 장례식에 나오지 않았다. 도안이가 동관오에게 말하기를, “여러 대부가 모두 장례식에 왔는데 오직 이극만 홀로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이극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청컨대 무장한 병사 3백 명만 주시면 그의 집을 포위하여 그들을 몰살시키겠습니다.” 했다.
東關五大悅,與甲士三百,偽圍里克之家。里克故意使人如墓告變。荀息驚問其故,東關五曰:「聞里克將乘隙為亂,五等輒使家客,以兵守之。成則大夫之功,不成不相累也。」荀息心如芒刺,草草畢葬,即使「二五」勒兵助攻,自己奉卓子坐於朝堂,以俟好音。東關五之兵先至東市。屠岸夷來見,託言稟事,猝以臂拉其頸,頸折墜,軍中大亂。屠岸夷大呼曰:「公子重耳,引秦翟之兵,已在城外。我奉里大夫之命,為故太子申生伸冤,誅姦佞之黨,迎立重耳為君。汝等願從者皆來,不願者自去。」軍士聞重耳為君,無不踴躍願從者。
동관오가 크게 기뻐하여 무장병 3백 명을 도안이에게 주어 이극의 집을 포위하게 했다. 이극이 일부러 사람을 진헌공의 묘지에 보내 변이 났음을 고했다. 순식이 놀라서 변이 난 까닭을 묻자 동관오가 말하기를, “이극이 장차 틈을 타서 변란을 일으킬까 걱정하여, 우리가 즉시 집안 식객을 시켜 이극의 집을 포위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일이 성공하면 대부의 공이고, 성공하지 못해도 대부에게는 결코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했다. 순식이 초조하여 대충 장례식을 끝내고, 즉시 이오(二五 ; 동관오와 양오)를 시켜 군사를 끌고 가서 공격을 돕게 하고, 자신은 탁자를 모시고 조당에 앉아서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동관오의 군사들이 먼저 동쪽 저자에 이르렀다. 도안이가 마중을 나와 동관오에게 따로 보고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갑자기 팔로 동관오의 목을 꺾었다. 동관오의 목이 부러져 떨어지니, 군사들이 크게 동요했다. 도안이가 크게 외치기를, “공자 중이가 진(秦)나라와 적(翟)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이미 성밖에 와 있다. 우리는 이극 대부의 뜻을 받들어 옛 태자 신생의 원통함을 씻기 위하여 간사한 무리를 죽이고, 중이를 맞이하여 군주로 받들 것이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자는 나서고, 원치 않는 자는 떠나라.” 하니, 군사들이 중이를 군주로 받든다는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梁五聞東關五被殺,急趨朝堂,欲同荀息奉卓子出奔。卻被屠岸夷追及,里克、丕鄭父、騅遄各率家甲,一時亦到。梁五料不能脫,拔劍自刎,不斷,被屠岸夷只手擒來,里克趁勢揮刀,劈為兩段。時左行大夫共華,亦統家甲來助,一齊殺入朝門。里克仗劍先行,眾人隨之,左右皆驚散。荀息面不改色,左手抱卓子,右手舉袖掩之。卓子懼而啼。荀息謂里克曰:「孺子何罪?寧殺我,乞留此先君一塊肉!」里克曰:「申生安在?亦先君一塊肉也!」顧屠岸夷曰:「還不下手!」屠岸夷就荀息手中奪來,擲之於階。但聞趷蹋一聲,化為肉餅。
양오는 동관오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조당으로 달려가서 순식과 함께 탁자를 모시고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나 도안이의 추격을 받고, 이극, 비정보, 추천 등이 각기 가병을 거느리고 한꺼번에 도착했다. 양오는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칼을 빼어 스스로 목을 찔렀으나 잘리지 않아 도안이에게 붙들려 오다가 이극이 달려들어 휘두르는 칼에 양오는 몸이 두 동강으로 잘렸다. 그때 좌행(左行) 대부 공화(共華) 역시 가병들을 거느리고 이극 등을 돕기 위해 달려와서 일제히 조당의 문을 향하여 쳐들어갔다. 이극이 칼을 뽑아 들고 앞장서자 여러 사람이 뒤따랐다. 좌우 시신들이 모두 놀라 흩어지고, 순식이 얼굴색을 바꾸지 않고 왼손으로 탁자를 안고 오른손으로 소매를 들어 가렸다. 탁자가 두려워서 울음을 터뜨렸다. 순식이 이극에게 말하기를, “어린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차라리 나를 죽이고 선군의 일점혈육을 살려 주기 바라오.”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신생은 어디에 있는가? 그도 또한 선군의 일점혈육이다” 하고, 도안이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는가?” 했다. 도안이가 순식의 품 안에서 탁자를 빼앗아 계단에서 던졌다. 단지 철썩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탁자는 고기 떡으로 변했다.
