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반아 28
- 2022년 5월 1일 12시 여의도에서 상견례를 했구나
봄날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여의도 광장은, 쏟아져 내리는 햇살로 화려한 축제의 무대를 능가한다. 그 무대로 나아가 요한스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에 맞춰 우아하게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인 나는, 그 광장 쪽으로 넓은 창이 있어 5월의 푸르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넓고 쾌적한 방 창가에 서 있다. 여덟 명 만찬을 위해 식탁은 정갈하게 준비되어있다.
상견례 장소에 와 있다. 딸아이의 결혼식이 11월이다. 내 나이에 비하면, 또 딸아이 나이에 비하면 늦은 감은 있으나 이만한 축복을 어디에서 만나랴.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즐겨보자고, 긴장된다는 딸아이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나도 사실 밤잠을 설쳤을 정도로 이미 긴장되어있는 건 사실. 평소에 입지 않던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고상한 척하려는 부자연스러운 몸짓까지 한 몫 더 했다.
상견례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한단다, 대충 입고 나갔더니 상대방에 비해 초라해 보여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누군가의 경험담을 들었던 딸아이는 정장을 강조했다. 남편과 아들이야 양복을 입으면 되고 딸아이야 젊으니 무엇을 입어도 싱그러울 터. 그런데 나는? 백화점에 갔다. 옷값도 옷값이지만 나이 탓인지 옷 고르기가 어렵다. 두 벌 입어 보아도 편하지가 않더니, 인연이 있다 했던가. 옷매장에서 나오려다가 슬쩍 마주친 은회색 원피스가 나를 잡아끈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해서 나를 편안하게 한다. 디자인은 내 나이에 비해 좀 젊은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더 나이 먹으면 못 입을 것 아닌가. 옷을 차려입은 거울 속의 내가 처녀처럼 웃고 있다. 목 부분의 파임과 어깨와 길이가 맞춤처럼 잘 맞는다. 아들도 딸아이도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 잘 어울린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해주었고 특히 남편이 이쁘다고 말해줄 때는 우쭐해지기까지 했다.
딸아이는 키가 크고 얼굴이 희고 눈이 맑으니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데 본인이 뚱뚱하다나 뭐라나. 내가 보기에는 건강미인 중 건강 미인이다. 검은색 원피스를 골랐다. 검은색 바탕에 막 개화하기 시작한 붉은 동백꽃을 올려놓은 사진작가 친구의 사진처럼, 딸아이가 돋보인다. 검은색은 젊음을 더 찬란한 젊음으로 승화시켜준다.
남편과 아들은 양복을 맞추었다. 남편은 퇴직한 지 십여 년이 넘었으므로 오래전 양복이고 아들아이는 운동으로든 나이로든 몸이 커져 있다. 예전 양복은 불편하고 초라해 보인다. 요즈음 스타일로 딱 맞게 차려입은 남편이 십 년은 더 젊어 보인다. 호리호리하지만 균형이 잡힌 아들은 역시 젊은이답다. 새신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네 식구 모두 마음에 드는 새 옷을 사서 기분이 좋은데, 딸아이가 안내하는 아웃백에서 그 기분을 호기롭게 연장시켜 즐겼다. 이만하면 준비 완료다.
상견례가 모레인데, 호사담화라 했던가. 사위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 말레이시아에 사는 형님이 동생 상견례에 참석하려고 어렵사리 한국에 들어온 모양이다. 일박이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하필이면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어쩔 것인가. 결혼식 날 신랑이 코로나에 걸려 영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뉴스도 있었는데 이 정도야 다행이지 않은가.
다시 이주일 뒤로 상견례는 미뤄졌고 이번에는 우리가 코로나에 걸리는 것 아니냐며 노심초사했다. 가끔 미열로 고생을 하는 나는 미열이 있다 싶으면 얼른 해열제를 먹고 목이 조금 불편하다 싶으면 미리 병원에서 조제해 왔던 코로나 약을 삼켰다. 집 옆 도로변으로 벚꽃이 한창인 익산언니네 놀러 가자는 언니들의 말에도 얄밉게 단칼에 거절했다. 상견례 끝나고 봅시다.
칠남매의 막내인 내가 딸아이 혼인을 앞두고 상견례를 한다고 하니 언니와 오빠들이 더 궁금해하신다. 더 좋아하신다. 옷은 무엇을 입을거냐 어디서 만날거냐 누구누구 나오냐 사진 올려라 등등. 큰언니는 다섯 번의 상견례를 치르셨고 둘째 언니는 세 번, 셋째 언니와 넷째 언니는 두 번, 작은 오빠는 두 번 상견례를 치르셨으니 인생 선배님들. 궁금할 만도 하시다. 친정집으로 보자면 하도 오랜만의 경사라서 더 관심을 끈다. 서른이 넘어도 결혼하지 않은 자식들이, 가을 숲에 여기저기 잘 여물어 떨어져 뒹구는 도토리처럼 아깝게 널려있는 세상이다.
