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出於藍(청출어람)
‘배움은 그쳐서는 안 된다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푸른색(靑)은 쪽(藍)에서부터 나왔으나 쪽보다 더 푸르다
(靑取之於藍而靑於藍/청취지어람이청어람).
얼음은 물로 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氷水爲之而寒於水/빙수위지이한어수)’
라는 구절에서 나온 이 말은 제자가 스승보다 더 학문이나 실력이 높다는 뜻으로
기원전 3세기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 1장에서 유래한다.
먼저 여기서 ‘쪽에서 나온 더 푸른색’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쪽에서 쪽빛,
즉 남색(藍色)이 나오게 되는 과정을 간략히 알아보기로 한다.
한해살이 풀인 초록색(푸른색)의 쪽을 7~8월에 수확하여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어
이틀 정도 두면 연두색이 우러나오는데 쪽 잎과 줄기를 항아리에서 빼내고 항아리에
석회 가루나 조갯가루와 잿물을 넣고 혼합하면 진흙같이 진득한 니람(泥藍)이 된다.
이것을 막대기로 한참 저어서 공기와 닿게 하면 미생물의 발효(醱酵)에 의해 점차로
산화(酸化)되어 자주색 빛을 띠는 진한 푸른색의 쪽빛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 혼합물을 여과하면 쪽빛을 내는 천연 액체 염료가 얻어진다.
쪽 잎과 그 속에서 나온 쪽빛(藍色) 순자가 ‘배움은 꾸준한 정진(精進)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초록색의 쪽에서 푸른 쪽빛이 얻어지는 과정을 학문의 연마
과정과 비유한 것은 참으로 비상(非常)한 통찰(洞察)이라 아니할 수 없다.
즉, 쪽을 물속에 담가 놓으면 단지 쪽 잎의 연두색만 우러나올 뿐이지만 여기에
여러 가지 성분을 넣고 공기를 넣어주고 오랫동안 발효시키면 화학반응이 일어나
연두색이 발효 과정에 따라 다양하고 신비로운 쪽빛으로 변환되듯
학문을 닦는 일도 스승의 가르침, 본인의 노력과 지적(知的) 숙성(熟成)의 과정과
시간을 거쳐야 스승보다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청출어람이라는 말로 요약한 것이다.
사실 동서양을 불문하고 학문의 발전은 청출어람의 끊임없는 연속의 결과라
볼 수 있으며 공자(孔子)가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 11장에서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이면 可以爲師矣(가이위사의)라, 즉 ‘옛것을 익히고
그로부터 새것을 알게 되면 스승이 될만하다’는 말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하겠다.
또한 청출어람이란 말에서 순자의 스승관(觀)을 음미(吟味) 해 볼 필요가 있다. 남이
나보다 잘되면 질투심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본능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자는 제자가 스승보다 학문적으로 더 높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된 스승은 자신의 지식을 제자에게 전해주는 것에 인색해 하지 않고 또한
제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기에 존경받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떤 일이든 내가 잘되어 성공하는 것을 진정으로 바라고 시기하지 않는 사람은
부모와 배우자와 스승뿐이라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제자 또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더 높아지고 이름을 날리게 되어도
교만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논문 발표로 유명해진 어떤 젊은 교수가 학회 발표 중 그의 지도교수와
논란(論難) 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를 무시하며 반박하는 모습을 오래전
학회에서 본 적이 있다.
젊은 교수가 자신이 개발한 이론의 우수성에 큰 자부심을 가진 것은 모두 인정했으나
스승에 대한 예의 없는 행동은 청출어람을 바라는 스승의 뜻이 제자에 의해
퇴색(退色) 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미국의 교육 문화가 가르치는 사람을 지식의 전달자로만 인식하는 경향인지 교실 또는
강의실 밖에서의 인간적 유대관계와 거기에서 얻어지는 사제(師弟) 간의 교류는
동양과 무척 다르다.
아마 그런 문화의 차이 때문에 미국엔 스승의 날이라는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