荀息大怒,挺佩劍來鬥里克,亦被屠岸夷斬之。遂殺入宮中。驪姬先奔賈君之宮,賈君閉門不納。走入後園,從橋上投水中而死,里克命戮其屍。驪姬之娣,雖生卓子,無寵無權,恕不殺,錮之別室。盡滅「二五」及優施之族。髯仙有詩嘆驪姬云:「譖殺申生意若何?要將稚子掌山河。一朝母子遭駢戮,笑殺當年《暇豫》歌。」又有詩嘆荀息從君之亂命,而立庶孽,雖死不足道也!詩云:「昏君亂命豈宜從?猶說硜硜效死忠。璧馬智謀何處去?君臣束手一場空。」里克大集百官於朝堂,議曰:「今庶孽已除,公子中惟重耳最長且賢,當立。諸大夫同心者,請書名於簡!」
순식이 대노하여 칼을 빼 들고 이극을 향하여 달려들었으나, 역시 도안이에게 목이 잘렸다. 이극 등이 궁중으로 몰려 들어갔다. 여희가 먼저 가군(賈君 ; 진헌공의 첫 부인이었던 賈姬의 동생)의 궁으로 달아나려고 하니, 가군이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다. 여희가 후원으로 달아나다가 다리에서 몸을 던져 물에 빠져 죽었다. 이극이 명하여 그 시체의 목을 베었다. 여희의 동생은 비록 탁자를 낳았으나, 진헌공에게 총애를 받지 못했고 권세도 부린 적이 없어서 죽음만은 면하고 별실에 가두었다. 이오(二五)와 우시의 일족을 모두 죽였다.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여희를 한탄하여, “무엇을 위하여 신생을 모함하여 죽였는가? 어린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주려고 한 짓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모자가 함께 죽었으니, 옛날 <가여가(暇豫歌 : 優施가 里克 앞에서 불렀던 노래로 先秦시대 유명한 문학작품)>의 노래말이 우습구나.” 했다. 또 염선(髥仙)이 시를 지어 순식이 군주의 어지러운 명령을 받들어 서얼을 세자로 세워서 비록 죽었지만 말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시에 이르기를, “어리석은 군주의 어지러운 명령을 어쩌자고 받들어, 죽음으로 바친 충성이 소견 좁은 일이 되었다. 벽옥과 명마로 가도멸괵한 지모는 어디로 갔기에, 군신이 속수무책으로 한바탕 헛수고가 되었는가?” 했다. 이극이 조당에 백관을 다 모아놓고 의논해 말하기를, “지금 서얼인 해제와 탁자를 제거했으니 공자들 중에서 가장 연장이고 현명한 중이가 마땅히 진(晉)나라의 군주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 대부 중에서 제 말에 동의하는 분들은 이 죽간에 서명하시기 바랍니다.” 했다.
丕鄭父曰:「此事非狐老大夫不可。」里克即使人以車迎之。狐突辭曰:「老夫二子從亡,若與迎,是同弒也。突老矣,惟諸大夫之命是聽!」里克遂執筆先書己名,次丕鄭父,以下共華、賈華、騅遄等共三十餘人。後至者俱不及書。以上士之銜假屠岸夷,使之奉表往翟,奉迎公子重耳。重耳見表上無狐突名,疑之。魏犨曰:「迎而不往,欲長為客乎?」重耳曰:「非爾所知也。群公子尚多,何必我?且二孺子新誅,其黨未盡,入而求出,何可得也?天若祚我,豈患無國?」狐偃亦以乘喪因亂,皆非美名,勸公子勿行。
비정보가 말하기를, “이 일은 노대부 호돌이 아니면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니, 이극이 즉시 사람을 시켜 수레로 모셔오게 하였다. 호돌은 생각하기를, ‘이 늙은이의 아들 둘이 국외로 망명하였는데, 만약 맞이하였다가 (일이 잘못되면) 함께 시해될 것이다.’ 하고, 사양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여러 대부의 명을 따르겠소,” 했다. 이극이 마침내 붓을 잡고 맨 먼저 목간에 자기 이름을 쓰자, 다음에 비정보 이하 공화, 가화, 추천 등 모두 30여 명이 서명했다. 뒤에 온 사람들은 다 서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서명한 서간을 여희 일당을 소탕하여 상사의 직에 오른 도안이에게 주어 표문을 받들어 적(翟)나라에 가서 공자 중이를 모셔오라고 했다. 중이는 표문의 서명자 중에 호돌의 이름이 없음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위주가 말하기를, “모시러 왔는데 가지 않는다면 계속 나그네로 지내시겠다는 뜻입니까?” 했다. 중이가 말하기를, “그대는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공자들이 아직 많은데 하필 나에게 군주가 되라고 했겠소? 어린아이 둘이 방금 살해되어 그 잔당이 아직 남아 있는데 내가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소. 하늘이 만약 나에게 복을 준다면 어찌 환난만 주고 나라를 주지 않겠소?” 했다. 호언도 역시 상중에 일어난 변란을 이용하여 군주의 자리에 앉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공자 중이에게 들어가지 말 것을 권했다.
