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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초(撰時抄)(어서 270쪽)
은 파절(破折)하고 취(取)해야 할 것은 채용(採用)하였다. 그 위에 지관십권(止觀十卷)을 기술하여 일대(一代)의 관문(觀門)을 일념(一念)에 통괄(統括)하고 십계(十界)의 의정(依正)을 삼천(三千)에 줄여 넣었다. 이 서(書)의 문체(文體)는 멀리는 월지(月支)의 일천년간(一千年間)의 논사(論師)보다 초과(超過)하고 가까이는 시나(尸那) 오백년(五百年)의 인사(人師)의 해석(解釋)보다 우승(優勝)함이니라. 그러므로 삼론종(三論宗)의 길장대사(吉藏大師)는 남북(南北) 일백여인(一百餘人)의 선배들과 장자(長者)들을 권하여 천태대사(天台大師)의 강경(講經)을 들으라고 권유하는 장(狀)에 가로되「천년(千年)의 흥(興) 五백(百)의 실(實)은 다시 금일(今日)에 있음이라, 내지(乃至) 남악(南岳)의 예성(叡聖), 천태(天台)의 명철(明哲)은 옛날에는 삼업(三業)을 주지(住持)하고 지금은 이존(二尊)으로 소계(詔繼)함이니 어찌 다만 감로(甘露)를 진단(震旦)에만 뿌릴 뿐이겠느뇨. 또한 응당(應當) 법고(法鼓)를 천축(天竺)에 울리리라. 생지(生知)의 묘오(妙悟)는 위진(魏晋) 이래(以來) 전적풍요(典籍風謠)가 실(實)로 연류(連類)가 없음이로다, 내지(乃至) 선중일백여(禪衆一百餘)의 승(僧)과 함께 지자대사(智者大師)에게 봉청(奉請)하였다」등(等)운운(云云). 수남산(修南山)의 도선율사(道宣律師)가 천태대사(天台大師)를 찬탄(讚歎)하여 가로되「법화(法華)를 조료(照了)함은 고휘(高輝)가 유곡(幽谷)에 이른 것 같고 마하연(摩訶衍)을 설(說)함은 장풍(長風)이 태허(太虛)에 노니는 것과 같구나, 가령(假令) 문자(文字)의 스승이 천군만중(千群萬衆)이 있어서 그의 묘변(妙辯)을 모아 밝혀 본다 해도 능(能)히 구명(究明)하는 자(者) 없음이니라, 내지(乃至) 의(義)는 달을 가리키는 것과 같고 내지(乃至) 종(宗)은 일극(一極)에 귀(歸)하노라」운운(云云), 화엄종(華嚴宗)의 법장대사(法藏大師)가 천태(天台)를 찬탄(讚歎)하여 가로되「사선사(思禪師)와 지자(智者) 등과 같은 분은 신이(神異)에 감통(感通)하여 적(迹)은 등위(登位)에 참(參)하고 영산(靈山)에서 청법(聽法)한 기억(記憶)은 지금에 있노라」등 운운, 진언종(眞言宗)의 불공삼장(不空三藏)·함광법사(含光法師) 등(等)·사제(師弟) 함께 진언종(眞言宗)을 버리고 천태대사(天台大師)에 귀복(歸伏)하는 이야기에 왈(曰) 고승전(高僧傳)에 가로되「불공삼장(不空三藏)과 친(親)히 천축(天竺)에 유학(遊學)했을 때 한 승(僧)이 있어 묻기를·대당(大唐)에 천태(天台)의 적교(迹敎)가 있어 가장 사정(邪正)을 잘 가리고 편원(偏圓)을 밝힐만 하니 능(能)히 이것을 번역(飜譯)하여 바야흐로 이 땅에 가져 와야 하지 않겠는가」등 운운. 이 이야기는 함광(含光)이 묘락대사(妙樂大師)에게 말한 것이니라, 묘락대사(妙樂大師)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로되「어찌 중국(中國)에서 법(法)을 잃고 이것을 사유(事維)에 구(求)함이 아니랴. 