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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9일, 우리는 결혼했다.
한나와 나는 이제 함께 살아갈 사람이 되었지만, 서로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결혼식 날 장인어른도 많이 우셨고 한나도 오래 울었지만, 그때의 나는 두 사람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신혼여행지 푸켓에서도 한나는 나와 함께 웃다가도 문득 말이 없어지곤 했기에 그런 모습을 몇 번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심스럽게 묻게 되었다.
한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도 '아빠'라는 말이 나오면 눈물을 흘리더라도, 끝까지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아빠는 매일 저녁 다음 날을 준비했어.”
한나가 들려주는 아버지의 저녁에는 순서가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셨던 장인어른은 집에 돌아오면 다음 날 입을 옷을 다림질하고 구두의 먼지를 닦아 가지런히 놓은 뒤, 지갑 속 영수증과 명함을 정리하고 늘 들고 다니던 황금색 종이 봉투 속 서류까지 순서대로 챙겨 두었다.
장인어른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셨고, 한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빠가 그렇게 다 정리하고 나면 나랑 주꾸미 먹으면서 맥주 한 잔 했어. 둘만의 데이트 같았지. 아빠도 좋아했고, 나도 그 시간이 참 좋았어.”
한나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루를 마친 아버지 곁에 앉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평범한 저녁들이었다.
“하루가 좀 힘들어도 아빠가 그렇게 옆에 있으면 내일은 다시 괜찮을 것 같았어.”
나는 푸켓에서야 한나에게 아버지가 있는 집이 어떤 곳이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다 이야기는 결혼 전날의 저녁으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다음 날을 준비하고 계셨지만, 다음 날이면 그 집을 떠날 한나는 익숙한 아버지의 저녁을 바라보면서도 좀처럼 말을 걸지 못했다고 했다.
“그날은 아빠한테 말을 잘 못 걸겠더라. 말하면 너무 깊이 울 것 같았어.”
다음 날이면 자신은 그 집을 떠날 텐데, 아버지는 내일 입을 옷을 다리고 계셨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곁에 앉아 있기도 어려워 한나는 결국 집을 나왔고, 아버지와 자주 오르던 봉화산을 그날은 혼자 걸었다고 했다.
산길을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한나는 아버지와 함께 걸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자꾸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보았던 아버지의 오래된 습관도.
다음 날 입을 옷을 다리고, 구두를 닦고, 황금색 종이 봉투 속 서류를 정리하던 그 저녁.
"왜 그게 그렇게 생각났는지 모르겠어."
한나는 봉화산을 내려오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가면 아버지가 있을 것 같았던 집인데, 다음 날이면 자신은 그 집을 떠나야 했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도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문을 열면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다음 날을 준비하고 계실 텐데, 그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곁에 앉을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결혼식장에서 보았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혼식장에서도 한나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고, 장인어른도 찾아오신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면 한동안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러나 식이 시작되고 부모님께 인사를 올릴 차례가 되어 우리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두 사람은 마주 섰다.
장인어른도 끝까지 눈물을 참으려 하셨지만, 우리가 고개를 숙이자 장인어른의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한나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결혼식 사진에는 웃는 얼굴이 많이 남았지만, 내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셋째 딸을 바라보며 울음을 가누지 못하시던 장인어른의 얼굴이었다.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에도 장인어른은 인천국제공항까지 나오셨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서서 한동안 우리를 바라보기만 하셨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장인어른은 잘 다녀오라는 짧은 말씀조차 끝내 건네지 못하셨다.
많은 친척이 어울려 사는 집에서 자란 나는 사람이 찾아왔다 떠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일에도 익숙했다.
반면 친척 없이 부모와 형제가 서로의 일상을 채우며 자란 한나에게 그 헤어짐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만날 텐데, 저렇게까지 슬픈 일인가.
그때의 나는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자 한나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가 커지는 동안 나는 곁에 앉아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훗날 바다거북이 태어난 해안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그날 비행기에서 울던 한나를 떠올렸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바다거북은 작은 지느러미로 모래를 밀어내며 바다로 나아간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 자란 암컷은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해안 일대로 돌아와서야 알을 낳는다.
먼 바다에서도 처음 떠나온 곳을 찾아간다는 이야기에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과학자들은 그 귀환에 지구 자기장의 미세한 차이가 길잡이가 된다고 설명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지도를 몸 안에 간직한 것처럼.