乃謝使者曰:「重耳得罪於父,逃死四方。生既不得展問安侍膳之誠,死又不得盡視含哭位之禮,何敢乘亂而貪國。大夫其更立他子,重耳不敢違!」屠岸夷還報,里克欲遣使再往。大夫梁繇靡曰:「公子孰非君者,盍迎夷吾乎?」里克曰:「夷吾貪而忍。貪則無信,忍則無親。不如重耳。」梁繇靡曰:「不猶愈於群公子乎?」眾人俱唯唯。里克不得已,乃使屠岸夷輔梁繇靡迎夷吾於梁。且說公子夷吾在梁,梁伯以女妻之,生一子,名曰圉。夷吾安居於梁,日夜望國中有變,乘機求入。聞獻公已薨,即命呂飴甥襲屈城據之。
이에 중이가 사자 도안이에게 말하기를, “이 중이는 부친에게 죄를 지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도망 다녔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문안과 식사를 하실 때 옆에서 모시는 정성을 다하지 못했고, 돌아가신 뒤에는 시신의 입에 옥을 넣고 곡하는 자리에서 예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어찌 감히 변란을 틈타 나라를 욕심낼 수 있겠습니까? 대부들이 다른 공자를 세우시면 중이는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했다. 도안이가 돌아와서 보고하자 이극이 다시 사자를 보내려고 했다. 대부 양요미(梁繇靡)가 말하기를, “공자라면 누구라도 군주 자리에 오를 수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오를 모셔오지 않습니까?” 했다. 이극이 말하기를, “이오는 욕심이 많고 잔인합니다. 욕심이 많으면 신의가 없고, 잔인하면 친할 수 없습니다. 중이를 모시는 것보다 못하지요.” 했다. 양요미가 말하기를, “오히려 여러 다른 공자들보다는 이오가 낫지 않습니까?” 했다. 여러 사람이 모두 그렇다고 했다. 이극은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도안이로 하여금 양요미를 도와 이오를 양나라에서 모셔오게 했다. 한편 공자 이오가 양나라에 있으면서 양(梁)나라 군주의 딸을 부인으로 삼아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어(圉)라고 했다. 이오는 양나라에서 안전하게 살게 되자, 밤낮으로 진(晉)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그 틈을 이용하여 귀국하여 군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진헌공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즉시 여이생(呂飴甥)을 시켜 굴성(屈城)을 습격하여 점령하게 했다.
荀息為國中多事,亦不暇問。及聞奚齊卓子被殺,諸大夫往迎重耳,呂飴甥以書報夷吾,夷吾與虢射郤芮商議,要來爭國。忽見梁繇靡等來迎,以手加額曰:「天奪國於重耳,以授我也!」不覺喜形於色。郤芮進曰:「重耳非惡得國者,其不行,必有疑也。君勿輕信。夫在內而外求君者,是皆有大欲焉。方今晉臣用事,里丕為首,君宜捐厚賂以啖之。雖然,猶有危。夫入虎穴者,必操利器。君欲入國,非借強國之力為助不可。鄰晉之國,惟秦最強,子盍遣使卑辭以求納於秦乎?秦許我,則國可入矣。」
순식은 나라 안에 일이 많아서 또한 굴성의 일을 처리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해제와 탁자가 이극에게 살해되고 여러 대부가 중이를 모셔오게 했다는 소식을 여이생이 편지로 이오에게 알렸다. 이오는 괵석(虢射)과 극예(郤芮)와 상의하여 진(晉)나라에 들어가 군주의 자리를 다투려고 했다. 갑자기 양요미 등이 이오를 맞으러 온 것을 보고, 손으로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하늘이 나라를 중이로부터 빼앗아 나에게 주는구나!” 하고 저도 모르게 얼굴에 기쁜 표정이 드러났다. 극예가 나아가 말하기를, “중이가 나라 얻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의심나는 점이 있어서입니다. 주군께서는 가볍게 믿으시면 안 됩니다. 무릇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에서 그 임금을 찾을 때는 모두가 큰 욕심이 있어서입니다. 바야흐로 지금 진(晉)나라는 신하들이 정권을 쥐었는데, 이극과 비정보가 그 우두머리입니다. 주군께서는 그들에게 뇌물을 후하게 먹이십시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위험은 남아 있습니다. 무릇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날카로운 무기를 지녀야 하듯이 주군께서 진(晉)나라에 들어가시려고 한다면 강한 나라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진(晉)나라의 이웃 나라 중에서 오로지 진(秦)나라가 제일 강합니다. 공자께서는 반드시 사자를 진(秦)나라에 보내어 겸손한 말로 (군사를 지원하여) 진(晉)나라에 들여보내 달라고 하십시오. 만일 진(秦)나라가 우리를 허락한다면 진(晉)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했다.
