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코스 : 단월면사무소 - > 갈운 1리 증골 정류장
경기 둘레길 27코스는 10.7km이고, 28코스는 9.2km로 전체 19.9km가 되어 한꺼번에 걸어가기로 하였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 날씨이고 오늘이 올해에 들어 햇빛이 가장 강렬하다는 예보 때문에 약간의 우려가 앞선다.
세월 앞에 자꾸만 약해진다. 오십 대에는 30km 내외를 걷는 그것을 일상화하였는데 60대의 후반의 나이가 되면서 30km는 장거리가 되었고 20km의 거리를 걷는 것도 더위 앞에 나약해지며 완주를 자신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27, 28코스의 출발지에 이르기까지 4시간 내외가 소요되어 다소 무리를 감수하더라도 도전이란 용어를 마다하지 않고 두 구간을 한꺼번에 걸어가기로 하였다. 용문역 인근에서 아침을 먹고 택시를 타고 단월면사무소에서 이르렀다.
스탬프 함에서 출발의 도장을 찍고 27코스의 트랙을 내려받았는데 트랙이 형성되지 않는다. 동행한 김헌영 총무가 독도의 달인이기 때문에 길 이탈의 우려는 없지만,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한 마음으로 가득 찬다.
출발부터 산뜻하지 않았지만 불과 100m도 걸어가지 않았는데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고목의 느티나무 대여섯 그루가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몇백 년은 될 것 같은 고목들은 푸른 빛을 발산하며 하늘을 향해 쭉쭉 솟아있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수구막으로 심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요즈음처럼 무더운 날씨에 울울창창한 나무 그늘에 앉아 있노라면 그 어떤 더위도 청량한 그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곳에 고려 시대에 지은 정자인 보산정이 있다. 홍진의 때를 씻어줄 같은 정자에 앉아 쉬고 싶은 생각이 왜 들지 않겠냐 마는 가야 할 길이 멀어 주변의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하며 차도를 따라 걸어간다. 길 바로 옆에 조성된 새마을 동산과 무진 요양원이 있는 찻길에서 농로에 진입하였다.
냇물이 흐르고 제방에는 야생화가 피어있고 논, 밭으로 펼쳐있다. 단월면은 산이 높고 골이 깊은 동네여서 너른 들판이 없어 물가의 자투리땅도 아껴 논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방을 바라보니 첩첩이 산으로 쌓인 곳에 마을을 이룬 산간벽지의 마을이지만 도시의 공해에 찌들지 않은 청정한 자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동네가 되어 경기 둘레길로 지정되어 교통의 오지일지라도 너도나도 찾아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때가 여름인지라 논, 밭도 푸르다. 그러나 햇볕은 쨍쨍 내리쬔다. 푸르게 자라나는 벼 잎사귀와 부안천의 푸른 싱그러움에 가슴은 푸른빛으로 가득하지만 6월의 태양 빛에 이마에 땀이 맺힌다,
천변을 걸어가는 것은 항시 즐겁다. 그 길이 일자로 뻗어가 길의 거리를 멀게 느끼게 하여 다소 지루한 길이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천변의 곧게 뻗어간 길에서 올곧은 마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기에 발걸음은 언제나 씩씩하다.
부안천을 따라 걸어오던 길은 청운교에 이르러 부안천을 받아들인 흑천을 따라 제방길을 걸어간다. 흑천은 양평의 물소리 길을 걸어갈 때 그리고 여강길을 걸을 때 만난 구면의 관계였기에 매우 반가웠다.
흑천은 냇물 바닥의 돌이 검어 그 물빛이 거무스레한 빛을 띤다 하여 ‘거무내’라고 하였는데 이곳 청운면 성지봉이 바로 발원지가 되니 이곳은 발원지의 상류 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흑천의 제방길도 부안천 둑의 길과 다를 게 없었다. 야생화가 피어있고 논, 밭이 펼쳐진 쌍둥이와 같은 길이건만 똑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지루함은 느낄 수 없고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성인께서 항시 말씀하시는 인위人爲와 무위無爲의 차이가 아닐까?
길에 취하면 걸음이 빨라진다. 6월의 무더위를 뚫고 거침없이 내달려온 발걸음은 어느덧 차도인 경강로에 이르러 용두교를 건넜다. 부안천을 따라 흑천에 이른 길이 이제 용두천을 벗으로 삼아 걸어간다.
용두2교(?)를 지날 때 경기 둘레길을 어떻게 걸어가는지를 묻는 사람이 있었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을 종종 만났지만 어떻게 걷는가를 묻는 사람도 만났으니 경기 둘레길 걷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된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용도 2교를 건너며 둘레길은 산간마을로 진행하였다. 산간마을로 진행하는 길은 자동차의 위험으로 차도로 진행할 수 없어 찻길을 우회하여 가는 길이다. 그러기에 차도를 따라 걸어가면 목적지에 곧바로 이를 수가 있지만, 둘레길은 빨리 목적지에 이르는 내기 시합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느릿느릿 여유를 가지며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의 향기를 온몸으로 흡입하며 홍진의 찌던 때를 씻어내는 정신 목욕이기에 최대한 찻길을 사양하고 돌고 돌아갈지라도 자연 속으로 진입하고 싶은 것이다.
국도인 경강로를 다소 멀리 돌고 돌아 다시 만났다. 자동차 통행은 다소 빈번한데 보도와 차도 구별이 없는 길이 되어 주의를 요하며 걸어간다. 용두2리 버스 정류장을 지날 때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가 쭉쭉 하늘로 치솟아 눈길을 사로잡았다.
보도, 차도 구분이 없는 위험 도로는 갈운 2리 버스 정류장에 이르러 차도인 경강로에서 좌측의 산간마을의 길로 진입한다. 경강로를 따라 걸으면 최종목적지인 갈운 1리 정류장에 더 빠르게 이를 수가 있지만, 자동차의 위험에서 해방되고 자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의 뒷동산을 넘어간다.
갈운 2리는 산을 의지하여 마을이 형성되어 그런지 한적하고 아늑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마을 길도 가옥들도 깨끗하게 정비되어 어렸을 때 보았던 산속의 별장과 같았다. 우리의 시골 마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도시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낙원으로 변모하였다.
마을을 뒷동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은 점점 높아지는데 숭의문崇儀門이란 현판을 내건 옛날 가옥이 있었다. 의례를 숭상한다는 뜻을 지녔기에 호기심이 발동하였지만 아쉽게도 대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아쉬웠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로운 것을 안다’라고 하였는데 옛것을 눈앞에 두고도 문이 잠겨 그대로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분명 마을에서 의례를 숭상하는 전통을 확립하기 위해 전각을 세웠다면 마을의 자랑으로 모든 이들에게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쉬운 마음으로 산 언덕을 넘어서니 목적지인 갈운1리 점골이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55분, 점심때가 되었는데 마침 점골 막국수라는 식당이 있어 막국수 한 그릇으로 더위도 식히고 28코스 걷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