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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태복음 12:1~21)
* 본문요약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실 때에
제자들이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 먹자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예수께 그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윗도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은 적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죄 없는 자를 죄 있다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니 그곳에 손 마른 자가 있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은지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구하는데
양보다 더 귀한 사람을 고치신 것은 더욱 합당한 일이 아닌가 물으시고는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연약한 자를 도우시는 것 역시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찬 양 : 57장(새 43) 즐겁게 안식할 날
94장(새 96) 예수님은 누구신가
* 본문해설
1.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1~8절)
1)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으니
2) 이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나이다.”
3)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만 먹게 되어 있고,
다윗 자신이나 그와 함께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자기도 먹고 그 일행에도 나누어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호 6:6)
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 안식일(1절)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모든 일을 그치고 쉬셨던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는 이날에 모든 백성이 다 쉬기를 명했고,
만일 이날에 일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출 20: 9~, 31:14~).
- 밀 이삭을 잘라 먹으니(1절) :
신명기 23:25에는 다른 사람의 밀밭에 낫을 대지는 말되
손으로 이삭을 따서 먹는 것은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손으로 따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으니 절도 행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날이 안식일이었으므로 추수 행위를 하였다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 바리새인들이 보고(2절) :
우연히 지나다가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지속해서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여 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제자들이 율법에 저촉될 만한 어떤 행위를 하기를 지켜보았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본 즉시 예수께 이 사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윗이 그 일행이 (3절) :
사무엘상 21:1~7을 보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다가
그를 따르는 소년들과 함께 놉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이 주는 거룩한 떡(진설병)으로
굶주린 배를 채웠던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진설병(4절) :
진설병은 성전 안의 금상 위에 놓아두었던 떡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안식일마다 새로 구운 떡 열두 개를
두 줄로 항상 진설해 놓아야 합니다(레 24:5~9).
그리고 지난주에 진설해 좋았던 낡은 떡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놉의 제사장이었던 아히멜렉이
다윗의 일행에게 이 거룩한 떡을 내어준 것입니다.
-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5절) :
안식일이라도 제사장들은 직무상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하여 일을 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레 24:8, 민 28:9~10).
즉 성전 안의 진설병을 교체하는 일, 제사를 드리는 일,
할례를 행하는 일들이 허용된 것입니다.
-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6절) :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허용되었다면,
성전보다 더 큰 이인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안식일을 범하여도 역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7절) :
이것은 안식일을 함부로 어겨도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과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
사람을 살리는 일을 우선 하여야 한다는 점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8절) :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신 예수님이
이제 그 예수님이 안식일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안식일(지금은 주일)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2.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유하심(9~16절)
9)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거기에 한쪽 손이 마른(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만일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붙잡아 꺼내 주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라!” 하시니
그가 손을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게 되었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밖으로 나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거늘
15) 예수께서 이 일을 아시고 거기에서 떠나가시니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지라.
예수께서는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자기에 대한 소문을 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으니
- 손 마른 사람(10절) :
중풍 같은 병으로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 손을 내밀라(13절) :
예수께서 왕으로서 질병을 향하여 명령하십니다.
이에 질병조차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가 곧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3.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17~21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18) “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내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큰 소리로 외치지도) 아니하리니,
길에서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으로 소망을 갖게 되리라)”(이사야 42:1~4)
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 들레지도 아니하리니(19절) : 크라우가조
‘들레다’에 해당하는 ‘크라우가조’는 ‘개가 짖다, 큰 소리로 호령하다’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왕이 그가 가진 권세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지만
세상의 군왕들처럼 사람 위에 군림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20절) :
주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모든 사역을 다 마칠 때까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리라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내가 제사보다 자비를 원한다는 뜻을 알았다면 ~
1) 바리새인들의 고발 : 안식일 법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통을 어겼다는 이유(1~2절)
유대의 랍비 문서인 ‘미슈나’에 의하면
한입으로 먹을 정도의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는 것을
추수 행위로 간주하여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금지 행위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밀 이삭을 한 손으로라도 잘라서 먹는 것을 본다면
유대 전통의 법을 어긴 것으로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자세히 주목하며 관찰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비난거리를 찾기 위해 예수님을 지속해서 관찰하던 중이었으므로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관찰한 것입니다.