이 분을 알고 있는 자(者)는 적으며 노인(魯人)과 같을 뿐이로다」 등 운운, 신독국중(身毒國中)에 천태(天台) 삼십권(三十卷)과 같은 대론(大論)이 있다면 남천(南天)의 승(僧)이 어찌하여 한토(漢土)의 천태(天台)의 해석(解釋)을 원(願)할손가. 이 어찌 상법중(像法中)에 법화경(法華經)의 실의(實義)가 나타나 남염부제(南閻浮提)에 광선유포(廣宣流布)함이 아니뇨. 답(答)하여 가로되, 정법일천년(正法一千年)·상법(像法)의 전사백년(前四百年)·이상(已上) 불멸후(佛滅後)·일천사백여년간(一千四百餘年間) 아직도 논사(論師)가 홍통(弘通)하지 않은 일대초과(一代超過)의 원정(圓定)·원혜(圓慧)를 한토(漢土)에 홍통(弘通)할 뿐만 아니라, 그 명성(名聲)은 월지(月氏)에까지 들린 것이로다. 법화경(法華經)의 광선유포(廣宣流布)인 것 같지만 아직도 원돈(圓頓)의 계단(戒壇)을 건립(建立)하지 못하고 소승(小乘)의 위의(威儀)로써 원(圓)의 혜정(慧定)에 잘라 붙임은 약간 미덥지 못함과 같으니라, 예(例)컨대 일륜(日輪)이 일식(日蝕)함과 같으며 월륜(月輪)이 이지러짐과 같으니라. 하
선시초(撰時抄)(어서 271쪽)
물며 천태(天台) 대사(大師)의 시대(時代)는 대집경(大集經)의 독송다문견고(讀誦多聞堅固)의 시(時)에 해당하며 아직도 광선유포(廣宣流布)의 시(時)는 아니로다.
물어 가로되, 전교대사(傳敎大師)는 일본국(日本國)의 인사(人士)이외다. 간무(桓武)의 시대(時代)에 출세(出世)하여 긴메이천황(欽明天皇)의 시대(時代)부터 이백여년(二百餘年) 동안의 사의(邪義)를 논파(論破)하고 천태대사(天台大師)의 원혜(圓慧)·원정(圓定)을 선택하실 뿐만 아니라 감진화상(鑒眞和尙)이 홍통(弘通)했던 일본(日本) 소승(小乘)의 삼처(三處)의 계단(戒壇)을 논파(論破)해 버리시고 에이산(叡山)에 원돈(圓頓)의 대승(大乘) 별수계(別受戒)를 건립(建立)했느니라. 이 대사(大事)는 불멸후(佛滅後), 일천팔백년간(一千八百年間) 신독(身毒)·시나(尸那)·부상(扶桑) 내지(乃至)·일염부제(一閻浮提) 제일(第一)의 기사(奇事)이니라. 내증(內證)은 용수(龍樹)·천태(天台) 등(等)과는 혹은 열등(劣等)하든가 혹은 같았을 것이니라. 불법(佛法)의 사람을 모두 일법(一法)으로 되게 한 일은 용수(龍樹)·천친(天親)보다도 초월(超越)하고 남악(南岳)·천태(天台)보다도 우수한 것 같이 보여진다. 통틀어 여래(如來)가 입멸(入滅)하신 후 일천팔백년(一千八百年) 동안에 이 두 사람만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시니라. 그러므로 수구(秀句)에 가로되 「경(經)에 가로되 만약 수미(須彌)를 들어 타방(他方)의 무수(無數)한 불토(佛土)에 던져 놓기는 역시 아직 어렵다 하지 않노라, 내지(乃至) 만약 부처가 멸도(滅道)한 악세(惡世) 중(中)에 있어서 능(能)히 이 경(經)을 설(說)하기란 어려우니라 운운(云云), 이 경(經)을 해석(解釋)하여 가로되·얕음은 쉽고 깊음은 어렵다란 석가(釋迦)의 소판(所判)이며 얕음을 떠나서 깊음에 붙는 것은 장부(丈夫)의 