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ola Scriptura Tota Scriptura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28
전도서 7장 29절 [6장 1-2항]
지금까지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에서 성경에 대하여, 2장에서 5장까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해서 살폈습니다. 오늘부터 다루게 될 내용은 인간에 대한 것인데, 안타깝게도 인간의 타락과 죄와 그에 대한 형벌에 대한 내용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의 고백입니다. 제4장 창조에 대한 고백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이 부여된 이성적이며 죽지 않을 영혼을 지닌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어 그것을 이룰 능력을 지니게 하셨으나, 범죄의 가능성 아래, 변화에 종속된 그들 자신의 의지의 자유에 놔두셨다는 것,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이 법 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 그것을 그들이 지키는 동안에는 하나님과의 교통 가운데 행복했었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졌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는가?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1항은 그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일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임도 고백합니다. 3장 1항에서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그 자신의 뜻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의논에 의해 장차 일어날 일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정하시되 불변토록 정하셨다는 것이 하나님의 작정의 내용이라면, 그 작정의 실행으로서 섭리는 5장 4항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능하신 권세와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한 선하심은 그의 섭리 안에서 그 속성들 자체를 보여주는 한, 섭리 자체가 심지어 첫 타락 및 천사들과 사람들의 모든 죄들까지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작정과 섭리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고 해서 하나님이 죄의 저자나 승인자가 될 수 있는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백하는 것이 그러나 죄됨은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피조물로부터만 나온다는 것, 하나님은 가장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죄의 저자도 승인자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서는 제6장 인간의 타락과 죄와 그에 대한 형벌에 대한 고백 1항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의 첫 부모는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의해 유혹받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범죄했습니다(창3:13, 고후11:3). 그들의 이 죄는 하나님이 그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의논을 따라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정하도록 목적하사 허락하기를 기쁘게 여기셨습니다(롬11:32).
일단 우리의 첫 부모는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들은 신앙고백서가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의해 유혹을 받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범죄했습니다. 이 사건은 창세기 3장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그가 아담인데,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고 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살로 대신 채우시면서 아담의 배필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창2:21-22). 여기서 선악과 명령을 받은 사람이 아담이기 때문에 하와는 몰랐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아담은 자신의 아내인 하와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뱀의 유혹에 대한 하와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으로 가면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사단은 그 뱀을 도구로 하와를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이때 하와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대하여 흐린 투로 답변합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3:2-3) 그러자 사단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는 말로 유혹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이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저들이 뱀의 유혹을 받아 금지된 열매를 먹은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분명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것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존귀하게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선악과 명령을 하신 것은 너희가 다른 모든 피조물들 위에 있지만, 너희 위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라는 뜻입니다. 심지어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을 수 있도록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결코 인색하지 않는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가지만 금하셨습니다. 이 금지령으로 너희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알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정요석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열매 하나를 주인 몰래 따먹은 도적의 행위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주제넘은 행위이다. 피조물의 신분과 한계를 벗어난 큰 배역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과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심지어 규정할 수 있고, 그것을 펼칠 수 있고 꾸려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한 마디로 자신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여긴 것으로 하나님께서 창조자와 섭리자가 되심을 부인하고 배신하고 저항한 것이다. 자신들이 창조와 섭리를 하는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그런데 이 일은 단지 아담과 하와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으며, 아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이 일에 대하여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절입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물론 생명으로 예정된 인류에 속한 자들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며 불변하신 목적과 그의 뜻의 비밀한 의논과 선한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하셨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5항).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이상 그리스도를 향하던 방향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지혜롭고 의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종종 그 자신의 자녀들을 여러 시험들과 그들 자신의 마음의 부패에 일시적으로 놔두기도 하십니다. 여러 가지 공의롭고 거룩하신 목적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이전 죄들에 대해 그들을 벌주시거나, 그들에게 부패의 숨겨진 세력과 그들의 마음의 속임수를 발견토록 하여 그들이 겸손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지탱시키고자 하나님을 보다 가깝고 지속적으로 의지하도록 그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그들로 미래의 모든 죄의 경우들을 대적하여 보다 경성토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 5항).