2) 사랑과 섬김의 법이 안식일법보다 더 상위법(6~7절)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는 것입니다.
그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곧바로 예수께 나아가 제자들의 잘못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그동안 전도에 파송되었다가 돌아와서
몹시 허기져 있다는 것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을 고발할 수 있는 구실이 생긴 것이 기쁠 따름이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제사보다 자비를 더 원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랑과 섬김의 법이 안식일법보다 더 상위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을
내가 필요할 때마다 적당히 어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비를 행하는 것 역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데
그들이 자비를 행하지 않았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주일을 잘 지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주일을 지키는 것과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주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일은 조금 뒤로 미루고
우선 죽어가는 자를 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안식일을 함부로 어겨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주일을 함부로 어겨도 된다는 식으로 잘못 이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증빙자료로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악용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나의 육신의 안일을 위한 유희의 시간을 보내면서
주께서 이것을 허락하셨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내 마음속까지 다 들여다보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으십시오.
2. 안식일의 주인이며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
1) 안식일법이 지나치게 강화된 이유
안식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이러한 집착에 가까운 지나친 열심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더욱 심화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유대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을 엄격히 지키려 했습니다.
특히 헬라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엄청난 핍박 때에 있었던 마카비의 독립전쟁도
‘하시딤파(바리새파의 전신)’가 안식일을 존중함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바리새인의 시작이고 자부심이었던 것입니다.
2) 그러나 안식일법이 사람을 괴롭게 하는 법으로 변질됨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자부심을 더욱 높이기 위해
안식일법을 아주 강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사회의 여러 감시망을 통해
안식일법을 어기는 자들을 적발하여 처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만든 안식일법이
바리새인의 자부심과 권력을 강화시키는 법으로 변질되었고,
백성들은 안식일법으로 인하여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3) 안식일법보다 더 크신 예수님 : 안식일법을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므로(8절)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이 보는 데서
일부러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는 것으로 보았고,
자기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러한 행동을
자기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공격행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님이 성전보다 크신 이요,
안식일을 제정하신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판단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➀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는 자들은 그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을 성전보다 크신 이요, 안식일의 주인으로 본다면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우리는 그 말씀을 왕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하는 자가 됩니다.
왕이신 예수께서 안식일법으로 새로 해석하셔서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➁ 그러나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지 않는 자들은 그 명령에 대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훌륭하신 분 정도로만 여긴다면,
자기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밀 이삭을 비벼 먹는 이 일을 자기들을 공격하는 행위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 묵상 :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 여기십니까?
예수님을 성삼위의 한 분이신 우리의 구주 예수님으로 믿으신다면
예수님을 그에 합당하게 대접해 드리며 그에게 영광을 올려드리십시오.
말로는 주님으로 섬긴다면서 실제로는 나를 돕는 종처럼 여긴다면
당신은 말로만 주님이라고 하는 자인 것입니다.
‘주님’이란 뜻은 그가 내 생명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말로만 그렇게 말하지 말고
실제로 나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자로 대접해 드리고 섬기십시오.
3.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1) 왜곡된 안식일법
안식일 법의 본래의 뜻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날로 여기라는 뜻이었는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일을 하지 않는 날로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금지의 법을 훨씬 강조한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법은
본래 연약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약자 보호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노예와 짐승들을 1주일에 하루라도 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온 법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일 법의 금지 조항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연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2) 다른 계명은 타락시키면서 제4계명만 극단적으로 강화시킨 것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참되고 바르게 섬겨야 한다는
더 중요한 십계명의 제1계명~3계명은 무시하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제4계명만 극단적으로 강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치료하는 행위는 물론,
심지어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는 정도도 금지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어떤 것은 더 강화하고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행동으로 하는 죄는 무겁게 여기면서
말로 하는 언어폭력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것 역시 바리새인들과 같이 주님의 심판을 받는 행위입니다.