육십 중반을 넘어선 나이이니만큼 이제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젊은 시절처럼 신경이 쓰이고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사돈이 되실 분들도 그러했다. 사진으로 얼굴을 익혀두어서이기도 하고, 사윗감을 꼭 닮은 바깥사돈 때문이기도 하고, 내 바로 위 언니만한 연배의 안사돈 때문에 오래전부터 쭉 만나온 사람들처럼 친근감이 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형님은 마르고 말이 없고 조용해서 꼭 내 아들을 한 명 더 데려다 놓은 듯 했다. 맞은 편에 앉아 종종 내게 백만불짜리 미소를 보내주는 사윗감은 얼마나 든든하고 친근감이 들던가.
그 분위기 탓인가. 대뜸 나는 용감하게도 결혼 초에 일주일에 삼사일 술에 취해 들어오던 내 남편을 흉보았다. 결혼을 왜 했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안사돈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맞아요 맞아요 저도요. 바깥사돈이 술을 하도 좋아해서, 아직도 좋아하시는 중이니 안사돈의 마음고생이 엿보인다. 꼭 이렇게 양복을 입고 만나야 할까요. 청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만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바깥 사돈의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다. 미리 말씀하시면 좋았을텐데요 청바지를 입고 상견례를 하면 자유로웠겠는데요. 나도 어려운 자리라는 것을 잊고 말이 술술 나왔다. 사돈끼리 마주 앉아서 살아온 세월 속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예상외로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여기 이용하는 시간이 2시간이라네요 일어나야 할 시간임을 누군가 알려주었다. 상견례는 한 시간 안에 끝나면 좋겠다 여겼던 우리처럼 사돈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했단다. 사돈을 처음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운 것은 맞다. 반면에 살아온 세월이 비슷해 이야깃거리가 비슷하다는 장점이 있다. 바깥사돈은 형식보다 자유로움을 추구하신단다. 머리도 길러 멋지게 퍼머를 하셨다. 예순 한살까지 오대 독자로 예법에 얽매여 살아왔다니 그러실만도 하다 싶다. 명절이고 생일이고 그런 것에 구속되지 말고 여유 시간을 오직 두 사람 위해 쓰란다. 여행을 하든지 쉬든지 두 사람이 행복하고 편안한 쪽으로 살아가란다. 두 젊은이에게 바라는 바깥사돈의 말씀이시다. 그 말씀이 고마웠다. 다움 시집 잘 가는구나 내 응답에 좌중에 웃음꽃이 피었다. 다움과 홍길이 환하게 웃었다.
안사돈은 오대 독자의 며느리로 예순한 살까지 매년 11번의 제사를 모셨으며 친정에서는 큰딸이란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 네 여형제 중 본인이라고 겸손의 말을 남겼지만,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 크기가 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막내로 자라온 내 간장종지만한 마음에 비교가 되겠는가. 형식보다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분들을 만났다는 확신이 든다. 푸근함과 너그러움이 얼굴과 몸 전체에 배어있다. 헤어지는 인사에서 나는 안사돈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제 딸아이 부탁드립니다 부족합니다. 안사돈도 대답했다. 그럼요 그럼요 제 아들도 부탁드립니다.
인생의 언덕 하나 오늘 넘었다. 방학하던 날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언덕길을 코흘리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 내려왔던 그 가벼움으로 한강변을 따라 집으로 왔다. 사위나 며느리를 보아야 어른이라는데, 이제 비로소 어른의 대열에 섰다. 우리는.
반반아!
네 아비와 어미의 결혼식이 있기 전에 양가 가족들이 만났구나. 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오래된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구나. 네 할머니와 이 할미는 자매처럼 술을 잘 마시는 남편을 둔 아내의 고충을 깔깔거리며 솔직하게 털어놓았구나. 네 어미와 아비가 잘 살아가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게 양쪽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생각이셨구나. 형식적인 절차는 생략하기로 마음을 합치니, 참으로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시간이었지. 우리의 바람대로 네 어미와 아비는 사랑스럽게 다정하게 잘 살고 있구나. 거기다가 너를 잉태했구나. 아아! 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 할미와 외할아버지는 세상을 얻었구나.
어서 오너라. 우리 모두 대문간에 서서 기다리는 어미의 심정이로구나.