마음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석가(釋迦)에 신순(信順)하여 법화종(法華宗)을 도와 진단(震旦)에 부양(敷揚)하고 에이산(叡山)의 일가(一家)는 천태(天台)로 부터 상승(相承)하여 법화종(法華宗)을 도와 일본(日本)에 홍통(弘通)함이라」 운운(云云), 해석(解釋)의 뜻은 현겁제(賢劫第)九의 감(減)·인수백세(人壽百歲)의 때 부터 여래(如來)·재세(在世)五十년(年)·멸후일천팔백여년(滅後一千八百餘年)의 중간(中間)에 높이 십육만팔천유순(十六萬八千由旬)·육백육십이만리(六百六十二萬里)의 금산(金山)을 어떠한 사람이 오척(五尺)의 소신(小身)의 손으로 일촌사각(一寸四角)·이촌사각등(二寸四角等)의 기와장을 쥐고 일정(一町) 이정(二町)까지 던지듯이 참새가 날아가는 것보다 빠르게 철위산(鐵圍山) 밖으로 던지는 자(者)는 있다 해도 법화경(法華經)을 부처가 설(說)하신 대로 설하는 사람은 말법(末法)에는 드문 일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전교대사(傳敎大師)야말로 불설(佛說)과 비슷하게 설하신 사람이니라. 천축(天竺)의 논사(論師)는 아직도 법화경(法華經)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며, 한토(漢土)의 천태(天台) 이전의 인사(人師)는 혹은 지나치고 혹은 부족(不足)하였었다. 자은(慈恩)·법장(法藏)·선무외등(善無畏等)은 동(東)을 서(西)라고 하고 하늘을 땅이라고 말한 사람들이니라. 이런 것들은 전교대사(傳敎大師)가 자찬(自讚)하는 것은 아니로다. 지난 연력(延曆) 이십일년(二十一年) 정월(正月) 십구일(十九日)에 다카오산(高雄山)에 간무황제(桓武皇帝)가 행차(行次)하시어 육종(六宗)·칠대사(七大寺)의 석덕(碩德)인 젠기(善議)·쇼유(勝猶)·호키(奉基)·조닌(寵忍)·겐교쿠(賢玉)·안부쿠(安福)·곤소(勤操)·슈엔(修圓)·지코(慈誥)·겐요(玄耀)·사이코(歲光)·도쇼(道證)·고쇼(光證)·간빈(觀敏) 등(等)의 십유여인(十有餘人)을 불러서 사이초법사(最澄法師)와 대면시켜 종론(宗論)이 있었는데, 혹은 일언(一言)에 혀를 내두르고 이언(二言) 삼언(三言)할 것까지도 없었으니 모두 일동(一同)으로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모았더라
선시초(撰時抄)(어서 272쪽)
삼론(三論)의 이장(二藏)·삼시(三時)·삼전법륜(三轉法輪)·법상(法相)의 삼시(三時)·오성(五性)·화엄종(華嚴宗)의 사교(四敎)·오교(五敎)·근본지말(根本枝末)·육상(六相)·십현(十玄) 모두 대강(大綱)이 파절(破折)되었으니 예(例)컨대 큰 가옥(家屋)의 동량(棟梁)이 부러진 것과 같이 십대덕(十大德)의 만당(慢幢)도 쓰러졌다. 그 때 천자(天子)는 크게 놀라시어 동(同) 이십구일(二十九日)에 히로요(弘世)·구니미치(國道)의 양리(兩吏)를 칙사(勅使)로 해서 거듭 칠사(七寺)·육종(六宗)에게 분부를 내리시니 각각(各各)은 귀복장(歸伏狀)을 받치며 가로되 「몰래 천태(天台)의 현소(玄疎)를 보니 통틀어 석가일대(釋迦一代)의 교(敎)를 한데 묶어 죄다 그 뜻을 나타내니 통(通)하지 않는 곳이 없고 유독(唯獨)히 제종(諸宗)에 초월하며 특히 일도(一道)를 나타냈는데 그 중(中)의 소설(所說)은 심심(甚深)한 묘리(妙理)니라. 