3) 교회의 가장 무서운 타락 : 말씀을 자기들 임의로 변조시키는 것
안식일 본래의 뜻으로 본다면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는 자를 벌하고
안식일에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하는 자들을 벌하여야 할 텐데,
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를 벌하고,
안식일에 배고픈 자가 밀 이삭을 비벼 먹었다는 이유로 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왜곡된 방향으로 교회의 전통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이 전통을 하나님의 다른 계명보다 더 높은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무서운 교회의 타락입니다.
4) 안식일법의 근본취지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이에 예수님은 안식일 법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날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하게 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
어떤 일이든 일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하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하는 날입니다.
또 안식일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치유하고 돕는 일을 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소금과 빛의 사역을 감당하는 날입니다.
● 묵상 : 참되게 주일성수를 하십시오.
안식일(토요일)이 아니라 주께서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을 지키는 것 외에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이 안식일법이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 예배를 드리면 주일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을 섬기는 날,
그리고 연약한 자를 돕는 날, 선하고 착한 일을 하는 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주일을 제대로 지키고 있습니까?
주일 예배드리는 것도 피곤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께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까지 달리셨는데,
나는 일주일 중에서 하루를 주를 섬기는 날로 여기는 것도 힘들어한다면
그를 어찌 주를 섬기는 주님의 백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왕으로 섬긴다고 말로만 고백하지 말고,
실제 당신의 삶으로 주님이 당신의 왕이심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4. 금지의 경건과 행함의 경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는
무엇을 하지 말라는 금지의 말씀과 무엇을 하라는 행함의 말씀이 있습니다.
금지의 경건과 행함의 경건,
본래는 이 둘을 모두 똑같이 강조해야 하는데
각 나라의 문화와 환경에 따라서
이 둘 중에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의 유대인들의 경우 금지의 경건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경우
성도들이 피차에 서로 감시하여 교회 공동체가 대단히 경직된 공동체가 됩니다.
그러나 행함의 경건이 강조되면 함께 선하고 착한 일을 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또 서로 영접하고 대접하며, 서로 섬기고, 서로 위로하는 일들이 강조되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영적 생동감이 넘치는 교회가 됩니다.
한국의 경우도 유대인들과 같이
금지의 경건이 매우 강조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100가지를 잘했더라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그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치명상을 입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율법주의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공격하는 경직된 문화를 아주 싫어하십니다.
● 묵상 :
우리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바르게 이해하여야 합니다.
서로 감시하여 잘못된 것을 공격하기보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여 함께 하나님의 선하신 일을 하게 하는 자들이 됩시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잘못한 자를 색출하는 감시꾼입니까?
아니면 연약한 자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자입니까?
5.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이(19~21절)
주님은 이 땅과 하늘의 모든 자들을 다스리시는 왕이시지만,
결코 큰 소리로 그의 백성 위에 군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지만,
결코 그 권세를 남용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 상한 갈대를 더욱 소중히 여기시고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이 힘겹게 사는 자를 더욱 존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는 주께서 이루시려는 모든 구원의 사역을 이루고 마치기까지
계속해서 연약한 자를 도우시리라고 노래했습니다.
● 묵상 :
주님이 능력이 많으신 우리의 왕이시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됩니까?
또 그 만왕의 왕께서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분이시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복됩니까?
그리고 그 왕께서 우리를 자신의 눈동자처럼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기쁘고 신나는 일입니까?
나를 위해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 기도제목
1. 지금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주님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주께 예배드릴 뿐만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일과 착하고 선한 일을 하여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우리가 피차에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영접하고 대접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