夷吾用其言,乃許里克以汾陽之田百萬,許丕鄭父以負葵之田七十萬,皆書契而緘之。先使屠岸夷還報,留梁繇靡使達手書於秦,並道晉國諸大夫奉迎之意。秦穆公謂蹇叔曰:「晉亂待寡人而平,上帝先示夢矣。寡人聞重耳夷吾皆賢公子也。寡人將擇而納之,未知孰勝?」蹇叔曰:「重耳在翟,夷吾在梁,地皆密邇。君何不使人往弔,以觀二公子之為人?」穆公曰:「諾。」乃使公子縶先弔重耳,次弔夷吾。公子縶至翟,見公子重耳,以秦君之命稱弔。禮畢,重耳即退。縶使閽者傳語:「公子宜乘時圖入,寡君願以敝賦為前驅。」
이오가 그 말에 따라 이극에게는 분양(汾陽)의 밭 백만 평을 주고, 비정보에게는 부규(負葵)의 밭 칠십만 평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모두 죽간에 써서 봉한 후에 먼저 도안이에게 주어 돌아가 보고하게 했다. 그리고 양요미를 시켜 편지를 진(秦)나라에 전달하고, 진(晉)나라 대부들이 이오를 그들의 군주로 모시려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진(秦)목공이 건숙(蹇叔)에게 말하기를, “진(晉)나라의 변란이 나의 힘을 빌려 질서를 잡을 모양이오. 지난날 상제께서 꿈에 과인에게 징조를 보였소. 과인이 듣기에 중이와 이오는 모두 현명한 공자라 했습니다. 과인이 선택해서 그를 진(晉)나라의 군주로 들여야겠는데 누구를 세우면 좋겠습니까?” 하니, 건숙이 말하기를, “중이는 적(翟)나라에 있고 이오는 양(梁)나라에 있어 그곳은 다 우리나라에 가까이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사자를 보내 조문하면서 두 공자의 사람 됨됨이를 살펴보지 않으십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지요.” 하고, 즉시 공자 집(公子縶)을 시켜 먼저 중이를 조문하고, 다음에 이오를 방문하여 조문하게 했다. 공자집이 적(翟)나라에 당도하여 중이를 만나서, 진(秦)나라 군주의 명으로 조문을 왔다고 했다. 두 사람이 상견례를 마치자, 중이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공자 집이 심부름하는 사람을 시켜 말하기를, “공자께서는 마땅히 이번 기회에 진(晉)나라에 입국하셔야 할 텐데, 우리 주군께서 원조하여 앞장서겠다고 하셨습니다.” 했다.
