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외 9편
김규중
길을 걷다가
민소매 어깨에 문신을 본다
무슨 글자나 문양인지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얼핏 본 차림새보단
문신이 궁금해지긴 한다
예전에 문신하면 삼청교육대를
연상하곤 하였지만
요즈음 쉽게 볼 수 있다
자아 표현, 개성, 기념, 예술 등등
유교 사상에 길든 세대에겐
낯설기만 하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나도
적응이 안 된다
미래 교육
시골의 저녁은 인적이 드물다
두 갈래로 땋은 머리가 예쁜 누나가
유아원에 다닐 듯한 동생 손을 잡고
엄마 아빠가 사이에서 재잘거리며 걸어온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신호가 바뀌었다는 생각에
한 발 내딛다가 흠칫 멈춘다
아직 빨간 불이다
그 행복해 보인 모습이 환상이었나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신호등을 본다
잘못 보았기를 바라며
칡꽃
여름 숲속 칡꽃
플라멩코 무용복보다
더 멋진 옷 입고
샤넬 향수보다
더 진한 향으로 유혹하지만
벌 나비는 시큰둥
깊은 곳에 숨긴 꿀
빼낼 재주 없어
돌아서며 중얼거린다
유혹만 하지 말고
꿀 좀 먹게 해주려무나
황구렁이
몇 날 며칠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황구렁이 두 마리 자리를 턴다
오대산 자락에서 태어난 한 마리는
내린천에서 몸집을 키우며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
갈 수 없는 땅에서 태어난 한 마리는
서화천을 지나 내설악 물을 만나
남으로 남으로 달린다
광복 후 38선 이북 공산 치하 삶,
육이오전쟁의 상흔 간직한 산하,
수복으로 엉킨 가족사,
지금도 겪는 분단의 아픔을
남김없이 걷어온다
황구렁이 두 마리
인제 합강에서 하나가 되어
합강정 중앙단에 올라
모든 아픔을 소지燒紙하고
힘차게 치닫는다
복된 미래로 거침없이
구름
무슨 소식을 가지고 왔니
커다란 통 속에 뭐가 담겼니
보고 싶은 이가 있었니
낮게 내려앉아 누구를 찾니
무얼 그리니
알 듯 모를 듯 애만 태우니
혹 누가 보내진 않았니
다가설 듯 돌아서니
감춰 놓은 짝사랑
찾으려는 욕심에
바라보고 바라봐도 알 수 없어
그리움 만 더해지네
극한 더위 겪고 나니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있다.
처음 겪는 더위
처음 겪는 추위
처음 겪는 호우
처음 겪는 폭설
처음 겪는 가뭄
처음 겪는 태풍
끊임없는 우리의 욕심은
이산화탄소 되어
지구를 죽이고 있다
당장 정신 차려
자연에 거스르는 짓
멈추어야 한다
멈추어야 한다.
낙엽 하나
숲은 초록으로 짙어가는
늦봄
기룡산 오르는 내 앞에
맥없이 떨어지는 낙엽 하나.
얼마나 외로웠니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아팠니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얼른 주워
숲으로 보낸다
다시 태어나서 행복해야지
지금도 생각난다
여름방학을 기다린 건
오늘이 있기 때문이다
장마가 산하를 휩쓸고 가니
뒤집힌 흙 속에서 살아나는 전흔
M1 소총 탄피는 1원
M60 기관총 탄피는 5원
포탄피, 포탄 쪼가리, 불발탄 등등
땡볕 아래
어린 또래들이 무리 지어
계곡과 강바닥을 샅샅이 뒤진다
가끔 환호가 울리면 더욱 신이나
온몸이 빨갛게 타는 줄도 모른다
주운 전흔을 모아 고물상에 팔아
받은 돈 몽땅 라면을 산다
양은 냄비 들고 다시 강을 찾아
아직 뻘그스름한 강물로 라면을 끓인다
몇 시간의 수고가 주는
이 쫄깃쫄깃하고 고소함
넘기기가 아깝지만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으려고
꿀떡~ 앗 뜨거워~
이것이
6․25전쟁 격전지 마을
인제 아이들의 전후戰後 놀이였다
지금도 장마가 지고 나면
그때 라면 맛에 침이 고인다
여름날
여름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나른한 오후
짝 찾지 못한 매미
그 간절함이
기룡산을 삼켜버린다
박인환 시인 작고 추모제
내일 기온이 떨어지고 비 온다는 예보가
틀리길 바랐건만 비는 내린다
작년에도 비가 왔는데
하늘이 야속하다는 푸념을 들었는지
차츰 구름을 걷어내는 하늘
보란 듯 봄날을 뽐낸다
노란 생강나무도 활짝 웃는다
박인환 시인 작고 66주기 추모제
삼삼오오 모여들자
말방울 소리 대신 크로마하프의 맑은 선율이
망우리공원을 채우고
2남 1녀 자녀 중 장남이
고인을 소환하여 대화를 마치고
잔을 올린다
추모객들이 돌아가면서 잔을 올리고
조니워커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그리고는
늘 고향 내음 맡으시라며
인제에서 캐어온 진달래를
묘역에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