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성일 - 개척자의 피 땀 눈물 - 3. 전도사가 되어
1 1957년에 특별 하계 전도가 시작되어서 전국에 120개소를 설정하고 전도사를 파송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경남 고성(固城)으로 박정진 모친과 같이 전도 나갔다. 이요한 목사님은 우리를 전도지에 보내면서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러 가라”라는 것이었다.
2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너희가 가서 말씀을 전하다가 그 집에서 받아주면 먹고 마시고 배척하면 먼지라도 털어버리고 가라’라는 말씀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깃들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노라’라고 했으니 이번 기간은 하늘의 심정을 체휼하고 오는 그 자체가 성과라고 했다.
3 그래서 나는 이번 기간에 정말 그 말씀대로 살다 오기로 했다. 박정진 모친과 초량역에서 마산행 열차를 타고 마산에서 내려서 고성행 버스를 타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고성에 도착했다. 내리고 보니 갈 곳이 없었다. 방을 얻었으면 좋겠는데 이 목사님의 말씀에 ‘방부터 얻지 말고 오라는 사람이 생길 때 그 집에 유하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버스정류장 옆집에 들러서 마루에서 하룻밤 유(留)하겠다고 부탁했더니 허락해 주어서 저녁식사는 미숫가루로 때우고 잠을 잤다.
4 이튿날 그 동네의 가정을 방문했는데 기성교회 장로 댁에서는 “어젯밤 꿈에 두 천사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보았는데 바로 당신들인가 봅니다” 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원리 말씀을 전하니 ‘아멘’ ‘아멘’ 하면서 좋아했다. 내가 기도할 때는 힘이 나서 더 큰 소리로 ‘아멘’ 한다.
5 말씀을 끝내고 나니 “은혜받은 것을 우리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알리고 우리 교회에서 말씀해 달라고 부탁하겠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교인들에게 말하지 마시고 장로님만 다 알고 나서 알리자고 했는데도 자기 교회에 가서 은혜 있는 두 분을 모셔 다 말씀 듣자고 광고했다고 한다. 그러니 즉각 반응이 왔다.
6 목사와 교인들이 장로님 정신이 나갔다고 하면서 박태선 패인가 본데 이단을 어디에 세우겠는가 호통을 당했다고 한다. 그 후 그와는 인연이 끊겨 버렸다. 또한 기성교회 집사도 계시를 받고는 자기 집에 방을 줄 테니 유하고 앞 터전에 교회까지 짓자고 하였다. 이것도 장로교인들이 알고 집에까지 와서 역사하므로 그 집사도 그만 뜻이 꺾이고 말았다. 그래서 40일 전도 기간 중 아무런 실적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