重耳以告趙衰。趙衰曰:「卻內之迎,而借外寵以求入,雖入不光矣!」重耳乃出見使者曰:「君惠弔亡臣重耳,辱以後命。亡人無寶,仁親為寶,父死之謂何,而敢有他志?」遂伏地大哭,稽顙而退,絕無一私語。公子縶見重耳不從,心知其賢,嘆息而去。遂弔夷吾於梁,禮畢,夷吾謂縶曰:「大夫以君命下弔亡人,亦何以教亡人乎?」縶亦以「乘時圖入」相勸。夷吾稽顙稱謝。入告郤芮曰:「秦人許納我矣!」郤芮曰:「秦人何私於我?亦將有取於我也!君必大割地以賂之。」夷吾曰:「大割地不損晉乎?」
중이가 조쇠에게 고하니, 조쇠가 말하기를, “나라 안에서 모시러 온 것을 거절하고, 외국의 원조를 받아서 귀국하게 된다면 비록 군주가 되더라도 그다지 빛이 나지 않습니다.” 했다. 중이가 곧 다시 나와서 사자를 보고 말하기를, “귀국의 군주께서 망명 중인 저를 조문해주시고 군주 자리까지 마련해 주려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망명객이라 갖고 있는 재물도 없고, 어진 사람들과 친한 것을 보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금은 부왕이 돌아가신 상황이라 더욱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다른 뜻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중이가 말을 마치고 즉시 땅에 엎드려 크게 곡을 한 후에 이마를 조아리며 물러갔는데 사사로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공자 집은 자기의 말을 쫓지 않은 중이의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가 현인이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물러갔다. 공자집은 곧바로 양나라에 있는 이오에게 조문을 갔다. 서로 상견례를 끝낸 후, 이오가 공자 집에게 말하기를, “대부께서 군명을 받들어 망명 중인 저를 조문하러 오셨는데 어떤 말씀으로 망명한 사람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하니, 공자 집이 이오에게도 역시 이번 기회를 틈타 진(晉)나라로 들어가 군주에 오르라고 권했다. 이오가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다고 했다. 이오가 돌아와 극예에게 고하기를, “진(秦)나라 사람이 나의 입국을 도와주기로 허락했습니다.” 하니, 극예가 말하기를, “진(秦)나라 사람이 왜 우리를 돕겠다는 거지요? 장차 우리에게 바라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땅을 크게 떼어 뇌물로 바치십시오.” 했다. 이오가 말하기를, “크게 땅을 떼어 주면 진(晉)나라에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했다.
郤芮曰:「公子不返國,則梁山一匹夫耳,能有晉尺寸之土乎?他人之物,公子何惜焉?」夷吾復出見公子縶,握其手謂曰:「里克丕鄭皆許我矣,亡人皆有以酬之,且不敢薄也。苟假君之寵,入主社稷,惟是河外五城,所以便君之東遊者,東盡虢地,南及華山,內以解梁為界。願入之於君,以報君德於萬一。」出契於袖中,面有德色。公子縶方欲謙讓,夷吾又曰:「亡人另有黃金四十鎰,白玉之珩六雙,願納於公子之左右。乞公子好言於君,亡人不忘公子之賜。」公子縶乃皆受之。史臣有詩云:「重耳憂親為喪親,夷吾利國喜津津。但看受弔相懸處,成敗分明定兩人。」
극예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신다면, 공자께서는 양나라의 한 필부일 따름입니다. 진(晉)나라의 한 치 땅인들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것이 될지도 모르는데 공자께서는 무엇을 그렇게 아끼십니까?” 했다. 이오가 다시 나와 공자 집을 만나서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이극과 비정보 등은 모두 제가 귀국하는 것을 동의했습니다. 저는 망명객의 처지라 모두에게 적지 않은 땅을 후하게 주었습니다. 진실로 귀국 군주의 은총을 입어 진(晉)나라로 들어가 사직을 보전하게 된다면, 귀국의 군주가 동쪽의 중원으로 내왕하시는 데 편하도록 동쪽으로는 괵(虢)의 땅에서, 서남쪽으로는 화산(華山)에 이르고, 하내로는 해량성(解梁城)을 경계로 하는, 황하 밖의 다섯 성을 군주께 바쳐 군주가 베푼 은혜의 만분지일이나마 갚고자 합니다.” 했다. 이오가 소매 안에서 약조를 쓴 죽간을 꺼내어 얼굴에 후덕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 집이 겸양하여 받지 않으려고 하자, 이오가 다시 말하기를, “망명객이 별도로 황금 40일(鎰 : 8백 냥)과 백옥으로 만든 패옥 여섯 쌍을 준비하였으니 원컨대 공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쓰시고, 바라옵건대 진(秦)나라 군주께 잘 말씀드려 주시면, 공자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했다. 공자 집이 모두 받았다.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중이는 상주가 된 것을 슬퍼하고, 이오는 나라를 탐하여 기뻐하네. 문상객을 대했던 것만 보아도 서로 달라서, 두 사람의 성패가 분명히 정해졌구나.” 했다.