칠개(七箇)의 대사(大寺)와 육종(六宗)의 학생(學生)은 옛날부터 아직 들은 바 없고 일찍이 본 바도 없느니라, 삼론(三論) 법상(法相)의 긴 세월의 다툼도 녹아내리는 얼음과 같이 풀려서 조연(照然)하고 이미 명백(明白)하며 마치 운무(雲霧)가 개이고 삼광(三光)을 본 것과 같다. 쇼토쿠(聖德)의 홍화(弘化) 이래 지금까지 이백여년간(二百餘年間) 강술(講述)된 바의 경론(經論)은 그 수가 많고 피차(彼此)가 이(理)를 다투었지만 그 의문(疑問)은 아직도 풀리지 않음이라, 그런데 이 최묘(最妙)의 원종(圓宗)은 아직 천양(闡揚)되지 않았으니, 생각컨대 그 동안의 군생(群生)은 아직 원미(圓味)에 맞지 않았음인가. 삼가 생각해 보건대 성조(聖朝)는 멀리 여래(如來)의 부촉(付囑)을 받아 깊이 순원(純圓)의 기(機)를 맺었으며, 일묘(一妙)의 의리(義理)를 처음으로 흥현(興顯)하시어 육종(六宗)의 학자(學者)는 비로소 지극(至極)을 깨달았으며 이 계(界)의 함령(含靈)은 지금부터는 모두 묘원(妙圓)의 배에 타고 빨리 피안(彼岸)에 건널 수 있을 것이로다. 내지(乃至) 젠기(善議) 등(等)은 숙연(宿緣)에 끌리어 휴운(休運)을 만나 그리하여서 기사(奇詞)를 열람(閱覽)하니 심기(深期)가 아니고서야 어찌 성세(聖世)에 태어났으리요」 등(等) 운운(云云). 저 한토(漢土)의 가상(嘉祥) 등(等)은 백여인(百餘人)을 모아 천태대사(天台大師)를 성인(聖人)으로 정(定)하였으며, 지금 일본(日本)의 칠사(七寺)·이백여인(二百餘人)은 전교대사(傳敎大師)를 성인(聖人)이라 호칭(號稱)해 드렸다. 불멸후이천여년(佛滅後二千餘年)에 이르러 양국(兩國)에 성인(聖人)이 두 사람 출현(出現)했느니라. 그 위에 천태대사(天台大師)가 미홍(未弘)한 원돈대계(圓頓大戒)를 에이산(叡山)에 건립(建立)하셨으니, 이 어찌 상법(像法)의 말(末)에 법화경(法華經)이 광선유포(廣宣流布)됨이 아니랴. 답(答)하여 가로되, 가섭(迦葉) 아난(阿難) 등(等)이 홍통(弘通)하지 않은 대법(大法)을 마명(馬鳴)·용수(龍樹)·제바(提婆)·천친(天親) 등(等)이 홍통(弘通)한 일은 앞의 논난(論難)에 나타났었다. 또 용수(龍樹)·천친(天親) 등(等)이 유포(流布)하다 남기신 대법(大法)을 천태대사(天台大師)가 홍통(弘通)하신 것은 또 논난(論難)에 나타났는니라. 또 천태지자대사(天台智者大師)가 홍통(弘通)하시지 않은 원돈(圓頓)의 대계(大戒)를 전교대사(傳敎大師)가 건립(建立)하신 것도 또한 현연(顯然)하니라. 단(但) 가장 불심(不審)한 일은 부처는 다 설(說)하셨지만 불멸후(佛滅後)에 가섭(迦葉)·아난(阿難)·마명(馬鳴)·용수(龍樹)·무착(無著)·천친(天親)·내지(乃至) 천태(天台)·전교(傳敎)가 아직도 홍통(弘通)하시지 않은 최대(最大)의 심밀(深密)한 정법(正法)은 경문(經文)의 면(面)에 현전(現前)함이라. 이 심법(深法)이 지금 말법(末法)의 초(初) 오오백세(五五百歲)에 일염부제(一閻浮提)에 광선유포(廣宣流布)되느냐 하는 일은 미심(未審)적기 그지 없느니라.
