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큰애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큰조카가 학원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졸졸 따라오는 걸 어린 마음에 안쓰러워 차마 두고 오질 못해 데리고 왔다. 그리고 언니네 막둥이가 됐다. 언니는 하루만 있다가 유기견센터에 데려간다고 집으로 들였기에 이름을 ‘하루’라고 지었다. 이것이 유기견과의 인연이 되어 지금의 ‘부비’를 만나게 됐다.
남편은 큰애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버거워지자 완강하게 반대하던 애완견 키우는 것을 허락했다. 나는 평소 유기견 보호단체에서 봉사활동 하는 지인에게 유기견 한 마리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에게서 담요로 돌돌 말아 상자에 넣어 지하철 계단에 버려진 푸들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퇴근하고 팔공산까지 가니 제법 멀었다. 하지만 평소 개를 좋아하던 나는 먼 거리보다는 기대감이 더 컸기에 힘들진 않았다. 이렇게 도착해서 데려갈 개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푸들인데, 털을 바리깡이 아닌 가위로 깎다가 버려졌는지 온몸에 털이 들쑥날쑥하고 귀는 헤비메탈 가수처럼 잘려 눈이 더욱 튀어나와 보였다. 가장 특이한 모습은 부정교합이 너무 심해 아랫니가 툭 튀어나와 입이 다물리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데려가지 않겠다는 얘길 못해 그냥 데리고 왔다.
집에 오니 낯선 환경에 놀랐는지 구석에 오줌을 싸질 않나, 그걸 또 핥아 먹질 않나, 남자 어른에게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는지 남편에게 으르렁대며 공격적이질 않나 ‘괜히 데리고 왔나’하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아이들은 "왜 이리 못생겼지. 이래서 버려졌구나", 남편은 "이렇게 사나워서 어떻게 키워?"라며 내 속을 뒤집어 놨다. 이런 강아지가 우리 집 막둥이 ‘부비’다. 이렇게 나에게로 와서 가슴으로 낳은 막둥이가 됐다.
부비는 허리디스크 수술로 뒷다리를 절기에 오래 걷지 못한다. 비만이라 다이어트 사료를 먹어야 하고, 스켈링도 가끔 해야 하고, 매일 양치와 털을 빗겨야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해야 한다. 가장 압권은 유기될 때의 불안이 트라우마가 되어 혼자 집에 두질 못한다. 비용면에서나 노동면에서나 여간 무리 가는 것이 아니다.
한번은 딸이 묻는다.
“엄마! 부비 죽으면 강아지 또 키울 거야? 내 친구는 강아지 키우다 죽는 것 보고 너무 마음 아파서 다시는 안 키운다던데?”
“나는 또 키울 건데,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데? 있을 때 온 마음을 다 주면 되지. 죽는 것까지 엄마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미련 없도록 지금 살았을 때 잘해줘야지.”
‘우리는 만날 때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는 시 구절이 생각난다. 떠날 것을 두려워 만남을 포기할 순 없다. 그런데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낳고는 싶지만 낳은 뒤 키우는 어려움이 두려워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 반대로 한 지붕 두 가족인 부부는 이혼 후의 불확실한 삶이 두려워 이혼을 원하지만 헤어지지 못한다.
어떤 이는 인연이 두려워 맺지 못하고, 어떤 이는 인연이 두려워 놓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 시를 전해주고 싶다.
‘하나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담담히 수용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고,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둘 중 어떤 경우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옵소서.’ .
심사평
권후선 작가의 <인연>
진정한 인연과 그렇지 않은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한다. 많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므로 그러하다. 화자는 버려진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게 되면서의 일을 소재로 삼았다. 그 무엇과의 인연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불가에서는 설파한다.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연이 연결되어 있다고 하지 않나. 입양한 강아지는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고 사람의 손이 많이 타야 하는 강아지다. 정이 흠뻑 들어 힘들어도 예뻐할 수밖에 없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사랑 속에 수반되는 것이 또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인연이라도 끝은 이별이므로 서글프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 올 인연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 화자는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다 보니 요즘 젊은 세태의 아이는 낳지 않고 강아지만 애지중지 키우는 일련의 일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유모차 보다 개모차가 더 많이 팔리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 우려의 시선들이 있다. 사회적 문제이기는 하나 어쩔 방도가 없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반려견에 대한 생각과 사회 인식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술술 읽히는 문장이 장점이며 예리한 시각 또한 높이 산다. 짜임새 있는 구성 또한 잘되어 있다.먼저 등단을 축하하며 한국 문단에서 사랑받는 작가로 대성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합평
당선 소감문
이렇게 문학고을과 인연이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연’이라는 글은 저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이야기입니다. 부비는 제가 단순히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연은 기쁨만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책임을 동반하며 성장을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연이 공모전을 알게 되어 이렇게 문학고을이라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당선이라는 기쁨과 작가라는 책임감이 동반될 것입니다. 또한, 제 삶의 성장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문학고을과의 인연으로 이제 당당한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맺어지는 크고 작은 인연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기를 바라며, 앞으로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선과 함께 문학고을인이 된 것을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권 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