그러나 놔두시기만 하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놔두시는 목적 안에서도 그들을 지탱시키고자 하나님을 보다 가깝게 지속적으로 의지하도록 그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함인 것처럼, 또한 그들로 미래의 모든 죄의 경우들을 대적하여 보다 경성토록 하기 위함인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유혹으로 말미암아 넘어지지 않도록 경고하시고 경계의 말씀을 하기도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한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내용은 단지 그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에 있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일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고백서는 그들의 이 죄는 하나님이 그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의논을 따라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정하도록 목적하사 허락하기를 기쁘게 여기셨다고 고백합니다. 당연히 단순한 허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장 지혜롭고 권능 있는 제한에 매이되,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목적들을 위해 죄조차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신앙고백서가 인용하고 있는 로마서 11장 32절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5장 4항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바 있는데,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고 해서 하나님이 죄의 저자나 승인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창세기 3장에서 살펴 본 것처럼 죄는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의해 유혹을 받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그것도 스스로 먹음으로 범죄한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타락했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억지로 타락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일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작정과 작정의 실행으로서 섭리 안에서 결과 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허용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의지 안에서 죄조차 허용되었다고 할 때 그것을 통해 목적하신 것이 무엇이냐?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란 것입니다. 이때 전자의 ‘모든’은 한 사람도 빠짐이 없다는 의미에서의 ‘모든’이고, 후자의 ‘모든’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를 포함한 ‘모든’이라는 의미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후자의 ‘모든’은 결코 한 사람도 빠짐이 없다는 그런 의미의 ‘모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로마서 9장에서 나타나는데,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 13절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기에 대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토기장이 비유와 관련해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21절 이하 23절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즉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할 때 하나님은 두 부류, 즉 선택과 유기하신 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긍휼을, 자신의 오래 참으심을 나타내심으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죄까지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하신 뜻이 있는 것이고, 이런 하나님의 지혜와 거룩하신 뜻으로 인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 33절에서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의 첫 부모는 사단의 간계와 시험에 의해 유혹받아 금지된 열매를 먹음으로 범죄했는데, 그 결과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2항입니다.
이 죄로 인해 그들은 그들의 원의와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떨어져서(창3:6-8, 전7:29, 롬3:23) 죄 가운데 죽게 되었고(창2:17, 엡2:1)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들과 부분들이 전적으로 오염되었습니다(딛1:15, 창6:5, 렘17:9, 롬3:10-18).
여기에 ‘원의’라는 표현이 있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4장 2항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타락하기 이전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지식’(골3:10)과 ‘의와 거룩’(엡4:24)을 원의(original righteousness)라고 부르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적으로 말씀 드린 바가 있습니다. 다시금 정리하자면 처음 창조된 인간은 지식에 있어서도, 의에 있어서도, 거룩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나타내는 존재로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해서 그리스도 없는 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는 할 수 있는가? 성경이 그리스도 없는 의에 대하여,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의인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을 포함한 어떤 택자도 그리스도 없는 의와 거룩, 구원을 가질 수 없도록 작정하셨고(고전1:30),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행치 아니하는 모든 것은 다 정죄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롬14:23b). 실제로 지식, 의와 거룩이라고 할 때 인용하는 구절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것을 말하는데, 회복하기 이전 이러한 내용으로 있다고 할 때 그것을 ‘원의’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염두 해 두고 2항의 내용을 살피자면,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로 인하여 그들은 성경의 표현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상태에서 그렇지 못한 상태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들은 인생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실제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되었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시자 숨었다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8절에 보면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 명령을 하실 때 아담은 숨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듣는 자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7장 29절은 이런 타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사람의 처음 상태는 정직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정직하게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무죄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고 해서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3항에서 살펴보겠지만 아담의 첫 범죄 이후로 모든 인류는 정직한 상태가 아닌, 부패와 오염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정직하게, 무죄의 상태로 지었다는 것은 우리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만 속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 대하여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1:31). 그러나 정직하게 지은 사람이 많은 꾀를 냄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정직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피조물 가운데 으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꾀를 냅니다.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피조물 자리를 벗어나 자신들이 마치 창조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금하신 열매를 먹어버렸습니다. 무죄한 상태의 사람은 이런 식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떨어져 죄 가운데 죽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그들은 영적인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의 말씀처럼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약해졌다, 병들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완전히 죽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이렇게 죽은 자로 태어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그러나 영적으로만 죽은 것이 아니라 영적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립니다. 