바다거북은 자신이 태어난 해안으로 돌아가지만, 한나는 자신이 자란 집을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손잡고 걷던 봉화산과 다음 날을 위해 다려 놓은 옷, 가지런한 구두와 하루를 마치고 마주 앉던 평범한 저녁들은 그 집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나는 그 모든 시간을 품고 아직 보이지 않는 내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한나가 어떤 시간을 지나 내게로 걸어왔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푸켓에 도착했다.
해외여행이 익숙하지 않아 여행사를 통해 만난 신혼부부 세 팀과 함께 움직였고, 숙소는 카타 비치 근처의 카타타니 리조트에 묵었다.
가이드 안내를 듣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둘 다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잠시 숨을 고른 한나가 머리에 꽂혀 았던 검은 핀들을 하나씩 빼 달라고 했다.
핀을 모두 빼 주자 한나는 씻으러 들어갔고, 나는 기다리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때 한나는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한나의 다리를 조금 주물러 주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결혼식의 긴장과 수많은 인사, 먼 길을 건너온 피로 끝에 우리의 첫날밤은 그렇게 잠으로 지나갔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몰랐지만, 우리의 첫날은 거창한 약속보다 곁에 누운 사람의 피곤한 다리를 주물러 주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신혼여행이 유격훈련처럼 빡빡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새벽 여섯 시부터 로비에 모여 이동하고, 구경하고, 밥을 먹고 또 이동했다.
사진을 찍고 나면 다시 출발이었다.
향신료가 맞지 않은 한나는 오이와 생자몽만 겨우 먹었다.
낯선 음식도 빠듯한 시간표도 어느 것 하나 우리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하루는 정해진 일정에서 빠져나와 둘만 보내기로 했다.
누군가 정해 놓은 시간표를 따라가지 않고 숙소 근처를 손잡고 천천히 거닐던 그 하루가, 푸켓에서 보내는 여행 같은 단 하루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석양이 내려앉는 카타 비치를 바라보며 The Boathouse Restaurant에 앉아 있었다.
신혼여행의 마지막 밤이 아쉬워 결혼식 사진을 다시 펼쳐 보다가 나는 한나에게 물었다.
“아버님은 마음을 쉽게 보여 주시는 분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하고는 참 가까웠던 것 같아.”
한나는 잠시 사진을 바라보다가 와인 한 잔을 시켜 달라고 했다.
잔이 몇 번 비고 나서야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어.”
앞서 들었던 아버지의 저녁만 떠올려도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하루와 물건을 흐트러짐 없이 정리하던 사람.
그런 성격 탓인지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아버지와 쉽게 시간을 나누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아빠가 어렵지 않았어.”
한나의 집에는 세 딸과 막내아들이 있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두 분 모두 형제 없이 자라 결혼한 뒤에는 아이들이 북적이는 집을 오래 바라셨고, 세 딸과 막내아들이 태어나면서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을 하나로 묶어 줄 것 같았던 신앙이 어느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일요일이면 장모님은 네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갔고, 장인어른은 혼자 집에 남았다.
한나도 엄마를 따라 예배를 드렸지만, 예배가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남아 있기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고 했다.
“나는 아빠 혼자 있는 게 싫었어.”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와 봉화산에 올라 아빠 손을 잡고 천천히 산길을 걷기도 했고, 내려와서는 배드민턴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면 함께 매운탕을 먹으러 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손에 들고 장난을 치며 걷던 그 시간을 한나는 좋아했다고 했다.
그 시간에는 평소 말수가 적고 빈틈을 잘 보이지 않던 아버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놓았다고 했다.
어느 날도 둘이 봉화산을 내려오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은정아, 아빠는 교회가 싫다. 교회가 아빠 가족을 다 데려간 것 같아.”
한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가 소중히 여기는 신앙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요일마다 혼자 집에 남아 있을 아버지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는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마음 사이를 오가며 자랐다.
“나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 누가 누구 때문에 서운해하는 걸 제일 못 견뎠어.”
한나는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자기야, 내가 나한테 붙인 별명 뭔지 알아?”
“뭔데?”
“평화요정.”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가볍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한나는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두 마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엄마의 마음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아빠의 외로움도 외면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이름 뒤에 또 다른 한나의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한나는 세 딸 가운데 셋째였다.
아들을 기다렸던 집에 셋째도 딸로 태어났고, 몇 해 뒤 막내아들이 태어나면서 집 안의 많은 시선은 자연스럽게 어린 동생에게로 향했다고 했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던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나니 조금 전 한나가 웃으며 말했던 ‘평화요정’이라는 이름과 앞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버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던 아이에게도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한나는 술을 조금 드신 날의 아버지를 유난히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장인어른도 술기운이 조금 오르면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늦게 들어오신 날이면 한나는 아버지가 벗어 둔 옷과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 드리고 꿀물을 타 드렸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린 딸을 한참 바라보셨다.