縶返命於穆公,備述兩公子相見之狀。穆公曰:「重耳之賢,過夷吾遠矣!必納重耳。」公子縶對曰:「君之納晉君也,憂晉乎?抑欲成名於天下乎?」穆公曰:「晉何與我事?寡人亦欲成名於天下耳。」公子縶曰:「君如憂晉,則為之擇賢君。第欲成名於天下,則不如置不賢者。均之有置君之名,而賢者出我上,不賢者出我下,二者孰利?」穆公曰:「子之言,開我肺腑。」乃使公孫枝出車三百乘,以納夷吾。秦穆公夫人,乃晉世子申生之娣,是為穆姬。幼育於獻公次妃賈君之宮,甚有賢德。
공자집이 돌아와 진목공에게 복명하면서, 두 공자를 만났던 실상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중이가 이오보다 훨씬 어질구나. 반드시 중이를 진(晉)나라 군주로 세워야겠다.” 하니, 공자 집이 대답하기를, “주군께서 진(晉)나라 군주를 세우려는 이유가 진(晉)나라를 근심해서입니까? 아니면 주군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자 하심입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과인은 나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싶을 뿐이다.” 하니, 공자 집이 말하기를, “주군께서 진(晉)나라를 걱정해서라면 현인을 택하여 군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만 전하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려고 하신다면 현자를 택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나라의 군주를 세웠다는 이름을 떨치시기 위해 현자를 택하신다면 그 현자가 전하보다 뛰어나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을 택하시면 그는 전하보다 아래에 있게 됩니다. 둘 중에서 누가 우리에게 이롭겠습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시원하다.” 했다. 진목공은 즉시 공손 지에게 전차 300대를 내어주며 이오가 진(晉)나라 들어가게 돕도록 했다. 진목공의 부인 목희(穆姬)는 죽은 세자 신생의 누이동생이다. 목희가 어렸을 때 생모 제강이 일찍 죽었으므로 당시 진헌공의 두 번째 부인 가군이 맡아 길렀다. 가군은 사람됨이 아주 어질고 덕이 있었다.
聞公孫枝將納夷吾於晉,遂為手書以屬夷吾,言:「公子入為晉君,必厚視賈君。其群公子因亂出奔,皆無罪。聞葉茂者本榮,必盡納之,亦所以固我藩也。」夷吾恐失穆姬之意,隨以手書復之,一一如命。時齊桓公聞晉國有亂,欲合諸侯謀之,乃親至高梁之地。又聞秦師已出,周惠王亦遣大夫王子黨率師至晉,乃遣公孫隰朋會周秦之師,同納夷吾。呂飴甥亦自屈城來會。桓公遂回齊。里克丕鄭父請出國舅狐突做主,率群臣備法駕,迎夷吾於晉界。夷吾入絳都即位,是為惠公。即以本年為元年。(按晉惠公之元年,實周襄王之二年也。)國人素慕重耳之賢,欲得為君。及失重耳得夷吾,乃大失望。
공손 지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이오를 도와 진(晉)나라 군주 자리에 앉힌다는 소식을 들은 목희는 손수 편지를 써서 이오에게 전하여 이르기를, “공자께서 진(晉)나라에 들어가 군주가 되시면, 반드시 가군을 잘 보살펴 주기를 바랍니다. 여러 공자가 변란으로 외국에 달아난 것은 모두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듣기로는 잎이 무성해야만 나무가 번성한다고 들었습니다. 반드시 국외의 공자들을 모두 불러들여야만 또한 진(晉)나라의 울타리가 번성해질 것입니다.” 했다. 이오는 목희의 관심을 잃을까 두려워서 빠짐없이 시행하겠다는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때 제환공은 진(晉)나라에 내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제후들을 모아 의논하려고 친히 고량(高梁) 땅으로 갔다. 또 진(秦)나라 군사들이 이미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주혜왕(周惠王)도 대부 왕자 당(王子黨)을 시켜 군사를 진(晉)나라에 파견했다. 이에 제환공은 공손 습붕에게 명하여 주나라와 진(秦)나라의 군사들과 힘을 합쳐서 이오가 진(晉)나라의 군주가 되도록 돕게 했다. 여이생도 굴성에서 나와서 모였다. 제환공은 마침내 제나라로 돌아갔다. 이극과 비정보는 국구 호돌에게 이오의 군위 등극을 주관해 주도록 청하니, 호돌이 군신을 거느리고 어가를 준비하여 진(晉)나라 경계에서 이오를 맞이했다. 이오가 강성(絳城)에 들어가서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진(晉)나라 혜공(惠公)이다. 곧 그 해를 혜공 원년으로 삼았다. (진혜공 원년은 주양왕 2년, 기원전 650년이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평소에 중이를 흠모하여 그를 군주로 모시려고 했으나, 중이는 오지 않고 이오가 와서 군주가 되니 모두가 크게 실망했다.