즉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실 때 영적으로는 즉시 죽음과 함께 육체의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죽음은 서서히 이루어지는데,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가 그것을 증명 합니다. 거기 보면 오늘날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연수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죽었다는 것입니다. 왜 육체의 죽음이 있는가? 그것은 아담의 첫 범죄의 결과입니다. 첫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다른 여러 말씀과 함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창3:19)고 하셨는데, 이것이 영적 죽음과 함께 육체의 죽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영적 죽음, 육체의 죽음만이 아니라, 신앙고백서는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들과 부분들이 전적으로 오염되었다고까지 고백합니다. 신앙고백서가 인용하고 있는 부분들로 확인하자면, 디도서 1장 15절입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여기서 깨끗한 자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깨끗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 본래부터 더러운 상태로 태어나는 자들은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 더러운 것만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6장 5절도 보시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 외에 모든 것을 물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심판 이후 다시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8장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단지 외적으로 심판한다고 해서 악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외적인 심판이 죄의 확산을 막기도 합니다. 각 나라의 법이 있는 것은 이런 측면입니다. 그러나 인간 내면에 있는 근본적인 죄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도 보시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타락 이후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한지 만물보다 더 하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고, 또 그런 쓰레기가 바다로까지 흘러가 쓰레기로 모이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더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모든 만물의 더러움보다 더 더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무엇인가?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는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사람의 마음인데,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더럽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거짓되고 부패했는지 사람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거짓되고 부패한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거짓되고 부패함으로 있는데, 사람은 그렇게 거짓되고 부패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것이 거짓되고 부패함인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빼내려고 합니다(마7:3). 이것이 인간의 부패한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로마서 3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10절부터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 인간의 부패성, 인간의 오염을 이렇게 잘 말해 주는 곳도 없습니다. 이 땅에 의인이라고 있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지 않는 이상 이 땅에는 의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처럼 깨닫는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될 뿐 선을 행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사람의 목구멍을 열린 무덤이라고 합니까? 그들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들이 썩고 부패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고까지 말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입으로 나오고, 입의 말은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파멸과 고생의 길이며, 결코 평강의 길과는 멉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부패를 쏟아내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함이지만, 거기에는 파멸과 고생의 길만 있을 뿐, 결코 평강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첫 범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 명령을 하신 것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금지령을 어긴 것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리하자면 영혼과 육체의 모든 기능들과 부분들이 전적으로 오염되었는데(이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참고), 영적인 지식으로 갖추어진 지성이 원죄로 말미암아 무지, 끔찍한 어두움, 허무, 판단의 왜곡으로 점령되어, 사람은 절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물려받은 원초적 부패로 말미암아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지고,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지각은 있으나 선을 행하는 지각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습과 관련하여 사사기 21장 25절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레미야 4장 22절은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사람은 왜곡된 감정으로 인하여 악과 흑암을 빛보다 더 사랑하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눈은 음심으로 가득 차 범죄하기에 바쁘고, 탐욕으로 연단된 마음은 총족할 대상을 찾아 바삐 돌아다닐 뿐입니다. 이런 모습과 관련하여 요한복음 3장 19절에서는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4장 19절은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말씀하시며, 디모데후서 3장 4절에서는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의지도 부패하여 의로움 대신에 사악과 반항과 무자비가 의지를 에워쌌습니다. 사람의 부패한 의지의 정도는 너무 강하여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그 누구도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점령되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최초의 살인죄를 저질렀던 가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 때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가 너를 원한다고 할 때, 또 너는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실 때 가인이 하나님의 경고에 따라 죄를 다스렸는가?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죄에 정복당하여 아우를 죽였습니다. 분명 인간에게는 의지가 있지만 죄를 다스릴 수 있는 의지는 부패로 말미암아 죄에 정복되어 버린 것입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에 대하여 불순종한 결과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1항에서 고백한 것처럼 이 일이 하나님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의논을 따라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그것을 정하도록 목적하사 허락하기를 기쁘게 여기셨다는 것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신 것처럼(롬5:20)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비록 인간은 불순종하였지만 그런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롬11:32)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모든 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영원 전에 택하신 자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은혜와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 은혜와 긍휼로 인하여 비록 아담 안에서 타락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을 받게 되는데, 적합한 때에 역사하시는 그의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도록 효력 있게 부르심을 받고, 의롭게 되고, 자녀로 삼아지고, 거룩하게 되고, 그의 능력으로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보존 받게 되는 겁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6항). 우리의 감사는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