어깨를 만져 보고, 손가락을 살펴보고, 종아리까지 가만히 만져 보시다가 꼭 한마디를 하셨다고 했다.
“은정아, 꼭 너는 나 같어.”
아버지는 딸에게서 자신과 닮은 모습을 찾고 계셨던 것일까.
그날의 말이 외모를 두고 하신 말인지, 성품까지 닮았다는 뜻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혼자 있는 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했던 딸에게는 자신을 오래 바라보며 건네던 그 말이 특별하게 남았을 것 같다.
한나는 그때의 아버지를 좋아했다고 했다.
술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간만큼은 평소 쉽게 드러나지 않던 아버지의 마음이 그 시간에는 조금씩 밖으로 나왔고, 한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들려주지 않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장모님에게는 못마땅한 술자리였을지 모르지만, 한나에게는 아버지와 가장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나가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두 사람만의 방식은 계속되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 오후 다섯 시 반쯤이면 장인어른에게 전화가 왔다.
“은정아, 오늘 뭐 하니?”
한나에게는 그 말만 들어도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들렸다고 했다.
“아빠, 오늘 주꾸미에 맥주 한잔하고 싶으시죠? 제가 사 갈까요?”
그러면 수화기 너머에서 금세 목소리가 밝아졌다.
“아이고, 좋지. 그럼 집에서 보자.”
퇴근길에 주꾸미와 맥주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하루를 정리하고 딸을 기다리고 계셨다.
어릴 적 혼자 계신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 교회에서 서둘러 돌아오던 딸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와 마주 앉아 저녁을 나누고 있었다.
한나가 말했던 ‘둘만의 데이트’는 그렇게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두 사람의 일상이었다.
한나는 와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기야, 나는 하나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종교는 아직 어려워.”
그 말에도 한나가 지나온 시간이 들어 있었다.
엄마가 사랑한 하나님과 아빠가 힘들어했던 교회.
한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 두 마음 사이에서 어느 한 사람도 쉽게 밀어내지 못했다.
내가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동안 한나는 혼자 교회에 갔다가 자신의 이름을 ‘한나’로 바꾸라는 마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자신이 그런 이름을 가져도 되는지 망설이며 한동안 그 마음을 밀어두었다고 했다.
한나에게 하나님은 좋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거리와 갈등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였다.
이야기를 모두 마친 한나는 어느새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 혼자 조금 웃었다.
‘장인어른 딸이 맞네.’
평소에는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을 술기운에 기대어 하나씩 꺼내 놓는 모습마저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술기운을 타고 자기 마음을 내어놓는 그 진심이 노력인지, 용기인지 그 진심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지만 그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그날 나는 한나에 대해 또 하나를 알게 되었다.
한나는 누군가를 서운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던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자신도 함께 살고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나는 장인어른을 뵙고 싶어 곧장 처가로 향했다.
태국에서 사 온 선물을 건네고, 여행 중 한나에게서 아버지를 닮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조금이라도 웃음을 드리고 싶었다.
늦은 저녁, 장인어른은 우리에게 장어구이를 사 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한나가 그 집에 남겨 두었던 아끼는 가방 하나를 챙겨 나오려는데 장인어른이 먼저 가방을 들어 올리셨다.
“그 가방은 택시 타는 데까지 아빠가 들어줄게.”
장인어른은 한나의 가방을 들고 우리보다 조금 앞서 걸으셨다.
한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택시가 도착했다.
장인어른이 문을 열어 주시자 한나는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곧 또 보자, 아빠. 바람 쌀쌀하니까 조심해.”
장인어른도 한나를 바라보셨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밤바람 차다. 아빠는 늘 여기 있어. 사랑한다, 아빠 딸.”
택시가 출발하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한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오래 울었다.
새집 앞에서 택시를 내리며 한나가 말했다.
“자기야, 나 마음이 좀 많이 아려.”
나는 그 말에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한국을 떠날 날까지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이라도 장인어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 함께 길을 나섰다.
가평 청평호에서 바나나보트를 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았고 안개가 내리던 제주 비자림로에서는 양옆으로 이어진 삼나무를 바라보며 함께 탄성을 질렀다.
생각해 보면 그 석 달 동안 우리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함께 걷고, 먹고, 웃으며 길을 나서는 일이었다.
한나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봉화산을 걸었던 것처럼, 이제는 나도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온 길의 한쪽에 조금씩 들어가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안면도였다.