惠公既即位,遂立子圉為世子。以狐突虢射為上大夫,呂飴甥郤芮俱為中大夫,屠岸夷為下大夫。其餘在國諸臣,一從其舊。使梁繇靡從王子黨如周,韓簡從隰朋如齊,各拜謝納國之恩。惟公孫枝以索取河西五城之地,尚留晉國。惠公有不舍之意,乃集群臣議之。虢射目視呂飴甥,飴甥進曰:「君所以賂秦者,為未入,則國非君之國也。今既入矣,國乃君之國矣,雖不畀秦,秦其奈君何?」里克曰:「君始得國,而失信於強鄰,不可。不如與之。」郤芮曰:「去五城是去半晉矣。秦雖極兵力,必不能取五城於我。且先君百戰經營,始有此地,不可棄也。」
진혜공이 진(晉)나라 군주에 오르자 즉시 아들 어(圉)를 세자에 삼았다. 호돌과 괵석을 상대부로 삼고, 여이생과 극예를 중대부로 삼고, 도안이는 하대부로 삼았다. 그 밖에 진나라에 있던 신하들은 옛날의 직급에 그대로 있게 했다. 진혜공은 양요미를 사자로 삼아 왕자 당을 따라 주나라에 가게 하고, 한간(韓簡)은 습붕을 따라 제나라에 가게 하여, 각기 자신이 진(晉)나라 군주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은혜에 감사의 말을 전하게 했다. 오직 공손 지는 (할양하기로 약속한) 황하 밖의 다섯 성을 받아 가기 위해 아직 진(晉)나라에 머물고 있었다. 진혜공이 황하 밖의 땅을 떼어 주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즉시 여러 신하를 모이게 하여 의논했다. 괵석이 여이생에게 눈짓을 하자 여이생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기를, “주군께서 진(秦)나라에 뇌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우선 귀국해야만 군주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이미 귀국하시어 이 나라가 주군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진나라 군주가 주군을 어찌하겠습니까?” 하니 이극이 말하기를, “주군께서 나라를 얻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강한 이웃 나라에 신의를 잃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했다. 극예가 말하기를, “다섯 성을 주어 버리면 진(晉)나라의 절반을 주는 것입니다. 진(秦)나라가 비록 병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반드시 힘으로 다섯 개의 성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또한 선군께서 무수한 싸움 끝에 비로소 이 땅을 얻어 경영했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습니다.” 했다.
里克曰:「既知先君之地,何以許之?許而不與,不怒秦乎?且先君立國於曲沃,地不過蕞爾。惟自疆於政,故能兼並小國,以成其大。君能修政而善鄰,何患無五城哉?」郤芮大喝曰:「里克之言,非為秦也,為取汾陽之田百萬,恐君不與,故以秦為例耳!」丕鄭父以臂推里克,克遂不敢復言。惠公曰:「不與則失信,與之則自弱,畀一二城可乎?」呂飴甥曰:「畀一二城,未為全信也,而適以挑秦之爭。不如辭之。」惠公乃命呂飴甥作書辭秦。書略曰:「始夷吾以河西五城許君。今幸入守社稷,夷吾念君之賜,欲即踐言。大臣皆曰:「地者,先君之地。君出亡在外,何得擅許他人?」寡人爭之弗能得。惟君少緩其期,寡人不敢忘也。」
이극이 말하기를, “이미 선군이 힘들여 경영한 땅인 줄 알면서 어찌하여 떼어 준다고 약속했습니까? 주기로 약속하고 주지 않는다면 진(秦)나라를 노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옛날 선군들께서 곡옥(曲沃)에 나라를 세우실 때 땅이 한 뼘도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스스로 힘쓰는 정치로 작은 나라들을 합쳐서 이렇듯 큰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주군께서 능히 정치를 쇄신하시어 이웃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맺으신다면 어찌 다섯 성이 없는 것을 근심하겠습니까?” 했다. 극예가 큰소리로 외쳐 말하기를, “이극의 말은 진(秦)나라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분양의 땅 백만 평을 받기로 한 것을 주군께서 주기 않을까 걱정되어서 진(秦)나라를 예로 든 것 뿐입니다.” 했다. 비정보가 이극의 어깨를 밀며 만류하자 이극이 마침내 감히 다시 말하지 않았다. 진혜공이 말하기를, “주지 않으면 신의를 잃게 되고, 주면 우리의 힘이 약해질 것이니, 한두 개의 성을 주면 어떻겠소?” 하니, 여이생이 말하기를, “한두 개의 성을 준다 해도 우리가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진(秦)나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하게 할 뿐입니다. 아예 거절하는 것만 못합니다.” 했다. 진혜공이 여이생에게 명하여 다섯 개의 성을 진(秦)나라에 주지 못하겠다는 편지를 쓰게 했다. 편지에 대략 이르기를, “처음에 이 이오가 황하 밖 다섯 성을 군주께 떼어 주기로 약속을 드리고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다행히 사직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이오가 군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기 위해 즉시 약속을 실천하려고 했으나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영토는 선군의 땅인데 주군께서 국외에 망명한 처지에서 어찌 나라의 땅을 함부로 타인에게 떼어 준다고 하셨습니까?’라고 해서 제가 대신들과 논쟁을 하였으나 그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부디 군주께서 저에게 얼마간의 말미를 주신다면 그 은혜를 감히 잊지 않겠습니다.” 했다.
