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하늘언어교회
본문: (새번역성경) 전도서 7장 15절~18절
15 헛된 세월을 사는 동안에, 나는 두 가지를 다 보았다. 의롭게 살다가 망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악한 채로 오래 사는 악인도 있더라.
16 그러니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슬기롭게 살지도 말아라. 왜 스스로를 망치려 하는가?
17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고, 너무 어리석게 살지도 말아라. 왜 제 명도 다 못 채우고, 죽으려고 하는가?
18 하나를 붙잡되, 다른 것도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극단을 피한다.
제목: 하늘중용
본문을 보면 지나치게 의인도 되지 말고 지나치게 악인도 되지 말라고 권합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악은 철저히 버려야 하고 의는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득보다 실이 많고 부작용도 많습니다.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기 때문에 철저히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악은 없어지지 않고 의는 이루기 어렵습니다.
만일 무리해서 과격하게 악을 죽이고 의롭게 되려고 고집하게 되면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완벽주의에 빠지고 성경적으로는 율법주의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 상태로 계속 가면 결국 자칭 의인이라고 믿고 남들을 정죄하기를 일삼는 바리새적 신앙인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극단을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개역성경으로는 이 부분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지만 새번역에는 분명히 극단을 피하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오늘은 새번역성경을 본문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양극단을 피하고 중간을 취하는 태도를 중용이라고 합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서는 중용을 행복에 이르는 길이로 보았습니다. 행복은 과잉과 부족의 사이에 있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지난번에 신앙의 조율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악기가 제 소리를 내려면 적당히 조율을 해야 하듯이 신앙도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시키려면 하나님 뜻에 맞게 조율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율은 악기의 현을 너무 헐겁거나 너무 팽팽하지 않게 조절해서 가장 알맞은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때 조율의 목적은 양극단을 피하고 딱 맞는 음이 되게 하는 것이니 바로 중용의 원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중용에 따라 조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용의 기준을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어느 선이 중용인가에 대해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갑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커피를 두 잔 마시는 것이 중용인 것 같지만 갑의 주치의가 보기에는 한 잔만 마시는 것이 중용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갑보다는 전문가인 의사의 견해가 더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해서 대체로 의사의 의견에 따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의사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진의 가능성이 늘 존재합니다. 설사 인간적으로 볼 때는 오진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의 견해는 완전한 중용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죄로 인해 이미 심각하게 극단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한 부분에서 중용을 취한다 해도 결코 전체적인 불균형이 해소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에서는 철학적 중용을 잘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면 완전한 중용을 향한 구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중용은 성경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중용이라고 인정하실만한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기독교적 중용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용의 완성도를 성경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을 저는 하늘중용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인간이 진단한 것은 아무리 그 방면에 전문가라 하더라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진단대로 다 지키더라도 수명이 약간 연장될 뿐 완전한 삶에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원래 주어진 생명력을 죄된 생활로 고갈시키며 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망이 급하게 들이닥치게 되는데 의사는 그 사망을 잠시 늦춰 줄 뿐입니다.
그런데 사망시기를 늦추면 또 다른 문제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치매, 뇌졸중, 암, 사랑하는 이들과 사별 등 수많은 고통과 문제를 더 많이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그러니 인간이 중용을 지향한다고 해도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수단이나 노력을 초월해서 성경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추구해야 더 높은 차원의 중용인 하늘중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하늘중용을 구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이 다름아닌 성경해석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경을 하나님 뜻에 맞춰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은 무시하고 자기의 해석을 최고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완벽한 해석을 제시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따라서 각자가 해석한 것을 맹신하지 말고 적당히 거리두기 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해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늘중용은 여러분이 처한 모든 영역에 유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식생활에 하늘중용을 적용하면 과식이나 영양실조를 피하게 되어 건강에 유익합니다.
하늘중용을 공부에 적용하면 탁월한 학습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설교하는 목회자들이 하늘중용을 따라 말씀을 전하면 교회와 교인이 변화되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늘중용을 두루 적용하면서 살아간다면 매사에 많은 유익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윤택해지고 이웃에게 사랑과 덕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밝고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소식
1. 하늘중용공동체
제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하늘중용입니다.