꽃지해수욕장을 함께 걷던 아침이었다.
장인어른이 내 손을 꼭 잡으셨다.
“둘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게.”
잠시 말없이 걷다가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는 우리 은정이 편안하게 떠나보낼 수 있겠네.”
그 말씀을 들으며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참지 못하시던 장인어른의 얼굴이 떠올랐다.
산책을 마치고 우리는 안면도 수산시장에 들러 회와 맥주 두 병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장인어른이 내게 맥주 한 잔을 따라 주셨다.
오랫동안 아버지와 딸이 마주 앉아 나누었던 그 맥주를 이제는 내가 받아 들고 있었다.
나는 잔을 받아 들며 조심스럽게 부탁드렸다.
“아버님, 저희 떠나기 전에 한 번 기도해 주시면 안 될까요?”
장인어른은 선뜻 대답하지 않으셨다.
“꼭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그냥 눈을 감고 은정 씨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만 해 주셔도 됩니다. 아버님 목소리로 들려주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기다렸다.
“은정아, 아빠는 교회가 싫다. 교회가 아빠 가족을 다 데려간 것 같아.”
오래전 봉화산을 내려오며 딸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던 아버지였다.
그분이 천천히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입을 여셨다.
“친구 같은 딸을 제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이 딸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옵소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족을 교회에 빼앗긴 것 같다고 말씀하시던 분이 이제 하나님께 자신의 딸을 맡기고 계셨다.
그 기도를 들으며 나는 장인어른이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온 딸이 어떤 존재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린 시절에는 혼자 있는 아버지가 싫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고, 어른이 되어서는 퇴근길에 주꾸미와 맥주를 사 들고 돌아왔던 딸.
아버지에게는 셋째 딸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
그런 딸을 이제 자신이 손을 잡아 줄 수 없는 먼 나라로 보내야 했다.
나는 훗날 그 마음에 ‘단심(丹心)’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한 사람을 향해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마음.
하지만 자녀가 없던 그때의 나는 장인어른의 마음을 다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두 딸이 생겼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조금씩 자기 삶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끔 그날의 장인어른을 떠올린다.
택시를 타러 가는 짧은 길에 굳이 딸의 가방을 직접 들어 주시던 모습.
꽃지해수욕장에서 내 손을 꼭 잡으시던 아침.
그리고 자신이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하나님께 딸을 부탁드리던 목소리.
이제야 그 마음을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장인어른은 한나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막으려 하지 않으셨다.
다만 딸이 가는 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남기고 계셨다.
가방을 들어 주고, 손을 잡아 주고, 마지막에는 기도로 딸의 앞날을 맡기셨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한나를 조금씩 새롭게 알아가고 있었다.
내가 사랑한 한 사람에게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오래도록 이어져 온 사랑과 관계가 있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시간들 위에 우리만의 삶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2005년 1월 10일.
그렇게 우리는 한국을 떠나 인도로 향했다.
한나는 아버지가 오랜 시간 만들어 준 안정감을 마음에 품고 있었고, 나는 그 아버지가 마지막에 건네준 기도를 품고 있었다.
아버지가 수없이 준비해 온 평범한 내일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함께 걸어갔다.
부드러움은 자신의 영역
을 함께 걸어가며 관계 속에 타인이 다정함의 감정을 타인이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한나가 형과의 대화를 듣고 말했 던 "둘 다 서로 부드럽지만, 끝이 다르네" 말한 그 끝이 다른 이유를 책을 통해서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형과 내가 끝이 다른 이유는 '질문'이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사람에게 장점과 단점이 있다면, 앞으로 내 입으로 상대의 단점은 말하지 않고 장점만을 보고 말하기로.
그 좋은 것들만을 이어,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kklesia)’를 만들어 가고 싶어졌다.
또한 타인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궁금해서 묻는, 일방적인 캐묻기가 아닌 서로 오가는 질문이 이어질 때 관계의 폭은 넓어지고 결은 깊어졌다.
부드러움과 다정한 질문을 건강하게 연결해 주는 고리가 몰입의 경청이라는 것도, 지난 삶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었다.
한 사람에게 몰입된 상태에서의 경청은 부드러움도, 다정한 질문도 가능하다는 건, 살아 보니 알게 된 지혜의 영역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는
제가 막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상대의 현재와 미래는 내가 함께하겠지만 과거를 알 수 없잖아요
근데 아이를 낳으면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더 잘 알게되고 이해해 줄 수 있게 되고 그게 너무 하고 싶은거죠
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