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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라(이사야 59:1~21)
* 본문요약
하나님이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그들은 입에서 거짓과 악독을 내고, 죄악을 행하며, 공의와 진실로 재판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생각이 악해 황폐와 파멸에 이르니 평강을 알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빛과 구원을 바라나 암흑 속에서 헤매며,
육신은 건강한 듯 보이나 죽은 자와 같습니다.
이는 그들이 저지른 죄가 심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중재자가 없자 이를 이상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친히 일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자가 임할 것이며, 그들과 세우신 언약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332장(새 274) 나 행한 것 죄뿐이니
412장(새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 본문해설
1.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1~8절)
1)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니라
(너희 혀는 터무니없는 것을 믿고 사실무근인 못된 소리만 지껄임이라).
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말하며,
잔해를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음모를 꾸며 잔악한 행동을 하며),
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6) 그들이 짠 거미줄로는 옷도 만들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그들이 만든 것)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강포한 행습이 있으며(그들의 손에는 포악한 행동만 있으며),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이 끼쳐졌으며(그들이 가는 길에는 황폐와 파멸뿐이며),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 갈라놓았고(1절) : 마브딜림
‘갈라놓다’에 해당하는 ‘마브딜림’은
대체로 커튼이나 담벽 등으로 영역의 구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로,
여기에서는 하늘과 땅이 나누어진 것처럼
하나님과 백성 사이가 벌어지고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 독사의 알을 품으며(5절) :
독사의 알은 아직 부화 되지 않아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강한 독을 가진 독사가 있어 결국 그 알을 품은 자를 망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는 자들이 독사의 알을 품는 것처럼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거미줄을 짜나니(5절) :
여기에서의 거미줄은 다른 곤충을 잡기 위해 치는 함정을 뜻하는 것으로,
남을 해치기 위해 놓는 덫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거미줄은 아주 작은 힘으로도 망가질 정도로
힘도 능력도 없는 허망한 것임을 뜻하기도 합니다.
- 그 알을 먹는 자(5절) :
단순히 악한 생각을 품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악한 생각이 자신의 삶의 목표가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제는 그 악한 일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 악한 생각이 자신의 삶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 그 알이 밟힌즉(5절) :
독사의 알을 밟는 자는 악인의 계획에 동조하여
악한 일에 함께 참여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2. 공평과 의가 사라진 이스라엘(9~15절)
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암흑 속을 걸을 뿐이므로
10) 우리가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대낮에도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니, 우리가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몸은 건강한 사람처럼 보여도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지라)
11) 우리가 곰처럼 부르짖으며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울면서
공평을 바라나 공평이 없고, 구원을 바라나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도다.
12)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위가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13)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 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거짓말을 마음에 품고 또 입으로 거짓말을 토해내고 있으니)
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에서 떠난 자가 도리어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 소경같이 담을 더듬으며(10절) :
갑자기 만난 재앙에 당황하여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를 표현한 것
-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14절) : 미쉬파트
여기에서 공평(미쉬파트)은 재판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을 뜻합니다.
재판은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자나 뇌물에 바친 자에게 유리하도록
재판이 거짓으로 왜곡되어 진행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3. 하나님께서 친히 행동하기로 결정하시다(16~21절)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17) 의로 호심경(갑옷)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보복, 응징)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열정)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19) 서쪽(해지는 곳)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 돋는 편에서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2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구속자(구원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리라.”
21)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중재자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셨으므로(16절) : 마프기아
‘중재자’에 해당하는 ‘마프기아’는 ‘만나게 하다, 간청하다’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만나게 해주거나
하나님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중재자가 없다는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가슴 아파하는 자도 없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자도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18절) :
그동안 하나님께서 보복하시며 대적하시는 대상은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하고 있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영적 무기력증의 위험
1) 영적 무기력증에 빠진 이스라엘(9~10절)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그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멀리 만리타향에서 포로 되었다가 돌아오는 것이니
우리나라가 1945년 일본에서 해방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나라 건설의 부푼 꿈을 안고 돌아와서 성벽과 성전을 건설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레위인과 제사장을 불러서
레위기 법전에 따른 예배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치명적인 영적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이사야 59장은 영적 무기력증에 빠진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을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물론,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집단 음란행위를 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은 그런 극심한 타락의 행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기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아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이토록 빨리 무너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영적 무기력증에 빠진 이유 :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품었기 때문
이스라엘이 영적 무기력증에 빠진 첫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세상 만민을 구할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맡기기 위해
그들을 포로에서 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과거 다윗 시대의 영광을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보고 계시는데,
이스라엘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부흥만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열심히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는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 되고 영적인 허전함과 허망함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3) 신앙을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
신앙이란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예배를 열심히 드리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나라를 부흥시켜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예배였습니다.