물론 아직 주변에는 이런 개념을 인지하고 공유할만큼 학구적인 사람은 없지만 신앙고백에 따른 보편적 교회를 염두에 두고 하늘중용 개념을 공유해 가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2. 손벗, 손친 코이노니아(교제)
예전에 저희가 운영하던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점사모 즉 점화(손가락점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다음카페 ‘설리반의 손 헬렌켈러의 꿈’ 회원들 중 일부로 구성되었던 그 모임은 제가 대학공부에 매진하면서 뜸해지다가 결국 휴무상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시청각인 당사자가 주동이 된 자조모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위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것을 할 여력이 없어서 흐지부지 되었지만 사실은 시작조차 제대로 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여유가 회복되고 있으니 중단했던 점사모 활동의 부활을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다만 예전같은 패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 조직이나 시스템 지향적 활동이 아닌 하늘중용지향적 활동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많은 일들을 하고 싶지만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손벗을 찾는 일입니다.
손벗이란 우리 손사람인 시청각인들과 교제하고 소통할 자질을 갖춘 사람을 말합니다.
이 자질을 손달란트라고 명명해보았습니다. 누가 그 달란트가 있는가하는 것은 직접 손사람과 만나보아야 드러나게 됩니다.
한국에 5천에서 1만명 가량의 시청각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므로 손달란트가 있는 사람들도 그 이상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는 손달란트가 다 주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달란트를 발굴하지 못해 묻어둔다면 달란트를 수건에 사두었던 종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시청각인과 손벗 즉 손달란트를 가진 이들의 만남과 교제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이들을 ‘설리반’이라고 지칭했는데 그런 명칭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하다 보니 설리반이란 이름의 막중함 때문에 다들 회피하고 도망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설리반이란 용어를 지양하고 부담없고 친밀하게 손벗이란 말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페친, 트친 등이 유행하니 보다 현대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손친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손친이란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한번이라도 당사자인 저와 안면을 트고 인사라도 나눈 적이 있는 모든 분들을 포괄합니다.
다만 좀 더 서로의 성장과 자아실현과 하늘나라 실현을 위해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면 바로 하늘중용의 원리에 따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코이노니아 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손친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앞으로 꾸준히 공유하겠습니다.
3. 에센셜오일 체험
지난 27일(월)에 있었던 에센셜오일 체험을 통해 교인들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소는 ‘EM공작소 예안‘ 강사님은 사장님인 은혜샘교회 김명희 사모님 김문자 사장님 김혜경사모님께서 진행하셨습니다.
저희가 배운 것은 크게 두가지였는데 하나는 에센셜오일 만드는 법이고 또 하나는 석고방향제 만드는 법입니다.
에센셜오일에 관한 간단한 설명 파일을 미리 준비해주셔서 읽은 다음 저는 아내에게, 다른 시청각인들은 하늘인목사님과 하늘금지원사님 등에게 도움을 받으며 에센셜오일의 그윽한 향기를 만끽했습니다.
에센셜오일은 식물의 성분중에 향을 내는 물질을 추출한 것인데 노화방지, 피부미용, 진정작용 등 수많은 약효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너무 농도가 강해서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캐리어오일에 섞어서 사용해야 한답니다.
만드는 방법은 네로리, 라벤더, 티트리 등 몇가지 오일을 섞고 캐리어오일을 추가하면 완성되는데 이것을 세수 직후에 바르고 나서 화장하면 피부미용에 좋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석고방향제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강사님께서 수백가지가 넘는 에센셜오일 중 4종류를 택해서 체험을 하게 해주셨습니다.
자스민, 화이트자스민, 라벤더, 피톤치드를 차례로 돌려가며 냄새를 맡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 개의 석고 모형틀을 만져보게 하고 그 중 마음에 드는 틀을 고르게 한 다음 거기에다 석고와 에센셜오일과 물을 부어 기다리면 석고 방향제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완성된 석고방향제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이 연일 향기잔치가 한창입니다.
소중한 체험을 선사해주시느라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