선시초(撰時抄)(어서 273쪽)
묻되 어떠한 비법(祕法)인지 우선 명칭(名稱)을 듣고 다음에 뜻을 듣고 싶소이다. 이 일이 만약 사실(事實)이라면 석존(釋尊)이 두번 이 세상에 출현(出現)하심인가, 상행보살(上行菩薩)이 거듭 용출(涌出)하였는가. 급히 서둘러 자비(慈悲)를 베푸시라. 저 현장삼장(玄弉三藏)은 육생(六生)을 거쳐 월지(月氏)에 들어가서 十九년(年)만에 법화일승(法華一乘)은 방편교(方便敎)·소승(小乘) 아함경(阿含經)은 진실교(眞實敎)임을 알았고·불공삼장(不空三藏)은 신독(身毒)에 돌아가서 수량품(壽量品)을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고 썼느니라. 이런 것들은 동(東)을 서(西)라 말하고 해를 달이라 잘못 알았으니, 몸을 괴롭혀서 무슨 소용이 있고 마음에 새겨서 무엇 하리요. 다행(多幸)히 우리들은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일보(一步)를 걷지 않고서도 삼기(三祇)를 초과하고 머리를 호랑이에게 주지 않고서도 무견정상(無見頂相)을 득(得)하리라. 답(答)하여 가로되·이 법문(法門)을 말씀드리는 것은 경문(經文)에 있으므로 쉽지만, 단(但) 이 법문(法門)에는 우선 세개의 대사(大事)가 있느니라. 대해(大海)는 넓지만 시체(屍體)를 머물게 하지 않고 대지(大地)는 두텁지만 불효자(不孝者)를 얹어 두지 않느니라. 불법(佛法)에는 오역(五逆)을 도우며 불효(不孝)를 구제하지만 단(但) 비방(誹謗)하는 일천제(一闡提)의 자(者), 지계(持戒)로서 제일(第一)임은 허용(許容)치 않는다. 이 세가지의 재앙(災殃)이란 소위(所謂) 염불종(念佛宗)과 선종(禪宗)과 진언종(眞言宗)이니라. 一에 염불종(念佛宗)은 일본국에 충만하여 사중(四衆)의 입놀림으로 하였느니라. 二에 선종(禪宗)은 삼의일발(三衣一鉢)의 대만(大慢)의 비구(比丘)가 사해(四海)에 충만하여 일천(一天)의 명도(明導)라 생각했느니라. 三에 진언종(眞言宗)은 또 그들 이종(二宗)과는 비교도 안되니 에이산(叡山)·도사(東寺)·칠사(七寺)·온조(園城) 혹은 관주(官主) 혹은 오무로(御室) 혹은 장리(長吏) 혹은 검교(檢校)로 되었고, 저 내시소(內侍所)의 신경(神鏡)은 진회(燼灰)가 되어 버렸지만 대일여래(大日如來)의 보인(寶印)을 불경(佛鏡)이라 의지하고, 보검(寶劍)은 서해(西海)에 빠졌지만 오대존(五大尊)을 가지고 국적(國敵)을 베려고 생각했노라. 이들의 견고(堅固)한 신심(信心)은 설사(說使) 겁석(劫石)이 달아 없어져도 기울어지리라고는 보이지 않으며, 대지(大地)가 반복(反覆)한다 해도 의심(疑心)이 생기기는 어렵다. 저 천태대사(天台大師)가 남북(南北)을 책(責)하실 때도 이 종(宗)은 아직 건너오지 않았으며, 이 전교대사(傳敎大師)가 육종(六宗)을 파절(破折)해 버리실 때에도 빠졌느니라. 여러가지의 강적(强敵)을 벗어 나고나서 도리어 대법(大法)을 속여 없어지게 함이라. 그 위에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제자(弟子)인 지카쿠대사(慈覺大師)는 이 종(宗)을 특별히 내세워 에이산(叡山)의 천태종(天台宗)을 속여 떨어뜨리고 오로지 진언종(眞言宗)으로 해버렸으니 이 사람에게 어느 누구가 적대(敵對)할손가. 그러한 벽견(僻見) 속에서 고보대사(弘法大師)의 사의(邪義)를 문책하는 사람도 없었다. 안넨화상(安然和尙)은 약간 고보(弘法)를 비난(非難)하려 했지만 오직 화엄종(華嚴宗)만을 문책하여 도리어 법화경(法華經)을 대일경(大日經)에 비해서 낮추어 버렸으니 다만 세간(世間)의 중재자(仲裁者)와 같으니라. 물어 가로되, 이 삼종(三宗)의 유오(謬悞)는 어떤가. 답(答)하되, 정토종(淨土宗)은 제(齊)의 세상(世上)에 담란법사(曇鸞法師)라는 자(者)가 있었으니, 본래는 삼론종(三論宗)의 사람인데 용수
선시초(撰時抄)(어서 274쪽)