2. 영적 무기력증의 치명적인 증상들
이렇게 형식에 빠진 예배, 하나님과 끊어진 자기들끼리 만의 예배는
그들을 급격히 영적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습니다.
영적 무기력증에 빠지니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은 없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이 없으니
세상의 즐거움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무기력증입니다.
1) 경건의 형식에만 집착하는 이스라엘(58:2, 5)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은 오직 민족의 부흥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부흥하여 과거 다윗의 시대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는 것,
이것 이외의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혹시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다른 말씀을 주실지라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때만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으니 오직 예배의 형식과 절차에만 집중합니다.
➠ 이것이 진짜 예배와 가짜 예배의 차이입니다.
진짜 예배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지만,
가짜 예배는 예배의 절차와 형식에 집중합니다.
이들이 금식할 때 얼굴을 어떻게 숙여야 한다든지,
얼굴 표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재를 얼마나 깔아야 한다든지 하는 것까지 지킨 것을 보면,
이들이 예배의 형식과 절차를 얼마나 중시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이사야 58장 참조).
2) 죄악의 무감각증에 빠진 이스라엘(59:3~8절)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 이스라엘,
그들은 그저 예배의 형식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딴 곳에 있으면서 그저 몸만 예배에 참석했을 뿐입니다.
➀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온통 거짓과 악한 행동뿐(3~4절)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니 재판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의대로 하는 자가 없습니다.
재판은 오직 뇌물의 액수에 따라 판결이 될 뿐입니다.
마음에는 모두 악한 생각들뿐이고, 입으로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말뿐입니다.
➁ 독사의 알을 품고 거미줄을 짜는 허망한 자들(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 품은 생각들을
독사의 알을 품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누구나 악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알을 품듯 그 악한 생각을 계속 품는 자들은
그 알에서 나온 독사에 물리듯 그 악한 생각에 점령을 당하고 맙니다.
독사의 알을 품다가 그 알을 먹는 자들은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독사의 알을 먹는다는 것은 그 악한 생각이 그를 완전히 지배한 것을 뜻합니다.
이제 그 악한 일이 자기 인생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 악한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으니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악한 생각을 품는 자들이 하는 일들은 거미줄을 짜는 것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그들이 세운 건물이나 권세가 튼튼해 보이지만,
거미줄이 허망하게 무너지듯 그들이 세운 것들도 허망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➂ 그들의 짠 거미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6절)
그들이 악한 생각을 품다가
아예 그 악한 생각을 이루기 위해 사는 자들이 되고 나면
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거미줄을 짜는 것처럼 허망한 것이 됩니다.
그들이 짠 거미줄로는 결단코 자기의 수치를 가릴 수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화려한 것으로 자기를 포장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한 모든 일을 다 아십니다.
➃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7절)
하나님의 말씀 듣기에는 굼뜬 자들이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는 신속합니다.
세상일에는 분주하고 하나님 일에는 게으른 자들이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격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예배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혼날 것 같으니 억지로 드릴 뿐입니다.
마음은 온통 세상일에 있습니다.
➄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8절)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마음이 떠났으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온통 세상에 있으니 스스로 굽은 길을 만듭니다.
자기를 파멸시키는 일을 기뻐하며 행합니다.