惠公問:「誰人能為寡人謝秦者?」丕鄭父願往,惠公從之。原來惠公求入國時,亦曾許丕鄭父負葵之田七十萬,惠公既不與秦城,安肯與里丕二人之田?鄭父口雖不言,心中怨恨,特地討此一差,欲訴於秦耳。鄭父隨公孫枝至於秦國,見了穆公,呈上國書。穆公覽畢,拍案大怒曰:「寡人固知夷吾不堪為君,今果被此賊所欺!」欲斬丕鄭父。公孫枝奏曰:「此非鄭父之罪也,望君恕之!」穆公餘怒未盡,問曰:「誰使夷吾負寡人者?寡人願得而手刃之!」
진혜공이 묻기를, “누가 능히 과인을 위해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겠는가?” 하니, 비정보가 가겠다고 자원하자 진혜공이 허락했다. 원래 진혜공이 입국하려 할 때, 또한 비정보에게도 부규의 땅 70만 평을 주기로 약속했으나, 진혜공이 이미 진(秦)나라에 다섯 성을 주지 않기로 했는데, 어찌 이극과 비정보 두 사람에게 땅을 주겠는가? 비정보는 입으로 비록 말을 하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원망하여 특별히 이번에 진(秦)에 사신으로 가서 이 일을 호소하고자 함이었다. 비정보가 공손지를 따라 진(秦)나라에 도착하여 목공을 뵙고 국서를 바쳤다. 목공이 편지를 다 읽더니 책상을 치며 대노하여 말하기를, “과인은 본디 이오가 군주의 자질이 없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과연 오늘 보니 이 도적에게 기만을 당했구나!” 하고, 비정보를 참수하려 하자 공손지가 아뢰기를, “이것은 비정보의 죄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했다. 진목공이 화를 풀지 못하고 묻기를, “누가 이오로 하여금 과인에게 다섯 성을 주지 말라고 했는가? 내가 잡아다 목을 치겠다.!” 했다.
丕鄭父曰:「君請屏左右,臣有所言。」穆公色稍和,命左右退於簾下,揖鄭父進而問之。鄭父對曰:「晉之諸大夫,無不感君之恩,願歸地者。惟呂飴甥郤芮二人從中阻撓。君若重幣聘問,而以好言召此二人,二人至,則殺之。君納重耳,臣與里克逐夷吾,為君內應,請得世世事君。何如?」穆公曰:「此計妙哉!固寡人之本心也!」於是遣大夫冷至隨丕鄭父行騁於晉,欲誘呂飴甥郤芮而殺之。
비정보가 말하기를, “군주께서 좌우를 물리쳐 주시면 신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니, 진목공이 얼굴색을 조금 누그러뜨리며 좌우를 주렴 아래에서 물리치고 비정보에게 읍하며 나아가 물으니, 비정보가 대답하기를, “진(晉)나라의 대부들은 군주의 은혜에 감사하여 땅을 바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이 가운데서 반대합니다. 군주께서 만약 많은 예물을 들려서 사신을 보내 좋은 말로 이 두 사람을 부르십시오. 두 사람이 오면 그들을 죽이고, 군주께서 공자 중이를 진(晉)나라 군주로 다시 보내신다면, 신과 이극이 이오를 몰아내고 군주를 위해 안에서 호응하겠습니다. 저희는 대대로 군주를 받들어 모시고자 하온데 어떠하십니까?” 했다. 진목공이 말하기를, “그 계책이 아주 좋소. 그것은 본디 과인이 바라던 바요!” 했다. 이에 진목공이 대부 냉지(冷至)를 사신으로 하여 비정보를 따라 진(晉)나라에 가서, 여이생과 극예를 유인해 와 살해하려고 했다.
不知呂郤性命何如,且看下回分解。
여이생과 극예의 목숨이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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