보살(龍樹菩薩)의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娑論)을 보고 난행도(難行道) 이행도(易行道)를 세웠느니라. 도작선사(道綽禪師)라는 자(者)가 있었는데 당대(唐代)의 사람으로서 본래는 열반경(涅槃經)을 강의(講義)했지만 담란법사(曇鸞法師)가 정토(淨土)에 옮겨 가는 글을 보고 열반경(涅槃經)을 버리고 정토(淨土)에 옮겨 성도(聖道)·정토(淨土) 이문(二門)을 세웠으며 또 도작(道綽)의 제자(弟子)에 선도(善導)라는 자가 있어서 잡행(雜行) 정행(正行)을 세웠느니라. 일본국(日本國)에는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이백여년(二百餘年) 고토바인(後鳥羽院)의 어우(御宇)에 호넨(法然)이란 자(者)가 있어서 일체(一切)의 도속(道俗)에게 권하여 말하되 불법(佛法)은 시기(時機)를 본(本)으로 함이라. 법화경(法華經) 대일경(大日經) 천태(天台) 진언(眞言) 등(等)의 팔종(八宗) 구종(九宗) 일대(一代)의 대소(大小)·현밀(顯密)·권실(權實) 등(等)의 제종(諸宗) 등(等)은 상근(上根) 상지(上智)인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기(機)를 위함이니라. 말법(末法)에 들어와서는 아무리 공(功)을 드리고 행(行)하여도 그 이익(利益)은 없느니라. 그 위에 미타염불(彌陀念佛)에 섞어서 행(行)한다면 염불(念佛)도 왕생(往生)할 수가 없다. 이것은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수보살(龍樹菩薩)·담란법사(曇鸞法師)는 난행도(難行道)라 이름하고 도작(道綽)은 미유일인득자(未有一人得者)라 퇴박했으며, 선도(善導)는 천중무일(千中無一)이라 정(定)하였느니라. 이들은 타종(他宗)이므로 불심(不審)도 있으리라. 에신(慧心) 선덕(先德)보다 뛰어나신 천태(天台) 진언(眞言)의 지자(智者)가 말대(末代)에 계시겠는가. 그의 왕생요집(往生要集)에는 현밀(顯密)의 교법(敎法)은 나의 사생(死生)을 떠날 수 있는 법(法)이 아니로다. 또 삼론(三論)의 에이칸(永觀)의 십인(十因) 등(等)을 보라, 그러면 법화(法華) 진언(眞言) 등(等)을 버리고 오로지 염불(念佛)을 하면 십즉십생(十卽十生)·백즉백생(百卽百生)이라고 권하였으므로 에이산(叡山)·도사(東寺)·온조(園城)·칠사(七寺) 등(等)은 처음에는 쟁론(諍論)을 하는듯 하였지만 왕생요집(往生要集)의 서문(序文)의 말이 도리(道理)라고 보였기에 겐신좌주(顯眞座主)는 떨어져서 호넨(法然)의 제자(弟子)가 돼버렸다. 그 위에 설사 호넨(法然)의 제자가 되지 않은 사람들도 미타염불(彌陀念佛)을 타불(他佛)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입으로 외우고 마음에 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일본국(日本國)은 다 일동(一同)으로 호넨보(法然房)의 제자(弟子)로 보였느니라. 이 오십년간(五十年間)은 일천사해(一天四海)에 한 사람도 없이 호넨(法然)의 제자가 되었으니, 호넨(法然)의 제자가 되었다면 일본국(日本國)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방법자(謗法者)로 됐느니라. 비유컨대 천 사람의 아들이 함께 한 사람의 어버이를 살해(殺害)하면 천 사람이 함께 오역(五逆)의 자(者)이니, 한 사람이 아비(阿鼻)에 떨어지면 나머지 사람도 떨어지지 않을손가. 결국 호넨(法然)은 유형(流刑)을 원망하여 악령(惡靈)이 되어 자신(自身)과 제자(弟子)들을 벌한 국주(國主)·산사(山寺)의 승(僧)들의 몸에 들어가 혹은 모반(謀反)을 일으키고 혹은 악사(惡事)를 해서 모두 간토(關東)에게 멸망당하였다. 약간 남아 있는 에이산(叡山)·도사(東寺) 등(等)의 제승(諸僧)은 속남속녀(俗男俗女)에게 멸시당하기를 원숭이가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하고, 부수(俘囚)가 동자(童子)에게 멸시당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종(禪宗)은 또 이에 편승(便乘)하여 지재(持齋) 등(等)이 되어 사람의 눈을 속여 존귀(尊貴)한 듯한 모습이므로 아무리 잘못된 법문(法門)을 그릇되게 말해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니라. 선종(禪宗)이라 하는 종(宗)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해서 석존(釋尊)의 일체경(一切經)외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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