누가 그 일은 너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말해주어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3. 영적 무기력증의 결과 : 하나님과의 단절과 파멸
문제는 이렇게 타락한 삶을 살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매 주일 예배를 빼놓지 않고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직분도 갖고 있고 봉사도 하고 있으니
자기는 주님을 믿는 백성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떠나있음에도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요(1절)
그러나 이런 자들은 이미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자들입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딴 것을 생각하며 입술로만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2절)
하나님께 듣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죄악이 우리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마음에는 하나님 대신 세상이 있고, 손에는 온갖 더러운 죄가 묻어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입술로만 “주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4. 기쁨과 감사가 사리진 거짓 경건
1)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림 :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울면서(11절)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만 참여하고 있으니,
신앙의 기쁨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입술로는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울면서 기도하지만,
하나님을 찾는 간절한 부르짖음도 아니고 죄를 회개하기 위한 슬픔도 아닙니다.
그저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자기연민에 울부짖을 뿐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오래 예배드리고 기도해도 신앙의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일로 기쁨을 얻지 못하니 그 기쁨을 세상에서 대신 얻으려 합니다.
세상에서 기쁨을 얻으니 마음은 더욱 허망해지고,
마음이 허망해지니 신앙의 기쁨은 더욱 없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2) 경건의 능력의 상실 : 공평을 바라나 공평이 없고(11절)
공평은 바라지만 공평은 없습니다.
자기는 남에게 공평한 대우를 받기를 바라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공평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구원을 바라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집니다.
경건의 능력은 점차 사라지고,
기쁨도 감사도 없는 형식만 남은 예배를 드릴 뿐입니다.
3) 말씀이 그의 백성에게 천대를 받음(13~15절)
신앙의 기쁨을 잃어버린 자들은 점점 말씀 듣는 자리를 싫어합니다.
세상이 더 좋습니다.
마음에 포학과 패역이 점점 늘어가기만 합니다.
입으로는 거짓을 말하고 하나님의 의는 멀리 치워버렸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데 모두가 이렇게 악한 생각만 하고 있으니,
혹시 그들 중에 악에서 떠나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자가 있으면
그들이 도리어 주변 사람들에게 탈취당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가 도리어 조롱을 당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소경같이 더듬으며 대낮에도 넘어지니 강장한 자도 죽은 자 같다(10절)
마음에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채운 자가 드리는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도 없고,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도 없는 자가 지키는 예배의 절차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들은 소경같이 더듬으며 대낮에도 넘어집니다.
세상에서는 강한 자같이 보이겠으나 실상 죽은 자와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5. 하나님께서 직접 행동하기로 결정하시다
1) 중재자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신 하나님(16절)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렇게 타락했는데도
그들의 죄를 아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을 모른다면 모를까 말씀도 알고,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도 다 아는데
어쩌면 그렇게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면서,
그들의 죄를 아파하는 기도는 하나도 없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런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자 하나도 없는 것을
아주 이상하게 여기셨습니다.
이 온 우주를 만드실 때에는 사람의 도움 없이 하나님께서 홀로 하셨습니다만,
오직 하나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 간구하는 사람이 하나 없으니,
결국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기로 결단하십니다.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16절)
2) 구원과 심판을 위한 준비를 하시는 하나님(17~18절)
17절은 군사가 전쟁에 나갈 때에 완전군장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갑옷과 투구를 입으시고 출정 준비를 하십니다.
의의 갑옷과 구원의 투구와 복수의 속옷과 열심의 겉옷을 입으셨다고 했습니다.
구원과 심판의 두 가지 무기로 무장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직접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는
항상 구원과 심판의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이렇게 구원과 심판의 두 가지 무기로 무장한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3)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19~20절)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힘이 없음을 확인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세상에 직접 임하셔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런데 사람 중에 지극히 작은 율법이라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으니
하나님께서 무엇을 근거로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레위기와 신명기에 있는 언약)의 말씀으로는
하나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위한 새로운 근거를 마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야곱 중에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이 임하게 하리라”(20절) 하고 말씀하십니다.
전에는 율법(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리라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 묵상 :
그러나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끝내 자기의 고집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결국 악한 자들이 받는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마지막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기도제목
1. 영적 무기력증에 빠지지 말게 하옵소서.
2.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예배와 기도를 드리게 하옵소서.
3. 우리의 마음을 주께 드리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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